Why Did You Say That? #01 | David Kim
2018년, 한국에서 치킨집 8,400곳이 문을 닫았다. 4년 연속 8천 곳 이상이었다. 온 나라가 ‘치킨 공화국’을 걱정했다.
한국 화장품 책임판매업체는 2023년 3만 1,524곳에서 2025년 2만 8,412곳으로 줄었다. 그 사이에도 수천 개가 새로 등록됐다. 등록과 퇴출이 쉴 새 없이 일어나는 시장이다.
그런데 치킨집과 달리, 사라지는 화장품 브랜드를 걱정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홈페이지가 닫힌다. 인스타그램이 멈춘다. 재고는 할인 판매된다.
어제까지 ‘혁신적인 아름다움’을 약속하던 브랜드가 오늘은 검색조차 되지 않는다.
이게 세계 2위 화장품 수출국, 한국의 또 다른 얼굴이다.
숫자부터 보자.
2025년 한국 화장품 책임판매업체는 28,412곳.
실제 생산실적을 보고한 업체는 약 54%.
2024년 생산실적 보고 업체의 88%는 직원 10명 미만.
연간 생산액 1,000억 원 이상은 2024년 기준 21곳.
반면 2025년 화장품 수출은 114억 달러. 세계 2위.
수출은 기록을 갈아치운다. 브랜드들은 치열하게 들어오고 나간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화장품 회사를 만들까?
기술도, 공장도 필요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제품개발도 필요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OEM, ODM 시스템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제품 개발부터 제조, 패키징, 심지어 브랜드 기획까지 전문기업이 도와준다. OEM, ODM 업체를 연결해주는 온라인 플랫폼도 여럿 존재한다.
아이디어와 자본만 있으면 웹사이트 만들고, 몇 달 안에 제품을 시장에 내놓을 수 있다.
놀라운 산업적 성취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시작된다.
누구나 좋은 화장품을 만들 수 있다면, 고객은 왜 하필 당신의 제품을 사야 하는가?
치킨집은 이미 같은 길을 걸었다.
한국에서 치킨집을 여는 데 요리사가 될 필요는 없다.
본사가 레시피를 준다. 원재료를 공급한다. 매장 운영 시스템도 제공한다.
진입장벽이 낮아지자 가게가 쏟아졌다.
맛이 형편없어서 망한 게 아니다. 충분히 괜찮은 치킨집이 너무 많아졌다.
소비자는 결국 익숙한 브랜드를 고른다. 좋은 상권을 차지한 곳, 배달 앱에서 먼저 보이는 곳이 유리하다.
화장품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공장은 제품을 만든다. 브랜드는 로고를 붙인다. 인플루언서는 영상을 올린다.
그리고 기다린다.
TikTok과 Instagram에서 터지기를.
K-뷰티는 누구의 브랜드인가?
한국 화장품의 글로벌 성공은 부정할 수 없다.
TikTok과 Instagram에서 K-뷰티는 하나의 문화가 됐다. 조선미녀, 아누아, COSRX 같은 브랜드는 세계 시장에서 놀라운 성과를 냈다.
하지만 소비자가 좋아하는 것이 개별 브랜드일까, 아니면 ‘K-뷰티’라는 카테고리일까?
둘은 다르다.
K-팝과 한국 드라마가 관심을 끌어온다. 인플루언서가 구매를 유도한다. 플랫폼이 판매를 연결한다.
그런데 그 관심을 자기 브랜드의 자산으로 바꾸지 못하면 다음 유행이 올 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조회수는 빌릴 수 있다.
고객이 당신을 기억할 이유까지 빌릴 수는 없다.
웹사이트 로고를 지워봤다.
이번에 국내 화장품 브랜드 100여군데를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투자를 받은적이 있는 10개 업체 중에 가장 눈에 뛰는 경쟁력이 있어 보이는 업체 10군데를 웹사이트 부터 광고까지 살펴 보았다
그중 6곳의 문구를 요약하면 이렇다.
A — 초기 노화를 새로운 관점으로. 더 오래 건강하게 빛나는 아름다움.
B — 안티에이징은 불가능한 약속. 우리는 슬로우에이징.
C — 고효능 프리미엄. 클리닉과 함께 개발한 성분.
D — 히알루론산과 EGF. 피부 재생과 글래스스킨 광채.
E — 스킨케어와 메이크업 사이, 건강하게 빛나는 피부.
F — 건강하고 아름답게 나이 드는 하루의 모든 순간.
여기서 브랜드 로고를 바꿔 붙여보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차이를 알아챌까?
빛나는 피부. 건강한 아름다움. 슬로우에이징. 프리미엄. 재생.
다 좋은 말이다.
그런데 읽고 나면 무엇이 남는가?
누가 썻는지?
언제 필요한지? 내 문제를 해결해주는지,
지금 쓰는 제품보다 무엇이 나은지.
정작 고객이 구매할 이유는 잘 보이지 않는다.
더 흥미로운 건 이들이 실패한 회사가 아니라는 점이다.
투자를 받았다. 매출이 빠르게 성장한다고 발표한 곳도 있다.
성장하는 회사도 자기 차별점을 이렇게 설명한다면, 아직 시장에 나오지 않은 수많은 브랜드는 어떨까?
반대로, 세 곳은 달랐다.
G — 사우나 직후 10분. 열 오른 피부를 위한 리커버리.
H — 팔꿈치 착색을 위한 레티놀 바디세럼.
I — 수영장 전용 샴푸. 염소 제거율 96~98%.
완벽한 브랜드라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무엇을 해결하려는지 보인다.
수영을 마친 사람은 샴푸를 살 이유가 있다. 팔꿈치 착색이 고민인 사람은 제품을 찾아볼 이유가 있다.
‘건강하게 빛나는 아름다움’보다 시장이 작아 보일 수 있다.
그런데 시장이 크다고 고객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모든 여성을 위한 제품은 투자설명서에서 매력적이다. 실제 매장에서는 아무도 특별히 자신을 위한 제품이라고 느끼지 못할 수 있다.
중국에서 이미 한 번 해봤다.
한국 화장품은 오랫동안 중국 소비자의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중국 브랜드의 제품력과 마케팅이 발전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한국 브랜드라는 사실만으로 프리미엄을 받던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더 흥미로운 변화가 있다.
중국 브랜드도 한국 ODM에 제조를 맡긴다.
한국 공장이 만든 좋은 제품을 한국 브랜드만 팔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한국 기업의 진짜 경쟁우위는 어디에 있을까?
제품인가? 브랜드인가? 고객인가? 유통인가?
‘Made in Korea’는 강력한 출발점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영원한 경쟁우위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반도체와 화장품의 결정적인 차이
반도체 기업이 최첨단 공장을 짓는 데는 수십조 원이 든다.
수율을 올리고 공정을 개선하는 데 수년이 걸린다. 돈이 있다고 누구나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될 수는 없다.
화장품은 다르다.
세계적 수준의 제조 역량을 외부에서 빌릴 수 있다.
그 덕분에 작은 브랜드도 세계 시장에 도전할 수 있게 됐다.
동시에 경쟁사도 비슷한 기회를 갖는다.
제품의 품질이 더 이상 희소하지 않은 시장에서, 희소해야 할 것은 고객이 그 브랜드를 선택하는 이유다.
그런데 많은 브랜드가 그 이유를 만드는 대신 관심을 사는 데 집중한다.
신제품을 출시한다. 인플루언서를 섭외한다. 광고를 집행한다. 알고리즘을 분석한다.
조회수가 터지면 다시 생산한다.
터지지 않으면?
다음 제품을 만든다.
이것은 브랜드 구축이라기보다 히트 상품을 찾는 게임에 가깝다.
물론 그 게임에서도 큰돈을 벌 수 있다.
문제는 히트 상품의 매출이 지속 가능한 브랜드 가치와 같은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제 로고를 지워보자.
당신 회사 홈페이지의 첫 문장을 읽어보라.
경쟁사 로고를 붙여도 말이 되는가?
'20~30대 여성'이라는 타깃을 지우고, 구체적인 고객 한 명을 설명할 수 있는가?
왜 그 사람이 경쟁사 제품 대신 당신 제품을 사야 하는지 한 문장으로 말할 수 있는가?
답하지 못한다면 광고비를 늘리기 전에 할 일이 있다.
고객이 누구인지, 그 고객의 무엇을 바꿔주는지부터 다시 생각하는 것이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화장품 제조 생태계 중 하나를 만들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공장을 하나 더 짓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제품은 누구나 만들 수 있다. 그런데 당신의 브랜드는 왜 존재해야 하는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TikTok 알고리즘이 대신 찾아주지는 않는다.
Mr. Footnote | Why Did You Say That? #01
다음 편: 같은 공장, 다른 로고. K-뷰티 브랜드들은 얼마나 다를까?
David Kim (Mr. Footnote) | 데이비드 김
30년 투자은행가 → 아시아 외신 칼럼니스트 → 기업의 가치를 투자자와 시장의 언어로 바꾸는 사람
Alpha Narrative Lab | https://alphanarrativelab.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