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빌딩 #사업전략 #프로덕트
엔비디아가 먼저 알아본 한국 스타트업 : 20대 창업가들의 '미친 실행력'

오늘날 인공지능은 텍스트 몇 줄만 입력해도 그럴듯한 영상을 뚝딱 만들어 냅니다. 

하지만 영상 생성 AI에 “상자를 여는 사람의 모습을 뽑아줘”라고 주문하면 때때로 기이한 장면이 연출되곤 하죠. 사람의 손이 상자에 닿지도 않았는데 상자가 저절로 열리는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결과물입니다. 

김주호 오픈그래프랩스(OpenGraph Labs) 대표의 눈에도 그 장면은 기묘하게만 보였습니다. AI 모델이 생각보다 물리적인 정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죠. 

문제를 직감한 그는 직접 해법을 찾아 나섰습니다. 자체 제작한 카메라와 촉각 글러브를 활용해 인간의 1인칭 시점 영상과 손끝의 촉각 데이터를 동시에 수집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는 로봇처럼 현실 공간에서 직접 움직이며 상호작용하는 인공지능, 이른바 ‘피지컬 AI(Physical AI)’를 학습시키기 위한 핵심 데이터입니다.

이렇게 수집하고 정교하게 가공한 데이터는 미국의 빅테크 기업과 최전선 AI 연구소로 판매됩니다. 김 대표가 꼽는 대표적인 고객사는 엔비디아(NVIDIA)죠. 그에 따르면 매출은 올해 3분기부터 나기 시작했습니다. 영상을 찍던 지난여름, 그가 내다본 3분기 매출은 약 10억 원이었죠.

놀라운 점은 이 거대한 파이프라인을 움직이는 주역이 단 세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스물여덟 살 동갑내기인 김주호 대표와 한승호 최고기술책임자(CTO), 그리고 스물네 살의 손범수 최고제품책임자(CPO)가 그 주인공이죠.

 

왼쪽부터 손범수 CPO, 김주호 대표, 한승호 CTO. (출처: EO)

 

그들의 실행력은 거침없고 대담했습니다. 논문을 읽다 막히는 대목이 나오면 저자에게 직접 메일을 보냈습니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일주일이면 시제품을 만들 수 있다며 곧장 실행에 옮겼고, 데이터를 모으기 전에 잠재 고객부터 찾아가 만났죠. 

이번 글은 머리로만 고민하기보다 몸으로 먼저 부딪친 세 청년의 이야기입니다. EO와의 영상 인터뷰를 담았습니다. 

 

 


[아티클 내비게이션]

  1. AI에게 빠진 마지막 퍼즐, 촉각
  2. 세 팀원: 자퇴생, 대학 거부자, 서울대생
  3. 엔비디아가 더 열렬히 반응한 콜드메일
  4. 사흘 밤샘 데모에서 중국 양산까지
  5. 이번엔 고객부터 만났다
  6. 어차피 아무도 답을 모르기에

 

AI에게 빠진 마지막 퍼즐, 촉각

 

저절로 열리는 상자 영상을 보며 김주호 대표는 인간의 유아기를 떠올렸습니다. 사람은 어린 시절 세상을 어떻게 배울까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직접 만져 보며 사물의 이치를 깨닫습니다. 

그는 인간이 세상을 감각하는 이 데이터를 AI에 그대로 주입할 수만 있다면, 물리적 현실을 이해하는 AI를 구현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죠.

 

지금의 AI는 영상을 그럴듯하게 만들어도, 현실에서 물체가 어떻게 움직이고 부딪히는지는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출처: EO)

 

시각과 청각 데이터를 모으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이미 세상 모든 사람의 손에 스마트폰과 카메라가 들려 있기 때문이죠. 진짜 비어 있는 퍼즐 조각은 다름 아닌 ‘촉각’이었습니다. 

문제는 시중에 나와 있는 그 어떤 하드웨어도 이들이 원하는 수준의 촉각 데이터를 담아내기에 역부족이었다는 점입니다. 김주호 대표가 내린 결론은 명쾌했습니다.

“그냥 우리가 궁극의 하드웨어를 만들어야겠다.”

물론 오픈그래프랩스가 단순히 카메라와 장갑만 제조하는 회사는 아닙니다. 인간의 행동 데이터를 수집해 정밀하게 가공하고, 이를 인간형 로봇인 휴머노이드가 학습할 수 있는 형태로 변환하는 전 과정을 아우르죠. 데이터 수집부터 가공, 모델 학습용 변환에 이르는 전체 파이프라인을 직접 구축하는 셈입니다. 

다만 이 거대한 구상을 현실로 옮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하드웨어를 설계하고 깎아낼 장인이 가장 먼저 필요했습니다. 3명의 공동창업자는 그렇게 마주하게 됐습니다. 

 

직접 만든 카메라와 촉각 글러브로 사람의 손동작과 촉각 데이터를 함께 모은다. (출처: EO)

 

세 팀원: 자퇴생, 대학 거부자, 서울대생

 

김주호 대표의 어린 시절 꿈은 화학자였습니다. 하지만 중학교 3학년 때 치른 과학고 입시에서 고배를 마셨죠. 이후 삶은 엉망이었고요. 아침마다 늦잠을 자기 일쑤였고 등교 시간도 매번 넘겼습니다. 

당시의 자신을 두고 “너무 철부지”였다고 회고하는 그는, 결국 6개월 만에 학교를 그만뒀습니다. 하루빨리 대학에 가서 부모님께 다시 증명해 보이고 싶다는 일념뿐이었습니다. 검정고시를 금방 통과한 그는 중국 유학길에 올랐고, 또래보다 반년가량 일찍 대학생이 됐습니다. 그사이 그의 꿈은 과학자를 돕는 금융가로 바뀌어 있었고, 중국에서는 금융학을 공부했습니다.

그가 한승호 CTO를 처음 만난 곳은 카이스트(KAIST) 블록체인 학회인 ‘오라클’이었습니다. 당시 한 CTO는 일일 초빙 강사로 연단에 섰고, 그를 지켜보던 김 대표는 생각했죠. 

‘이 친구가 정말 똑똑해 보인다.’ 

강연이 끝나자마자 김 대표는 직접 찾아가 말을 건넸고, 그날의 대화가 두 사람을 끈끈한 인연으로 묶어 주었습니다.

서울대학교 농경제사회학부에 다니던 한승호 CTO의 길은 개발 쪽으로 틀어졌습니다. 마침 한국에 개발 붐이 일던 때였습니다. 유튜브 영상을 교재 삼아 홀로 엔지니어링을 익힌 그는, 실전 개발을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곳을 찾아 당근마켓에 입사했습니다. 이후 약 3년간은 오로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에만 몰두하며 실력을 다졌죠.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에 다니던 한승호 CTO는 유튜브를 보며 엔지니어링을 독학했다. (출처: EO)

 

한편 김주호 대표는 네다섯 명이 한 팀을 꾸려 각종 해커톤 무대를 누비고 있었습니다. 글로벌 해커톤에서 1등을 차지한 것만 다섯 번 정도에 달했죠. 

그렇게 사이드 프로젝트의 규모를 키워 가던 그에게도 치명적인 갈증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하드웨어를 다룰 줄 아는 팀원의 부재였습니다. 그런 인재를 도대체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고민하던 김 대표는 “무작정 샌프란시스코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그는 지인의 소개로 손범수 CPO를 만났습니다. 손 CPO는 이미 손으로 직접 무언가를 만들어 본 경험이 무수히 많은 ‘메이커’였죠. 김 대표는 팀에 비어 있던 하드웨어 조각이 바로 그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날 이후 김 대표의 집요한 구애가 시작됐습니다.

손범수 CPO는 대학 진학을 스스로 택하지 않은 인물입니다. 당장 대학 교육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인데, 아버지의 반대는 컸습니다. 하지만 그는 사양이 변변치 않은 컴퓨터 한 대로 꾸준히 3D 모델링에 매달렸고, 발명 대회에서 상을 받으며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하나씩 증명해 냈습니다. 그렇게 쌓인 작은 성공들이 결국 아버지를 설득했을 거라고 그는 짐작합니다.

그의 이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과 삼성디스플레이가 공동으로 진행한 연구 프로젝트에 합류해, 반도체 웨이퍼 표면에 원자 단위의 얇은 막을 입히는 원자층 증착(ALD) 공정과 이를 가동하기 위한 클린룸 환경을 연구했습니다. 

그가 특허 2건과 논문 3편가량을 시작했을 때의 나이는 불과 만 17세였죠.

 

반도체 원자층 증착(ALD) 공정을 연구하는 장비. (출처: EO)

 

고등학교를 자퇴한 사람, 대학 진학을 거부한 사람, 그리고 서울대생. 살아온 궤적이 완전히 다른 세 사람이 한 지점에서 만난 것입니다.

손범수 CPO는 이전 스타트업을 운영할 당시 캐나다 토론토에 머물며 샌프란시스코를 여러 차례 오갔지만, 미국 땅에서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들어 본 적은 없었습니다. 그는 오픈그래프랩스의 이번 도전을 미국에서의 마지막 기회라고 여겼습니다. 잠재적 공동 창업자 후보들과 함께 시제품을 만들어 보며 호흡을 맞추는 ‘코파운딩 트라이얼(Co-founding Trial)’만 세네 차례 거친 상태였습니다. 

김주호 대표가 합류를 제안했을 때도 손 CPO는 만만치 않은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자신이 머물고 있는 해커하우스에 들어와 2주 동안 ‘쇼앤텔(Show and Tell)’을 해보라는 것이었죠. 직접 만든 결과물을 눈앞에 보여 달라는 요구였습니다. 김 대표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튿날 해커하우스로 들어갔습니다. 2주간의 합숙을 마친 뒤 김 대표는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그해 12월, 세 사람은 마침내 공동 창업자로 뜻을 모았고 그달에 곧바로 법인을 설립했습니다.

 

세 사람은 코파운더로 함께하기로 하고 법인을 세웠다. (출처: EO)

 

엔비디아가 더 열렬히 반응한 콜드메일

 

새해 첫 달인 1월은 그야말로 논문의 바다에 파묻혀 살았습니다. 팀은 학계에 보고된 서로 다른 데이터 수집 방식을 최소 열 가지 이상 직접 구현해 보았죠. 하지만 이내 거대한 벽에 부딪혔습니다. 논문에 적힌 대로 해 봐도 되지 않는 일이 수두룩했던 겁니다.

해답이 보이지 않자 그들은 가장 단순하고도 확실한 방법을 택했습니다. 논문을 쓴 저자들에게 직접 물어보기로 한 것이죠. 

세 사람은 다시 샌프란시스코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현지에 도착하자마자 지인의 도움으로 귀중한 발표 기회를 얻어 냈습니다. 스탠퍼드 로보틱스 센터(SRC) 연단에서 ‘촉각이 미래다(Tactile is the Future)’라는 주제로 마이크를 잡은 것입니다. 그동안 직접 부딪치며 깨달은 시행착오와 통찰을 공유하는 자리였고, 객석을 채운 수많은 교수와 연구자들이 깊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이 발표를 계기로 현지 연구자들과 네트워크가 형성되면서 한층 유의미한 피드백이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스탠퍼드 로보틱스 센터(SRC)에서 열린 '텍타일 이즈 더 퓨처' 발표. (출처: EO)

 

이제는 이 데이터를 활용할 리서처와 엔지니어를 찾을 차례였습니다. 

김주호 대표는 비즈니스 소셜 미디어인 링크드인(LinkedIn)을 뒤졌습니다. 피지컬 AI에 관심을 보일 만한 엔지니어와 리서처는 물론이고, 자신이 읽었던 논문의 저자들에게 연달아 이메일과 메시지를 보냈죠. 모두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른바 ‘콜드 메일’입니다.

그중에서도 유독 답장이 잘 온 곳이 엔비디아였습니다. 김 대표가 파악하기에 당시 엔비디아는 다양한 감각 데이터의 영역, 즉 ‘모달리티(Modality)’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었죠. 곧바로 엔비디아 관계자 몇 명과 연락이 닿았고, 2월 초 첫 미팅이 잡혔습니다. 법인을 세운 게 12월이었으니, 문을 연 지 얼마 안 된 회사가 엔비디아와 첫 미팅을 잡은 셈입니다.

 

NVIDIA 로고 앞에 선 세 사람. NVIDIA와의 첫 미팅은 2월 초에 잡혔다. (출처: EO)

 

그 첫 미팅 자리에는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의 아들인 스펜서 황도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김 대표의 전언에 따르면, 멀리 한국에서 날아온 젊은 팀이라는 소식에 남다른 호기심이 생겨 직접 자리에 참석했다고 합니다.

(김주호 대표에게는 남다른 습관이 있습니다.) 평소 논문 읽기를 즐기는 그는 후속 아이디어나 의문이 생기면 주저 없이 제1 저자에게 연락해 의견을 나누곤 했죠. 그 무렵에도 마침 그렇게 이야기를 주고받던 엔비디아 리서처가 한 명 있었습니다.

첫 미팅에서 스펜서 황은 그 리서처에게 “이런 친구들이 있으니 만나봐라”고 권했습니다. 그런데 리서처에게 오픈그래프랩스는 이미 아는 팀이었습니다. 게다가 그는 엔비디아에서 데이터를 실제로 사들이고 함께 일할 파트너를 고르는 의사결정자였습니다. 따로 소개할 필요도 없었던 셈이죠. 그때부터 일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습니다.

 


 

사흘 밤샘 데모에서 중국 양산까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엔비디아 측에서 다시 연락이 왔습니다. 며칠 뒤 샌프란시스코에서 엔비디아 리서치 팀 전체가 모여 촉각 기술을 논의할 예정인데, 혹시 현장에서 직접 시연해 보일 실물이 있느냐는 물음이었죠. 

팀의 대답은 “할 수 있다”였습니다. 정작 보드조차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는데도 말입니다.

김주호 대표의 판단은 단호했습니다. “미룰 거면 내년에 하자.” 

아무리 거친 초기 버전일지라도 눈앞에서 실물을 보여줘야만 했습니다. 완벽하게 다듬어진 상용 제품이 아니어도 좋았죠. 엔비디아 연구진에게 한 번의 인상을 남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고, 그 정도 수준의 데모라면 일주일 안에 충분히 구현할 수 있다는 계산이 섰습니다. 그렇게 김 대표는 “그냥 하자”며 도전에 시동을 걸었습니다.

손범수 CPO에게 당시의 사흘은 지금도 가장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갑작스럽게 잡힌 엔비디아 미팅 일정을 맞추기 위해 단 한 숨도 자지 않고 사흘 연속으로 데모 제작에 매달렸죠. 원래 그는 이 작업을 한 달 정도로 길게 잡고 있었습니다. 한 달짜리 일이 며칠 앞으로 당겨진 셈이니, 그야말로 숨 막히는 타임 어택이었습니다. 

보드를 앉아서 기다릴 수 없었던 그들은 곧장 중국 선전(深圳)으로 건너갔습니다. 전자상가 같은 곳에서 “이 케이블 똑같은 거 좀 찾아달라”고 부탁하며 작업을 이어 갔습니다.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는 날까지도 작업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손 CPO는 비행기 타기 불과 1시간 반 전까지 공항에서 작업을 붙들고 사투를 벌였습니다. 한승호 CTO는 “비행기를 못 탈 뻔했거든요”라며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들려주었고,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김주호 대표는 웃고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손 CPO의 무릎 위에는 은색 케이스가 놓여 있었죠.

이후 엔비디아는 공식 개발자 블로그를 통해 로봇 원격 조종 프레임워크인 ‘아이작 텔레옵(Isaac Teleop)’을 지원하는 기기 업체들을 소개했고, 그곳에 오픈그래프랩스(OpenGraph Labs)의 이름이 당당히 올라갔습니다. 아이작 텔레옵 기술 문서에도 오픈그래프랩스의 ‘OGLO 촉각 글러브’가 접촉과 움직임을 감지하는 외부 지원 하드웨어로 이름을 올렸죠.

 

NVIDIA가 아이작 텔레옵 지원 기기 업체를 소개한 문장. 오픈그래프랩스(OpenGraph Labs)의 이름이 보인다. (출처: EO)

 

유니트리(Unitree)나 마누스(Manus)처럼 굵직한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것입니다. 한승호 CTO는 그 일이 무척 뿌듯했다고 회상했습니다.

2월부터 4월까지 석 달 동안은 시장성을 검증하기 위한 프로토타입을 숨 가쁘게 찍어 냈습니다. 김주호 대표에 따르면 세 번째 프로토타입이 빅테크 기업들 사이에서 좋은 반응을 이끌어 냈죠. 시제품으로 만들면 많이 사고 싶다는 잠재 고객들의 수요를 처음으로 확인한 순간이었습니다. 

곧바로 팀은 지체 없이 중국행 비행기 표를 끊었습니다.

 

중국 공장을 찾은 손범수 CPO가 직접 찍은 영상. (출처: EO)

 

손범수 CPO와 김주호 대표는 거의 두 달을 중국 현지에 체류하며 제조 공장들을 직접 뚫었습니다. 도면을 설계해 공장에 넘기면 나흘 만에 시제품이 손에 쥐어졌죠. 이를 받아 이틀 동안 문제점을 분석하고 수정 도면을 완성해 다시 공장에 넘겼습니다. 

“7일 사이클이 만들어졌어요.” 

일주일이 지날 때마다 제품의 완성도가 눈에 띄게 깎이고 다듬어졌습니다.

 

중국에서 만든 7일 개발 주기. 4일 제작, 2일 피드백과 수정, 7일째 전달. (출처: EO)

 

이 초고속 공정에서 가장 큰 관건은 중국 공장들을 움직이는 일이었습니다. 

김 대표의 설명에 따르면 중국은 전 세계에서 하드웨어 제작 의뢰가 쏟아져 들어오는 거대한 제조 허브입니다. 반면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스타트업인 오픈그래프랩스의 주문 물량은 공장 입장에서 볼 때 그리 큰 물량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공장주들이 이 팀의 시제품을 빨리 찍어 내고 싶게 만들어야만 했습니다. 

김 대표는 특유의 설득력으로 정면 돌파했습니다. 

“저희가 잘될 수밖에 없는 기업이고, 오늘 너가 날 도와주는 게 초기 TSMC 도와주는 거랑 같은 일이다.” 

TSMC는 지금 세계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입니다. 오픈그래프랩스를 돕는 일이 그 TSMC의 초창기를 돕는 일과 같다는 설득이었죠. 이 정도까지 진심 어린 설득을 해내면 일이 정말 빨라진다는 게 그의 말입니다.

손 CPO에 따르면 인터뷰 영상을 촬영할 무렵 최종 버전의 하드웨어는 이미 양산 채비를 모두 마친 상태였습니다. 중국 현지에서는 인쇄회로기판(PCB)부터 센서, 장갑 패브릭에 이르기까지 전 공정의 생산 라인이 쉼 없이 돌아가고 있었죠. 두 달 안에 약 500대가 양산되어 쓰일 예정이었습니다.

 


 

이번엔 고객부터 만났다

 

놀라운 실행력의 이면에는 세 사람 모두 이전에 한 번씩 겪었던 첫 창업의 쓰라린 수업료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한승호 CTO는 학생 시절 학교 친구들과 함께 첫 창업에 도전했습니다. 예쁜 스튜디오들을 한데 모아 놓은 플랫폼이었죠. 6개월 정도를 꼬박 개발에만 매달렸지만, 결과는 냉혹했습니다. 

“실질적인 유저를 만나지는 못 했었고요.”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저 어떤 플랫폼을 개발해 보고 싶었던 것 같다고 그는 솔직하게 고백했습니다.

 

한승호 CTO는 첫 창업에서 플랫폼을 6개월 정도 개발했지만 실제 사용자를 만나지 못했다. (출처: EO)

 

손범수 CPO 역시 군 복무 시절 진로를 바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과 디자인을 2년가량 파고든 뒤, 자신이 이상적이라 믿었던 프로덕트를 세상에 내놓은 적이 있습니다. ‘헨지’라는 이름의 3D 서비스였죠. 머지않아 3D 콘텐츠 영역에서도 과거 아이폰의 등장과 같은 혁신적인 변곡점이 도래할 것이라 믿고, “저장하는 공간을 만들어 보자”는 콘셉트로 출발했습니다. 

시각적인 완성도는 매우 뛰어났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아쉬움만 남겼죠. 

“저희가 유저의 목소리를 많이 듣지 못했던 것 같아요.” 

결국 매출을 내지 못한 채 서비스를 접어야 했지만, 창업가로서 자신이 사랑하는 일에 끝까지 몰입해 본 경험과 집요하게 제품을 깎아내는 태도만큼은 온전히 그의 자산으로 남았습니다.

 

손범수 CPO가 만들었던 3D 서비스 '헨지'의 화면. (출처: EO)

 

김주호 대표의 첫 창업은 약 2년간 이어졌습니다. 당시 그의 주변에는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다양한 실험에 나서는 동료들이 유독 많았는데, 이들을 돕기 위해 엔젤 투자자들을 한데 모아 연결해 주는 금융 플랫폼을 구축했죠. 그는 당시를 이렇게 돌아봤습니다. 

“제가 풀고 싶은 문제에 너무 매몰됐었던 것 같아요.”

만들고 싶은 제품도 있었고, 풀고 싶은 문제도 분명했습니다. 하지만 세 사람의 첫 창업에 공통적으로 결여되어 있던 단 하나는 바로 ‘쓸 고객의 목소리’였죠.

이 뼈아픈 교훈 덕분에 두 번째 창업에서는 순서를 완전히 뒤집었습니다. 데이터를 모으기 전에 고객부터 찾아가 만난 것이죠. 전략은 적중했습니다. 한 대기업 팀에서 스타트업 규모로는 도저히 감당하기 힘들 만큼 방대한 양의 데이터 수집을 요청해 왔습니다. 

“이거는 무조건 해야겠다.” 

팀은 즉시 데이터 수집 인프라를 폭발적인 속도로 확장하며 멕시코와 한국 두 거점에서 동시에 수집 오퍼레이션을 가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첫 데이터 수집 현장은 멕시코였습니다. 한승호 CTO는 처음에 이 작업이 비교적 수월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현장의 변수는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작업자 한 명당 머리 위와 손목에 총 세 대의 카메라를 장착하는데, 핵심은 이 세 대의 카메라가 완벽하게 동기화(Sync)되어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동시에 기록을 시작하고 동시에 멈춰야 하죠. 

그런데 치명적인 걸림돌이 발견됐습니다. “얘네 각각이 전부 다 시계가 달라요.” 

아무런 보정 없이 데이터를 모았다가는 시간 축이 완전히 어긋난 쓸모없는 데이터만 쌓이게 될 판이었습니다. 한 CTO는 현재 시장에서 데이터를 수집하는 기업들이 이 미세한 동기화 로직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오픈그래프랩스가 동기화 품질을 직접 점검하며 고품질 데이터를 자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번 창업의 성패이자 관건은 ‘고객을 위한 마음’에 있다는 마음가짐이었습니다.

 

오픈그래프랩스 김주호 대표 (출처 : EO)

 

김주호 대표는 첫 창업과 오픈그래프랩스의 가장 큰 차이점을 주저 없이 ‘고객과의 거리’에서 찾습니다. 현재 그는 핵심 타깃 고객인 AI 리서처들과 엄청나게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죠. 그들이 받아보았을 때 진심으로 행복해할 만한 데이터를 갖다주면 비즈니스는 자연스레 성장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 그의 지론입니다.

손범수 CPO는 피지컬 AI 데이터 비즈니스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세 개의 기둥이 완벽한 균형을 이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첫째는 정밀한 하드웨어 제조 역량이고, 둘째는 그 하드웨어로 수집한 원시 데이터를 AI가 이해할 수 있게 가공하는 소프트웨어 파이프라인이며, 셋째는 데이터를 잘 모아 내는 현장 운영(Operation) 역량이죠. 

그의 설명에 따르면 기존의 경쟁 업체들은 대개 이 세 가지 중 단 하나의 영역만 다룹니다. 반면 오픈그래프랩스는 하드웨어 설계부터 소프트웨어 파이프라인, 글로벌 현장 오퍼레이션까지 세 기둥을 모두 직접 통제하며 질 좋은 데이터를 만들어 냅니다.

오픈그래프랩스가 하는 일이 한국에 알려지자 국내에서도 뜨거운 관심이 쏟아졌습니다. 이를 계기로 세 사람은 한국 산업계가 직면한 구조적인 문제들을 깊이 들여다보기 시작했죠. 

그 과정에서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사람이 정말 많이 줄고 있다는 이야기를 빈번하게 접했습니다. 여수 국가산업단지에 가보면 현장을 이어받을 신규 채용 인력이 사실상 전무하다는 이야기였죠. 

지금 현장을 지키는 숙련공들이 은퇴하고 나면, 그들의 손끝에 축적된 고도의 암묵적 기술(암묵지)은 누구에게도 전수되지 못한 채 영영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김주호 대표와 팀원들은 바로 이 지점을 자신들이 해결해야 할 시대적 과제로 포착했습니다.

 

공장 현장. 김주호 대표는 숙련공들이 은퇴하면 그 기술을 전수할 곳이 없다는 점을 문제로 봤다. (출처: EO)

 

김 대표에 따르면 영상 촬영 당시 오픈그래프랩스는 이미 국내 산업 현장의 기술 전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개념 검증(PoC)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었습니다. 공장 작업자가 자체 개발한 카메라와 촉각 글러브를 착용하고 평소처럼 작업을 수행하면, 그 손놀림 데이터가 고스란히 기록됩니다. 

팀은 이를 휴머노이드 로봇이 학습할 수 있는 형태로 변환하고, 그 성과를 기업 고객들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보여 주고 있죠. 한승호 CTO는 한국에서의 데이터 수집을 고도화하기 위해 서울대학교 로봇 동아리 부원 약 20명을 모집해 데이터를 모으고 있으며, 공장뿐만 아니라 물류 창고와 카페 등 일상적인 공간으로 수집 환경을 다각화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처럼, 김주호 대표는 결국 로봇이 인간의 삶 깊숙이 들어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미래의 풍경은 아직 우리가 결정할 수 있다고 믿죠. 영화 〈터미네이터〉에 등장하는 것처럼 차갑고 위협적인 기계 집단이 인간을 감시하는 디스토피아가 아닙니다. 그가 꿈꾸는 미래는 현관문을 활짝 열어 집 안으로 반갑게 맞아들일 수 있는 다정한 친구 같은 로봇입니다.

한승호 CTO는 언젠가 태어날 자신의 아이를 떠올립니다. 그 아이가 자라날 세상에서는 로봇과의 공존이 당연한 일상이 될 것입니다. 

“저희가 가르친 로봇이랑 같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일까요. 인터뷰 당시 그는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미래의 아들을 향해 진심 어린 영상 편지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아들아. 아빠가 잘 다니던 회사 때려치고 미국에 맨몸으로 왔는데 잘 해서 여기서 먹고 살아보게 잘 열심히 해볼게. 사랑한다.”

물론 로봇 기술의 발전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에 두려움이 섞여 있다는 사실을 김주호 대표도 잘 알고 있습니다. “다 나 대체시키려고 하는 거지”라는 불안감입니다. 

하지만 그가 지향하는 방향은 인간을 밀어내는 ‘대체’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인수인계’입니다. 오늘날의 일을 인수인계하고 내일 할 일을 찾아 나서는 과정이라는 것이죠. 어느 날 갑자기 스위치가 켜지듯 세상이 뒤바뀌어 사람들이 충격을 받는 대신, 그 변화의 과정 자체에 사람들을 주체적으로 참여시키는 것이 더 맞는 이행 방식이라는 게 그의 철학입니다.

 


 

어차피 아무도 답을 모르기에

 

명문대 진학, 유망 기업 취업, 그리고 결혼까지. 한승호 CTO는 한국 사회가 이른바 ‘정상 궤도’라고 부르는 통과의례를 남부럽지 않게 모두 밟아 왔습니다. 그 숙제들을 전부 해치우고 난 뒤에야 그는 비로소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해도 된다고, 이제 누구도 토를 달지 못할 거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요즘 곁에서 함께 일하는 스물네 살의 손범수 CPO를 바라보며 그의 생각은 흔들렸습니다. 

“내가 꼭 그렇게 그걸 다 깨고 나서 할 필요가 있었나.” 

치열한 자문 끝에 그가 도달한 결론은 명쾌했습니다. 

“정상적인 루트 비정상적인 루트 이런 거 없이 다들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는구나.”

 

정해진 단계를 다 밟아 온 한승호 CTO는 손범수 CPO를 보며 각자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된다고 생각하게 됐다. (출처: EO)

 

김주호 대표 역시 비슷한 깨달음을 일찌감치 중국 유학 시절에 얻었습니다. 과학고 입시에 실패하고 자퇴생이라는 꼬리표를 단 채 건너간 그 광활한 땅에서, 그는 세상이 얼마나 넓고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 얼마나 다채로운지를 온몸으로 목격했죠. 사람마다 ‘정상’을 정의하는 기준 자체가 완전히 달랐습니다. 

“내가 정상이라고 생각하면 여기서부터 나를 기점으로 정상이 된다.”

손범수 CPO는 죽음을 앞둔 먼 미래의 자신을 상상해 봤습니다. 숨을 거두기 직전, ‘내가 좀 더 공부 열심히 해서 더 좋은 회사 들어갈 걸’ 하고 후회할까, 아니면 ‘내가 이거 그냥 한번 시도해 볼 걸’ 하고 후회할까. 아무리 저울질을 해봐도 시도조차 해보지 않은 쪽을 후회할 것 같았습니다. 

“인생 긴데 망해봤자 얼마나 망하겠냐.” 

그 초연한 마음가짐 덕분에 그는 매 순간 실패의 두려움 대신 자신이 가장 행복해질 수 있는 선택지를 고릅니다. 

“자기가 행복한 거 하는 게 제일 좋은 것 같습니다.”

 

손범수 CPO는 시도해 보지 않은 쪽을 더 후회할 것 같았다고 말한다. (출처: EO)

 

아무도 가 보지 않은 길에서는 어려운 문제를 만나기 마련입니다. 그때마다 세 사람은 치열하게 머리를 맞대죠. 김주호 대표는 그렇게 함께 고민하던 문제가 마침내 풀리는 순간의 희열을 이야기하고, 한승호 CTO는 그 짜릿한 감각을 “엄청난 도파민”이라고 표현합니다. 

사실 한 CTO에게는 미국으로 건너오기 전까지 실리콘밸리의 엔지니어들은 모두 범접할 수 없는 천재일 것이라는 막연한 환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현장에서 그들과 부딪치며 대화를 나눠 보니, 한국인만큼 똑똑한 이들이 생각보다 흔치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그는 실리콘밸리와 한국의 격차를 두고 “역량의 차이가 아니라 정말 환경의 차이”라고 단언합니다.

영상을 마무리하며 김주호 대표가 환한 웃음과 함께 마지막 말을 건넸습니다. “우리가 하는 거랑 그들이 하는 게 생각보다 다르지 않고, 다른 건 언어 뿐인데.” 

영어가 모국어처럼 완벽하지 않더라도, 이 문제를 진심으로 풀고 싶어 하는 사람들끼리는 같은 미션을 공유하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놀라울 만큼 깊게 통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한국인이 못 해낼 일은 세상에 절대 없다며, 마음가짐이 있다면 무조건 도전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합니다. 

그가 이토록 당당하게 도전을 권하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아직은 그 누구도 답을 모르기 때문이죠.

 


손도 대지 않았는데 저절로 열리던 기이한 상자 영상. 거기서 시작된 여정입니다. 세 청년은 오늘도 인간의 손이 빚어내는 1인칭 시점의 풍경과 손끝의 치열한 감각을 데이터로 기록하고 있죠. 공장에서, 물류 창고에서, 그리고 일상의 카페에서.


 

📌 오픈그래프랩스 세 창업자가 직접 들려주는 더 자세한 이야기는 EO 영상으로도 만나보세요. 

 

| 편집: 김지윤 | 글: 서용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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