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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성의 문턱을 낮추는 인공지능

 

그리지 못해도 디자인할 수 있다면

최근 인체공학을 오래 연구해 온 한 스타트업 대표를 만나 AI 제품 개발 솔루션 Doodll의 시연을 볼 기회가 있었다. 만들고 싶은 제품을 말로 설명하면 인공지능이 몇 가지 질문을 던지면서 제품의 개념을 함께 구체화하고, 그렇게 정리된 개념이 스케치와 렌더링을 거쳐 3D 모델로 이어졌다. 3D 모델이 나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2~3분 남짓이었다. 필자도 미팅 중에 직접 몇 가지 제품을 만들어 보았는데, 손으로는 스케치 한 장도 제대로 그리기 어려운 필자에게도 머릿속의 형상이 화면 위의 입체로 바뀌는 과정은 꽤 새로운 경험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인공지능이 사람의 창의성을 대신하기보다 그 창의성이 외부로 표현될 수 있는 길을 넓혀 주는 장면을 본 것 같았다

생성형 인공지능이 등장한 뒤로 창작의 영역에서는 기대만큼이나 우려의 목소리도 커졌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디자인을 하는 일이 인공지능에게 넘어가면 사람의 창의성이 밀려나게 된다는 걱정이다. 사실 특허, 즉 발명의 영역도 고도의 창의적 아이디어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인공지능을 활용한 발명이라는 주제에 대한 논의와 우려의 목소리가 많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 인공지능이 쓰이는 방식을 들여다보면 조금은 다른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인공지능은 창의성을 빼앗는 도구일까, 아니면 창의성을 넓히는 도구일까?

 

 

창의성의 장벽은 표현

제품 아이디어 하나가 실제 제품이 되기까지는 생각보다 많은 단계를 거친다. 머릿속의 아이디어를 스케치로 옮기고, 스케치를 렌더링으로 다듬고, 다시 3D 모델로 만들어 시제품을 제작해야 한다. 그 뒤에도 금형을 만들고 생산을 거쳐야 비로소 판매가 시작된다. 단계마다 다루어야 하는 도구가 다르고, 그 도구를 익히는 데에만 상당한 시간이 든다. 기획자와 디자이너, 설계자가 서로 다른 도구로 일하다 보니 서로의 의도를 주고받는 데에도 적지 않은 비용이 들고, 시제품을 몇 번씩 다시 만드는 일도 흔하다. 그래서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이라도 그것을 표현할 기술이 없으면 아이디어는 머릿속에 머물다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창의성보다 표현 수단의 부족 때문에 묻히는 아이디어가 적지 않은 셈이다.

Doodll이 흥미로웠던 지점은 바로 이러한 표현의 단계를 인공지능이 맡는 방식이다. 칠판처럼 끝없이 펼쳐지는 화면 위에서 스케치와 이미지, 렌더링이 한 흐름으로 이어지고, 사용자는 마인드맵을 그리듯 생각을 펼쳐 나간다. 하나의 아이디어에서 여러 시안이 가지를 치듯 늘어나는 구조라, 디자인 씽킹의 과정을 도구 안에 그대로 옮겨 놓은 것처럼 보였다. 시안이 어떤 순서로 파생되었고 단계마다 어떤 판단을 내렸는지도 함께 기록된다고 한다. 인체 데이터와의 가상 피팅으로 제품이 실제 사람의 몸에 어떻게 맞는지도 미리 확인할 수 있다. 인간공학을 오래 연구해 온 개발자의 배경 때문인지, 도구가 기술보다는 사람이 생각하는 순서를 따라 설계되었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러한 도구에서 인공지능은 생각을 대신하는 존재라기보다 생각을 눈에 보이게 만들어 주는 조력자에 가깝다.

특히 아이디어를 탐색하는 첫 단계에서 인공지능이 곧바로 답을 내놓기보다 사용자에게 질문을 던지며 개념을 함께 좁혀 간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인공지능이 던지는 물음에 하나씩 답하는 사이에 막연했던 아이디어가 조금씩 구체적인 제품의 모습을 갖추어 간다. 결과물의 방향을 정하는 것은 결국 질문에 답하는 사람이고, 인공지능은 그 답을 빠르게 형상으로 옮겨 주는 역할을 맡는 셈이다. 질문에 답하고 시안을 고르는 주체가 끝까지 사람이라는 점에서, 앞선 칼럼에서 말한 생각의 끈을 사용자가 놓지 않도록 설계된 방식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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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가 보여 준 인공지능의 순기능

인공지능이 창의성에 주는 영향은 최근 연구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2024년 7월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실린 Doshi와 Hauser의 연구는 293명의 작가에게 여덟 문장짜리 짧은 이야기를 쓰게 하면서, 일부 작가에게는 GPT-4가 만든 이야기 아이디어를 받아 볼 수 있게 했다. 아이디어를 받을 수 있었던 작가의 88.4%가 한 번 이상 아이디어를 요청했다. 600명의 평가자가 이야기를 평가한 결과, 생성형 AI가 제안한 아이디어를 최대 다섯 개까지 참고할 수 있었던 작가의 이야기는 인공지능의 도움 없이 쓴 이야기보다 참신성이 8.1%, 유용성이 9.0% 높게 평가되었다. 특히 원래 창의성 점수가 낮았던 작가들의 경우에는 참신성이 10.7%, 유용성이 11.5%나 높아졌다.

눈여겨볼 부분은 인공지능의 효과가 원래 잘하던 사람보다 표현이 어려웠던 사람에게서 더 크게 나타났다는 점이다. 인공지능이 창의적인 사람을 대체하기보다 창의성을 드러낼 수단이 부족했던 사람의 문턱을 낮추는 쪽으로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인공지능의 아이디어를 참고하되 이야기는 작가 스스로 완성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인공지능이 창작을 대신했다기보다 작가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를 넓혀 준 셈이다. Doodll이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사람도 제품을 디자인하게 해 주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물론 같은 연구는 인공지능의 한계도 함께 보여 준다.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은 이야기들은 같은 조건의 다른 이야기들과 더 비슷해졌고, 작가가 받은 인공지능 아이디어와도 5% 정도 더 닮아 있었다. 개인의 창의성은 높아졌지만 집단 전체로 보면 이야기의 다양성이 줄어든 것이다. 다만, 이러한 결과는 인공지능을 멀리해야 한다는 근거라기보다 인공지능이 내놓은 것을 그대로 받아들일수록 결과물이 평균으로 모인다는 의미로 읽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인공지능이 만들어 주는 시안이 많아질수록 무엇을 남길지 판단하는 사람의 안목이 중요해지고, 서로 다른 출발점을 가진 많은 사람이 함께 참여하도록 참여의 폭을 넓힐 필요도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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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커톤, 대중의 아이디어를 시장에 묻다

지난 7월 Doodll 플랫폼에서 열린 첫 번째 메이커톤 doodll Day는 이러한 방향을 보여 주는 사례다. 주제는 내가 가장 잘 팔 수 있는 제품 만들기였다. 참가자들은 7월 2일부터 10일까지 Doodll로 제품을 디자인해 작품을 제출했고, 7월 11일부터 19일까지는 쇼핑 기간이라는 이름으로 투표가 진행되었다. 주최 측 설명으로는 1,000명이 넘는 사람이 참여해 100건 정도의 작품이 모였다고 한다. 작품 이미지는 물론 제목과 설명, 키워드까지 인공지능이 작성을 보조하여, 디자인 경험이 없는 참가자도 완성된 형태로 작품을 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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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doodll_ - 인스타그램


개인적으로는 투표를 쇼핑으로 이름 붙인 점이 가장 눈에 띄었다. 제품을 만들기 전에 사람들이 실제로 사고 싶어 하는지를 먼저 묻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제품 아이디어는 시제품과 금형을 거쳐 생산한 뒤에야 시장의 반응을 확인할 수 있었고, 아이디어 하나로 출발하는 예비 창업자에게는 시장의 답을 듣기까지 드는 시간과 비용이 큰 부담이었다. 크라우드펀딩처럼 출시 전에 수요를 확인하는 방법도 있지만, 펀딩 페이지에 올릴 렌더링이나 시제품을 준비하는 데에도 적지 않은 비용이 든다. 형상을 만드는 비용이 줄어들면 이러한 순서를 바꾸어, 시제품보다 먼저 사람들이 보고 고를 수 있는 형상을 내놓고 반응부터 확인할 수 있다. 투표 결과와 사람들이 선호한 디자인, 참여자들이 남긴 의견은 제조 여부를 정하는 근거가 되고, 사업계획서나 투자 유치 단계에서 시장성을 설명하는 자료로도 쓰일 수 있다. 인공지능의 순기능이 표현의 문턱을 낮추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아이디어가 시장의 평가를 받기까지 드는 비용을 낮추는 데까지 이어지는 셈이다.

2024년 오거니제이션 사이언스(Organization Science)에 실린 Boussioux 등의 연구도 비슷한 방향을 가리킨다. 연구진은 순환경제 사업 아이디어를 공모한 크라우드소싱 대회에서 사람 대중이 낸 해법과 사람이 인공지능과 함께 만든 해법을 비교했다. 평가자 300명이 234개의 해법 가운데 무작위로 고른 13개씩을 평가한 결과, 대중의 해법은 참신성에서 앞섰고 인공지능과 함께 만든 해법은 전략적 실현 가능성과 재무적 및 환경적 가치, 전체 품질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았다. 흥미로운 점은 인공지능에게 앞선 답과 다른 답을 내도록 차례로 요구한 방식이 가장 좋은 결과를 냈다는 것이다. 같은 인공지능이라도 어떻게 묻느냐에 따라 결과물의 수준이 달라지고, 인공지능의 완성도도 결국 방향을 잡아 주는 사람의 몫과 함께 커진다는 의미로 읽힌다. 대중의 참신함과 인공지능의 완성도를 잇는 것, 메이커톤이 하려는 일이 바로 그것으로 보인다.

현재 준비 중인 두 번째 메이커톤 Myth at Work도 곧 브랜드와 협업한 오픈 이노베이션 플랫폼의 좋은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참가자마다 서로 다른 인물과 이야기를 출발점으로 삼게 한다는 점에서 앞서 본 다양성 감소 문제를 보완하는 장치가 마련되었다고 한다. 같은 인공지능을 쓰더라도 출발점이 다르면 질문이 달라지고 결과물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아이디어만 받는 공모전과 달리 메이커톤은 참가자가 실제 형상을 갖춘 결과물을 내도록 이끈다. 말과 글로 제출된 아이디어는 실제 제품이 되었을 때의 모습을 가늠하기 어려워 평가하는 쪽도 판단이 쉽지 않았고, 소비자에게 사고 싶은지를 묻기는 더욱 어려웠다. 기업의 입장에서도 브랜드가 과제를 내고 참가자가 형상으로 답하며 소비자가 고르는 구조라면, 신제품 기획 단계에서 대중의 아이디어와 반응을 함께 얻고 금형을 짜기 전에 어떤 디자인이 선택을 받는지 확인하는 통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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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와 보호 사이

다만, 변리사의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오픈 이노베이션 플랫폼에는 짚어 두어야 할 문제가 있다. 먼저 공개다. 투표를 하려면 작품이 공개되어야 하는데, 플랫폼이 알려질수록 공개된 아이디어를 제3자가 가져다 쓸 위험도 커진다. 또한 특허나 디자인은 출원 전에 공개된 내용이 신규성 판단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우리 특허법과 디자인보호법은 자신이 공개한 발명이나 디자인이라도 공개한 날부터 12개월 안에 출원하면 신규성 상실의 예외 규정을 두고 있다. 다만 예외를 인정받으려면 그 취지를 밝히고 증명 서류를 내는 등 정해진 절차를 따라야 하고, 해외 출원까지 생각한다면 나라마다 예외를 인정하는 범위가 달라 공개 전에 출원하는 편이 안전하다.

또 하나는 권리의 주체다. 인공지능을 발명자로 적은 출원을 특허청이 무효로 처분하고 법원도 그 처분이 옳다고 본 사례에서 보듯,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았더라도 출원서의 발명자나 창작자는 사람이어야 한다. 따라서 인공지능과 함께 만든 결과물이라면 어떤 문제를 풀려고 했고, 여러 시안 가운데 무엇을 왜 골랐으며, 고른 시안을 어떻게 구체화하고 다듬었는지로 사람의 기여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다만 문제를 던지거나 결과물을 고르기만 한 것으로는 사람의 기여가 충분하다고 보기 어려울 수 있으므로, 결과물을 구체화하는 과정에 사람이 실질적으로 관여했다는 점을 함께 보여 줄 수 있어야 한다. 시안이 만들어진 과정과 사람이 내린 판단이 기록으로 남는다는 점은 향후 사람의 창작 기여를 설명하는 자료로도 쓰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오픈 이노베이션 플랫폼에는 아이디어를 모으는 기능만큼이나 아이디어를 지키는 장치가 필요할 것 같다. 먼저, 제출된 아이디어의 기본 권리는 제출자에게 있고 플랫폼은 홍보에 활용하며 제품화할 때는 따로 협의한다는 원칙을 참가 단계에서 분명히 알려야 한다. 또한, 브랜드와 협업하는 과제는 폐쇄형으로 운영하거나 투표 기간이 끝난 뒤 공개 범위를 줄이는 등 노출의 시기와 범위를 조절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참가자 역시 권리화를 고려하는 아이디어라면 공개하기 전에 출원을 먼저 검토하는 것이 안전하다. 3D 모델이 이미 만들어져 있다면 디자인 출원에 필요한 여러 방향의 도면을 준비하는 일도 한결 수월해진다. 참가자가 안심하고 아이디어를 내놓을 수 있어야 더 많은 아이디어가 모인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러한 보호 장치는 규제라기보다 오픈 이노베이션 플랫폼의 경쟁력에 가깝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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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성의 문턱을 낮추는 인공지능

결국 인공지능의 순기능은 사람의 창의성을 대신하는 데 있기보다 그 창의성이 표현되고 검증되는 과정을 짧고 넓게 만드는 데 있다. Doodll이 보여 준 것처럼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사람도 제품을 디자인할 수 있고, Doodll을 활용한 메이커톤이 보여 준 것처럼 제품을 만들기 전에 시장의 반응을 먼저 물을 수 있다. 만드는 수고를 인공지능이 덜어 준 만큼 사람은 무엇을 만들지 묻고 무엇을 남길지 고르는 일에 더 집중할 수 있고, 아이디어와 시장 사이의 거리도 그만큼 가까워진다. 연구 결과가 보여 주듯 인공지능의 도움은 표현이 어려웠던 사람에게 더 크게 돌아가고, 대중의 다양한 출발점과 만날 때 그 가치가 커진다. 아이디어가 쉽게 만들어지고 빠르게 공개되는 만큼, 지식재산 전문가의 역할도 아이디어가 공개되기 전후의 권리 관계를 미리 설계하는 쪽으로 넓어질 것으로 보인다.

인공지능이 창의성의 문턱을 낮추고 있는 지금, 그 문턱을 넘어온 아이디어가 제품과 권리로 이어질 수 있도록 공개와 보호의 균형을 함께 설계해야 할 시점이다.

 

 

 

BLT 칼럼은 BLT 파트너변리사가 작성하며 매주 1회 뉴스레터를 통해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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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유철현 대표 변리사는 서울대 재료공학부를 졸업하고 2007년 44기 변리사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직접 투자하는 ‘엑셀러레이터형’ BLT 특허법률사무소를 시작으로, IT와 BM분야의 전문성을 살려 다양한 기술 기반 기업의 지식재산 및 사업 전략 컨설팅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현재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심의위원과 한국엔젤투자협회 TIPs 사업 심사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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