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조기업 한 곳이 AI를 붙일 업무 후보를 부서별로 적어 보니 12개 부서에서 120가지가 나왔습니다. 이 120가지를 부서가 아니라 「어디서 시작해 어디서 끝나는가」로 다시 묶으면 16개 흐름이 됩니다. 그중 10개 흐름은 부서 3곳 이상을 지나고, 120가지 중 92가지(77%)가 이 10개 흐름에 속합니다.
제조 AI 운영체제 VEXPLOR를 만드는 웨이스가 이 제조기업과 업무 AI 도입을 검토하면서 목록을 다시 묶어 본 결과입니다. 부서별 목록으로 볼 때는 부서마다 AI를 하나씩 붙이면 될 것처럼 보였습니다. 흐름으로 다시 놓고 보니 업무 대부분이 한 부서 안에서 시작하고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 글은 연재 「제조기업 업무 다시 정의하기」의 첫 편입니다. 이번 편에서는 부서가 왜 생겼는지, 업무 120가지가 어떤 16개 흐름으로 묶이는지, AI가 들어오면 업무의 단위가 왜 바뀌는지를 다룹니다. 2편부터는 한 편에 흐름 하나씩, 어떤 문서가 어느 부서를 거쳐 어디서 끝나는지를 문서의 필수 항목까지 정의합니다.
업무에는 시작과 끝이 있고, 부서는 그 사이를 사람끼리 나눠 맡으려고 만든 조직입니다
업무는 무언가가 들어오면서 시작해 무언가가 나가면서 끝납니다. 고객이 사양서 개정판을 보내오면 설계 변경이 시작되고, 바뀐 작업표준서가 현장에 배포되면 끝납니다. 구매 요청서가 올라오면 구매가 시작되고, 협력사에 대금이 지급되면 끝납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이 처음과 끝을 모두 맡기는 어렵습니다. 이유는 3가지입니다.
· 전문 지식 — 사양서를 읽는 일, 도면을 고치는 일, 원가를 다시 계산하는 일, 세금계산서를 맞추는 일은 필요한 지식이 다릅니다.
· 문서의 양 — 한 흐름에서 읽어야 할 문서가 많습니다. 설계 변경 하나에도 사양서 두 판, 도면, 자재명세서(BOM), 원가표, 작업표준서가 필요합니다.
· 권한 — 발주하는 사람과 대금을 지급하는 사람, 만드는 사람과 합격을 판정하는 사람은 일부러 나눕니다. 서로 견제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회사는 전문 지식과 권한을 기준으로 부서를 나눴습니다. 부서는 전문성과 권한의 단위이고, 업무는 부서를 차례로 지나가며 끝납니다. 부서와 부서 사이에서는 사람이 협조를 요청하고, 결재를 올리고, 회의를 합니다.
이 구조에는 비용이 따릅니다. 일이 한 부서에서 다음 부서로 넘어갈 때마다 받는 쪽은 앞 부서가 만든 문서를 처음부터 읽고, 자기 부서 양식으로 다시 옮기고, 모자란 내용은 메일로 다시 묻습니다. 위 제조기업의 업무 120가지를 하나씩 보면 출발점이 같았습니다. 사람이 문서를 읽고, 옮기고, 다시 찾는 시간입니다.
부서별로 적은 업무 120가지는 흐름 16개로 묶입니다
묶는 기준은 하나입니다. 시작하는 사건과 끝나는 산출물이 같으면 같은 흐름으로 봅니다. 부서 수는 그 흐름에 업무를 적어 낸 부서만 셌습니다. 업무를 적지 않은 부서는 세지 않았으므로 실제로 거치는 부서는 이보다 많을 수 있습니다. 한 부서는 같은 목록 10가지를 두 곳에서 적어 냈습니다. 업무 수에는 둘 다 넣고, 부서 수에는 한 부서로 셌습니다.
· 구매 요청 → 대금 지급 — 지나는 부서: 5곳 · 업무 수: 15
· 고객 사양 변경 → 양산 반영 — 지나는 부서: 5곳 · 업무 수: 8
· 고객 주문 → 생산 실적 마감 — 지나는 부서: 4곳 · 업무 수: 13
· 설비 이상 → 재발 방지 — 지나는 부서: 4곳 · 업무 수: 12
· 신제품 개발 → 양산 이관 — 지나는 부서: 4곳 · 업무 수: 12
· 직원 문의 → 답변 — 지나는 부서: 4곳 · 업무 수: 9
· 불량·클레임 → 대책·비용 — 지나는 부서: 4곳 · 업무 수: 8
· 계약·인허가 → 갱신 — 지나는 부서: 4곳 · 업무 수: 6
· 고객 요청 → 수금 — 지나는 부서: 4곳 · 업무 수: 6
· 개선 제안 → 사례 축적 — 지나는 부서: 3곳 · 업무 수: 3
· 월 마감 → 결산 보고 — 지나는 부서: 2곳 · 업무 수: 7
· 감사·인증 요청 → 제출 — 지나는 부서: 2곳 · 업무 수: 5
· 설비 투자 제안 → 승인 — 지나는 부서: 2곳 · 업무 수: 5
· 안전 점검·사고 → 조치 — 지나는 부서: 2곳 · 업무 수: 3
· 문서 수발신·총무 일반 — 지나는 부서: 1곳 · 업무 수: 4
· IT 장애·보안 → 조치 — 지나는 부서: 1곳 · 업무 수: 4
부서 4곳 이상을 지나는 흐름만 9개이고, 이 9개에 업무 89가지가 들어 있습니다. 한 부서 안에서 시작하고 끝나는 흐름은 맨 아래 2개, 문서 수발신 같은 총무 일반과 전산 장애 대응뿐이었습니다.
흐름 이름만 보면 추상적이지만, 흐름마다 실제로 오가는 문서는 구체적입니다. 부서 5곳을 지나는 구매 흐름에 이 제조기업이 적어 낸 주요 문서만 해도 구매요청서, 협력사 견적서, 금형 제작 견적서, 협력사 계약서, 단가계약서, 구매발주서, 납품서, 입출고 전표, 세금계산서, 지출결의서, 원자재 시황 메일 11종입니다. 문서마다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고 적은 항목을 세어 보면 「단가」와 「납기」(납기일·납기 준수율 포함)가 각각 5개 업무의 문서에 들어 있습니다. 같은 값을 부서마다 자기 문서에 다시 적는다는 뜻입니다.
같은 일이 부서 이름만 바뀌어 여러 번 적혀 있었습니다
흐름으로 묶어 보면 또 하나가 보입니다. 부서마다 따로 적은 업무 가운데 하는 일이 같은 것이 많습니다.
· 업체 견적·사양 비교 — 적어 낸 부서: 원가·금형·생산기술 · 건수: 3
· 규정·매뉴얼 질의응답 — 적어 낸 부서: 총무·전산·설계 등 6곳 · 건수: 7
· 협의 회의록 요약 — 적어 낸 부서: 공정·생산기술·금형·설계 · 건수: 4
· 설비 정지 원인 정리 — 적어 낸 부서: 생산관리·공정기술 · 건수: 5
· 감사 대응 자료 정리 — 적어 낸 부서: 재경·품질 · 건수: 2
· 설비 투자 타당성 검토 — 적어 낸 부서: 원가·생산기술 · 건수: 2
각 부서는 흐름 전체가 아니라 자기가 맡은 구간만 봅니다. 그래서 자기 구간에서 시간이 가장 많이 드는 일을 AI 후보로 적었고, 그 결과 여러 업체의 문서를 같은 항목으로 맞춰 비교하는 일이 3개 부서 목록에 따로따로 들어갔습니다.

부서마다 AI를 붙이면 부서와 부서 사이의 대기는 그대로 남습니다
설계 변경 흐름 하나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이 제조기업의 목록에서 이 흐름에 업무를 적어 낸 부서는 5곳입니다.
1. 품질보증 — 고객이 보낸 사양서 개정판을 이전 판과 비교해 바뀐 항목을 찾습니다.
2. 설계 — 설계변경(ECN) 요청서를 쓰고 도면과 사양서를 고치며, 변경이 원가에 주는 영향을 정리합니다.
3. 금형개발 — 바뀐 도면에 맞춰 금형 사양 변경을 정리합니다.
4. 원가 — 자재명세서(BOM)가 새 도면과 맞는지 대조합니다.
5. 공정기술 — 작업표준서(SOP)를 개정합니다.
부서마다 AI를 하나씩 붙이면 각 단계는 빨라집니다. 품질보증의 AI는 두 판을 비교하고, 설계의 AI는 변경 이력을 정리하고, 원가의 AI는 BOM을 대조합니다. 그러나 사양서 개정판이 품질보증에서 설계로, 설계에서 금형개발로 넘어가는 동안 기다리는 시간은 줄지 않습니다. 다음 부서 담당자는 여전히 앞 부서의 문서를 처음부터 읽어야 하고, 원가 부서는 설계가 끝났다는 메일을 받기 전까지 시작하지 못합니다.
부서별 AI는 단계 안의 시간을 줄이지만, 흐름 전체의 시간은 단계 사이에서 정해집니다. 부서가 5곳이면 넘겨주는 곳이 4군데이고, 그 4군데는 부서별 AI의 목록 어디에도 없습니다. 흐름이 끝났는지 챙기는 사람도 따로 없습니다. 각 부서는 자기 단계가 끝나면 일을 넘기고, 고객이 바꾼 사양이 현장 작업표준서까지 반영됐는지를 마지막에 확인할 사람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대규모 언어 모델(LLM)이 바꾸는 것은 한 사람이 끝까지 맡을 수 있는 범위입니다
앞에서 한 사람이 업무를 끝까지 맡기 어려운 이유를 3가지로 적었습니다. LLM은 그중 2가지를 덜어 줍니다.
· 문서의 양 — LLM은 사양서 두 판, 도면 주석, BOM, 원가표, 작업표준서를 한 번에 읽고 무엇이 바뀌었는지 정리합니다. 사람이 부서마다 다시 읽던 일을 한 번으로 줄입니다.
· 전문 지식 — LLM은 원가 계산식, 품질 문서 양식, 회계 분개 규칙을 초안 수준으로 압니다. 부서 전문가가 처음부터 쓰던 문서를 검토하고 고치는 일로 바꿉니다.
· 권한 — 권한은 그대로입니다. 단가를 정하는 일, 불량 원인과 대책을 확정하는 일, 설계 변경을 승인하는 일, 고객에게 납기를 약속하는 일은 여전히 권한을 가진 사람이 합니다.
조직을 AI 중심으로 다시 짜는 실험은 이미 시작됐습니다. 트위터 공동 창업자 잭 도시가 이끄는 핀테크 회사 블록은 2026년 2월 전 직원의 40%, 약 4,000명을 내보내고, 관리 계층을 최대 5단계에서 2026년 안에 2~3단계로 줄이겠다고 밝혔습니다. 관리자가 하던 정보 전달과 조율을 AI 에이전트에 넘긴다는 계획입니다. 블록의 실험이 조직의 위아래, 곧 계층을 줄이는 쪽이라면, 제조기업의 업무 목록이 보여 주는 것은 옆, 곧 부서와 부서 사이입니다. 계층을 줄여도 업무가 부서 5곳을 차례로 지나는 구조가 그대로면, 넘겨주는 곳 4군데는 남습니다.
그래서 업무의 모양이 바뀝니다. 흐름마다 주인 한 명이 AI와 함께 시작부터 끝까지 문서를 들고 가고, 부서는 흐름이 지나가는 판단 지점으로 남습니다. 부서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부서가 하는 일이 「넘겨받아 처리하기」에서 「판단하고 승인하기」로 바뀝니다.
· 일의 단위 — 지금: 부서별 단계 · AI가 들어온 뒤: 시작부터 끝까지의 흐름
· 문서 — 지금: 부서마다 다시 작성 · AI가 들어온 뒤: 한 흐름에 하나로 쌓임
· 부서의 일 — 지금: 넘겨받아 처리 · AI가 들어온 뒤: 판단하고 승인
· 넘길 때 — 지금: 메일·결재·회의 · AI가 들어온 뒤: 승인 요청 한 건
· 끝을 챙기는 사람 — 지금: 정해지지 않음 · AI가 들어온 뒤: 흐름 주인
이 연재는 흐름마다 8가지를 정의합니다
흐름 하나를 정의하려면 이름만 붙여서는 안 되고, 누가 무엇을 받아 무엇을 넘기는지를 문서 단위까지 적어야 합니다. 이 연재는 흐름마다 아래 8가지를 같은 순서로 정의합니다.
1. 시작 사건 — 무엇이 들어오면 이 흐름이 시작되는가
2. 끝 산출물 — 무엇이 나가야 이 흐름이 끝났다고 말할 수 있는가
3. 단계와 부서 — 어느 부서가 어떤 순서로 무엇을 하는가
4. 오가는 문서와 필수 항목 — 부서 사이에 넘어가는 문서마다 반드시 들어 있어야 할 값은 무엇인가
5. 사람이 판단하는 지점 — 권한을 가진 사람만 정할 수 있는 값은 무엇이고, 누가 정하는가
6. 끊기는 곳 — 같은 값을 다시 입력하거나, 앞 부서의 답을 기다리는 곳은 어디인가
7. AI 동작 — 자동 입력·대조·검증·분류·배정·초안 작성·검색·답변·기한 알림·요약·분석 가운데 어느 것이 어느 단계에 들어가는가
8. 흐름 주인과 남는 기록 — 끝까지 챙기는 사람은 누구이고, 끝난 뒤 무엇이 남아야 하는가
2편에서 다룰 구매 흐름을 이 8가지로 미리 짧게 적으면 이렇습니다.
· 시작 사건 — 현업 부서가 올린 구매요청서(요청 부서·품목·수량·요청일)
· 끝 산출물 — 협력사 대금 지급과, 그 지급에 맞는 입고 기록
· 단계와 부서 — 구매(요청 배정·견적 수집·발주) → 원가(견적 비교·단가 변동 확인) → 금형개발(금형 품목일 때 견적 비교) → 생산관리(입고·납기 확인) → 재경(세금계산서·지출결의서 대조·지급)
· 오가는 문서와 필수 항목 — 견적서는 업체명·품목·단가·납기·결제조건, 발주서는 품목·수량·단가·납기·결제조건, 세금계산서는 공급자·거래일자·품목·공급가액·세액·승인번호
· 사람이 판단하는 지점 — 업체와 단가 결정, 발주 승인, 지급 승인
· 끊기는 곳 — 견적 비교를 원가·금형이 각각 함 · 발주서의 단가를 재경이 계약서와 다시 맞춤 · 납기 지연을 생산관리가 입고 뒤에야 앎
· AI 동작 — 분류·배정(구매요청서), 대조·검증(견적·발주서·계약서·지출결의서), 자동 입력(단가 변동·지급 조건·입출고 전표·세금계산서), 요약·분석(협력사 납기·품질 이력)
· 흐름 주인과 남는 기록 — 구매 담당 한 명 · 요청 번호에서 지급 번호까지 한 줄로 찾을 수 있는 기록
이 8가지를 채우다 보면 2가지가 드러납니다. 하나는 같은 일이 여러 부서에 흩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 업체의 견적을 비교하는 일은 부서마다 하나씩 만들 필요 없이 한 번 만들어 여러 흐름에서 함께 사용하면 됩니다. 다른 하나는 8번이 비어 있는 흐름입니다. 주인이 없는 흐름은 AI를 붙여도 가장 늦게 끝납니다.
연재는 부서를 많이 지나는 흐름부터 하나씩 정의합니다
· 2편 — 흐름(시작 → 끝): 구매 요청 → 대금 지급 · 지나는 부서: 5곳
· 3편 — 흐름(시작 → 끝): 고객 사양 변경 → 양산 반영 · 지나는 부서: 5곳
· 4편 — 흐름(시작 → 끝): 고객 주문 → 생산 실적 마감 · 지나는 부서: 4곳
· 5편 — 흐름(시작 → 끝): 설비 이상 → 재발 방지 · 지나는 부서: 4곳
· 6편 — 흐름(시작 → 끝): 불량·클레임 → 대책·비용 · 지나는 부서: 4곳
· 7편 — 흐름(시작 → 끝): 신제품 개발 → 양산 이관 · 지나는 부서: 4곳
· 8편 — 흐름(시작 → 끝): 고객 요청 → 수금 · 지나는 부서: 4곳
· 9편 — 흐름(시작 → 끝): 월 마감 → 결산 보고 · 지나는 부서: 2곳
· 10편 — 흐름(시작 → 끝): 계약·인허가·감사 대응 · 지나는 부서: 5곳
· 11편 — 흐름(시작 → 끝): 직원 문의 → 답변 · 지나는 부서: 4곳
나머지 흐름(개선 제안, 설비 투자, 안전, 총무 일반, IT 장애)은 앞의 흐름과 문서가 겹치는 곳이 많아 해당 편 안에서 함께 다룹니다.

이 수치가 말하지 않는 것
위 수치는 제조기업 한 곳이 한 번 적어 낸 목록에서 나왔습니다. 흐름으로 묶는 기준은 웨이스가 정했고, 같은 목록도 기준을 달리하면 흐름 수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부서가 적어 낸 것은 AI를 붙이고 싶은 업무이지 그 부서의 업무 전체가 아니고, 흐름으로 바꿨을 때 시간이 얼마나 줄어드는지는 아직 측정하지 않았습니다. 2편부터의 정의도 이 목록과 제조업 일반 절차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 회사마다 부서 이름과 순서는 다를 수 있습니다.
그래도 방향은 목록만으로도 보입니다. 업무 120가지 가운데 77%가 부서 3곳 이상을 지나는 흐름에 있었고, 이런 흐름에서 시간은 부서 안보다 부서 사이에서 더 오래 머뭅니다. AI를 어디에 붙일지 정하는 단위는 부서가 아니라 흐름입니다.
WACE(웨이스)는 공장이 스스로 판단하고 멈추지 않게 하는 제조 AI 운영체제 VEXPLOR를 만드는 회사다.
(이 글은 웨이스 기술블로그에 먼저 실린 글입니다. 원문: https://blog.vexplor.com/post/work-redefined-by-start-and-end?utm_source=eo&utm_medium=social&utm_campaign=2026-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