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創)이라는 한자를 찾아보면 뜻밖의 단어들이 나온다.
상하다. 슬퍼하다. 데다. 상처.
우리가 창의라고 부르는 그 단어 안에, 고통과 부딪힘에 가까운 뜻이 '만들다'보다 더 많이 담겨 있다. 어쩌면 처음부터 창의는 낭만적인 개념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번뜩임은 신화다
창의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보통 밝고 번뜩이는 순간을 떠올린다. 아무 고통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머릿속에서 멋진 아이디어가 튀어나오는 장면. 하지만 실제로 일을 하다 보면 그 낭만은 금세 무너진다.
창의는 편안한 자리에서 나오지 않는다. 설득되지 않았던 제안서, 엇나갔던 방향, 잘되지 않았던 프로젝트. 오히려 그런 불편함과 실패, 부딪힘 속에서 더 자주 태어난다.
칼에 베이면 아프지만, 그 상처 위에 새살이 돋아 이전보다 단단해진다. 창의도 그런 식으로 작동한다.
어지러운 것들이 연결되는 순간
창의적인 사람의 책상은 대체로 어지럽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생각들, 실패했던 시도들, 애매하게 남겨진 메모들. 한동안은 의미 없는 조각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조금 떨어져서 바라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전혀 관계없어 보이던 것들이 어느 순간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고, 예상하지 못한 연결이 보이기 시작한다.
나는 창의의 본질을 이렇게 정의한다.
하찮은 것들을 장엄하게 바라보는 시선.
대단한 것에서 대단한 아이디어가 나오는 게 아니다. 사소하고 하찮아 보이는 것들을 다른 각도로 바라볼 때 새로운 의미가 생긴다. 그 시선의 전환이 창의다.
상처가 쌓이면 보이기 시작하는 것들
오랜 시간 브랜드 디렉터로 일하면서 실패를 반복했다. 잘되지 않았던 프로젝트, 설득되지 않았던 제안서, 그때마다 남겼던 작은 기록들. 그것들이 쌓이면서 눈에 보이지 않던 연결을 보는 힘이 조금씩 생겼다.
창의는 거창한 재능이 아니다. 상처와 부딪힘을 통과하며 얻게 되는 시선에 가깝다.
그래서 창의성에 대해 묻는다면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만 창의적인 게 아니다. 자신의 삶에서 지나쳐온 작고 어지러운 조각들을 끝까지 버리지 않고 바라보는 사람이 결국 연결을 만들어낸다.
당신의 가장 아프고 어지러운 기억은 무엇인가. 어쩌면 그게 다음 아이디어의 출발점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