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마약 베개가 사라졌다
"마약 베개 어디서 사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이 질문은 범죄 암시가 아니었다.
오히려 "잠 잘 오는 베개 추천해 줘"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2024년 7월부터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으로 상품명에 '마약'이라는 단어를 쓸 수 없게 됐다.
그렇게 마약 베개는 '깊은잠 베개'로 이름을 바꿨다.
그런데 이상하다.
깊은잠 베개. 의미는 더 명확한데, 왠지 모를 힘 빠짐. 기억에 남지 않는 이 느낌은 뭘까?
금기어가 주는 강력한 임팩트
사실 '마약'이라는 단어를 마케팅에 쓴 건 대한민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금기어를 마케팅에 활용하는 전략은 예로부터 존재했다.
1957년 미국, 담배 광고의 반란
담배 회사 L&M은 "Just What The Doctor Ordered(의사가 처방한 바로 그것)"라는 카피를 썼다.
건강에 해로운 담배를 의사가 처방한다는 역설. 당시 엄청난 논란과 함께 폭발적인 광고 효과를 얻었다.
2000년대, 프랑스 패션 브랜드
프랑스 의류 브랜드 French Connection UK는 'FCUK'이라는 로고를 전면에 내세웠다.
욕설을 연상시키는 이 네이밍은 젊은 층에게 반항적 이미지로 어필하며 브랜드를 각인시켰다.
금기어는 사람들의 주의를 강제로 끈다.
뇌는 '위험'이나 '금지'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설계됐기 때문이다. 마케팅적으로는 강력한 무기다.
한국의 마약 마케팅, 왜 통했나
마약 청정국 대한민국에서 '마약 김밥', '마약 국밥', '마약 떡볶이'가 유행한 건 아이러니다.
실제 마약과 거리가 멀기 때문에 오히려 가능했던 네이밍이다.
통한 이유 3가지:
1. 중독성을 즉각 이해시킨다
"계속 생각나는 맛"을 설명하려면 긴 문장이 필요하다.
하지만 '마약'이라는 단어 하나면 끝이다. "한 번 먹으면 끊을 수 없다"는 메시지가 0.5초 만에 전달된다.
2. 입소문 효과
"마약 김밥 먹어봤어?"라는 대화는 자연스럽게 시작된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단어일수록 사람들은 더 많이 언급한다.
바이럴 마케팅의 핵심은 '언급 빈도'다.
3. 자극적이지만 안전하다
실제 마약과 무관하기 때문에 법적 문제가 없었다(개정 전까지).
위험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안전한, 적당한 자극.
마치 '수제'라는 단어처럼 일상에 스며들었다.
금기어 마케팅, 독인가 약인가
금기어 마케팅은 분명 효과가 있다. 단기적으로는. 하지만 4가지 위험이 따른다.
1. 브랜드 이미지 B급화
자극적 네이밍은 주목도는 높지만, 프리미엄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당장 팔리지만 브랜드 가치는 올라가지 않는다.
마약 김밥은 유명해졌지만, 누구도 고급 브랜드로 보지 않는다.
2. 모델 이미지 훼손
브랜드는 논란으로 이득을 보지만, 모델은 본인과 무관한 부정적 단어와 연결된다.
검색 알고리즘은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다.
모델과 마약이라는 연결고리만 학습할 뿐이다.
이는 모델의 커리어에 의도치 않은 오점이 된다.
3. 법적 리스크
마약 관련 단어처럼 규제가 강화되면 네이밍 전체를 바꿔야 한다.
브랜드 자산이 하루아침에 날아간다. 재 포지셔닝 비용은 생각보다 크다.
4. 타겟 제한
자극적 네이밍은 특정 타겟에게만 통한다.
젊은 층에게는 재밌지만, 보수적 소비자나 기업 고객에게는 신뢰를 주지 못한다.
성장 한계가 명확하다.
기억되는 네이밍의 진실
브랜드를 만들며 확신하게 된 것이 있다.
좋은 네이밍은 자극이 아니라 기억이다.
임팩트는 중요하다. 하지만 자극으로만 만드는 임팩트는 소모품이다.
진짜 강력한 네이밍은:
- 한 번 들으면 잊히지 않으면서도
- 브랜드 본질을 담고 있고
- 시간이 지나도 가치가 떨어지지 않으며
- 함께하는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브랜드를 만드는 분들께 드리는 조언
금기어 마케팅을 고민 중이라면 4가지만 체크하자.
1. 우리 브랜드 5년 후는?
당장 화제되고 싶다면 금기어 써도 된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프리미엄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면 신중해야 한다.
2. 함께하는 사람은?
모델, 협력사, 직원. 이들이 이 네이밍으로 인해 불명예를 감수해야 한다면, 그건 윤리적 문제다.
3. 법적 리스크는?
지금 합법이어도 언제 바뀔지 모른다. 네이밍 변경 비용을 감당할 수 있나?
4. 자극 없이도 기억될 수 있나?
금기어 빼면 기억에 안 남는다면, 그건 네이밍이 아니라 자극에 의존하는 것이다.
나는 어떤길을 선택 할 것인가
마약 베개는 금기어로 빠르게 알려졌다.
효과는 확실했다. 하지만 법이 바뀌자 다시 시작이었다.
깊은잠 베개는 밋밋하다.
임팩트가 약하다. 하지만 정직하다. 그리고 오래간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다.
금기어 마케팅은 당장은 강력하지만, 좋지 않은 이미지로 굳히기 쉽다.
브랜드 이미지, 모델 이미지, 법적 리스크, 재포지셔닝 비용.
진짜 강력한 브랜드는 자극 없이도 기억된다.
당신의 브랜드는 어떤 길을 선택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