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영상 시나리오 도출의 어려움
많은 브랜드가 광고 전략 수립 단계에서는 데이터 기반으로 전략과 목표점을 뾰족하게 잘 잡아도 광고 제작 전 단계인 '시나리오 도출' 단계에서 기존과 방향성이 많이 벗어나곤 합니다. 시나리오라는 것은 이야기(스토리텔링)입니다. 이 내용을 도출하는 것은 생각보다 두루뭉술하고 분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어떤 이야기가 가장 효과적인지 판단하기도 어렵습니다.

학생 시절에 학교에서 배운 기승전결과 갈등 구조 등이 떠오르지만 그것이 이야기(광고 영상)을 시청하는 인간에게 어떻게 기획해서 보여줘야 가장 효과적일지 감이 안잡히기 마련입니다. 이는 시나리오라는 목표물을 도출하기 위한 정형화된 프레임워크가 없기 때문입니다. '광고 시나리오는 창의적이어야 한다!'라는 고정관념이 그래서 생겨났는지도 모릅니다. 광고는 창의적일 필요가 없습니다. 광고는 우리 브랜드의 문제를 풀기 위한 핵심 수단으로 기능해야 합니다. 즉, 팔리는 광고가 본질이며 그에 맞는 시나리오가 필요합니다. 이것을 어떻게 프레임워크로 풀어낼 수 있을까요?
사실 이에 대한 과학적이고 실증적인 연구 논문과 고전 마케팅 이론들은 이미 1980~1990년대에 많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를 실전에 적용해서 광고를 만드는 조직은 국내에 많이 없습니다. 감이 아닌 데이터 기반으로 광고를 만들어야 한다고 믿는 저희 팀은 자체적인 시나리오 도출 프레임 워크가 존재합니다. 오늘은 이 프레임 워크에 대해 상세하게 공유드려보고자 합니다.
드래프타입 스튜디오의 광고 영상 시나리오 도출 6단계
드래프타입 스튜디오가 연구한 SCB(Strategic-Creative Bridge) 매트릭스를 통해, 어떻게 팔리는 광고의 시나리오가 도출되는지 심층적인 프로세스를 상세히 이야기해보겠습니다.
STEP 1. 제품 본질 진단
광고 기획의 첫 번째 단계는 브랜드의 제품이 소비자의 어떤 욕구 지점에 위치하는지 정의하는 것입니다. 테일러의 6분면 전략은 수십 년간의 광고 데이터를 분석하여 소비자의 구매 동기를 6가지 세그먼트로 표준화한 모델입니다. 주관적인 직관이 아닌, 학술적으로 검증된 이 방식을 따르는 이유는 근거 있는 시나리오 기획을 위해서입니다. 광고는 재밌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브랜드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니까요.

이 단계를 통해 우리는 다음 6가지 중 하나의 방향을 설정합니다.
Rationale (이성): 가전제품이나 자동차처럼 기능, 가격, 기술적 스펙이 구매의 결정적 요인인 경우입니다. 논리적 설득이 최우선입니다.
Acute Need (급박한 필요): 비상약이나 보험, 수리 서비스처럼 문제가 발생했을 때 즉각적인 해결책이 필요한 경우입니다. 신뢰와 속도가 핵심이지요.
Routine (일상적 관행): 세제나 생수처럼 늘 쓰던 것을 습관적으로 구매하는 제품입니다. 차별화보다 브랜드의 존재감을 상기(Reminder)시키는 것이 목적입니다.
Ego (자아): 패션이나 향수처럼 "이걸 쓰는 나"의 이미지가 중요한 제품입니다. 소비자가 동경하는 자아 이미지와 브랜드를 일치시켜야 합니다.
Social (사회적 인정): 선물용 제품이나 트렌드 아이템처럼 타인의 시선과 소속감이 구매를 결정하는 경우입니다. 준거 집단의 승인이 핵심 변수입니다.
Sensory (감각적 즐거움): 식품이나 게임처럼 찰나의 시각, 청각, 미각적 쾌락이 본질인 제품입니다. 오감을 자극하는 표현력이 가장 중요하지요.
이 진단이 정확해야만 광고의 '언어'와 '톤'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 관련 논문: Taylor, R. E. (1999). A Six-Segment Message Strategy Wheel)
STEP 2. 인지 경로 확정
정교화 가능성 모델(ELM)은 소비자가 정보를 처리할 때 사용하는 심리적 경로를 미리 결정합니다. 이 단계를 거치는 이유는 광고의 '정보 밀도'를 결정하기 위해서입니다. 인간의 뇌는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아끼는 습성으로 진화했기 때문에, 모든 광고를 꼼꼼히 보지 않습니다.
중앙 경로 (Central Route): 고관여 제품일 경우 꼼꼼히 따져보는 소비자가 많습니다. 그러한 제품일 경우 논리/데이터/팩트 중심으로 광고 속 '정보의 밀도'를 촘촘하게 관리해야 합니다.
주변 경로 (Peripheral Route): 주로 저관여 제품일 경우입니다. 즉, 소비자가 가볍게 즐길 때입니다. 비주얼의 경이로움, 배경음악, 모델의 매력 같은 '부수적 단서'로 직관적인 호감을 이끌어내기 위한 기획이 필요합니다.
이 단계를 통해, 소비자의 뇌를 일하게 만들 것인지, 아니면 홀리게 만들 것인지 전략적으로 선택합니다.
(* 관련 논문: Petty, R. E., & Cacioppo, J. T. (1986). The Elaboration Likelihood Model of Persuasion)
STEP 3. 심리 프레임 설정
똑같은 제품이라도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소비자가 느끼는 가치는 천차만별입니다. 조절 초점 이론은 인간의 동기가 '성취'를 향하는지 '안전'을 향하는지에 따라 설득 전략이 달라져야 함을 입증했습니다. 이 단계를 거치는 이유는 메시지와 소비자의 심리 상태를 일치시켜 '심리적 적합성(Regulatory Fit)'을 만들어내기 위함입니다.
향상 초점 (Promotion Focus): '희망, 열망, 성장'을 자극합니다. "이 제품을 통해 당신의 삶이 얼마나 더 빛날지"를 보여주며 이득을 강조합니다. 즉, 얼마나 더 좋아질 것인가를 소구합니다.
예방 초점 (Prevention Focus): '안전, 책임, 손실 회피'를 건드립니다. "이 제품이 당신의 고민을 어떻게 해결하고 불안을 막아주는지"를 보여주며 안심을 강조합니다. 즉, 손실 방지를 소구합니다.
이 단계를 거치는 이유는 소비자가 느끼는 가치는 이 프레임이 심리 상태와 일치할 때 구매 욕구가 최대 60%까지 상승한다는 과학적 연구 결과 때문입니다.
(* 관련 논문: Higgins, E. T. (1997). Beyond pleasure and pain.)
STEP 4. 서사 엔진 장착
여기까지 단계를 거쳐 어느 정도 방향이 정립되었다면 이를 시간의 흐름인 '시나리오'로 엮어내야 합니다. 서사 구조론은 인간의 뇌가 이야기를 받아들일 때 가장 몰입감을 느끼는 일정한 패턴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단순히 장면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학술적인 서사 템플릿을 따르는 이유는 시청자의 광고에 대한 심리적 저항을 최소화하고 최대한 본인의 이야기인 것처럼 몰입시키기 위함입니다.

[A] 결핍 해결형 (Problem-Solution): '예방 초점'과 주로 결합합니다. 문제가 발생한 상황을 먼저 보여준 뒤 브랜드가 등장하여 안전하게 해결하는 구조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주인공은 반드시 '소비자'여야 하며 조력자가 '브랜드'여야 합니다.(심리학적으로 인간은 누구나 자기 자신을 주인공으로 설정합니다.)
[B] 상태 변화형 (Ideal Transformation): '향상 초점'이나 'Ego' 제품에 적합합니다. 평범한 일상이 브랜드 접촉 후 이상적인 모습으로 변하는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줍니다. 예를 들면 패션 관련 광고가 적합할 수 있습니다.
[C] 가치 입증형 (Categorical Demonstration): '중앙 경로' 로 소구해야 하는 제품에 적합합니다. 논리적 근거들을 차례로 나열하여 제품의 실질적 가치를 입증합니다. 여러가지 근거들을 거쳐 압도적인 결과를 나타내줍니다.
(* 관련 논문: Brewer, W. F., & Lichtenstein, E. H. (1981). Event schemas, story schemas, and novelty.)
STEP 5. 비주얼 상징 매칭
마지막 단계입니다. 이제 모든 것을 모아 놓고 시각적 요소를 정리합니다. 여기 까지 왔다면 어떤 방향성으로 광고 소구점을 잡을 것인지 좀 더 분명해졌습니다. 이 단계는 과학적인 단계라기보다 광고 디자인의 영역에 가깝습니다. 영상속 주인공(모델), 배경 톤, 조명, 구도, 소품, 소리, 음악, 편집 리듬, 소리 리듬 등이 어떠해야 할지 정의합니다.
유의할 점
반드시 이 프레임 안에 갖혀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이러한 프레임워크를 기반으로 더 좋은 아이디어나 소구 방식이 있다면 적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제품 별로 반드시 따라야 하는 단계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선택입니다. 마치 라면 광고에서 배고픔을 예방하는 소구를 할 수도 있고 '맛'으로 더 삶이 좋아질 수 있는 '향상 초점'을 선택할 수도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프레임워크라는 테두리가 있느냐 없느냐입니다. 아무런 기반 없이 생각나는 대로 시나리오를 기획한다면 수억원 드는 브랜드 필름이 예쁘기만하고 효과는 없는 광고가 되버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마케팅을 하는 사람이라면 광고의 실패 확률을 줄이기 위해 갖은 과학적 방법과 노력을 모두 시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Case Study] 프리미엄 AI 로봇청소기 '로보가드(RoboGuard)'
이 프레임워크를 하이테크 가전 브랜드에 대입해 보겠습니다. 프리미엄으로 포시셔닝 중인 가상의 AI 로봇 청소기 브랜드 '로보가드'의 광고 영상 시나리오를 작성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 브랜드의 타깃 고객은 남녀 4050 소비자라고 가정해보겠습니다.
- Step 1: Rationale(이성)군 선택. 해당 제품은 성능과 신뢰가 구매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 Step 2: 중앙 경로(Central)를 선택합니다. 해당 제품은 고관여 제품이고 소비자는 흡입력 수치와 센서 사양 등을 꼼꼼히 따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 Step 3: 예방 초점(Prevention)을 잡습니다. "보이지 않는 먼지로부터 가족의 건강을 지킨다"는 프레임입니다. 타깃 소비자는 부모이자 가장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만약 더 젊은 세대가 타깃이라면 청소할 필요가 없다는 '향상 초점'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 Step 4: [A] 결핍 해결형을 채택합니다. 3단계에서 예방 초점과 가장 잘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 Step 5: 신뢰감을 주는 40대 전문직 페르소나의 AI 모델과 정갈한 거실 배경을 설정합니다. 타깃 소비자들에게 중요한 가치나 이미지는 신뢰와 관련된 요소가 대부분일 것입니다. (만약 시나리오 도출 전 단계에서 소비자 서베이를 진행했다면 더 명확했을 겁니다.)
[30초 광고 영상 시나리오 도출(예시)]

기(00-05s) - 결핍의 가시화: 평화로워 보이는 거실 바닥. 아이가 걸어다니고 이어서 카메라가 바닥을 극도로 클로즈업합니다. 그래픽을 통해 바닥 속 미세먼지와 세균들이 붉게 번쩍이며 강조됩니다. 자막: "당신의 아이가 닿는 곳, 정말 안전할까요?"
승(06-15s) - 기술적 입증: 로보가드의 초정밀 레이저 센서가 바닥을 스캔하며 전진합니다. 3D 모션 그래픽으로 강력한 진공 흡입과 UV 살균 과정을 공학적으로 보여줍니다. 자막: "AI가 설계한 99.9% 완벽한 차단."
전(16-25s) - 심리적 안도/문제 해결: 로보가드가 지나간 자리는 눈부시게 깨끗한 백색으로 변합니다. 그 위에서 아기가 평온하게 낮잠을 자고 있고, 이를 지켜보는 엄마의 안심하는 미소가 클로즈업됩니다.
결(26-30s) - 브랜드 각인: "보이지 않는 위협까지 완벽하게. RoboGuard" 브랜드 로고와 함께 마무리됩니다.
마치며
지금까지 다소 고전이라고 볼 수 있는 마케팅 과학론들을 기반으로 짜여진 시나리오 도출 프레임워크를 설명드렸습니다. 굳이 이러한 단계들을 간단하게라도 거치는 이유는 광고의 본질이 '창의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비즈니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광고라는 수단을 통해 우리 브랜드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반전있는 이야기로 조회수만 챙기는 겉핥기식 광고는 예산 낭비일 뿐입니다.
오늘 설명드린 시나리오 도출 방식은 그 앞단에서 소비자 서베이 등의 방법을 통해 데이터 기반으로 브랜드의 문제와 광고 방향성을 진단한 뒤 실행하면 더 뾰족하고 효과적인 시나리오 기획이 가능합니다. 이에 대한 내용은 이전 포스팅(링크) 속 '데이터 분석 단계'를 참고해보시면 더 도움이 될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