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브랜드 필름은 '작품'인가요, 아니면 '도구'인가요?
수억 원의 예산, 유명 감독, 톱모델 기용. 촬영이 끝난 후 마케터는 일시적인 고양감을 느낍니다. 시사회에서 영상이 상영되고, 유튜브 조회수와 인스타그램의 '좋아요'가 올라가면 성공한 캠페인처럼 보이죠. 하지만 냉정하게 묻고 싶습니다. 그 영상이 브랜드의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했을까요?
광고는 누군가의 포트폴리오를 화려하게 장식할 예술 작품이 아닙니다. 비즈니스의 특정 문제를 해결하고, 고객의 행동을 변화시켜야 할 '비즈니스 도구'여야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제작 현장에서는 '데이터'보다 '감'이, '성과'보다 '비주얼'이 우선시됩니다. 우리는 이것을 '1억짜리 예쁘기만하고 끝나는 광고'라고 부릅니다. 비즈니스 성장에 기여하지 못하는 영상은 아무리 화려해도 비용일 뿐입니다. 광고가 예뻐서 나쁠 것은 없지만, 예쁘기만 한 광고는 마케팅 예산을 가장 우아하게 낭비하는 방법일지도 모릅니다.
‘데이터’가 실종된 감각의 함정
대부분의 광고 기획은 누군가의 주관적인 취향에서 시작됩니다. "요즘 이런 무드가 유행이니까", "이 모델이 핫하니까" 같은 추측들이 수억 원의 예산을 결정합니다. 하지만 소비자의 뇌는 마케터의 짐작보다 훨씬 냉혹하게 반응합니다.
구체적인 사례를 하나 볼까요? 드래프타입 스튜디오의 클라이언트 중 하나였던 SPA 패션 브랜드 J사의 사례입니다. 브랜드 서베이(소비자 설문) 데이터를 통해 분석해 보면, J사의 브랜드 인지도는 타사 대비 적은 수준이긴 하나, 81.9%에 달해 어느정도 충분한 상태였습니다. 100명에게 물어봤을 때 82명이나 떠올릴 수 있었단 뜻이죠. 하지만 결정적인 문제는 '이용 고려(Consideration)' 단계로 넘어가는 비율이 24.1%에 불과했다는 점입니다.
인지하고 있는 사람 4명 중 3명은 살 마음이 없다는 뜻이죠. 이런 상황에서 단순히 더 '힙하고 세련된' 영상을 찍는 게 정답일까요? 데이터는 다른 방향을 가리킵니다. 실제 SPA 의류 구매 시 소비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감성적 가치는 '부담 없는(57.2%)' 혹은 '편안한(50.6%)' 이미지입니다. 하지만 J사는 경쟁사에 비해 훨씬 '트렌디하고 세련된' 쪽에 치우쳐 있었습니다.
이미 차고 넘치는 '세련됨'을 강조하는 1억짜리 광고는 오히려 소비자가 간절히 원하는 '편안함'이라는 가치를 가릴 뿐입니다. 데이터 기반의 정확한 진단 없이 감으로만 기획된 광고는, 소비자가 전혀 원하지 않는 메시지를 수억 원을 들여 외치는 격입니다.
0.1초의 시선을 놓친 맹목적인 영상미
화면이 예쁘다고 해서 소비자가 당신의 제품을 보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톱모델의 압도적인 미모나 자극적인 배경이 제품에 대한 인지를 방해하는 '뱀파이어 효과(Vampire Effect)'가 비일비재합니다. 즉, 소비자가 제품이나 브랜드를 기억하지 못하고 연예인만 기억하는 셈입니다. 마케터는 모델의 얼굴이 잘 나온 것에 만족할지 모르지만, 비즈니스 관점에서는 로고나 핵심 메시지가 시선의 사각지대에 놓이는 치명적인 손실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여러가지 방법 중 하나가 AI 시선 예측(Eye-tracking) 기술일 수 있습니다. 수만 건의 시선 반응 데이터를 학습한 딥러닝 엔진은 영상이 송출되기 전, 타겟의 시선이 어느 지점에 몇 초 동안 머무는지 0.1초 단위로 예측합니다. 단순히 "이 구도가 예쁘다"가 아니라, "이 레이아웃에서는 로고 노출도가 이전보다 30% 증가한다"는 과학적 증거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MIT 벤치마크 기준 0.88 이상의 높은 상관계수를 기록한 이 기술은, 영상의 레이아웃이 감각적인지를 따지는 게 아니라 '효과적인지'를 검증합니다. 시각적 요소의 배치는 예술적 영감이 아니라, 타겟의 시선 경로를 추적한 철저한 공학적 설계의 결과물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영상 하나를 만들 때 시선이 머무는 0.1초까지 설계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광고비는 초 단위로 청구되지만, 소비자의 주의력은 그보다 훨씬 짧기 때문입니다.
마케터를 옥죄는 ‘촬영’
전통적인 촬영 기반의 제작 방식은 너무 무겁고 느립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 번 쏘면 돌이킬 수 없는' 비가역적인 리스크를 가집니다. 촬영장에 수십 명의 스태프가 모이고 억 단위 돈이 풀리는 순간, 마케터의 유연성은 사라집니다.
가장 큰 고통은 '시즌성'과 '경직성'입니다. 한 번 큰마음 먹고 겨울 외투 광고를 찍어두면, 그 영상은 그해 겨울이 지나면 쓸 수가 없습니다. 만약 중간에 브랜드 전략이 수정되거나 모델에게 문제가 생겨도, 이미 찍어놓은 영상은 수정하기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결국 다시 수억 원을 들여 새로 찍어야 하는 '시즌성 트랩'에 빠지게 되죠.
또한 '올인(All-in)'의 위험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제작에 억 단위 예산이 들어가니 한 번의 촬영으로 모든 것을 끝내려 하고, 그 결과는 다시 실패를 피하기 위한 '안전하고 뻔한' 비주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시장은 초 단위로 변하고 숏폼 콘텐츠가 쏟아지는데, 광고주는 3개월 전 기획한 영상 하나에 브랜드의 운명을 맡겨야 합니다. 제작 방식이 시장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때, 마케터는 성과가 아닌 '제작 그 자체'에 모든 에너지를 뺏기게 됩니다.
‘제작(Production)’이 아닌 ‘엔지니어링(Engineering)’
성공하는 광고는 운이나 천재적인 감각에 기대지 않습니다. 철저하게 설계되고 데이터로 증명될 뿐입니다. 만약 여러분의 브랜드 예산이 성과 없는 '작품'을 만드는 데 낭비되고 있다면, 이제는 광고를 바라보는 관점 자체를 바꿔야 합니다.
비즈니스가 처한 문제를 데이터로 진단하고, 그 결핍을 메울 수 있는 최적의 시각적 언어를 설계하여, 실패의 확률을 수학적으로 줄여나가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촬영장이라는 물리적 제약에서 벗어나, 데이터가 가리키는 정답을 향해 콘텐츠를 자유롭게 변주하고 테스트할 수 있는 시대가 생성형 AI로 인해 이미 열렸습니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은 단순히 '잘 찍은 영상(광고)'가 아닙니다. '이 영상(광고)가 왜 팔리는가'에 대해 숫자로 답할 수 있는 예측 가능한 마케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