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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당신에게, 정주영이 전하는 필승 성공법

"길이 없으면 길을 찾고, 찾아도 없으면 길을 닦아나가면 된다."

사람들은 나를 보고 '재벌'이라 부르지만, 내 본적은 평생 '노동자'였다. 나는 강원도 통천의 가난한 농사꾼 아들로 태어났다. 배운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었다. 내 자산이라고는 튼튼한 몸뚱이 하나와 신용 밖에 없었다. 

오늘 자네를 데려갈 장소들은 화려한 건물이나 자동차가 아니다. 흙먼지 날리는 공사판, 불타버린 공장, 그리고 절망의 끝에서 다시 일어선 나의 처절한 생존 현장이다. "흙수저라 안 된다"고? 핑계 대지 마라. 나는 빈대에게서도 인생을 배웠다. 맨주먹으로 운명에 맞짱 뜬 첫 번째 기록을 걸어본다.

 

📍 장소 1. 강원도 통천군 송전면 아산리: 70원의 무게

주소: 강원도(북한) 통천군

(정주영 회장의 생가는 현재 북한 지역인 강원도 통천군 송전면 아산리에 위치하여 사진을 구할 수 없습니다. 정주영 회장은 아산이라는 호를 쓸 정도로 고향에 대한 애정이 있다.)

여기가 내가 태어난 곳이다. 아버지는 억척같은 농사꾼이었다. 허리가 휘도록 일해도 보릿고개만 되면 굶어야 했다. 나는 그게 싫었다. 흙 파먹다 죽을 수는 없었다. 서울로 가면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네 번째 가출을 감행하던 새벽, 나는 아버지가 소를 판 돈 70원을 훔쳐 달아났다. 그 돈이 어떤 돈인가. 우리 집안의 전 재산이자 아버지의 피땀이었다. 서울로 가는 기차 안에서 훔친 돈을 움켜쥐고 나는 맹세했다.

"성공하기 전에는 죽어도 안 돌아간다. 이 돈을 천 배, 만 배로 불려서 아버지 앞에 갚겠다."

그 70원은 내가 세상에 진 첫 번째 빚이자, 내가 반드시 성공해야만 했던 가장 독한 이유였다. 자네는 지금 그 정도의 독기가 있는가? 부모 탓, 환경 탓하기 전에 스스로 물어봐라. 등 뒤에 배수진을 쳤는가?

 

📍 장소 2. 고려대학교 신축 공사장: 노동자의 땀과 빈대의 교훈

고려대학교

주소: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동

서울에 와서 안 해본 일이 없다. 인천 부두에서 막노동하고, 이곳 고려대학교 본관 짓는 공사장에서 등짐을 졌다. 돌을 나르며 저기 교정에서 책을 읽는 대학생들을 보았다. 솔직히 부러웠다. 하지만 기죽지는 않았다.

"너희는 부모 잘 만나 책으로 세상을 배우지만, 나는 내 몸으로 세상을 배운다."

나는 노동자 합숙소에서 잘 때 빈대 때문에 잠을 못 잤다. 밥상 위로 올라가 자보고, 상다리에 물을 담은 양재기를 받쳐도 봤다. 그런데 이놈의 빈대들이 천장으로 기어 올라가 내 배 위로 뚝 떨어지더라.

그때 소름이 돋았다. "하물며 미물인 빈대도 살려고 저렇게 머리를 쓰고 죽을힘을 다하는데,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못 할 게 뭐가 있나." 나는 돌을 나르면서 다짐했다. 언젠가 내가 이 건물을 짓는 주인이 되겠노라고. 막노동판의 흙먼지와 빈대의 끈기가 내게는 배움 이였다.

 

📍 장소 3. 서울 신당동 복흥상회: 자본보다 무서운 신용

쌀 배달 가게

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신당동

쌀가게 배달원으로 취직했다. 나는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 가게 앞을 쓸고, 쌀가마니를 정리했다. 쌀 배달 자전거가 쓰러지지 않게 짐 싣는 기술을 연구했다. 남들이 "대충 해라" 할 때 나는 "주인처럼" 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쌀가게 주인이 노름에 빠진 아들 대신, 피 한 방울 안 섞인 나에게 가게를 물려주었다. "자네라면 믿을 수 있다." 돈 한 푼 없이 쌀가게 사장이 된 것이다.

나는 그때 깨달았다. "돈은 쫓는 게 아니라, 신용 있는 사람에게 저절로 붙는 것이다." 자본금이 없다고 불평하지 마라. 당신의 성실함이 증명되는 순간, 세상의 모든 돈이 당신의 자본이 된다.

 

📍 장소 4. 아도서비스(자동차 수리 공장): 잿더미 위에서 다시

아도 서비스 센터

 

주소: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일제 통제령으로 쌀가게 문을 닫고, 빚을 내 자동차 수리 공장을 차렸다. 하지만 개업 20일 만에 불이 났다. 공장도, 수리 중이던 차도 모두 타버렸다. 쫄딱 망한 거지 신세가 되었다.

나는 다시 돈을 빌려준 사람을 찾아갔다. 담보도 없었다. 오직 지난날 보여준 '신용' 하나로 다시 돈을 빌렸다. 그리고 신설동 빈터에 다시 공장을 지었다. 허가도 안 난 공장에서 밤을 새워 차를 고쳤다. 남들이 며칠 걸릴 일을 우리는 하룻밤 만에 해치웠다. '빨리빨리' 정신은 여기서 시작되었다.

실패는 끝이 아니다. 불이 났으면 다시 지으면 된다. 신용만 살아있다면, 잿더미 위에서도 꽃은 핀다.

 

📍 장소 5. 고령교 복구 현장: 집을 팔아 지킨 약속

고령교

주소: 경상북도 고령군 낙동강

전쟁 후, 현대건설을 세우고 고령교 복구 공사를 맡았다. 하지만 물가는 120배나 치솟았고, 홍수로 다리는 유실되었다. 공사를 하면 할수록 엄청난 적자가 났다. 직원들은 파산한다며 손 떼자고 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살던 집을 팔고, 동생들 집까지 팔아 공사비를 댔다. 결국 공사는 막대한 적자로 끝났지만, 나는 완공 약속을 지켰다. 미련한 짓이라고? 천만에. 이 일로 정부는 "현대는 손해를 보더라도 약속을 지키는 회사"라고 인정해 주었다.

그 신용 덕분에 훗날 한강 인도교, 경부고속도로 같은 거대한 공사를 따낼 수 있었다. 작은 이익을 탐하다 신용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 사업가는 당장의 손해를 무서워해선 안 된다.

 

Day 1 Epilogue: 신용, 빈손으로 쌓을 수 있는 유일한 자본

 

오늘 우리는 나의 가장 처절했던 시절을 돌아보았다. 70원을 훔쳐 달아난 소년이 빈대에게 끈기를 배우고, 쌀 배달을 하며 신용을 쌓고, 잿더미와 적자 속에서도 약속을 지키며 일어선 과정.

이 모든 이야기의 핵심은 간단하다. 나는 가진 게 없었기에, 목숨을 걸고 '신용'을 지켰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돈이 없어서 사업을 못 한다고 하지만, 틀렸다. 신용이 없어서 못 하는 것이다.

자네는 오늘 무엇을 약속했고, 그것을 얼마나 지켰나? 신용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지만,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다. 지금 자네의 빈손을 부끄러워 마라. 그 손으로 쌓아 올릴 신뢰가 자네의 가장 큰 자본이다. 내일은 이 신용을 밑천 삼아 어떻게 불가능에 도전했는지, 지도조차 없던 길을 뚫은 야생의 현장으로 가보자.

 

아산 정주영 회장도 자신이 가진 육체로 막노동, 쌀 배달부터 시작했습니다. 풍요와 먹을 것이 가득한 우리는 삶에 안주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봅니다. 환경, 재능, 시간 탓 이제 그만하시고 당신의 사업 아이템 이제는 시작하십시요.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한다면 해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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