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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간의 상표권 글로벌 매각의 기록

 

수상한 이메일 한 통에서 시작된 여정

몇 개월전 필자의 메일함에 낯선 영문 이메일 한 통이 도착했다. 발신자는 미국의 지식재산권(IP) 전문 에이전트였다. 내용은 간결했다. 당사의 고객사가 보유한 특정 소프트웨어 브랜드 상표권을 자신들의 고객사를 위해 매입하고 싶다는 제안이었다. 처음에는 스팸 메일이 아닌가 의심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이름만 대면 알만한 거대 기업도 아닌, 한국의 작은 기업이 보유한 상표를 미국 에이전트가 먼저 찾아와 구매하겠다니 현실감이 없었다.

하지만 조사를 통해 해당 에이전트가 애플, 구글, 메타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IP 매입을 대행해 온 실재하는 전문 기업임이 확인되자 상황은 달라졌다. 이것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우리 고객사에게 찾아온 흔치 않은 기회였다. 하지만 동시에 브랜드의 정체성을 포기해야 하는 중대한 경영적 결단이 필요한 순간이기도 했다. 제안된 금액은 결코 적은 금액은 아니었지만, 솔루션의 이름을 바꾸는 대가로 충분한지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붙었다. 그렇게 우리 고객사의 치열한 글로벌 상표권 매각 여정이 시작되었다.
 

 

 

가격은 논리 위에서

처음에 가장 어려웠던 것은 고객사를 설득하여 상표권 매각 의사를 이끌어내는 것이었다. 객관적으로 고객사에게 유리한 딜이였지만, 예상보다 고객사가 매각 결정을 내리기까지 몇 차례의 설득이 필요했다. 어느 정도 매각 의사를 굳힌 고객사가 가장 먼저 마주한 과제는 가격 협상이었다. 초기 제안가는 시장 가치로 볼 때 나쁘지 않은 금액이었으나, 고객사의 경영진은 약간의 아쉬움을 표했다. 통상적으로 많은 기업이 이 단계에서 감정적으로 호소하는 경우도 있는데, 막연한 증액 요구는 냉정한 글로벌 에이전트들에게 통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협상 테이블의 주도권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숫자로 증명된 논리가 필요했다.

우리는 즉시 재브랜딩(Rebranding) 비용을 항목별로 산출하기 시작했다. 상표권을 넘긴다는 것은 단순히 권리증을 건네는 것이 아니라, 현재 사용 중인 모든 제품명, 웹사이트 도메인, 앱 스토어 등록 명칭, 심지어 직원들의 명함과 회사 간판까지 바꿔야 함을 의미한다. 여기에 그동안 해당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투입했던 마케팅 비용, 즉 매몰 비용(Sunk Cost)과 브랜드 교체 기간 동안 발생할 수 있는 고객 혼선에 따른 기회비용까지 더했다.

우리는 이러한 비용을 구체적인 데이터로 만들어 상대방에게 제시했다. 여기에는 상대방이 전문 에이전트를 고용했다는 점을 역이용한 전략도 숨어 있었다. 에이전트 수수료를 지불하면서까지 익명으로 접근했다는 것은, 그들이 이 상표를 선택이 아닌 필수로 여기고 있다는 강력한 반증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몇 차례 줄다리기 끝에 상대방은 우리의 논리를 수용했고, 초기 제안가 대비 50% 가까이 증액된 금액에 최종 합의했다.
 

 

 

수령 확인이라는 이름의 함정

가격이 합의되자 곧이어 미국 측 변호사가 작성한 10페이지 분량의 영문 양도 계약서(Trademark Assignment Agreement) 초안이 도착했다. 그리고 우리는 첫 페이지부터 한국 기업들이 흔하게 빠질 수 있는 독소 조항을 발견했다. 바로 대가(Consideration) 조항에 적힌 "the receipt and sufficiency of which are hereby acknowledged(이에 그 수령과 충분성을 인정하며)"라는 문구였다.

얼핏 보면 관용구처럼 보이는 이 문장은 법적 함정을 품고 있다. 이 계약서에 서명하는 순간, 매도인은 실제로 돈을 받지 않았음에도 법적으로는 "이미 대금을 수령했다"고 선언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만약 서명 후 상대방이 돈을 보내지 않는다면? 매도인은 이미 돈을 받았다고 서명했으므로 대금 청구 소송에서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이번 거래는 제3자 예치 서비스인 에스크로(Escrow)를 이용하기로 했기에, 서명 시점과 실제 입금 시점 사이에는 필연적인 시차가 존재했다.

이 부분에 대해 검토 후 상대방 측에 수정을 요구했다. 서명이 대금 수령을 의미한다는 문구를 삭제하고, "대금은 에스크로 계좌를 거쳐 매도인이 지정한 은행 계좌에 최종적으로 입금 확인(Irrevocably confirmed)이 된 시점에 비로소 수령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문구로 대체했다. 이는 현금의 흐름과 법적 효력의 발생 시점을 일치시키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안전장치였다.
 

 

 

미래의 의무를 어디까지 질 것인가

계약서 중반부, 양도인의 협력 의무(Assistance) 조항에서는 부담스러운 단어가 눈을 사로잡았다. 바로 Establishment라는 단어였다. 상대방은 "상표권의 Recordation과 Establishment, 그리고 Enforcement에 대해 양도인은 무제한적으로 협력해야 한다"고 명시해 두었다.

Recordation을 돕는 것은 양도인으로서 어느 정도 당연하지만, 새로운 국가에 동일한 상표를 출원하거나 확보할 때의 과정과 관련된 establishment 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만약 이 조항을 그대로 둔다면, 5년 뒤 구매자가 미국이 아닌 유럽이나 남미에 새로운 상표를 출원하면서 우리 고객사에게 당신네가 원소유자였으니, 우리가 이 권리를 갖는 게 맞다는 확인서를 써달라고 요구할 때 거절할 명분이 사라질 우려가 있었다. 심지어 구매자가 제3자와 소송(Enforcement)이 붙었을 때 우리 고객사가 증인으로 소환되어 비용과 시간을 써야 할 수도 있다.

우리는 'Recordation'과 'Establishment'를 엄격히 분리했다. 현재 존재하는 상표권의 명의를 바꾸는 행정 절차에는 적극 협조하되, 미래에 새로운 권리를 만드는 일이나 소송에 휘말리는 일에 대해서는 의무를 지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몇 차례의 논의 끝에, "과거의 사실 확인에 필요한 자료 제공에 한하여 협조하되,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비용은 구매자가 부담하고, 우리 고객사는 어떠한 법적 책임도 지지 않는다"는 보호 조항을 관철시켰다. 이는 매각 이후 우리 고객사가 겪을 수 있는 불필요한 법적 리스크를 원천 봉쇄하는 결정적인 안전장치였다.
 

 

 

떠나는 자와 남는 자의 공존

마지막 쟁점은 우리 고객사의 남은 자산 보호였다. 우리 고객사는 매각 대상상표 외에도 분리된 회사명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매각 대상상표와 회사명 사이에 일부 단어가 겹치는 부분이 있었다. 상표의 분리관찰을 적용하면 요부가 동일하다고 판단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그리고 유사한 패밀리 브랜드도 보유하고 있었다. 통상적인 양도 계약서에는 "매각한 상표와 혼동을 줄 수 있는 유사한 표장은 일체 사용하지 않는다"는 경업 금지 조항이 포함된다.

이 조항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우리 고객사는 상표 하나를 팔았다가 회사 이름까지 바꿔야 하는 황당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중첩되는 단어가 들어갔다는 이유만으로 계약 위반 시비가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별첨(Exhibit) 문서를 활용했다. 계약서 말미에 우리 고객사가 계속 사용할 사명과 기존 상표 목록을 명시하고, "이 목록에 있는 이름들을 사용하는 것은 본 계약의 위반이 아님을 구매자가 동의한다"는 예외 조항을 신설했다. 이는 딜 클로징 이후에도 우리 고객사가 안정적으로 사업을 영위할 수 있게 해주는 최소한의 방어막이었다.
 

 

 

에스크로와 금융 규제의 높은 파고

계약서 협상이 마무리되자마자 실무적인 어려움이 이어졌다. 에스크로를 활용한 대금 지급 프로세스였다. 글로벌 IP 거래에서는 상호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Escrow.com' 같은 중개 플랫폼을 사용한다. 하지만 국내 기업에게 이 시스템은 낯설고 불편했다. 계정을 만들고 계좌 인증받는 과정 하나하나를 해외 일정에 맞춰서 진행하다보니 거래 가능한 유효한 에스크로 계정을 만들기까지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해외 기업과의 비대면 거래에 있어서 에스크로 활용은 필수적이기 때문에 미리 계정을 만들어두는 것도 방법이 될 것 같다.

에스크로 시스템의 기능을 활용한 절충안으로, 구매자가 에스크로 계좌에 돈을 먼저 입금하면, 에스크로 업체가 이를 검증(Vet)하여 우리 고객사에게 "돈이 안전하게 확보되었다"는 시스템 알림을 전송하게 되면, 고객사는 이 알림을 확인한 후에야 양도 서류를 발송하고, 구매자는 서류를 확인한 뒤 지급 승인(Release)을 누르는 구조였다.

고객사의 에스크로 계정이 verification 되었지만, 한 가지 과정을 더 거쳐야했는데, 미국 재무부 산하 금융범죄단속국(FinCEN)의 기업 투명성법(CTA) 강화에 따른 실소유자(UBO: Ultimate Beneficial Owner) 인증 요구였다. 거래 금액이 수십만 달러 이상되는 고액이다 보니, 에스크로 업체는 고객사 지분의 25% 이상을 보유한 개인 주주들의 여권 사본과 영문 주소 증빙을 추가로 요구했다.

한국 정서상 주주들의 민감한 개인정보를 해외 사이트에 업로드하는 것은 거부감이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는 타협할 수 없는 미국의 자금세탁방지(AML) 규정이었다. 이 과정에서 계정 인증이 실패하고 딜이 지연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결국 이는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춘 투명성을 요구하는 과정임을 인정하고 신속하게 대응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세금 이슈가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우여곡절 끝에 에스크로 계좌에서 30만 달러가 Release되었다는 기쁜 소식이 도착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한국에서의 고객사와 우리 사이의 에이전트 비용 관련도니 세금 문제였다. 해외 기업과의 지재권 거래는 영세율이 적용되지만, 우리 고객사와 매각을 중개한 한국의 에이전트 사이의 수수료 정산 과정에서는 부가세 신고의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흔히 "외화를 벌어오는 용역이니 영세율(0%) 세금계산서를 끊으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부가가치세법 시행령 제33조에 따르면, 국내 사업자 간의 거래는 대금의 원천이 해외이거나 결제 통화가 달러라 할지라도 원칙적으로 과세 대상이다. '수출재화 임가공 용역' 등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국내 중개 법인이 국내 매도인에게 제공한 자문 용역은 10% 부가가치세를 납부해야 한다. 자칫 관행대로 영세율 처리를 했다가는 추후 가산세를 맞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양사 간에 계산서 발행 기준을 정하여 해외송금 시점의 매매기준환율을 기준으로 과세 세금계산서를 발행하고 부가세를 별도로 수수하기로 정리하며 모든 절차를 마무리했다.
 

 

 

글로벌 IP 거래 어렵지 않다

고객사의 통장에 약속된 거래대금이 달러로 입금되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비로소 긴 여정이 끝났음을 실감했다. 상표권을 해외 기업에게 매각하는 과정은 단순히 권리를 넘기는 행위가 아니라, 법률, 경영, 금융, 세무가 복합적으로 얽힌 과정이라는 점이다.

상대방이 내민 계약서는 수정 불가능한 문서가 아니며, 상대방의 관점이 담겨있는 제안서에 가깝기 때문에 냉정하게 검토할 수 있는 여유와, 위험한 조항을 찾아내는 꼼꼼함, 그리고 낯선 금융 규제에 당황하지 않고 대응하는 유연함이 있다면, 한국의 중소기업도 글로벌 업체들과의 지재권 거래에서 충분히 소기의 성과를 달성할 수 있다. 이번 사례를 통해 다른 국내 기업들에게도 희망적인 이정표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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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유철현 대표 변리사는 서울대 재료공학부를 졸업하고 2007년 44기 변리사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직접 투자하는 ‘엑셀러레이터형’ BLT 특허법률사무소를 시작으로, IT와 BM분야의 전문성을 살려 다양한 기술 기반 기업의 지식재산 및 사업 전략 컨설팅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현재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심의위원과 한국엔젤투자협회 TIPs 사업 심사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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