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단군 이래 가장 부유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1960년대, 세계 최빈국이었던 이 나라는 '한강의 기적'을 통해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 되었습니다.
물질적으로만 보면, 우리는 그 어떤 조상보다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왜 우리는 OECD 자살률 1위, 출산율 0.6명이라는 '멸종의 길'을 걷고 있을까요?
많은 전문가들이 진단합니다. "경제가 어렵다", "지원금이 부족하다".
하지만 저는 감히 말합니다. 그 진단은 틀렸습니다.
정말 돈이 생존의 조건이었다면, 우리는 진작에 멸종했어야 합니다.
가난과 포탄이 빗발치던 6.25 전쟁 통에도 우리 부모님들은 아이를 낳고 길렀으니까요.
그렇다면,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지금, 우리는 왜 스스로를 지우고 미래를 포기하는 걸까요?
문제는 '돈(물질)'이 아닙니다. 우리 무의식 깊이 박힌 '잘못된 믿음' 때문입니다.
바로 "내 가치는 외부에 있다"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 하나가 우리를 무한 경쟁으로 몰아넣고, 서로를 적으로 만들며, 끝내 벼랑 끝으로 밀고 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저도, 읽고 있는 여러분도, 예외 없이 이 거대한 믿음의 시스템 속에 갇혀 있습니다.
1. 보이지 않는 감옥: "당신의 가치는 어디에 있습니까?"
제가 말하는 '믿음'은 종교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건 우리가 아침에 눈을 뜨고 잠들 때까지, 우리의 모든 생각과 행동을 조종하는 '보이지 않는 운영체제(OS)'입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이렇게 훈련받았습니다.
"네 안에는 아무것도 없다. 밖에서 무언가를 가져와야 너는 비로소 가치 있는 존재가 된다."
이 믿음은 우리 내면에 '두 개의 거대한 기둥'을 세웁니다.
- 첫 번째 기둥: "나는 부족하다" (자기 불신) 학교에서는 성적표로, 회사에서는 연봉으로, SNS에서는 '좋아요' 숫자로 끊임없이 우리를 채점합니다. 우리는 이 숫자가 낮으면 "나는 부족한 인간"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100점을 맞아도, 1억을 벌어도 불안합니다. "이게 사라지면 내 가치도 사라질까 봐" 전전긍긍합니다.
- 두 번째 기둥: "타인은 적이다" (무한 경쟁) 내 가치를 채울 자원(1등, 대기업, 명품)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내 옆의 친구는 동료가 아니라, 내 몫을 뺏어갈 '잠재적 적'이 됩니다. 우리는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서로의 불행에 안도하고 서로의 성공에 배 아파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사는 '지옥의 설계도'입니다. 돈이 없어서 지옥이 아닙니다. "외부의 조건이 나를 증명하지 못하면, 나는 죽은 목숨이다"라는 이 끔찍한 강박이, 우리를 24시간 쉬지 못하게 채찍질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두 개의 기둥이 대한민국이라는 땅 위에서 어떤 지옥도를 그려내고 있는지 보십시오.
1. 혐오와 갈등의 원인: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 왜 남녀가, 세대가, 진보와 보수가 서로를 죽일 듯이 혐오할까요? 우리가 나빠서가 아닙니다. "가치(파이)는 한정되어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저성장 시대에 파이는 멈췄습니다. 내 가치를 채우려면 남의 몫을 뺏어야 합니다. 상대방은 공존해야 할 이웃이 아니라, 내 밥그릇을 위협하는 '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대화 대신 혐오를 선택한 것입니다.
2. 정치의 타락: "권력이 곧 나의 가치다" 정치인들이 왜 위선과 비리를 저지르면서까지 권력을 놓지 못할까요? 그들에게 권력은 '봉사의 도구'가 아니라, '자신의 존재 가치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권력을 잃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공포가 그들을 괴물로 만듭니다. 국민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자신의 '외부 가치'를 방어하기 위한 전쟁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3. 자살과 저출산: "가치 없는 삶은 폐기한다" 이것이 가장 뼈아픈 결과입니다. 시스템은 "돈과 성공이 없으면 너는 실패작이다"라고 선고합니다. 패배감을 느낀 개인은 "가치 없는 나를 삭제(자살)"하고, 불안을 느낀 청년은 "가치 없게 살다 갈 생명을 생산하지 않겠다(저출산)"고 선언합니다.
이 모든 비극은 별개의 문제가 아닙니다. "외부 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인간은 무가치하다"는 단 하나의 잘못된 믿음이, 우리의 생명과 미래까지 집어삼키고 있는 것입니다.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 그러나 압도적 1위의 자살률.
이 그래프가 증명하는 것은 경제 위기가 아니라, '영혼의 위기'입니다." (출처: 데이터줌, 국제 자살 통계 link)
2. 병의 기원: 우리는 왜 '돈'을 '신'으로 모시게 되었나?
과거 농업혁명 시대에도 돈은 중요했습니다. 하지만 돈이 곧 '나의 가치'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때 우리는 작은 마을에서 옹기종기 모여 살았습니다. 서로의 얼굴을 알고, 부모가 누구인지 알고, 어떤 과거를 살았는지 알았습니다. 그 시절, 신뢰의 보증서는 '시간'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곁에서 지켜본 그 사람의 '행동'이 곧 신뢰였습니다.
하지만 산업혁명이 모든 것을 바꿨습니다. 우리는 고향을 떠나 공장이 있는 '익명의 도시'로 몰려들었습니다. 옆집엔 누가 사는지 모르고, 내일 함께 일할 동료가 어떤 사람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바쁜 도시에서 10년씩 시간을 들여 서로를 검증할 여유는 사라졌습니다.
우리는 서로 신뢰할 수 없는 상황 속,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시간'을 대체할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증명서'를 찾아냈습니다. 바로 '돈'과 '학벌'입니다.
"저 사람은 서울대를 나왔으니 성실할 거야.", "저 사람은 부자니까 믿을 만해."
이때부터 비극은 시작되었습니다. 낯선 이를 판단하기 위한 '신뢰의 도구'였던 돈과 학벌이, 어느새 그 사람의 '존재 가치' 그 자체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보지 않고, 그 사람이 가진 숫자를 믿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치명적인 '오진'이 더해졌습니다. 돈이 육체의 굶주림을 해결해 주자, 우리는 "돈이 많으면 영혼도 행복해질 것"이라는 착각에 빠졌습니다. 신뢰의 도구였던 돈은, 이제 우리의 행복과 가치를 결정하는 '유일한 신'의 자리에 오르게 된 것입니다.
3. 파국: 엔진은 멈췄고, 진짜 기계가 나타났다
인정하겠습니다. 돈이 많으면 좋습니다. 세련된 자동차의 푹신한 의자에 앉을 수 있고, 한강이 보이는 집에서 심신의 안정을 얻을 수도 있으니까요. 저도 돈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봅시다. 돈은 '쾌락'일 뿐입니다. 쾌락은 마약과 같습니다. 그 순간은 짜릿하지만, 내성이 생깁니다. 당신이 로또에 당첨되어 펜트하우스와 슈퍼카를 얻었다고 칩시다. 행복하겠죠. 하지만 딱 3주입니다. 3주가 지나면 그 화려함은 '일상'이 되고, 당신은 지루함을 느끼며 또 다른 한정판 명품을 찾아 헤맬 것입니다. 이것은 '밑 빠진 독'입니다.
문제는, 이 '독'을 채워주던 수도꼭지가 잠겼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고성장'이 이 끝없는 욕망을 어느 정도 채워줬습니다. 파이가 커지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저성장'이 고착화되었습니다. 파이는 멈췄는데, 사람들의 '욕망(중독)'은 그대로입니다. 멈춘 파이 안에서 욕망을 채우려면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남의 것을 뺏는 것."
이것이 정치인들이 국민을 위하는 척하며 서로를 죽일 듯이 싸우는 이유이고, 젠더와 세대가 서로를 혐오하는 진짜 이유입니다. 성장이 멈춘 곳에서 욕망만 남으면, 사회는 '전쟁터'가 됩니다.
설상가상으로, 여기에 'AI'라는 해일이 덮쳤습니다.
회사는 언제나 실수가 없고, 감정 기복 없이 생산성 높은 존재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기준에 맞추려 목숨 걸고 '지적 능력'과 '기능'을 쌓았습니다. 스스로 '기계'가 되려 했습니다.
하지만 '진짜 기계(AI)'가 등장하자, 그 모든 노력은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짝퉁 기계(인간)는 진짜 기계(AI)를 이길 수 없으니까요.
그로 인해, 인간은 '기능'으로 돈을 벌어 '쾌락'을 채우는 길조차 막혀버렸습니다. 욕망은 남았는데, 채울 방법(성장)도, 자격(기능)도 사라진 상태.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마주한 '파국'의 실체입니다.
4. 해결책: 새로운 나침반 (기계에서 인간으로)
저성장의 고착화로 파이가 멈추자, 우리는 생존을 위해 서로를 죽여야 하는 전쟁터에 갇혔습니다. 설상가상으로 AI가 등장해, 우리가 유일한 무기로 삼았던 '지적 생산성(기능)'마저 무의미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이것을 인류의 '멸망'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저는 이것을 오히려 위대한 '기회'이자 '해방'이라고 정의합니다.
왜냐고요? 우리가 지난 세기 동안 그토록 고통스럽게 수행해 온 "기계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기술이 우리를 강제로 은퇴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껏 더 빨리 계산하고, 더 많이 암기하고, 감정 없이 일하는 것이 '유능함'이라고 배웠습니다. 스스로 기계가 되려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완벽한 기계(AI)'가 등장했습니다. 우리가 30년간 뼈를 깎아 만든 '기능'을, AI는 단 1초 만에 0원으로 수행합니다. '기계가 되려는 인간'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습니다. 남은 건 '폐기'뿐입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렇기 때문에 '희망'이 있습니다.
AI가 '기능'을 가져갔기에, 인간은 비로소 '존재'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 AI는 정보를 처리할 순 있어도, '의미'를 창조할 순 없습니다.
- AI는 문장을 쓸 순 있어도, '진심'으로 공명할 순 없습니다.
- AI는 정답을 낼 순 있어도, 엉뚱한 '호기심'으로 새로운 길을 낼 순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질문을 바꿔야 합니다. "어떻게 AI보다 기능을 증명할까?"가 아니라, "무엇이 AI가 절대로 할 수 없는 인간의 고유함인가?"로요.
이것이 제가 찾은 '새로운 나침반'입니다. 바로 "내 가치는 내부에 있다"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의 목표는 '돈(쾌락)'이 아니라 '자기실현(충만함)'입니다. 어떤 이는 도자기를 빚으며, 또 다른 이는 노래를 부르며 제각기 자신의 위치에서 고유성을 꽃피웁니다.
이 '충만함'은 쾌락과 정반대입니다. 결과만을 탐하는 쾌락은 내성이 생겨 10억을 벌면 100억을 원하게 만들지만, 충만함은 '과정' 그 자체를 중요시합니다. 도자기를 빚는 그 순간, 나를 표현하는 그 감정의 몰입이 곧 행복이 됩니다.
오직 돈만을 좇는 ‘외부 가치 믿음’과 달리, ‘내부 가치 믿음’은 이 시대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됩니다.
- 사회적으로: 뺏어야 할 파이가 아닌, 나누어야 할 고유성만이 남기에 갈등은 멈춥니다. 정치는 권력 투쟁이 아닌, 국민의 충만함을 돕는 서비스가 됩니다.
- 개인적으로: 내 가치가 내 안에 있기에, 돈이나 성과가 없어도 나는 무너지지 않습니다. 실패는 '나를 삭제(자살)'해야 할 이유가 아니라, 내 인생의 '에피소드'가 됩니다. 남과 비교할 필요가 없으니, 스스로를 갉아먹던 우울과 불안도 설 자리를 잃습니다.
저성장과 AI가 닫아버린 문은 '경쟁의 문'입니다. 대신 그들은 우리에게 '고유성의 문'을 활짝 열어주었습니다.
이 새로운 믿음으로 무장한 사람에게, 저성장은 '약탈의 신호'가 아니라 '나눔의 기회'가 되고, AI는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내 고유성을 펼쳐줄 '최고의 도구'가 됩니다.
이 거대한 문명사적 이동을 관념이 아닌 '현실'로 만들기 위해, 저는 낡은 시스템의 기둥을 부수고 새로운 기둥을 세우는 3가지 실천 프로젝트를 준비했습니다.
5. 실행: 무너진 기둥을 다시 세우는 3가지 프로젝트
철학은 시스템이 될 때 비로소 힘을 가집니다. 저는 낡은 시스템의 두 기둥(자기 불신, 상호 적대)을 부수고, 새로운 기둥을 세우기 위해 3가지 구체적인 프로젝트를 설계했습니다.
[Project 1] 필닷 (Feeldot): '평가'를 끄고 '존재'를 켜다. 우리는 타인의 시선 때문에 병들었습니다. 그래서 필닷은 '피드백(좋아요, 댓글, 조회수)'을 기술적으로 원천 차단합니다. 평가가 사라진 고요한 방에서, 오직 나의 감정을 기록하고 그것이 '별자리'가 되는 과정을 지켜봅니다. 이것은 단순한 일기장이 아닙니다. 외부의 인정 없이도 내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자존감 회복 훈련소'입니다.
[Project 2] 감사 인사 캠페인: '적'을 '동료'로 재정의하다. 경쟁은 타인을 적으로 만듭니다. 우리는 이 회로를 바꿔야 합니다. 경쟁 대신, 버스 기사님이나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에게 '감사'를 표현하는 행동을 합니다. 이 작은 행동은 "타인은 나를 돕는 존재(동료)"라는 감각을 뇌에 새기는 '관계의 재설정 버튼'이 됩니다.
[Project 3] 부족: 황무지 속의 '온실'. 혼자서는 다시 낡은 시스템에 휩쓸리기 쉽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의 '기능'이 아닌 '고유성'에 공명하는 100명의 초기 생태계를 만듭니다. 이곳은 AI가 생존 노동을 담당하고, 인간은 예술과 철학으로 노는 미래 사회의 '모델 하우스'가 될 것입니다.
("타인의 평가(좋아요)가 사라진 밤하늘에, 오직 나의 감정만이 별자리로 남습니다. (필닷 실제 화면)")
6. 100명의 등대, 그리고 당신
누군가는 묻습니다. "고작 앱 하나, 캠페인 하나로 세상이 바뀌겠냐"고. 하지만 저는 확신합니다. AI가 기존의 가치를 0으로 만들고, 저성장이 희망을 앗아간 그 '대혼란의 밤'이 오면, 사람들은 길을 잃고 헤맬 것입니다.
그때, 먼저 이 길을 걸으며 "내 가치는 내부에 있다"고 증명해 낸 우리의 100명이, 세상 유일한 '등대'가 되어 길 잃은 사람들을 안내할 것입니다.
저는 이 거대한 여정을 시작할 준비를 마쳤습니다. 하지만 저 혼자서는 불가능합니다.
솔직히 고백합니다. 저는 가진 자본도, 화려한 창업 이력도 없는 평범한 개인입니다. 앱 개발 능력은 유치원 수준이고, 비즈니스는 이제 막 배우기 시작한 초심자입니다.
하지만, "사람을 살리고 싶다"는 이 진심의 무게만큼은 그 어떤 전문가보다 무겁다고 자부합니다. 8개월간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하며 치열하게 파헤친 이 '설계도'가 제 유일한 자산입니다.
이 글을 읽고 가슴이 뛰는 분을 찾습니다. 특히, 이 철학을 기술로 구현해 주실 앱 개발자분이 계신다면 부디 연락주세요. 화려한 스펙은 필요 없습니다. "이 지옥 같은 경쟁을 끝내고 싶다"는 그 마음 하나면 충분합니다.
저는 직원을 구하는 게 아닙니다. 무너져가는 세상 위에서,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새로운 문명을 함께 지을 '첫 번째 동료'를 찾습니다.
저의 부족한 손을 잡아주시겠습니까?
[더 깊은 이야기 & 연락처]
이 짧은 글에 다 담지 못한, 제가 8개월간 고민한 모든 철학적 배경과 프로젝트의 구체적인 설계도를 아래 노션에 담았습니다. 부디, 한 번만 읽어봐 주십시오.
지금 당장은 제가 필요하신 도움을 드릴 수는 없지만 나중에 기회가 되어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행복하세요 잘되시길 바랍니다.
지금 당장 돕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이미 군더더기 님의 댓글 하나가 저에게는 가장 큰 지원군입니다. 이 따뜻한 응원이 부끄럽지 않도록,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모두가 웃는 세상'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겠습니다. 언젠가 꼭 웃으며 만날 날을 기대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현재 기획하신 화면, 기능을 고려했을 때
MVP수준까지는 요즘 ai툴 들로도 가능할 것 같아요
하지만 제가 굳이 사람을 찾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1. 기술적 확장성: AI로 만든 코드는 초기엔 빠르지만, 나중에 서비스가 커지거나 복잡한 기능(실시간 데이터 처리 등)이 필요할 때 '유지보수'와 '확장' 면에서 한계가 올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튼튼한 뼈대를 처음부터 제대로 잡고 싶었습니다.
2. 철학적 동지: 이것이 더 큰 이유입니다. 저는 단순히 기능적인 앱을 만드는 게 아니라, 함께 가치를 고민할 파트너를 찾고 있습니다. 혼자서 AI와 씨름하며 만드는 것보다, 철학을 공유하는 사람과 부딪히며 만드는 과정 자체가 이 프로젝트의 본질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쉬운 길 대신 어려운 길을 택한 저의 무모함을 응원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글을 읽고 생각해보니 결국 필요한건 사람인것 같아요
세상을 바꿀려면 결국 사람들이 바뀌어야하고, 변화를 만들사람이 필요하잖아요
비슷한 생각을 갖고있는 사람들이 모인다면 방법이 더 많아지지 않을까 싶네요
가장 접근성이 좋은 단체 오픈채팅방 등을 만들어서 사람들이 모이면 그 안에서 기획, 디자이너, 마케터, 개발자 뭐 등 등 다 만날 수 있지 않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록 더 많은 시도를 부담없이 할 수 있을거고 더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는 앱을 먼저 만들고 사람을 초대해야 예의라고 생각해서 개발자 찾기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군더더기 님 말씀대로 사람(부족)이 모이는 것이 곧 변화의 시작이라는 본질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동안은 제 철학의 밀도가 높은 곳(디스콰이엇/EO)에서부터 조심스럽게 시작하고 싶었는데, 군더더기 님의 조언 덕분에 '더 넓은 광장'으로 나갈 용기를 얻었습니다.
말씀해 주신 대로 인스타, 스레드, 카페 등으로 활동 반경을 넓혀서,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먼저 모으는 시도를 바로 병행해 보겠습니다. 제 전략의 시야를 넓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강력한 유인은 자극이 아닌 해방감입니다.
1. 24시간 평가받는 피로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디지털 대피소라는 점.
2. 나의 감정 기록이 쌓여 단순한 텍스트가 아닌 '시각적인 우주(데이터 아트)'로 남는다는 수집의 가치.
이 두 가지를 핵심 동력으로 삼되, 말씀하신 대로 사용자가 매일 접속할 수 있도록 '자신의 감정 패턴을 분석해 주는 리포트 기능'이나 '부담 없는 익명 공명 시스템' 등을 구체화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기획의 빈틈을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앞으로도 지켜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