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제로인사이트
격주 목요일, 창업가들의 인사이트를 메일로 전해드립니다.
창업가들의 Day 0로 돌아가, 그들의 ‘처음’에 담긴 고민과 배움을 살펴봅니다.
B2B SaaS 스타트업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제품 유입과 바이럴을 통해 성장하는 PLG(Product-Led Growth)가 중요한 전략으로 이야기되곤 합니다. 하지만 내부툴 빌더 리툴(Retool)의 창업자 데이비드 슈(David Hsu)는 다른 길을 택했죠. PLG를 기다리기보다는 아웃바운드 세일즈로 시장을 직접 탐색했고, 이 방식을 통해 누구보다 빠르게 PMF(Product-Market Fit)에 도달했습니다.
리툴이 흥미로운 이유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초기 10명 남짓한 팀으로 수백만 달러 매출을 만들고, 설립 후 약 4년 만에 현금흐름 흑자에 도달한 흔치 않은 스타트업이죠. 오늘은 리툴의 창업자 데이비드 슈의 Day 0로 돌아가, 그가 어떻게 현실을 파악하고, 어떤 과정을 거쳐 PMF를 찾았는지, 그리고 리툴이 어떻게 지속 가능한 성장 모델을 구축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리툴의 시작: 반복되는 운영 문제에서 출발한 제품
리툴: 내부툴 개발의 비효율을 해결하는 플랫폼
리툴은 기업이 어드민 페이지, 운영 대시보드, 승인 시스템처럼 반복적으로 만들어야 하는 내부 운영툴을 효율적으로 구축할 수 있게 돕는 개발 플랫폼입니다. 회사 내 여러 데이터 소스를 한 화면에 가져오고, 필요한 기능을 조립해 업무 흐름에 맞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습니다.
모든 기능을 처음부터 코드로 구현할 필요 없이, drag-and-drop 인터페이스로 화면을 구성하고 간단한 로직을 설정해서 운영툴을 빠르게 완성할 수 있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기업마다 사용하는 운영툴의 형태는 조금씩 다르지만, 본질적으로 비슷한 문제와 구조가 반복된다는 점에서 리툴을 활용하면 개발 리소스를 크게 절약할 수 있죠.
2017년 설립 이후 꾸준히 성장해온 리툴은, Series C2에서 약 4,500만 달러를 투자 유치하며 기업가치 약 32억 달러를 기록했습니다. 현재 아마존, 도어대시, 메르세데스 등 다양한 글로벌 기업이 내부 운영툴 구축에 리툴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출처: https://retool.com/)
사이드 프로젝트에서 출발한 문제 인식
리툴의 창업자 데이비드 슈는 실리콘밸리에서 성장해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철학과 컴퓨터 과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는 대학 시절 여러 사이드 프로젝트를 만들면서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 프로젝트의 분야가 달라도 결제 관리, 사용자 관리, 데이터 확인 같은 운영툴을 매번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었죠. 엔지니어라면 누구나 싫어하는 반복 작업이었고, 정작 핵심 기능보다 이런 백오피스 개발에 더 많은 시간이 들곤 했습니다.
데이비드는 “이렇게 매번 고통스러운 일을 반복해야 한다면 더 나은 방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지점에서 리툴이 시작됐습니다. 이처럼 리툴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는 과정에서 나온 제품이 아니라, 여러 프로젝트를 만들며 반복해서 마주친 문제에서 출발한 제품이었습니다.
💡 Insight Note
사이드 프로젝트는 시장 분석보다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문제 탐색 도구가 될 수 있다.
→ 데이비드는 리서치나 산업 분석이 아닌,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내가 얼마나 자주 이 문제를 겪는가”를 토대로 제품 아이디어를 찾았다.
제품의 출발점은 ‘새로운 문제’가 아니라 ‘지겹게 반복되는 문제’일 수 있다.
→ 내부 운영툴은 산업이 달라도 형태가 유사하며, 반복적 문제일수록 표준화·자동화의 필요성과 시장 기회가 커진다.
2. 세일즈로 PMF를 찾다: 냉정한 현실을 가장 빨리 알 수 있는 방법
가장 가치 있는 정보는 세일즈에서 나온다
데이비드는 많은 스타트업이 PLG(Product-Led Growth)에 과도한 기대를 가지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좋은 제품을 만들면 고객이 스스로 찾아온다”는 믿음이 일반적이지만, 그는 초기 단계에서 세일즈가 지나치게 과소평가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Figma나 Notion처럼 대표적인 PLG 기업들조차 초반 몇 년 동안은 명확한 PMF를 찾지 못해 시행착오를 반복했고, 데이비드는 “이 팀들 역시 더 일찍 고객과 대화를 시작했다면 그 시간을 크게 줄일 수도 있었을 것”이라 말합니다.
그는 PMF를 찾기 전 단계에서는 직접 시장에 나가 고객의 문제와 기대를 확인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세일즈야말로 고객이 어떤 문제를 겪고 있고, 기존 솔루션을 어떻게 바라보며, 무엇을 기대하는지를 가장 명확하게 알 수 있는 방법이라 보았죠. 데이비드는 이를 초기 단계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정보라고 강조했습니다.
리툴은 처음부터 100% 아웃바운드 세일즈로 시장 탐색을 시작했고, 이메일 제목, 본문, 제품 설명 방식, 홈페이지 문구, 심지어 도메인 이름까지 바꿔가며 수십 번의 세일즈 실험을 반복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강력하게 작동한 메시지는 “내부툴을 빠르게 만드는 방법”이었습니다. 고객이 실제로 해결하고 싶어 하는 문제를 가장 정확하게 건드렸기 때문이죠.

(출처: https://sequoiacap.com/article/david-hsu-retool-spotlight/)
메시지뿐 아니라 어떤 고객군이 리툴에 적합한지를 찾기 위한 실험도 이어졌습니다. 리툴 팀은 오래된 로우코드 도구인 파일메이커(FileMaker) 개발자들이 그들의 초기 고객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이를 검증하기 위해 약 250명의 파일메이커 개발자들에게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회신한 사람은 단 세 명뿐이었죠. 그중 한 명은 통화에서 “왜 당신의 아이디어가 나쁜지 설명해주겠다”고 말하며 리툴이 적합하지 않은 이유를 상세히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이를 통해 리툴 팀은 파일메이커 개발자들이 리툴의 최적 고객군이 아니라는 사실을 매우 빠르게 학습했습니다. 만약 이처럼 직접 대화하며 검증하지 않았다면, ‘파일메이커 시장이 작은 것일까?’, 혹은 ‘리툴의 가치가 충분하지 않은 것일까?’와 같은 질문들 사이에서 오래 헤맸을지도 모르죠.
결국 이러한 통찰은 단순히 시장을 멀리서 관찰하거나 고객이 제품을 자연스럽게 찾아와주기만을 기다려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정보였습니다. 초기 잠재 고객에게 직접 연락하고, 대화하고, 실험을 반복했기 때문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결과였습니다.

(출처: https://docs.retool.com/changelog/launch)
투자자 소개가 득보다 실이 될 수 있는 이유
초기에 데이비드는 투자자 소개를 통해 고객을 확보하려 했으나, 곧 이 방식이 시장 판단을 흐릴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소개를 통해 만난 사람들은 관계 때문에 통화를 친절하게 받아주지만, 실제로 제품을 왜 쓰지 않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이야기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반면 아웃바운드로 만난 고객은 관계 부담이 없기 때문에 훨씬 솔직합니다. 제품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 제품이 왜 적합하지 않은지”를 있는 그대로 말해주었죠. 데이비드는 이 단순한 차이가 PMF를 향한 속도를 결정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영업을 고객을 설득하는 과정보다는,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했습니다.
계약을 성사시키는 ‘사용자 감시’ 전략
리툴의 초기 아웃바운드 전략은 단순히 고객을 확보하는 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리툴 팀은 고객이 제품을 사용하는 순간을 실시간으로 관찰하기 위해 자체 분석 서버를 구축했습니다. 사용자가 어떤 화면에서 멈추는지, 어떤 조작 후 오류가 발생하는지 등을 즉시 확인할 수 있는 일종의 ‘사용자 감시(Spying)’ 전략이었죠.
그렇게 사용자를 관찰하다가 문제가 발생하면, 고객이 문의하기도 전에 먼저 연락해 “방금 오류가 발생한 것을 확인했는데 바로 도와드릴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고객 입장에서는 이슈가 발생하자마자 해결해주는 빠른 대응이 신뢰로 이어졌고, 많은 경우 이 경험이 바로 계약 체결로 이어졌습니다. 데이비드는 이 과정을 단순한 지원이 아닌 ‘적절한 시점에 고객과 대화하는 영업 전략’으로 보았습니다.
💡 Insight Note
PMF를 찾기 이전에는 PLG보다 아웃바운드가 더 효과적일 수 있다.
→ 직접 시장을 탐색하고, ‘현실을 정확히 바라보는 것’을 세일즈의 핵심 가치다. ‘냉정한 피드백’을 정확히 듣는 과정이 PMF까지의 거리를 단축한다.
소개를 통해 확보한 고객은 친절하지만 정확한 피드백을 제공하지 않는다.
→ 관계가 얽혀 있어 판단을 흐릴 수 있으며, 시장을 이해하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 아웃바운드 고객은 가장 솔직한 피드백을 준다.
사용자 행동을 실시간으로 관찰하는 것은 초기 세일즈 전략이다.
→ 문제를 고객보다 먼저 발견해 개입하면 신뢰를 크게 높이고, 자연스럽게 계약으로 이어진다.
3. 주권을 지키는 성장 구조와 그 위에서의 전략적 베팅
현금흐름 흑자를 만든 Burn 통제 구조
리툴의 성장 전략에서 데이비드가 가장 중요하게 본 것은 현금 소진(Cash Burn)을 통제하는 구조였습니다. Burn이 커지면 투자자에게 종속될 위험이 높아지고, 잘못된 선택을 되돌리기 위한 극단적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도 있죠. 그래서 그는 초기 단계에서 무엇보다 ‘주권(sovereignty)을 잃지 않는 것’을 최우선 원칙으로 삼았습니다.
리툴이 이 원칙을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소프트웨어 비즈니스의 높은 레버리지가 있었습니다. 데이비드는 소프트웨어 비즈니스가 아주 작은 팀으로도 높은 ARR(Annual Recurring Revenue)을 달성할 수 있는 산업이라는 점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죠. 그래서 초기부터 인력을 불필요하게 늘릴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 구조는 매출이 늘어나는 시기 자연스럽게 현금흐름 흑자를 만들어냅니다. 매출을 매년 3배 성장시키는 것은 가능하지만, 오히려 팀 규모를 매년 3배씩 키우는 것은 훨씬 어려운 일이죠. 그래서 초기부터 안정적인 매출을 확보한 팀은 매출 성장이 지속되는 동안 비교적 오랜 기간 흑자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됩니다.
이처럼 현금 소진을 통제하고, 작은 팀으로 높은 매출을 달성한 초기 구조는 리툴이 주권(sovereignty)을 지키며 이후 더 큰 전략적 결정을 가능하게 하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장기적 관점의 베팅: 투자 결정과 가격 전략
리툴은 ARR이 300만 달러를 넘었던 2020년 무렵, 외부 자본 없이도 매출을 3~5배까지 확장할 수 있는 구조를 이미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데이비드는 이 지점에서 Series A 투자를 선택했습니다.
그 이유는 생존 때문이 아니라, 기회(TAM*)에 대한 확신이었습니다. 데이비드는 리툴이 장기적으로 ‘소프트웨어가 만들어지는 방식 자체를 바꾸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제품 라인 확장과 비즈니스 고도화에 대한 더 큰 투자가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TAM(Total Addressable Market): 특정 제품 또는 서비스가 이론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총 시장 규모
이러한 철학을 바탕으로, 데이비드는 리툴의 가격 정책도 조정하기로 결정합니다. 리툴의 미션이 ‘소프트웨어 구축 방식이 되는 것’이라면 단기 수익보다 사용량 확대가 우선이라고 판단한 것이죠.
이에 따라 2023년부터는 유저를 구분해 가격을 책정하고, 20% 연간 할인을 도입하는 등 사용 장벽을 낮추는 방향으로 전략을 바꾸었습니다. 이는 현금흐름 흑자를 유지하고 주권(sovereignty)을 잃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선택이었죠. 만약 런웨이가 1~2년에 불과했다면 이런 장기 베팅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출처: https://retool.com/blog/pricing-v2)
데이비드는 이러한 전략적 결정을 내릴 때 CEO의 역할을 “현실을 정확히 보고, 중요한 순간에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매일 수많은 선택을 하지만, 실제로 회사의 방향을 바꾸는 결정은 1년에 몇 번뿐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그 순간을 제대로 포착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가설이 틀릴 가능성을 인정하는 낮은 자아(low ego)가 필요하다고 강조하죠.
리툴이 2023년 가격 정책 개편 이후 지금까지도 사용량 확대를 우선하는 구조를 유지하고, 최근 제품 전략을 AI 중심으로 전환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시장의 움직임과 고객의 필요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는 데이비드의 철학은, 초기 아웃바운드 전략부터 오늘날 리툴의 성장까지 이어져온 핵심 원칙일 것입니다.
💡 Insight Note
현금흐름을 유지하는 것은 주권(sovereignty)을 지키는 조건이다.
→ 현금 소진(Cash Burn)을 통제해야 단기 매출을 포기하고서라도 장기 목표에 베팅할 수 있다.
투자 유치는 생존이 아니라 ‘기회에 대한 확신’이 있을 때 선택해야 한다.
→ 리툴의 Series A는 구조 보전이 아니라 TAM을 향한 전략적 베팅이었다.
CEO의 핵심 역할은 ‘현실을 정확히 보고,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가설이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는 낮은 자아(low ego)가 필요하다.
📒 Editor’s Note:
데이비드는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며 ‘현실에 집착하는’ 태도를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이러한 자신의 태도를 “아기가 못생겼다는 말을 듣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차라리 일찍 아는 것이 낫다”는 비유로 설명했는데, 어쩌면 이것이 리툴의 Day 0을 가장 잘 요약하는 문장일 것이다. 고객의 솔직한 피드백을 얻기 위해 아웃바운드 세일즈를 선택한 이유도, 일찍부터 Burn을 통제하며 회사의 주권을 지키려 했던 전략도 결국 이러한 태도에서 비롯된 듯 하다.
창업자의 직감이나 비전보다 중요한 건, 때로는 불편할 수 있는 현실을 정확히 마주하는 일이라는 점. 데이비드의 사례는 이 단순한 원칙이 어떻게 회사를 빠르고 건강하게 성장시키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 글은 팟캐스트 Acquired의 데이비드 슈(David Hsu) 인터뷰 내용을 기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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