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주니어 시절 있었던 일을 말씀드리죠. 제가 야심 차게 준비한 기획서 리뷰 시간. 저는 한껏 긴장한 채 제가 밤새워 그린 화면 설계서(와이어프레임)를 제 사수와 팀장님에게 보여주고 있었죠. "사용자는 이 버튼을 누르면, 이 화면으로 이동해서..."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물 흐르듯 완벽한 플로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한참을 설명하고 있는데, 팀장님이 미간을 살짝 좁히시더니 저를 멈춰세우고 물으셨어요.
" M님, 설명은 잘 들었습니다. 그런데 방금 보여주신 그 '결제 완료' 팝업 말인데요. 그건 어떤 화면 위에서 뜨는 건가요? 상품 상세 페이지? 아니면 장바구니 페이지? 그리고 그 팝업의 확인 버튼을 닫으면 이전 화면으로 돌아가나요, 아니면 주문 내역 페이지로 가나요?"
순간 머리가 띵 하고 하얘지더라고요. 제 머릿속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흐름이었기에, IA(정보구조도)에는 그냥 <결제 완료 팝업>이라는 네모 상자 하나만 툭 던져놨거든요. 제 대답이 "어... 그건 아마..."라며 우물쭈물 길어지자, 기다렸다는 듯이 질문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 화면 이름은 왜 기획서 앞쪽에선 '내 정보'인데, 뒤쪽 와이어프레임에선 '마이페이지'예요? 같은 화면 맞죠?"
"검색 결과가 하나도 없을 땐 이 목록이 어떻게 보이나요? 그냥 빈 화면인가요?"
분명 화면은 빠짐없이 다 그렸다고 생각했는데, 그 화면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고, 어떤 규칙으로 움직이며, 어떤 예외 상황을 갖는지에 대한 설계도가 완전히 엉망이었던 거죠. 그날의 회의는 결국 기획서를 처음부터 다시 정리하라는 지시와 팀장님과 사수님의 격려(얘가 이러고 있는 동안 너는 뭘 했냐는 팀장님의 제 사수님을 향한 호통과 도대체 뭘 믿고 이따위로 일하는 거냐는 사수의 질책)가 이어졌고, 저는 제자리에 돌아와 한숨을 쉬며 생각했습니다. '나는 멍청이야. 왜 이런 것들을 생각하지 못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