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알렉스입니다.
어린 시절 저희 집에는 두꺼운 <동네 배달 음식점 모음집> 책이 있었습니다. 가끔 짜장면을 시켜먹는 날이면(제 소울푸드예요), 그 책을 뒤적거리며 가장 "양이 많아 보이는 곳"을 열심히 찾아보곤 했죠.
이후 배달의민족이라는 앱을 접했을 때 제 첫 반응은 "이걸 누가 써?"였습니다. 이미 저에게는 수 년간 사용한 배달 음식점 모음집이 있었거든요. 배달 시장이 완전히 바뀌는 순간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이었죠.
오늘날 혁신을 일으킨 대부분의 서비스들도 처음에는 "쓸데없는 장난감"으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들은 파괴적 혁신으로 시장을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관련하여 Andreessen Horowitz의 파트너 Chris Dixon이 2010년에 작성한 <The next big thing will start out looking like a toy>라는 글을 번역해 보았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
<The next big thing will start out looking like a toy>
인터넷 경제를 보면 참으로 놀라운 점이 하나 있습니다. 오늘날 업계 최상위권의 명단을 채운 기업들의 이름이 10년 전과 완전히 달라졌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과거의 강자들이 손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들 대부분은 살아남기 위해 사활을 걸고 신제품을 내놓고 다른 기업을 인수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새로운 스타트업들이 기존 강자들을 이길 수 있었을까요? 그 답은 바로 '차세대 혁신'이 처음에는 하찮은 '장난감' 취급을 받기 때문입니다. 이는 클레이 크리스텐슨 교수(Clay Christensen)의 '파괴적 기술(disruptive technology)' 이론이 제시하는 핵심적인 통찰입니다. 이 이론은, 기술의 발전 속도가 사용자의 필요가 늘어나는 속도를 앞지른다는 관찰에서 출발합니다. 이 단순한 통찰 하나만으로도, 시장과 제품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에 대한 수많은 흥미로운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파괴적 기술이 왜 장난감 취급을 받을까요? 처음 등장했을 때 사용자의 기대를 한참 밑돌기 때문입니다. 최초의 전화기는 고작 몇 킬로미터 남짓 목소리를 전달하는 수준이었습니다. 당시 통신업계를 꽉 잡고 있던 웨스턴 유니언은, 자신들의 주 고객인 기업이나 철도 회사에 전화기가 도대체 무슨 쓸모가 있겠냐고 생각하며 인수를 거절했습니다. 그들이 간과한 것은 기술의 발전 속도가 얼마나 무서운지, 그리고 그에 따른 인프라 확장이 얼마나 빠를 수 있는지였습니다(네트워크 효과는 종종 기술 채택을 기하급수적으로 만듭니다). 과거 메인프레임 기업들이 PC를 무시했던 것이나, 현대 통신사들이 스카이프를 얕봤던 것 모두 같은 맥락입니다.
물론 장난감처럼 보인다고 모두가 대박을 터뜨리는 건 아닙니다. 어떤 것이 진짜 보석이 될 장난감인지 가려내려면, 제품을 고정된 실체가 아닌 움직이는 과정으로 봐야 합니다. 개발자가 기능을 덧붙여 제품이 좋아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힘은 미미합니다. 반도체 가격이 싸지고, 인터넷 대역폭이 흔해지고, 스마트폰이 똑똑해지는 것 같은 외부의 거대한 흐름이 훨씬 중요합니다. 파괴적 제품이란 바로 이 거대한 흐름의 파도를 탈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을 말합니다.
사용자의 참여가 성장의 핵심 동력인 소셜 소프트웨어는 더욱 특별한 케이스입니다. 클레이 서키(Clay Shirky)의 설명처럼, 위키피디아는 그 자체가 살아있는 '과정'입니다. 매일같이 스팸, 문서 훼손 등 온갖 잡음이 끼어들지만, 선한 의도를 가진 사용자들이 더 빠른 속도로 이를 정화하고 발전시킵니다. 2001년의 위키피디아를 그저 하나의 결과물로 봤다면 형편없는 장난감에 불과했을 겁니다. 이런 혼돈 속에서 질서를 만들어내는 위키피디아의 힘은, 사용자들의 참여라는 거센 물결을 결과적으로 개선이라는 방향으로 이끄는 미세한 설계에서 나옵니다. 백과사전에 대한 사람들의 필요는 크게 변하지 않으니, 위키피디아가 멈추지 않고 발전하는 한 사용자의 기대를 넘어서는 것은 시간문제였던 셈입니다.
모든 제품이 파괴적 혁신을 일으켜야만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처음부터 시장에 필요한 기능으로 등장해 오랫동안 사랑받는 제품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크리스텐슨은 이를 존속적 기술(sustaining technologies)이라 부릅니다. 스타트업이 이런 기술로 쓸모 있는 제품을 만들면, 기존 강자들은 재빨리 인수하거나 베껴버립니다. 물론 타이밍과 실행력만 뒷받침된다면, 존속적 기술로도 얼마든지 성공적인 사업을 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존속적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이 미래 시장의 주인공이 될 가능성은 낮습니다. 미래의 정상에 오를 기업들은, 모두가 '겨우 장난감일 뿐'이라며 무시할 때 조용히 칼을 갈아온 파괴적 기술(disruptive technologies)을 가진 기업들일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