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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위터 창업자의 실패에서 배운 3가지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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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창업가들은 어떻게 처음 비즈니스를 시작했을까요? 창업가의 인터뷰를 통해 이들의 Day 0로 돌아가, “처음”에 어떤 시행착오를 거쳐 고객에게 사랑받는 제품을 만들 수 있었는지를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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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트위터(Twitter)는 처음엔 누구도 지금과 같은 성공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폐업 위기에 몰린 스타트업의 사이드 프로젝트로 시작된 서비스였고, 당시 창업자 에반 윌리엄스(Evan Williams)는 회사 운영조차 버거운 상황에 놓여 있었죠.

하지만 그는 그 실패 속에서 세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습니다:


  1. 자신을 위한 제품을 만들어라

  2. 숫자보다 ‘느낌’을 믿어야 할 때가 있다

  3. 리더십은 관계와 책임에서 시작된다

그가 어떤 과정을 통해 이러한 교훈을 얻게 되었는지, 인터뷰를 통해 에반의 이야기를 함께 따라가 볼까요? 오늘은 트위터 창업자 에반 윌리엄스의 Day 0, 20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 Editor’s Note:


이번 레터는 창업자의 이야기를 조금 더 생생하게 전하고자 인터뷰 형식으로 작성했습니다. 2024년 5월 방영된 팟캐스트 ‘How I Built This with Guy Raz’ 인터뷰를 기반으로 내용을 재구성했으며, 이해를 돕기 위해 일부 의역과 각색을 더했습니다.


 

1. 시골 농장에서 창업가로: 독립심과 도전의 시작

 

Q. 네브래스카의 농장에서 자라셨다고 들었습니다. 사실 그 배경이 테크 창업과는 크게 관련은 없어 보이는데요. 어떻게 창업가의 길을 걷게 되셨나요?

네, 저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 자랐어요. 부모님도 기술 분야와는 전혀 관련 없는 분들이셨죠. 근데 그곳에서 자란 건 저한테는 정말 행운이었다고 생각해요. 가치관이나 성격 형성 면에서 많은 걸 배웠고, 그게 창업가로서의 삶과 잘 맞아떨어졌어요.

많은 사람들은 시골 농부에서 테크 창업가로 간다는 게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저한테는 자연스러운 흐름이었어요. 독립심, 자립심 같은 건 농부의 삶에서 그대로 이어지거든요. 농부는 사실상 자영업자예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환경이었고, 실제로 꽤 혁신적이어야 했어요. 아버지가 늘 그렇게 살아오셨고, 저는 어릴 때부터 그걸 보고 자랐어요. 그래서 회사를 창업하는 게 저한테는 아주 당연한 일이었어요.

 

Q. 그런 배경 때문인지 어릴 때부터 스스로 뭔가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셨던 것 같아요. 결국 네브래스카 주립대에서도 1년 반 만에 자퇴하셨다고요.

맞아요. 저는 항상 “뭔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어요. “학위 따고 직장 가는 건 내 길이 아니야. 나는 뭔가를 만들 거야, 내가 세상에 무언가를 세울 거야.” 그런 생각뿐이었죠. 부끄럽지만, 우편 주문으로 부자가 되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아이디어 같은 것에도 빠져 있었어요. 드랍쉬핑* 같은 거였죠.

*드랍쉬핑: 판매자가 재고를 직접 보유하지 않고, 주문이 들어오면 공급업체에서 직접 고객에게 상품을 배송하는 온라인 비즈니스 모델

결국 학교를 자퇴하고, 내가 원하는 걸 찾으러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키웨스트로 이사해서 유명한 카피라이터 개리 핼버트 밑에서 일했어요. 당시 저는 네브래스카 시골 출신이었고 아무것도 몰랐어요. 완전히 무작정 찾아갔죠. 처음엔 그냥 “당신을 위해 글을 쓰고 싶다”고 했는데, 다행히 과제를 주더라고요. 그걸 해내면서 일할 기회를 얻었어요.

 

Q. 이후에는 네브래스카로 돌아가서 웹사이트 제작 사업을 하셨다고 들었어요.

네. 돌아가서 친구들과 함께 웹사이트 만드는 법을 배웠어요. 그때가 인터넷이 막 퍼지기 시작할 때였거든요. 몇몇 기업들 웹사이트를 만들어주면서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처음 느꼈어요. 결과적으로 사업은 잘 되진 않았지만, 그때 경험 덕분에 ‘이쪽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결국 더 큰 기회를 찾아 실리콘밸리로 가게 됐어요.

 

Q. 실리콘밸리에서 오라일리 미디어(O’Reilly Media)라는 회사에 입사하셨죠. 그때의 경험이 창업가로서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정말 중요한 경험이었어요. 열두 명 정도가 회의실에 모여 회의를 하는 걸 보면서 “아, 이게 회사라는 거구나” 싶었죠. 전에는 그냥 친구들이랑 둘러앉아 얘기하는 게 전부였거든요.

그때 깨달았어요. 창업 전에 회사에서 일해보는 것도 정말 유익하겠구나. 조직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배우는 건 정말 중요해요. 그래서 지금도 종종 이야기해요.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회사에서 일해보는 걸 정말 추천한다고요.

 

2017년 네브래스카 대학교 졸업식 연설 중인 에반 윌리엄스출처: https://medium.com/university-of-nebraska-lincoln/notable-nebraska-alumni-9136b0f6308d
2017년 네브래스카 대학교 졸업식 연설 중인 에반 윌리엄스
출처: https://medium.com/university-of-nebraska-lincoln/notable-nebraska-alumni-9136b0f6308d

📒 Editor’s Note:
에반 윌리엄스는 2017년 모교인 네브래스카 대학교 졸업식 연설에서, 작은 농장에서 자라 실리콘밸리로 향하게 된 자신의 여정을 돌아보며 세 가지 교훈을 전했다.
① 세상을 연결하는 큰 아이디어를 믿을 것, ②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호기심을 따라갈 것, ③ 사람들이 진짜 필요로 하는 문제를 풀 것.
그가 말한 기술 창업의 본질은 ‘사람들이 원하는 일을 더 쉽게 만드는 것’이라는 단순한 진리였다.

 

2. 첫 창업의 벽, 팀을 잃고 혼자가 되다

 

Q. 파이라 랩스(Pyra Labs)라는 회사를 창업하면서 본격적으로 창업가의 길을 걷기 시작하셨는데요. 그 시절 만들었던 블로거(Blogger)는 원래 메인 서비스가 아니었다고 들었어요.

네, 원래는 프로젝트 관리 툴을 개발하고 있었어요. 사업이 그리 순탄하지 않았고 자금도 부족했죠. 그러다 블로그 쪽으로 방향을 틀게 됐어요.

그때만 해도 개인 홈페이지에 글을 올릴 때마다 HTML을 직접 수정해야 해서 너무 번거로웠거든요. 그래서 ‘웹 인터페이스에서 글을 쉽게 올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간단한 기능을 만들었어요. “이걸 서비스로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 그게 바로 블로거였죠.

 

Q. 복잡한 툴이 아니라 단순한 아이디어였는데도 사용자들의 반응이 좋았다고요. 처음부터 그런 성공을 기대하셨나요?

전혀요. 오히려 너무 단순해서 재미없는 프로젝트라고 생각했어요. 우리가 만들던 다른 툴은 훨씬 복잡했거든요. 그땐 ‘단순함의 힘’을 잘 몰랐던 것 같아요. 그래서 바로 방향을 바꾼 건 아니었고요. 외부 일도 병행하면서 사이드 프로젝트로 조금씩 만들어 나갔어요.

 

Blogger 서비스 초기 화면출처: https://blogging.nitecruzr.net/2011/08/new-blogger-gui-2011-progress.htmlALT
Blogger 서비스 초기 화면
출처: https://blogging.nitecruzr.net/2011/08/new-blogger-gui-2011-progress.htmlALT

 

Q. 그런데 비즈니스 모델 없이 사용자 수만 빠르게 늘면서 결국 운영이 어려운 상황이 찾아왔다고 들었습니다. 그 시기를 어떻게 겪으셨나요?

정말 힘들었어요. 돈이 바닥났고, 투자 유치도 잘 안 됐어요. 서버 비용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죠. 어느 날 결국 팀원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어요. “다음 급여는 드릴 수 없습니다. 저는 남아서 계속 해보겠습니다. 혹시 돌아오고 싶으신 분은 언제든 오세요. 돈 벌면 그때 드릴게요.” 그게 아마 금요일이었는데, 월요일에 출근해보니 저 혼자였어요.

그래도 멈출 수는 없었어요. 운영비가 5만 달러에서 5천 달러로 줄긴 했지만 서버 비용은 계속 내야 했고요. 무엇보다 계속 만들고 싶었어요. 정말 외롭고 힘든 시기였지만, 동시에 해방된 느낌도 있었어요. 회사는 제 사회생활이기도 했는데, 그때는 친구들도 다 떠난 상태였고요. 누구와도 말하지 않고, 설명할 필요도 없고,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걸 만들자’는 생각뿐이었어요. 그 자유로움은 정말 즐거웠어요.

 

Q. 지금 돌아보면, 당시 팀 운영이나 리더십 측면에서 아쉬운 부분도 있었을까요?

정말 많았죠. 인간관계 자체가 서툴렀고, 갈등을 다루는 법은 전혀 몰랐어요. 사람이라는 요소를 회사 운영에서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하는 번거로운 일로 여겼고, 관계에 투자하는 건 귀찮게만 생각했어요. 조직에서 일해본 경험도 거의 없어서, 참고할 만한 모델조차 없었죠. 지금 돌아봐도 그 시절의 저는 리더로서 정말 형편없었던 것 같아요.

 

Q. 그렇게 어려운 상황에서도 결국 구글에서 인수 제안을 받으셨죠. 그 과정은 어땠나요?

블로깅은 닷컴 버블 붕괴 와중에도 계속 성장하고 있었어요. 9·11 사건 이후로 블로그가 뉴스와 정보 채널로 주목받기 시작했고, 사용자도 점점 늘었어요. 유료 서비스도 시도하면서 조금씩 수익이 나기 시작했죠. 그런 흐름 덕분에 구글 쪽에서 관심을 가지게 된 거예요. 그렇게 해서 블로거는 2003년에 구글에 인수됐어요. 그 뒤로 더 안정적인 환경에서 서비스를 성장시킬 수 있었죠.

 

📒 Editor’s Note:
그 시절 회사는 에반 윌리엄스에게 단순한 직장이 아니었다. 형도 함께 일했고, 그의 룸메이트는 당시 회사 직원과 연애 중이었다고. 결국 회사가 깨지면서 친구와 가족 같은 관계들까지 무너졌고, “다들 나한테 화가 나 있었다”고 그는 회고한다. 실패감과 죄책감 속에 누구와도 말하지 않던 시기였지만, 매일같이 사무실에 나가 혼자 코드를 고치며 스스로를 버텨냈다고 한다.

 

3. 트위터의 시작: 숫자보다 느낌이 중요할 때가 있다

 

Q. 구글을 떠난 뒤 다시 창업을 결심하고, 팟캐스트 플랫폼 오디오(Odeo)를 시작하셨는데요. 처음에 어떤 계획으로 시작하셨나요?

그때 막 팟캐스트가 주목받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그 흐름에 맞춰 팟캐스트 플랫폼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이었죠.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애플이 아이튠즈에 팟캐스트 기능을 추가하면서 저희가 설 자리를 잃게 됐어요.

그때 방향을 바꿔서 ‘팟캐스터를 위한 툴’을 만들어볼까 하고 시도했어요. 그런데 저는 팟캐스트를 만들어본 적이 없었어요. 듣는 건 좋아했지만요. 그러다 보니 어떤 툴이 필요한지, 어떤 흐름이 사용자에게 자연스러운지 감이 없었어요. 제품을 만들면서 절실히 깨달았어요. “당신이 사용자 조사를 정말 잘하지 않는 이상, 자신을 위한 제품을 만들어라.” 지금도 제가 항상 믿는 원칙이에요.

 

Q.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그 시점에서 어떤 결정을 하게 되셨나요?

사업이 지지부진했고, 팀도 많이 지쳐 있었어요. 저는 이사진들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저는 이 회사의 미래에 대해서 더 이상 확신이 없습니다. 차라리 남은 돈을 돌려드리고 정리하는 게 나을 수도 있어요.” 그랬더니 “우린 팟캐스트에 투자한 게 아니라, 당신에게 투자한 거예요.”라고 하더라고요. 정말 뜻밖이었어요.

 

Q. 사업 방향이 막히고 팀이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그런 와중에 트위터(Twitter)의 아이디어는 어떻게 나오게 된 건가요?

그때 회사의 새로운 방향을 찾기 위해 2주 동안 해커톤을 열었어요. 팀을 나눠서 각자 아이디어를 내게 했죠. 공동 창업자였던 개발자 잭 도시가 짧은 메시지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아이디어를 냈고, 저도 그게 정말 가능성이 있다고 느꼈어요. 그런데 처음부터 본격적인 프로젝트로 키운 건 아니었고, 초기에는 소수 인원만 남아서 사이드 프로젝트로 트위터를 개발했어요.

 

잭 도시가 2001년에 그린 ‘트위터’ 스케치. 당시 프로젝트명은 ‘Stat.us’였다.출처: https://www.firstversions.com/2015/07/twitter.html
잭 도시가 2001년에 그린 ‘트위터’ 스케치. 당시 프로젝트명은 ‘Stat.us’였다.
출처: https://www.firstversions.com/2015/07/twitter.html

📒 Editor’s Note:
당시 ‘Twitter’라는 이름은 공동 창업자인 노아 글래스가 후보 목록 중에서 고른 이름이었다. 노아는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릴 때 느껴지는 ‘트위치(twitch)’ 같은 감각에서 영감을 얻었고, 사전을 보다가 그 옆에 있던 단어가 ‘트위터’였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해커톤이 끝난 뒤에도 공식 명칭은 아니었고, 내부적으로는 ‘프렌드스토커(Friend Stalker)’라는 농담 섞인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고.

 

Q. 처음 트위터라는 아이디어를 접했을 때, 이렇게 성공할 거라고 예상하셨나요?

처음에는 숫자보다 느낌이 강했어요. 직감적으로 뭔가 다르다는 감이 있었죠. 하지만 당시 사람들은 트위터를 정말 바보 같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출시 직후 사용자 수는 고작 500명 정도였고, 그중 200명은 아는 사람들이었어요. 겉보기엔 가능성이 없어 보였죠.

그럼에도 그런 ‘느낌’을 받았던 이유는, 사용자들이 휴대폰으로 실시간으로 메시지를 주고받는 그 경험 때문이었어요. 그때 ‘리얼타임’이라는 말을 정말 많이 썼는데, 당시 인터넷은 실시간이 아니었거든요. 트위터는 메시지를 보내면 누군가의 주머니가 바로 진동하는 경험이었어요. 그게 정말 새롭고 즉각적이었죠.

기술 업계에서는 숫자와 데이터에 너무 집착하는 경향이 있지만, 가끔은 숫자로 설명되지 않는 강한 감각이 있어요. 나중에 정말 깨달았어요. “숫자보다 느낌이 중요할 때가 있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는 그 느낌을 더 믿었어야 했어요.

 

Q. 사이드 프로젝트로 출발한 트위터가 2007년 SXSW 이후부터 본격적인 성장 궤도에 올랐죠. 그때 어떤 전략을 세우셨나요?

SXSW*는 테크 커뮤니티가 많이 모이는 행사였어요. 저희는 행사장에 트위터 스크린을 설치했어요. 사람들이 현장에서 트윗을 올리고, 그걸 실시간으로 보여주자는 전략이었죠. 기자들과 블로거들이 흥미를 느끼고 바로 쓰기 시작했어요. 딱 맞는 순간, 딱 맞는 사람들에게 불꽃을 붙인 셈이었어요. 그 이후 사용자 수가 빠르게 늘기 시작했어요.

*South by Southwest(SXSW): 매년 텍사스 오스틴에서 열리는 글로벌 축제이자 컨퍼런스로, 음악, 영화, 미디어/IT 등의 분야를 다룬다. 음악인과 영화인, IT 개발자 등 다양한 산업의 전문가들이 모이는 교류의 장이기도 하다.

 

4. 가장 큰 실패,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힘

 

Q. 트위터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CEO로서 감당해야 할 무게도 커졌을 텐데요. 그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었나요?

정말 많았어요. 솔직히 저는 CEO로서 좋은 리더는 아니었어요. 제품과 전략은 자신 있었지만, 사람을 관리하고 회사를 운영하는 건 서툴렀죠. 결정도 자주 미뤘어요. 사람들이 반대할 것 같은 결정은 회피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특히 사람 관련된 문제는 더 그랬죠. 누군가를 실망시키거나 불편하게 만들까 봐 결정을 미루다 보니 더 큰 문제로 커지곤 했어요. 나중에야 깨달았어요. 리더십은 그런 결정을 회피하지 않고 책임지는 것이라는 걸요. 당시엔 그걸 잘 못했어요.

 

Q. CEO에서 물러나는 과정은 본인에게 어떤 경험이었나요?

완전히 충격이었어요. 전혀 예상 못했거든요. 창업자였고, 회사를 빠르게 성장시킨 성과도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어느 날 코치를 통해 해고 통보를 받았어요. 정말 믿을 수 없었고, 한동안 인생에서 가장 큰 실패처럼 느껴졌어요. 몇 년간 자신을 증명하려고 노력했는데, 그 정점에서 모든 걸 잃는 기분이었죠.

 

Q. 큰 실패를 겪었지만, 여전히 에너지와 추진력이 남아 있었던 것 같아요. 다시 처음 성공했던 블로깅 분야로 돌아가 미디엄을 시작하셨는데요. 어떤 생각으로 그 방향을 선택하게 된 건가요?

미디엄의 아이디어는 사실 트위터에 있을 때부터 있었어요. 짧지도, 너무 길지도 않은 글을 쓸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자는 생각이었죠. 무엇보다 ‘연결’과 ‘배포 시스템’을 중심에 두고 싶었어요. 블로거 때는 그런 네트워크가 없었거든요. 미디엄에서는 사람들이 쓴 글이 서로 연결되고 발견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싶었어요.

 

Q. 미디엄 이후에도 또 다른 시도를 계속하고 계시잖아요. 요즘은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신가요? 앞으로 인생의 다음 챕터는 어떻게 펼쳐질 것 같으세요?

미디엄에서 물러난 지도 이제 거의 2년이 되어가요. 지금은 오랜 친구인 토니 스터블바인이 운영하고 있고, 정말 잘하고 있어요. 최근엔 ‘모지(Mozi)’라는 소셜 앱 회사를 공동 창업했어요. 사람들 사이에 진짜 관계를 만들고, 실제 만남으로 이어지게 하는 앱이에요. 이번엔 제가 직접 경영을 하지는 않고 있어요.

요즘은 인생을 좀 더 창의적으로 살아가고 싶어요. 두 아이와 보내는 시간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고요. 예술 프로젝트나 자선 활동에도 관심이 많아요. 앞으로 뭘 할지는 아직 정해진 건 없어요. 음악일 수도 있고, 이벤트일 수도 있고요. 요즘은 그런 쪽을 탐색하는 중이에요.

 

모지(Mozi) 앱 화면. 에반 윌리엄스가 2024년 공동 창업한 소셜 서비스로, ‘사람 간의 실제 만남’을 지향한다.출처: https://tech.therundown.ai/p/twitter-co-founder-launches-mozi
모지(Mozi) 앱 화면. 에반 윌리엄스가 2024년 공동 창업한 소셜 서비스로, ‘사람 간의 실제 만남’을 지향한다.
출처: https://tech.therundown.ai/p/twitter-co-founder-launches-mozi

📒 Editor’s Note:
에반 윌리엄스는 미디엄 이후에도 새로운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모지(Mozi)라는 소셜 플랫폼을 공동 창업해, “소셜은 미디어가 아니라 사람 간의 관계여야 한다”는 방향성을 추구하고 있다. 현재는 비상임 회장으로 활동 중이며, 투자사 Obvious Ventures 파트너로도 활동하면서 사회적 가치를 지닌 기술 창업을 지원하고 있다.

 

Q. 마지막 질문입니다. 지금까지의 경력을 돌아볼 때, 지금 이 자리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부분이 본인의 노력과 끈기의 결과였고, 얼마나 많은 부분이 운이었다고 생각하세요?

둘 다 정말 컸어요. 성공한 사람이 운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면 그건 자기기만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운의 확률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있어요. 저는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첫 회사를 만들던 시절부터 잠도 안 자고 일했고, 지나치게 일해서 오히려 효율이 떨어질 정도였어요.

하지만 제가 하는 일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건 다 배웠고, 계속해서 도전했어요. 그건 제 성장 배경이나 성격 덕일 수도 있어요. 스스로에게 의지하고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마음가짐, 그게 결국 성과로 이어진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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