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만 활용했다면 분명 지금보다 상황이 나았을 겁니다
아래 글은 2025년 03월 12일에 발행된 뉴스레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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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은 다행입니다
홈플러스의 기업회생 절차 개시부터 법원의 승인, 공급업체의 납품 중단과 재개까지, 숨 가쁜 한 주가 지나갔습니다. 다행히 대부분의 업체들이 상품 공급을 정상화하면서, '티메프 사태'처럼 극단적인 결말은 피할 수 있었는데요. 더욱이 홈플런 행사의 영향도 있겠지만, 매출 역시 전주 대비 오히려 크게 증가하며 영업 활동도 정상적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홈플러스가 가진 사회적 의미가 큰 만큼, 이번 사태를 두고 다양한 분석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선은 MBK 파트너스의 경영 실패로 향하고 있는데요. 물론 최근 대형마트 업계 전체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만큼, 결과론적인 해석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홈플러스가 원래 가지고 있던 강점들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탓에 상황이 더 심각해졌다는 점입니다.
매장 체급, 물류, 그리고 데이터
한때 테스코의 해외 사업 중 가장 알짜배기라 평가받았던 홈플러스가 이렇게 몰락한 가장 큰 원인은, 역시나 이커머스로의 전환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점일 겁니다. 하지만 홈플러스가 MBK파트너스에 인수된 2015년만 하더라도, 홈플러스의 디지털 전환 수준은 경쟁사 대비 결코 뒤처지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2016년 기준, 홈플러스의 온라인 매출 비중은 5.7%로, 이마트(6.2%)와 큰 차이가 없었으니까요. 따라서 이때부터 좀 더 적극적으로 이커머스 대응을 했다면, 지금의 상황은 분명히 달라졌을 겁니다.
특히 홈플러스는 다른 대형마트들이 가지지 못한 강력한 무기 세 가지나 갖추고 있었습니다. 비록 고객들이 체감하기 어려운 뒷단의 요소들이긴 했지만요. 어쩌면 업계 1위인 이마트보다도, 아마존과의 경쟁 속에서도 입지를 지킨 월마트의 성공을 재현할 가능성이 가장 높았던 곳이 홈플러스였을지도 모릅니다.
① 더 우월했던 점포 체급
홈플러스는 경쟁사 대비 훨씬 넓은 매장 규모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2021년 기준, 홈플러스 점포의 평균 영업면적은 1,300평에 달했는데요. 이는 4~500평 수준의 경쟁사 대비 2배 이상 큰 규모였습니다. 특히 900평 이상의 대형 점포 수만 해도 홈플러스는 81개, 반면 경쟁사는 13~16개에 불과했죠.
이런 하드웨어 강점은 자연스럽게 몰링 전략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최근 대형마트들은 마트 영업 면적을 줄이고 신선식품 중심으로 개편하는 한편, 유휴 공간을 집객이 가능한 테넌트로 채우는 방향으로 리뉴얼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마트의 '더타운몰', '스타필드 마켓' 같은 공간이 이러한 전략의 결과물이죠.
다만, 이마트와 롯데마트는 대형 점포 수가 제한적이어서 확장에 한계가 있었던 반면, 홈플러스는 이를 빠르게 적용했다면 훨씬 더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을 겁니다. 실제로 홈플러스도 '미래형 점포 모델'인 '메가푸드마켓'을 도입해, 전체 점포 중 26.2%에 달하는 33개 점포에 확대 적용했지만요. 변화의 폭이 상대적으로 작았던 탓에, 일정 부분 성과는 거뒀지만 이마트나 롯데마트만큼 큰 반향을 일으키진 못했습니다.
② 가장 앞서 있던 물류 역량
홈플러스는 영국 테스코의 자회사였던 만큼, 가장 선진적인 물류 시스템을 도입한 곳이었습니다. 이를 상징하는 곳이 2003년 설립 당시 아시아 최대 규모였던 '목천 물류센터'였죠. 당시 국내 최초로 크로스 도킹 시스템*을 구현하는 등, 물류 효율화에서 앞서가던 기업이었습니다.
크로스 도킹: 창고로 상품을 입고시켜 보관하는 것이 아니라, 수령한 상품을 분류 후 바로 배송하는 방식

그런데 홈플러스는 2017년 말, 이 목천 물류센터를 한 부동산 투자사에 매각했는데요. 이후 이곳을 100% 임차해 사용한 곳이 바로 쿠팡이었습니다. 상당히 아이러니한 일이죠. 이미 쿠팡도 탐낼만한 강력한 물류 인프라와 축적된 경험을 보유하고 있었던 만큼, 홈플러스가 좀 더 적극적인 이커머스 전략을 펼쳤다면 어땠을까 싶긴 합니다.
③ 뛰어난 데이터 활용 역량
이커머스가 오프라인을 앞지른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데이터 활용 역량이었습니다. 고객 데이터를 기반으로 개인화된 추천과 맞춤형 프로모션을 진행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홈플러스는 이미 국내 진출 초기부터 개인화된 쿠폰을 발송하는 등 CRM 마케팅 역량이 뛰어난 기업으로 평가받았습니다. 이는 역시 테스코의 영향 덕분이었고요. 이러한 역량은 온라인 전환은 물론, 기존 오프라인 경쟁력 강화에도 유용하게 쓰일 수 있었지만, 결국 빛을 발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이 모든 강점을 극한으로 활용했다고 해서, 홈플러스가 이커머스 전환에 반드시 성공했을 거라고 단정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과거 홈플러스를 운영했던 테스코가 디지털 전환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며 점유율을 다시 끌어올리고 있다는 점을 보면, 더욱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는 것 같네요.
물론 반등은 쉽지 않겠지만요
어쩌면 홈플러스가 기존에 쌓아온 역량과 강점이 뛰어났기에, 여러 어려운 상황과 제약 속에서도 업계 2위 자리를 꿋꿋이 지켜왔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제는 그 자리마저 위태로운 상황에 처하고 만 거죠.
이번 위기를 무사히 넘긴다고 해서, 홈플러스의 상황이 극적으로 좋아지긴 어려울 겁니다. 온라인 식료품 시장은 쿠팡의 장악력이 이미 상당한 데다, 컬리 등 다른 플레이어들도 만만치 않으니까요. 더욱이 오프라인 역시 점포 수가 계속 줄고 있으며, 대규모 리뉴얼을 진행하기엔 자금 사정이 녹록지 않은 상태이기도 하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홈플러스가 이대로 사라지기엔 그간 쌓아온 역사와 남긴 족적이 너무 아쉽습니다. 2만여 명에 달하는 종업원의 생계가 달려 있을 뿐만 아니라, 홈플러스 점포들은 이미 지역 사회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해왔으니까요. 부디 이번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홈플러스가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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