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초역 부처의 말』이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동서양을 막론하고 불교 철학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터라 우연히 구매했는데, 알고 보니 아이돌 그룹 ‘아이브’의 멤버 장원영 님이 방송에서 이 책을 추천했다고 하더라고요.


책은 전반적으로 화, 비교, 초연함, 선한 실행, 인간관계, 행복, 자기이해, 몸, 자유, 자비, 깨달음, 죽음이라는 키워드로 구성돼 있습니다.
특히 9장 ‘자유로워진다’ 파트에는 <무작정 믿어서는 안 되는 열 가지>라는 경전 글귀가 소개돼 있는데요. 해당 구절을 읽으면서 인생사 전체를 아우를 뿐 아니라 특정한 대상에게도 와닿는 조언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글은 <증지부경전>에 수록돼 있는 석가모니의 말 중 책에서 인용한 위 글귀 중 일부를 (자기 길을 만들어가는) 창업가들의 시선에서 해석해보려 합니다.
2) ‘이곳에서는 옛날부터 이랬다’며 전통을 들먹인다고 해서 무작정 믿지는 마세요.
4) 성전이나 불경이나 책에 쓰여 있다고 해서 무작정 믿지는 마세요.
흔히 창업가에게 중요한 것은 ‘역발상’(컨트래리언)이라고 합니다. 남들이 그렇게 하는 것, 원래 하던 대로 하는 것, 대세를 따르는 것에서 한 걸음 빗겨나 다른 길을 모색하는 것이 (주류에 반해) 언더독으로 시작하는 창업가의 숙명이라고요.
실제로 스토리시티의 창업자인 박상욱 대표가 이오플래닛 아티클에 이렇게 적은 바 있습니다.
‘컨트래리언(역발상)의 힘’을 믿습니다. 미국 MBA 시절, 크게 성공한 비즈니스계의 거두들의 이야기를 접할 일이 많았습니다. 쉐이크쉑을 만든 대니 마이어, 블랙록의 래리 핑크, 나이키의 필 나이트, 업종은 달라도 그들에겐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인생의 어떤 시점에서 ‘남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보고,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는 선택을 했다’는 것이었죠.
인생에서 정말 값진 것들은,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의 끝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봤습니다. 에어비앤비는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에 시작됐고, 카카오도 2010년에 시작됐습니다. 보통 팬데믹 한가운데에서 여행 창업은 안 하겠지만, 그래서 더욱 기회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언젠가 다시 올 ‘좋은 날’을 준비하려면 지금부터 준비해야겠죠. 만약 그날까지 살아남을 수 있다면요.
(출처 : 10명 중 6명이 반드시 다시 찾는 서비스를 만들기까지)
3) 유행하고 있고, 평가가 좋다고 해서 무작정 믿지는 마세요.
6) 옳게 보이는 ‘ㅇㅇ이론’이나 ‘ㅇㅇ주의’에 의한 것이라 해도, 무작정 믿지는 마세요.
하지만 역발상의 힘을 잃고 흔들리는 창업가는 자칫 유행하는 트렌드의 급물살에 휩쓸려 버리곤 합니다. 한때 커머스나 플랫폼이 급부상해서, 콘텐츠가 뜨니까, 블록체인과 암호화폐가 대세가 돼서 이를 IR 장표에 얼른 추가하는 사람들을 왕왕 볼 수 있었죠. 유행이 정점을 찍을 때는 일종의 사조가 돼 ‘이걸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바보가 되는 것’이라는 FOMO(뒤처짐에 대한 조바심)마저 형성되곤 했습니다.
스타트업은 급성장해서 그 존재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는 ‘J커브’의 압박감. 하지만 역설적으로 우리가 익히 아는, 그리고 지금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기업들은 반드시 J커브 성장 곡선을 그리진 않았습니다. 설령 J커브를 그렸다 해도 그 타이밍이 창업 초기에 바로 찾아오지도 않았고요.
예를 들어 우리가 익숙하게 쓰는 서비스를 만든 회사들도 ‘유니콘 기업’으로 분류되기까지 다음과 같은 시간을 쌓았습니다. Fleximize에 따르면 여행 플랫폼 스카이스캐너는 15년이 걸렸다고 하네요.
- 스카이스캐너 : 15년 (2001년 설립)
- 아틀라시안 : 12년 (2002년 설립)
- 도큐사인 : 11년 (2003년 설립)
- 스페이스X : 10년 (2002년 설립)
- 쇼피파이 : 9년 (2004년 설립)
- 핏빗 : 8년 2개월 (2007년 설립)
- 징둥 : 8년 (2012년 설립)
- 글래스도어 : 8년 (2007년 설립)
- 깃허브 : 7년 6개월 (2008년 설립)
그러니 지금 당장 성공을 가져다 줄 것 같은 무언가, 왠지 나 혼자 놓치고 있는 것 같은 유행에 쉬이 휩쓸리고 있지 않나 스스로 점검해봐야 합니다. 혹시 주변의 평가가 좋다고 해서 무언가를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덥썩 잡아 믿어버리진 않았나요? 석가모니는 그런 이들에게 ‘무작정 믿지 않아야 자유로워진다’고 조언하고 있습니다. 창업의 여정에서도 이는 동일하게 적용되리라 봅니다.
(출처 : 'J커브 성장 곡선'에 대해 창업가/스타트업이 오해하는 것)
8) 당신과 의견이 같다고 해서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며 쉽게 믿지 마세요.
10) 상대가 자신의 스승이라 해도 맹목적으로 믿지는 마세요.
유행과 사조에 대해 석가모니가 했던 충고와 비슷한 맥락에서 석가모니는 나와 의견이 일치하는 것, 내가 따르는 스승조차도 무조건 믿지는 말라고 조언합니다. “원하고 또 원하는” 인간의 욕망이 자칫 나의 생각을 경도시켜서 종국에는 잘못된 믿음에 빠지는 우를 범할지 모르니까요. 그랬다간 잘못된 믿음에 빠져 스스로 괴로움을 자초하는 업을 쌓을 수 있습니다.
창업가는 참 외로운 존재입니다. 주변에서 이러쿵저러쿵 의견은 많은 것 같은데 막상 중요하고 어려운 결정은 결국 오롯이 혼자 짊어져야 합니다. 그렇다 보니 때로는 마음이 약져서 (혹은 반대로 너무 강하고 강팍해져서) 내가 듣고 싶은 말을 찾아다니게 됩니다. 나약한 나 자신, 흔들리는 내 심지를 대신 잡아줄 대상을 외부에서 찾는 것이지요.
물론 선배 창업가, 창업 멘토는 창업가의 외로운 여정에 든든한 지지 기반이 돼 줍니다. 이들 없이 시행착오를 반복하기보다는 이들의 지혜와 조언을 빌려 시행착오를 줄이는 것이 좋습니다. 창업 생태계의 네트워크를 통해 창업가는 힘차게 살아남아 성장의 계기를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변으로부터 도움을 얻는 것과 그들에 기대어 어려운 결정을 피하려는 것 사이에 분명한 분별이 필요합니다. 석가모니는 인간이 자유로워지기 위해 ‘의존하고자 하는 욕망’ 자체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그렇기에 무언가 섣불리 믿지 말라는 제언을 한 것인데요. 창업가 또한 혹시 내가 중요하고도 어려운 결정을 외면하기 위해 남의 말을 좇고 있지 않나 스스로 회고해보는 시간을 가져도 좋을 듯합니다.
(참고 : 스타트업 대표의 정신 건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