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제로인사이트
위대한 창업가들은 어떻게 처음 비즈니스를 시작했을까요? 창업가의 인터뷰를 통해 이들의 Day 0로 돌아가, “처음”에 어떤 시행착오를 거쳐 고객에게 사랑받는 제품을 만들 수 있었는지를 배웁니다.
화장품 전문 기업이 아니더라도 화장품 브랜드를 론칭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죠. 카일리 제너의 ‘카일리코스메틱’과 탑스타 리한나의 ‘펜티 뷰티’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한국에서도 인플루언서 이유빈 씨가 본인의 브랜드 ‘티르티르’를 1400억에 매각하기도 했습니다.
오늘 만나볼 주인공은 1999년에 자신만의 화장품 브랜드를 론칭했습니다. 뷰티 브랜드의 개척자라고 봐도 무방한데요, 더 놀라운 점은 유명인사도 아니었던 데다, 그때까지만 해도 생소하던 친환경 브랜드를 표방했다는 것이죠.
박사학위를 포기하고 원룸에서 사업을 시작했고, 911 테러로 남편을 잃었지만 슬픔을 딛고 일어선 오늘의 주인공, 타르트 코스메틱 (Tarte Cosmetics)의 창업자 모린켈리(Maureen Kelly)의 Day 0, 1999년으로 돌아갑니다.
오늘의 인사이트 요약
1. 기침약으로 화장품을 만들던 아이, 결국 화장품 회사를 만들다.
2. 아무도 모르던 브랜드가 백화점에 입점할 수 있었던 비결
3. 갑작스런 비극으로 무너져도 직원과 회사를 위해 일어서다
4. 금융위기에도 굳건하던 기업. 공장이 멈추면 소용없다.
1. 기침약으로 화장품을 만들던 아이, 결국 화장품 회사를 만들다.
그동안 데이제로인사이트의 창업자들은 좋아하던 것으로 창업한 케이스가 많았죠. 모린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릴 때부터 화장품을 정말 좋아했다고 해요. 많은 아이들이 엄마 화장품을 따라 써보기도 하지만, 모린은 그보다 더 나아가 기침 시럽약이나 분필로 색조 제품을 만들기도 하고, 여동생들에게 립스틱을 발라주기도 했어요. 어머니에게 달걀흰자로 마스크팩을 만드는 방법도 배웠죠.
어머니는 마스크팩을 만드는 법뿐만 아니라, 삶의 지혜를 많이 알려주셨습니다. 모린은 딸 셋, 아들 둘의 5남매 가족이었는데요, 어머니는 남자와 여자가 서로 다르지 않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가르치셨죠. 걸 파워(girl power)에 대해서도 강조했다고 합니다. 이는 모린에게 큰 힘이 되었죠.
모린은 화장품을 좋아했지만 직업으로 삼을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소비자 심리학을 전공하며 박사과정을 밟게 되었고, 그때쯤 투자 은행가인 마크를 만나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립니다. 그렇게 상담사가 되어 커리어를 이어나가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모린은 상담사가 체질에 맞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상담을 하기 싫어했고, 상담을 할 때 다른 생각을 하는 지경에 이르죠. 그만두고 싶지만, 너무 멀리 와버린 듯했죠. 이미 박사과정을 밟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마크는 모린이 늘 사업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두려워서 시작하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었죠. 마크는 그런 모린을 항상 지지해 주었습니다. 이런 마크 덕에, 막상 무엇을 해야 할지 정확히 몰랐던 모린도 그동안 하고 싶었던 화장품 회사를 시작해 보기로 해요.
사실 그녀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화장품 회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립글로스를 손수 만들어 친구들에게 나눠주기도 하고, 학과 수업을 들을 때는 아이섀도 패키지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궁금해서 패키지를 분해할 정도였으니까요. 항상 그런 것들에 관심이 많았던 거죠.
막상 화장품 회사를 시작하기로 결심했지만, 아는 것이 아예 없었습니다. 사업계획서는 커녕, 엑셀도 할 줄 몰랐죠. 하지만 어떤 걸 만들어야 할 지 구상한 비전보드는 있었습니다. 모린은 ‘좋은 성분으로 구성된, 동물 실험 없는 비건 화장품’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농장에서 자라며 토끼나 개와 어울려 자란 터라 동물실험은 고려대상이 아니었고, 발음도 어려운 합성 재료들만 들어간 기성 화장품에 실망했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화장품을 어떻게든 만들고 싶었기 때문에 화장품을 만들어주는 업체에 전화를 돌립니다. 하지만 모린이 기존의 업계 사람이 아니었던터라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죠. 모린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무작정 업체를 찾아가 기다렸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모린 켈리입니다. 책임 연구원분께 메세지를 남겼는데, 답변을 못 받았어요. 근처에 업무 차 왔다가 들렸습니다.” 라고 허세와 농담을 섞으면서요. 대부분은 그래도 만나주지 않았지만 다행히 몇몇 업체는 만날 수 있었다고 해요.
모린의 비전을 설명했을 때, 연구원들은 코웃음치기 바빴습니다. “그게 고객들이 진정 원하는 것이었다면 큰 회사들이 진작 그런 제품을 만들었겠죠.” 라고 말이죠. 그리고 당시, 그러니까 1999년엔 대부분 고객들이 동물실험에 대해 신경쓰지 않고 있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한 연구원이 “당신 의견에는 동의하진 않지만, 우리 회사는 일년에 한 번 정도는 자선 단체처럼 도와드리고 있어요. 저희가 만들어드리죠.”라며 응답했습니다. 모린의 사정을 알고 비용을 비싸게 받지는 않았지만, 현금으로는 부족해서 신용카드로 수만달러를 결제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첫 번째 제품,치크 스테인(Cheek Stain: 볼에 틴트처럼 발라 문지르는 블러셔 제품)이 탄생합니다. 하지만 아직 판매를 하지 못해 원룸 아파트 안에 4~50만 달러 상당의 제품이 가득 쌓이게 됩니다. 하지만 그 때 모린이 든 생각은 ‘우와, 난 이제 제대로 된 회사가 있구나’ 였다고 해요.
(출처: makeupsens.com)
📒Editor’s Note: 타르트는 아일랜드와 영국에서 외설적인 은어로도 사용된다고 한다. 모린의 어머니는 아일랜드 출신인데, 타르트를 검색하다 비명을 지르셨다고. 그래서인지 타르트코스메틱은 tart에 ‘e’가 붙는다.
2. 아무도 모르던 브랜드가 백화점에 입점할 수 있었던 비결
타르트는 처음에는 정말 아무도 모르는 브랜드였습니다. 하지만 유명 잡지에 소개되고, 뉴욕 고급 백화점인 벤델에 입점하며 큰 반응을 얻게 됩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비결은 그녀의 절박함에 있었습니다.
이제 모린은 아파트에 가득 쌓인 제품들을 팔아야 했는데요, 요즘 같으면 온라인 쇼핑몰 같은 데서 시작할 수 있었겠지만 당시에는 쉽지 않았죠. 그래서 이번에도 무작정 전화를 돌립니다.
“저는 타르트라는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는데, 성능도 좋은데 천연재료로만 만들어져 있어요. 지금까지 경험 못해본 제품이에요. 연락 주세요.”
하지만 돌아오는 전화는 한 통도 없었습니다. 며칠 후에 다시 걸기도 했죠. 이 때 깨달은 것은, MD들과 바이어는 절대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고 해요.
모린은 점점 불안하고 절박해집니다. 이미 신용카드 빚이 수만 달러에, 집에는 제품이 잔뜩이었으니까요. 패닉에 빠져 시작도 전에 폐업해야 하나 생각하기도 했죠. 마지막으로 헨리 벤델(Henri Bendel: 맨해튼의 고급 백화점. 2019년, 개점 123년 만에 문을 닫았다.) 담당자에게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내일 버그도프 굿맨(Bergdorf Goodman: 100년 이상의 전통을 지닌 뉴욕을 상징하는 명품 백화점)과 계약할 예정이에요.”라는 말과 함께요. 팩트를 따지면 거짓말이긴 했습니다.
그런데 그 전략이 통했는지, 벤델의 담당자가 다음 주에 와서 15분 정도 물건을 보여줄 수 있겠냐고 묻습니다. 모린은 실제로 보여줄 수만 있다면, 승산이 있겠다 싶었죠. 실제로 제품을 보여주었더니 담당자는 다음 주 잡지에디터들이 오는 조찬 모임에 초대합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좋은 반응을 이끌어 내면, 백화점에 자리를 마련해 주겠다는 제안을 합니다.
그 모임에는 ‘코스모폴리탄,’ ‘엘르’, ‘얼루어’ 같은 거물급 잡지 에디터들이 함께하는 자리였죠. 그리고 조찬자리는 성공적이었습니다. 보그의 에디터, 그리고 엘르의 에디터가 제품 촬영을 하고 싶다고 전한 겁니다.
잡지에 실리자마자, 제품은 대박을 칩니다. 그 덕에 벤델 백화점에 카운터를 얻을 수 있었죠. 하지만 벤델에 계속 입점해있으려면, 매달 얼마 이상의 매출을 계속 내야 했습니다. 그래서 형제 자매들을 동원하죠. 5번가에서 “무료 마티니 한 잔과 메이크업을 제공하겠다”며 손님들에게 어필합니다. 퇴근 중이던 직장인들은 공짜로 마티니와 메이크업에 혹해 가게를 찾았다고 해요.
그와 동시에 언론에서도 계속 주목을 받습니다. 자금이 부족했기 때문에 홍보대행사나 다른 서비스를 사용할 수 없어 직접 야구 모자를 쓰고 언론사의 뒷문으로 다니며 홍보 자료를 돌렸습니다. 제발 가게 손님들과 마주치지 않길 빌면서요. 그러다 타르트의 CEO로 나서야 할 때는 정문으로 다니는 나름의 이중생활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홍보와 입점제의에 응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세포라나 QVC(홈쇼핑 업체)에서도 입점제의가 들어오기 시작했지만, 아직 아파트에서 사업을 하던 처라 거절했습니다. 그 물량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고, 무리하게 따라가려다 한 번 펑크가 나면 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급격한 성장 보다는 느려도 탄탄한 성장을 하고 싶었죠.
(출처:출처 : https://time.graphics/event/1058083)
📒Editor’s Note: 조찬모임에 갔을때, 모린은 급하게 정장을 구입했다고 한다. 이 일만을 위해 정장을 사는게 잘못된 일이라 생각해 태그도 떼지 않고 입었다고.
3. 갑작스런 비극으로 무너져도 직원과 회사를 위해 일어서다
모린이 바쁜 나날을 보내던 2001년 9월 11일, 비행기 테러로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집니다. 그리고 모린의 남편, 마크가 그 안에 있었죠. 마크에게서 “무슨 일인진 모르겠지만 괜찮아. 나는 자리로 다시 돌아갈게. 사랑해”라고 안심시키는 통화가 왔었지만, 결국 그것이 마지막 통화가 되었습니다.
모린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습니다. 마크와 함께 일하던 동료들은 피를 흘리며 집으로 찾아왔죠. 마크도 곧 올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끝내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도시는 차츰 일상으로 돌아가는 듯했지만, 모린의 상태는 쉽게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죠. 가족과 친구들은 모린이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밤낮으로 함께 있어주었죠. 그리곤 “마크는 네가 이 일을 포기하길 원치 않을 거야. 이 일을 하도록 지지해 준 사람이잖아.”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 말이 큰 힘이 되어, 모린은 조금씩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직원들도 밤에 함께 산책하여 슬픔이 가시도록 도와주었다고 해요.
이듬해, 타르트는 아파트에서 사무실로 이전합니다. 그리고 세포라에서 10명이나 되는 직원들과 함께 타르트에 방문합니다. 이 브랜드가 너무 좋고 대단하다며, 세포라의 모든 매장에 입점시키고 싶다고요. 하지만 타르트는 모든 물량을 감당할 수 없었죠. 직원은 아직 4명뿐이었습니다. 모린은 1인 다역이었고요. 전체매장에서 15개 매장으로 줄이는 극적인 딜을 끝내고, 드디어 세포라에 입점하게 됩니다.
2005년, 인지도를 올리기는 했지만, 아직 마케팅이 부족했습니다. 하지만 타르트에게는 2004년부터 활용하던 페이스북이 있었죠. 일찍이 인플루언서와 협업을 하게 됩니다.
가장 유명한 케이스는 오프라 윈프리입니다. 사실 오프라 윈프리에게 직접 전달한 것은 아니고, 그녀의 절친인 게일에게 립글로스를 전달한 것이었는데요, 그 제품이 오프라에게 닿아 ‘오프라의 좋아하는 것들’ 리스트에 립글로스를 소개합니다. 마치 달에 간 것과 같은 기분을 느꼈다고 해요. 당시 오프라의 영향력은 정말 엄청났기 때문이죠.
이에 더해 QVC(미국의 유명 홈쇼핑 채널)과 계약을 체결합니다. 타르르의 제품들은 QVC에서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죠. 총 1억 1백만명이 시청했고, 연말엔 분당 23000달러의 매출이 발생할 정도 였습니다. 모린은 QVC를 인포머셜*로서도 잘 활용했습니다.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고객들이 오프라인에서 써보고 구매할 수 있도록 말이죠.
*인포머셜: 정보(information)+커머셜(commercial=TV광고) 둘을 합쳐 새로 만든 말로서 ‘정보를 많이 담은 광고’ ‘제품 정보 충실하게 제공하는 TV광고’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tSNqVadg_EE)
📒Editor’s Note: 모린은 홈쇼핑 같은 채널은 고객이 절대 처음부터 끝까지 보지 않는다며, 담당자에게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기억하세요, 당신의 8분 전체를 보는 유일한 사람은 당신의 엄마랑 우리뿐이에요.”
4. 금융위기에도 굳건하던 기업. 공장이 멈추면 소용없다.
2007년 들어서 타르트는 1,50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고, 2008년 금융 위기를 맞아 뷰티시장이 난항을 겪는 와중에도 성장을 유지합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위기가 찾아옵니다.
2009년 당시에도 타르트는 처음 개발을 해줬던 연구소와 거래를 하고 있었는데요, 무려 전체의 60%를 담당하고 있었죠. 외부 투자 없이 현금흐름만으로 확장해 나가던 타르트는 울타(Ulta. 세포라와 경쟁하는 화장품 소매업체)에도 상품을 출시하기 위해 외부투자를 유치하고 있었습니다. 재고도 많이 필요했고, 현장을 살펴볼 직원도 필요했죠. 모린이 투자를 위한 서류를 작성하고 있던 때, 한 소식을 듣습니다.
‘연구소에서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은데, 직접 와서 확인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모린은 바로 차를 몰고 뉴저지의 연구소로 향합니다. “다 잘 되고 있죠?”라고 물었더니 돌아온 말은 "정말 안타까운 소식이 있습니다. 모회사에서 폐업을 결정했어요 “ 였어요. 가끔 완성도가 떨어져서 확인했던 일은 있었지만, 사업을 접을 정도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전체 공급량의 60%를 맡길 정도였으니까요.
모린은 그 길로 당장 회사직원과 가족들을 총동원해, 18톤 트레일러를 빌려 최대한 많은 제품을 챙겨 나왔습니다. 은행이 연구소 문을 닫아버리기 전에요.
그 시절 모린은 거의 파산할 뻔했다고 합니다. 모린이 받은 은행 대출은 모두 개인 보증이었고, 심지어 살고 있던 집도 걸려있었죠. 만약 소매업체에서 돈을 제 때 주지 않거나, 공급업체들이 물건을 제대로 공급하지 않았다면 정말 파산 직전까지 갔을 거라 말합니다.
수익이 좋았어도 미리 지출하고 그만큼 메꾸는 일의 반복이었죠. 이런 상황에서도 투자를 약속했던 펀드에서는 투자를 철회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우린 당신을 믿습니다. 저희 사람에게 투자하거든요. 위기를 이겨내실 거라 믿습니다.”라고 말했죠. 그 이후,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타르트는 재기에 성공합니다.
2014년에는 고세(KOSÉ)라는 일본 화장품 회사가 타르트에게 인수를 제안합니다. 성공적으로 엑싯하면 쉬고싶을만도 한데, 모린은 계속 일하고 싶어했습니다. 고세는 이런 모린을 충분히 고려해주었죠. 약 94%의 지분을 인수했지만, 남은 모린의 지분에 비해 놀라울 정도로 큰 통제권을 주었습니다. 모린이 타르트의 CEO로서 계속 일할 수 있게 해주었어요.
덕분에 모린은 CEO 역할은 유지한 채, 약 1억 3500만 달러에 매각합니다. 현재까지도 CEO로 타르트를 이끌고 있죠. 타르트는 여전히 광고를 하지 않지만, '타르틀렛(Tartelettes: 프랑스어로 작은 타르트)'라고 부르는 충성도가 높은 고객층의 지지로 사업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출처: https://tartecosmetics.com)
💬 “내가 할 수 없는 일에 강한 사람들로 주변을 둘러싸면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 모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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