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비주류VC의 이상한 뉴스레터]에서 발행되었습니다.
이 뉴스레터를 통해 약간은 솔직한 VC와 스타트업 세계를 소개해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비주류VC (Non-mainstream VC / NMSVC) 입니다.
오늘은 여섯 번째 이야기에요.
VC를 하면서 겪은 속 터지는 얘기들을 풀어놓고 있습니다.
일반인들이 알기 어려운 투자 업계와 스타트업 업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써보려고 합니다.
보시는 분이 불편하시거나 본인이 등판할 일 없으시도록 사실관계를 각색하거나 변경한 부분들이 있으니 양해를 바랍니다.
시작합니다!
건강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다들 잘 아실거에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제가 최근에 부친상을 당했어요.
아버지가 평소에 폐가 좋지 않으셨었는데 입원 하시고 일주일만에 황망히 돌아가셨어요.
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 것과 같다고 하는데 눈 앞에서 지켜보니 그게 무슨 이야기인지 잘 알 것 같았어요.
스타트업 대표님들의 건강상태는 투자자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사실 투자자 입장에서는 대표님들의 건강상태를 일일히 확인하는 건 불가능해요.
투자 당시에는 건강했는데 투자 후 건강이 안 좋아질 수도 있는 것이잖아요?
이미 수십년 운영되어 온 회사나 대기업들은 시스템화가 되어 있어서 핵심 계열사의 대표들이 아프거나 돌아가신다고 해도 충분히 시스템상의 커버가 될 거에요.
하지만 대표에게 많은 부분을 의존하는 스타트업의 경우 대표님의 건강이 악화되거나 심각해지면 회사 자체가 휘청이게 되는데, 그럴 경우 투자자들은 비상이 걸리게 되요.
이 부분은 정말 정량적으로나 정성적으로나 대응이 불가능 한 영역이다 보니 출자자들도 잠깐은 양해를 해주지만 이게 길어지먼 VC들의 고심은 커질 수 밖에 없어요.
오늘은 이 대표이사의 건강에 대해서 써보려고 해요.
제가 2016년 쯤에 투자한 회사가 하나 있어요.
회사는 대기업으로부터 용역을 받아서 일을 대시 해주는 IT용역회사였고 투자할 당시부터 매출 규모는 어느 정도 나오는 상황이었어요.
이 회사는 전통산업 중 하나인 SI(System Intergration)을 주로 하는 회사였고 대기업 계열이거나 관계사가 아닌 상황이어서 매년 수주를 따내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는 회사였어요.
저에게 찾아왔을 때는 이런 사이클로는 성장이 어렵다고 판단해서 새롭게 제조업으로 피벗을 시도하려는 참이었어요.
솔직히 리스크가 꽤 있는 투자였지만 대표이사의 경력과 회사의 업력, 그리고 인력들의 전문성 등에 착안해서 투자를 결정했던 기억이 나요.
솔직히 피벗이라는게 쉽게 되지는 않거든요.
IT업을 하다가 갑자기 제조업으로 돌아선다는 건 어찌보면 도박에 가까운 일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의 장점들이 단점들을 상쇄시킨다고 판단되어서 당시 강하게 밀어붙여서 투자 했던 기억이 나요.
첫인상
처음 만난 대표이사님은 전형적인 "공돌이" 였어요.
그다지 사람을 상대하거나 무엇을 Fancy하게 설명하는데는 영 재주가 없어 보이셨어요.
IR도 정말 딱딱하게 진행되었던 기억이 나는데 솔직히 투자자 입장에서는 기술적 설명이 그렇게 와닿는 경우가 별로 없어요.
기술자 입장에서는 "우리는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고, 요것도 좋아요!" 라고 하고 싶을 거에요.
그런데 투자자는 그 와중에서도 이 회사만의 완벽한 차별점 내지는 경쟁사가 흉내낼 수 없는 회사만의 "기술적 해자"를 한 문장으로 찾아내고 싶어해요.
결론적으로 이 회사의 "기술적 해자"는 "발열을 잡는" 거였어요.
PCB기판 위에 적절하게 부품들을 배치하고 원활하게 발열이 되도록 조정하는 기술이 매우 뛰어났던 거에요. 이 회사가 제조하고자 하는 제품이 원래는 매우 큰 것이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작아지는 추세에 있었어요. 이제는 거의 명함지갑만 한 크기까지 줄어들어야 차별성이 생길 정도로 집적도가 높은 제품이 되었는데 그 부분에서의 경쟁력은 "발열"을 잡는 거였죠. 실제로 이 회사의 제품들은 글로벌 기업들에 납품이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대부분의 경쟁사들보다도 훨씬 발열율이 적고 효율적이었던 거에요. 가격 경쟁력도 물론 조금은 있었지만 압도적으로 싸거나 하진 않았으니 경쟁력이 있다고 볼 수 있는거죠.
투자 후에는 말 그대로 날개를 달았어요. 매출액이 매년 거의 2배씩 성장했어요. 그리고 기술자가 많은 회사라서 필연적으로 고비용 구조를 유지할 수 밖에 없었지만 영업이익이 발생하기까지 했으니 VC들 입장에서는 신이 날 수 밖에 없었어요. 정말 이거다 싶었죠.
(실적 고성장에 신난 VC들.JPG)
Rocket을 쏘다!
투자 당시에는 200억 수준이었던 매출액이 2021년에는 1천억원을 넘더니 영업이익도 20억을 넘게 만들어 냈으니 이대로 간다면 코스닥 상장도 꿈은 아니었어요. 영업이익률과 당기순이익률이 좀 낮다는 단점이 있지만 이 정도는 대부분의 제조사들이 가져가는 비율이라서 회사 매출액의 성장과 고객사들의 네임밸류와 질(글로벌 기업들) 만으로 IPO가능성이 꽤 높아보였어요. 주관사도 상장 가능성에 대해서 크게 문제삼지 않을 정도였으니 굉장히 좋은 흐름이었어요.
그런데 참...
좋은일이 있으면 왜 꼭 나쁜일이 생길까요...
2023년 초에 갑자기 안좋은 소식이 전해졌어요. 예상들 하셨겠지만 대표이사의 건강 악화 소식이었어요. 단순히 몸이 안좋다는 수준이 아니고 "암"에 걸리셨다는 소식이었어요.
제가 지금도 개인적으로 흑역사로 기억될 만한 짓을 이 때 해버렸어요.
CFO가 전화가 와서 담담하게 이 소식을 전했는데 통화를 하다보니 대표이사의 "암"은 그 전년도인 2022년 8월쯤에 발견이 되었다는 거에요. 사무실에서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던 기억이 나요. "아니 2022년 8월에 발견된걸 왜 2023년 초에 연락을 주는것이냐. 이거 계약서에 위반되는 사항 아니냐..."
뭐 이 외에도 여러가지 얘길 했던 것 같은데 CFO는 황망히 전화를 끊었어요.
끊고나서 생각해보니까 아차 싶었어요. 대표님 건강은 괜찮으신지, 경과는 어떠신지를 전혀 안 물어봤던 거에요.
(자신의 인간성 말살 된 듯한 행동을 뒤늦게 깨닫고 땀흘리는 비주류VC.JPG)
별 문제 없이 IPO가 될 수 있다고 믿었던 저에게 대표이사의 건강 상태는 관심사도 아니었던 것이지요. 지금와서도 정말 후회되는 행동이었어요.
VC들의 현자타임
긴급하게 주주총회가 소집되었고 저를 포함한 수많은 VC들이 회사에 몰려들었어요. 솔직히 그들의 행동도 저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대표이사의 건강 상태보다는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훨씬 컸던 것이지요. 일반적으로 IPO의 최종 승인을 내는 KRX(한국거래소)는 최대주주이자 대표이사의 건강 상태가 불치병이거나 심각하다면 절대로 승인을 내지 않아요. 일반 투자자들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보호장치인 대표이사의 건강상태가 치료 가능할지 안될지 모르는 "암"이라는 점에서 IPO는 눈 앞에서 멀어졌어요.
그 날 VC들의 표정은 매우 좋지 않았고, 이제 회사로 각자 돌아가서 이 사태를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난감해 해야하는 상황이 왔어요.
(회사에 돌아가서 뭐라고 해야할지 난감해 하는 VC들.JPG)
이 시기를 계기로 회사의 매출액은 곤두박질 치기 시작해요. 2021년 정점을 찍었던 매출액은 정확히 반토막이 나서 500억원대가 되었고, 순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영업손실이 거의 150억 정도 발생해요. 말 그대로 2년만에 회사의 상태가 IPO를 앞둔 유망기업에서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회사로 바뀐 거지요. VC들의 고심은 깊어만 갔어요. 그 사이 대표이사의 아들님이 입사해서 KRX에는 회사가 정상화 되면 아들이 회사를 이을 것이니 문제 없다고 해명했지만, 이제는 실적 정상화가 정말 될지 알 수 없는 우울한 상황이 된 거에요.
엎친데 겹친 격으로 초기에 회사가 가지고 있던 "기술적 해자"를 중국 기업들이 상당부분 따라붙어서 이제는 가격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버렸고, 이 회사를 믿고 계속 주문해 주던 회사들도 하나 둘 가격이 저렴한 중국 기업들을 선택하기 시작했어요.
이 때 주주총회를 정말 많이 했던 것으로 기억해요. 처음에는 거의 모든 기관 투자자들이 모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주주총회에 참여하는 VC들 숫자가 눈에 띄게 줄어들어 갔어요. 그들 입장에서는 답 없는 회사에 와 있느니 잘 되는 회사에 가는게 나은 거였죠. 마지막 주주총회에는 2~3개 기관만 자리를 지켰어요. 그 중에 저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제 어떻게 해야할지 판단이 불가능한 상황까지 갔어요. 나름 저의 기대주였고 좋은 성과가 기대되던 포트폴리오라서 개인적으로 큰 애착을 가졌던 것 같아요.
현재의 회사는 새로운 CFO를 영입해서 추가 증자를 실시했고, 유럽 최대 규모의 기업에 제품을 신규 납품하는 등 반등을 준비하고 있어요. 실적도 조금씩 개선되고 있고 대표이사의 "암"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어요. 정말 기적적으로 처방한 치료제가 잘 들어서 대표이사의 상태도 굉장히 호전되었고 이제는 가벼운 운동까지 할 정도로 많이 나아졌다고 들었어요. 기존에 가지고 있던 거래처들과의 관계가 살아있고, "발열을 잡는"기술을 활용한 신사업 진출도 시작한 상황이어서 저는 개인적으로 이 회사의 미래가 밝다고 믿고 있어요.
정말 어려운 상황을 거쳤지만 살아남았고 남은 사람들이 다시 회사를 일으키기 위해서 노력 중이에요. 저도 이번 기회에 작은 금액이지만 추가투자를 검토 중에 있는데 좋은 결실을 맺었으면 해요.
이 에피소드에서 배운 점은 다음과 같아요.
1. 회사의 대표이사는 절대적인 존재에요. 특히나 스타트업의 경우에는 대표이사가 거의 전부라고 봐도 틀린 말이 아니라고 봐요. 이번 케이스만 봐도 대표이사의 건강이 안 좋아졌더니 회사의 상황이 급격히 안 좋아지는 모습을 보였어요.
2. 투자 시 대표이사의 건강 체크가 필수 요소가 되어야 하는게 아닌가 싶어요. 당장의 상황은 확인이 어렵지만 과거의 병력 정도는 확인이 가능하니까 새로운 투자 검토 조건으로 넣어야 할 것 같아요.
3. 이번 에피소드는 속이 터진다고 표현하기는 좀 그래요. 건강상황 예측은 신의 영역이니까요. 하지만 투자 전에 대표이사의 병적 이력이나 건강상황이 걱정된다면 투자 보류를 선택할 수도 있게 되었어요.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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