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노력하다가 갑자기 나태해지고, 잘 참다가 조급해지고, 희망에 부풀었다가 절망에 빠지는 일을 또 다시 반복하고 있다. 그래도 계속해서 노력하면 수채화를 잘 이해할 수 있겠지. 그게 쉬운 일이었다면 그 속에서 아무런 즐거움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계속해서 그림을 그려야겠다."
창업을 준비하면서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반 고흐의 명언이다. 군 시절 창업경진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업계획서를 쓰던 중, 저 말이 기업가가 성공하기 전까지 이겨내야 할 상황들을 너무나도 정확하게 말해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오르거나 시장에서의 좋은 기회 혹은 문제점을 포착하고 잠을 설칠 정도로 설레어하다가도, 어느새 객관화가 되면서 '이게 과연 잘 될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열심히 기획을 구체화하다가도 어느 순간 번아웃이 오기도 하니깐 말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과정 자체가 너무 좋아서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 창업은 나에게 주어진 숙명이자 애증의 관계라고 할 수 있겠다.
처음 창업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중학교 시절이다. 하지만 아마 그 이전부터 창업에 대한 긍정적인 감정은 자라나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 최초의 순간이, 미국 유학을 갔다가 방학을 맞이해서 잠시 한국에 돌아온 사촌 누나가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나에게 '아이팟 터치'를 보여준 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당시 한국에는 판매되지 않고 있었던 제품인데, 처음 본 순간 들었던 생각은 '이걸 쓰지 않을 이유가 없다' 였다. 이후 아이폰이 등장하고, 한국에 상륙한 후 중학교 시절에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처음 소개했던 프레젠테이션 영상을 접하게 되었다. 그 영상을 본 순간 창업을 해야겠다고 완전히 결심하게 되었다. 이미 아이팟 터치를 봤을 때 너무 훌륭한 제품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영상 속에서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을 제외한 다른 스마트폰들을 너무나도 초라하게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보통 무언가 새로운 제품을 소개할 때 '이 제품은 이러한 장점이 있으니 이걸 쓰세요!' 라고 사람들을 설득하는데, 내 시선에서 본 스티브 잡스의 프레젠테이션은 '우린 이 제품을 만들었는데, 당신들이 이걸 왜 안 써도 되는지 고민해 보세요. 아마 답을 찾기 어려울 겁니다.'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쓸 수밖에 없는 제품을 만들었고, 사람들이 쓰고 싶게 하도록 발표를 구성했다. 그렇게 세상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바뀌었고, 대한민국의 한 중학생의 가슴은 두근거리고 있었다.
목표를 세웠다. 중학생이지만 이공계로 진학할 것임을 알았던 나는 창업과 관련된 이공계열 학과를 찾아보았다. 여러 학과 중 산업공학과가 흥미로워 보였고, 당시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쓰던 카카오톡의 창업자가 서울대학교 산업공학과를 졸업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때부터 나의 첫 목표는 '서울대학교 산업공학과 진학' 이었다. 진학상담을 할 때 종종 선생님들의 반대의견이 나오기도 했지만, 나에게 그러한 의견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열심히 해서 가면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첫 목표를 이루고, 잠시 길을 잃었었다. 재수 끝에 서울대학교 산업공학과에 정시 수석으로 입학하게 되면서, 서울대라는 타이틀과 함께 남들보다 편하게 용돈을 벌 기회들이 쏟아졌다. 더 공부를 하지 않아도 최고 수준의 실력을 가지고 있고, 또 그렇게 인정받는 고등학교 입시판을 전전하며 용돈벌이를 했다. 그렇게 재수 시절인 20세의 내가 힘들게 일궈놓은 지식을 이용해서 돈을 버는 것에 집중했고, 한동안 내가 왜 이 학과에 진학했는지를 잊은 듯이 살았다. 다행인 점은 그러한 와중 내가 나만의 '아이디어 노트'를 만들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천천히 좋은 생각이 들 때마다 핸드폰 속 노트 앱을 이용해 메모를 했고, 메모는 점점 쌓여갔다.
실질적인 창업 활동의 시작은 놀랍게도 군 시절이었다. 나는 그렇게 빠른 나이는 아니었던 23살의 가을에 군 입대를 했다. 학벌과 전공 덕분에, 그리고 국방부 면접을 보는 걸로 착각해서 열심히 내 능력을 어필했기 때문에 계룡대로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적응하던 와중 일병 시절 '육군 창업경진대회' 모집 공고를 보게 되었다. 군대에서의 시간은 '죽은 시간'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했던 와중 작은 불씨가 되살아나는 느낌이었다. 그동안 써 왔던 아이디어 노트를 살펴보며 어떤 아이템으로 출전할지부터 생각했다. 당시에 주로 관심이 있었던 '공유 경제'와 관련된 여행 아이템이 눈에 들어왔다. 비즈니스가 잘 작동하면 시장의 규모도 상당히 크고, 고객들에게 주는 효용도 명확한 만큼 좋은 사업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당시 생활관 막내였던 나는 선임들에게 아이디어를 말해주면서 '함께 출전하실 분 계십니까? 이름만 올려주셔도 제가 알아서 해보겠습니다.' 라고 했다. 흥미를 가진 선임들과 함께 생애 처음으로 사업계획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 당시 의경으로 복무하고 있었던 중학교 동창에게 갑자기 연락이 왔다. 자신이 군대에서 창업과 관련된 자기계발 책을 읽고 엄청나게 동기부여가 되어 창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하면서, 주변에 창업을 목표로 삼은 친구가 없는지 찾아보다가 내가 생각났다고 했다. 나는 마침 창업경진대회에 출전해보려고 준비중이었다고 얘기하며, 비록 부대는 다르지만 함께 참가해보자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같은 목표를 가진 동료가 합류하며 의욕은 더 커져만 갔다.
그러나, 막연한 꿈이었던 창업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군에서 지원해주는 자기계발비용으로 'MIT 스타트업 바이블' 책을 구매해서 읽으며 계획서를 써나갔는데 고려할 것이 너무 많아 보였고, 주기적으로 선임들과 회의를 가지면서 처음의 기획이 조금씩 현실에 맞추어 바뀌고 있었다. 특히 계획을 세우면서도 '이걸 내가 실제로 수행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구심이 많이 들었던 시절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당시 코로나까지 유행하기 시작하며 여행 관련 산업은 당장 뚜렷한 플랜을 세우기에는 희망이 없어 보였다. 내부적으로 회의한 끝에 좀 더 우리에게 맞는 서비스로 피봇하여 대회에 출전했다. '휴가 장병들에게 최신 유행 의류를 대여해주는 서비스'로 창업경진대회에 출전했고 아쉽게도 서류 탈락했다. 당시 책을 정말 많이 읽었었는데, 반 고흐의 명언이 가진 의미에 뼈저리게 공감하며 좌절감을 이겨냈다.
이후에도 서류 탈락의 연속이었다. 아이디어 노트에 있던 다른 아이디어들, 그리고 군 생활을 하며 틈틈이 책을 읽고 사색에 잠기며 새롭게 떠올렸던 아이디어들로 여러 창업 경진 대회에 출전했지만 매번 서류 탈락이었다. 그 어떤 피드백도 받을 수 없었다. '나는 창업 관련된 재능이 없는 걸까?' 라는 생각도 잠시 가졌었다. 그러나 금세 반 고흐도 생전에 인정받지 못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던 것을 떠올리며, 포기하지 않고 계속 다양한 아이디어를 수집하며 여러 창업 경진 대회를 기웃거려 보았다. 군대에서 제대를 하고, 비슷한 시기에 역시 의경으로 제대했던, 창업에 관심이 있다던 중학교 동창과 함께 '정주영 창업경진대회'에 출전했다. 전동 킥보드를 처음 탔을 때부터 느꼈던 불편함을 해결해보는 아이템으로 이전보다는 경험이 쌓여 수월하게 사업 계획서를 작성하고 지원을 했다. 이번에도 서류 탈락이었다.
그러나 역시 큰 대회라 그런가, 서류 탈락이어도 조금은 달랐다. 탈락 후 약 4개월가량 지난 시점, 어느 날 오전에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VC에서 일하시는 분이었는데, 정주영 창업경진대회에 제출한 서류를 보고 연락드린다며 한 번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너무나도 설레어 중학교 동창에게 연락하고 같이 보완 자료를 준비한 후에 사무실로 찾아갔다. 1시간가량 생각했던 아이템에 대해 소개를 하고, '사업계획서 속에 가설이 너무나 많다. 몇 개는 검증부터 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라는 소중한 피드백을 얻었다. 역시나 포기하지 않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더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가 생겼다.
이후 실제로 창업을 하는 것과 비슷하게 프로젝트를 해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고 해서 지원했고, 합격했다. 개발자들 사이에서는 꽤나 유명한 듯한 'SW마에스트로' 라는 프로그램이었다. 그곳에서는 내 노트에 있는 아이디어 중 '개인화된 맛집 검색 서비스'를 가지고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생각보다 개발이 더디게 진행되었지만 그래도 막바지에 앱 출시도 하고, 마케팅 없이 지인들 입소문으로만 약 100명의 사용자를 모아보면서 꽤나 해볼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막판에 팀원들과의 불화로 갈등이 생기며 팀은 해체되고 프로젝트도 폐기되었다. 절망스러웠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지만, 왠지 나는 이 아이템이 세상을 바꿀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포기하기 싫었다. 그동안 계속 창업을 목표로 함께 대회도 나갔었던 그 중학교 동창과, 서버 개발을 공부하는 다른 중학교 동창 한 명을 더 섭외하여 창업팀을 꾸리고, 셋이서 함께 합을 맞춰보고자 출전했던 해커톤에서 마음이 맞는 팀원을 만나 5인의 팀이 결성되었다. 서울 모 대학의 캠퍼스타운에 입주했고, 법인 설립을 마치고 여전히 열심히 '개인화된 맛집 검색 서비스'를 이전의 배포 경험을 교훈삼아 조금 더 발전된 형태로 만들고 있다. 사람들의 입맛 정보를 수집해서 인공지능 기반으로 각자의 입맛에 맞는 식당을 추천해주는 서비스인데, 우리는 이 서비스를 통해 '맛집'이라는 단어를 새롭게 정의할 것이고, 더 나아가서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사람들의 식생활을 혁신하여 세상을 바꾸는 기업이 되려고 한다.
여러 과정을 거쳐 이제야 처음으로 조그마한 스타트업을 창업했고, 앞으로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와 희망과 절망이 있을 지 모르겠지만, 반 고흐 말대로 이게 쉬운 일이었다면 그 속에서 아무런 즐거움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계속해서 창업을 해나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