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가 온 세상을 집어삼킨다.”(Software is eating the world)
실리콘밸리의 저명한 벤처투자자 마크 안데르센이 위와 같은 주장을 한지도 어언 10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다. 2011년 아마존, 넷플릭스 등이 가져올 변화를 주목하며 소프트웨어가 세상이 동작하는 방식을 뒤바꾼다고 내다봤다. 그 전망은 여전히 유효할까. 2023년 마크 안데르센이 이끄는 벤처캐피탈 a16z는 조금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제는 하드웨어 경쟁력 위에 소프트웨어를 결합해야 한다는 관점을 강조하고 있다.
실리콘밸리만 이런 전망을 하는 게 아니다. 지난 11일 열린 블루포인트파트너스 데모데이 <BIT vs ATOM>에서는 소프트웨어 스타트업과 하드웨어 스타트업이 우주산업, 양자컴퓨팅, 기후위기, 신소재 등의 공통 주제를 두고 대결을 펼쳤다. 비트(BIT) 단위에서 시작되는 소프트웨어, 원자(ATOM) 단위에서 출발하는 하드웨어 각각이 첨단 산업에서 어떤 기회를 포착하는지 교차해 보여주는 시간이었다. 두 키워드 모두를 이해해야 경쟁력을 얻을 수 있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셈이다.
(참고 - 글로벌 딥테크 스타트업 TOP10와 전망)
딥테크라는 개념은 2023년 벤처 업계에서 중요하게 떠올랐다. 표면적으로는 전 세계적인 경기 침체와 금리 인상 등으로 인해 투자 시장이 둔화하면서 소프트웨어 플랫폼 비즈니스의 파죽지세가 한 풀 꺾였다는 데 그 요인이 있다. 플랫폼 비즈니스는 그 특성상 트래픽이나 매출 등의 성장 지표를 바탕으로 미래 가치를 인정받고 투자를 유치하는데, 보수적으로 혹은 지속가능성을 논하는 벤처 투자 기조에선 미래 가치의 셈법이 다르게 적용되는 까닭이다.
딥테크 트렌드가 주목받는 보다 근본적인 요인도 있다. 예를 들어, 오픈AI의 수장으로 알려진 샘 알트만은 딥테크의 눈으로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모두에 투자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오픈AI는 생성형 인공지능 기술을 바탕으로 플랫폼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부분유료화로 공개된 플랫폼, 뒷단의 플랫폼으로도 기능한다. 더는 파이를 키울 수 없다고 여겨졌던 소프트웨어 플랫폼의 장르를 기술력으로 넓힌 케이스다. 그러면서도 샘 알트만이 핵융합, 바이오테크 등 하드테크 스타트업에 투자한다는 점도 주목해봄직 하다.
샘 알트만 : “주요한 과학적 진전 없이 수십 조 기업을 만들 순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어려운 도전 같아 보이지만, 사실 훨씬 수월할 수 있습니다.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모바일 앱을 만들겠다고 하면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 하겠지만, ‘로켓회사를 세운다’면 훨씬 흥미를 느끼는 것처럼요. 누구나 우주에 가보고 싶어하니까요.”
(참고 - ‘챗GPT의 아버지’ 샘 알트만에 대해 알아보자 )
고위드 창업자 김항기 대표에 따르면 스타트업의 본질은 “효율을 높이는 것”이다. 자동차가 많아진 시점에 우버는 누구나 자기 차의 빈 공간을 제삼자에게 내어주는, 제삼자는 차를 소유하지 않고도 이동할 수 있는 효용을 얻으면서 유동 효율성을 높였다. 에어비앤비는 집이라는 공간의 유통 효율성을 높혔다. 이런 관점에서 하드웨어는 기술적으로 더 효율적인 공급이 가능할 때 거대한 사업 기회를 내포한다 볼 수 있다. 실리콘밸리는 거기에 베팅하는 분위기다.
(참고 - 영업직원서 CEO로 성공한 20년차 투자자의 관점)
특히 하드웨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계기는 다분히 시대적이다. 블루포인트 데모데이 키노트에서 이용관 대표는 “정보화 시대에 정보를 자유롭게 교류하는 것과 달리 하드웨어 역량은 스스로 갖춰야 한다는 인식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짚었다. 코로나19로 물리적인 연결이 끊어졌던 2020~2022년부터 제조 역량을 내재화해야 한다는 자국우선주의가 강화됐다는 것이다. 전기자동차 부품, 반도체 핵심 소재 등을 두고 외교 갈등이 생길 정도로 그 추세는 뚜렷해졌다.
앞서 소프트웨어 시대를 천명했던 마크 안데르센도 비슷한 시기부터 다른 메시지를 설파해왔다. “이제는 (내부에서) 만들어야 할 때”(It’s time to build)라고, “미국의 역동성”(American Dynamism)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식이다. 자국의 이익을 높이는 차원에서 혁신적인 첨단 기기는 미국에서 만들어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 방향으로 집중 투자하겠다는 선언은 하드웨어 발전이 국가 주도에서 민간 기업 주도로 그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는 시그널이 됐다.
그러나 이것이 곧 ‘하드웨어 온리’를 뜻하진 않는다. 키노트에서 블루포인트파트너스 이용관 대표는 “앞으로 비트와 아톰은 결합한다”고 설명했다. 근 수십년간 하드웨어의 발전과 소프트웨어의 발전이 번갈아 찾아왔다면 앞으로의 변화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시너지를 내는 형태로 도래한다는 의미다. 휴머노이드 로봇의 움직임과 인공지능의 추론능력이 가공할 만한 속도로 향상되는 지금,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어떻게 융합하는지 지켜봐야 하는 이유다.
보스턴컨설팅그룹 : “딥테크는 소프트웨어 기반의 디지털 혁신에서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기반의 물리적인 디지털 혁신으로 옮겨가고 있다.”
(참고 - 2023 벤처투자 - 비트의 시대는 가고 아톰의 시대로)
결국 스타트업은 문제를 해결해 가치를 창출해서, 그 가치를 교환함으로 존재하고 성장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비트도, 아톰도 결국 같은 문제를 푸는 다른 접근이라는 점에서 상호 발전한다. 일종의 ‘동지’라 할 수 있다. 블루포인트파트너스 데모데이에서는 쉽지 않은 문제에 도전하는, 교집합을 가진 소프트웨어 스타트업과 하드웨어 스타트업의 발표를 연이어 보여줌으로써 딥테크의 가능성을 증거했다. 거대한 문제를 풀어 그만큼 큰 가치를 만드는 시너지를 엿볼 수 있었다.
기후위기를 예로 들어보자. 인류에 시급한 문제를 해결하는 두 스타트업이 있다. 포엘은 하드웨어 스타트업에 속한다. 태양광은 차단하고 내부 열은 복사파로 방출하는 복사냉각 필름을 활용해 에어컨 없이 실내 온도를 낮추는 솔루션을 만든다. 실제로 이 필름을 붙이는 것만으로 에어컨 사용량을 41% 줄이는 효과를 확인했다. 포엘은 탑차 등에 필름을 도입하는 데서 출발해서 페인트 등으로 시장을 넓혀 탄소배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일조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리너리는 비트 진영, 소프트웨어 스타트업으로 무대에 올랐다. 기업이 탄소감축 프로젝트에 투자해 탄소 크레딧을 확보할 수 있도록 플랫폼을 개발했다.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직접적으로 탄소배출량을 줄이거나 탄소배출권을 활용해 간접적으로 탄소감축에 기여하는 2가지 방식이 있는데, 그리너리는 후자에 초점을 맞추고 탄소 크레딧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소프트웨어 사업을 펼친다. 정보의 파편화, 적절한 투자처의 부재 등의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놀라운 시대의 목격자이자 참여자로 함께 해주세요.”
보통 딥테크 스타트업의 발표는 대중적으로 소화하기 어렵다는 인상을 준다. 아무래도 전문적인 영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트와 아톰, 2개의 시선으로 조명하니 문제와 해법을 파악하기 훨씬 수월했다. 덕분에 청중의 공감을 사기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12번째 발표가 끝날 때까지 사람들은 자리를 지키며 이야기를 경청하는 모습을 보였다. 미래의 해상도가 올라가니 이해도가 올라가고, 그만큼 해법에 귀를 기울이는 이해관계자들이 늘어난다는 걸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창업자와 투자자, 국가 차원에서 딥테크에 관심을 보이는 요즘, 비트와 아톰를 결합해 전에 없던 혁신을 만드는 이들에게 미래를 열 기회가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결국 새로운 변화를 알아채고 기술을 통해 최선책을 내놓는 기업이 그 과실을 손에 넣을 것이다. 기술력의 격차에 스타트업이 비전이 더해질 때다. 그래서 이번 블루포인트파트너스 데모데이는 적절한 타이밍에 딥테크 스타트업들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는 현장으로 의미를 얻을 수 있었다.
블루포인트 데모데이에 참석해 주시고 좋은 콘텐츠도 남겨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블루포인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