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 조사업체와 함께 진행한 제품 리뷰와 고객 인터뷰의 마지막 날이다.
진출 발표 보도자료는 지난달에 나갔다. 현지 파트너와는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현지 출장은 벌써 세 번째다.
결정은 끝났다. 이제 고객에게 확인받을 차례다.
제품 장점 세 가지를 설명하고 샘플을 건넨다.
“마음에 드십니까?”
고객이 웃는다.
“좋네요. 그런데 지금 쓰는 게 있어서요.”
수첩에는 “좋네요 — 긍정적 반응.”
그 다음 문장은 없다.
1. 대표가 말한 시간
제품을 설명한 시간은 길었다. 고객이 자기 하루를 말한 시간은 몇 분인가.
지금 무엇을 쓰고, 왜 그것을 골랐고, 얼마를 내고, 언제 바꾸고 싶어지는지. 새 제품으로 갈아타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고객은 “지금 쓰는 게 있다”고 했다. 그 말에는 대표의 제품이 넘어야 할 벽이 들어 있다. 이미 쓰는 것을 바꿀 이유.
수첩에는 없다.
고객 인터뷰였는가. 제품 설명회였는가.
2. 돈을 쓴 뒤에는 “아니다”가 너무 비싸진다
대표는 고객을 만났다. 문제는 순서다.
출장비를 쓰고, 파트너를 구하고, 일정을 발표한 뒤에 물었다. 이제 “싫다”는 답은 제품 평가로 끝나지 않는다. 쓴 돈과 맺은 계약과 공개한 약속까지 흔든다.
파트너에게 설명해야 한다. 이사회에도. 보도자료를 읽은 사람들에게도. 자신에게도.
그래서 “좋다”는 크게 적히고, “그런데” 뒤는 작아진다.
배리 스토는 1976년 실험에서, 사업 결정을 직접 내린 학생들이 실패가 드러난 뒤에도 더 많은 자원을 넣는 것을 확인했다.
틀렸다는 증거가 멈추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밀어붙이게 했다.
3. 구매 조건을 치우고, 살 것인지 물었다
샘플을 받을 때 고객은 현지 판매가격을 치르지 않았다. 배송비도, 기다리는 시간도, 지금 쓰는 제품을 바꾸는 번거로움도 부담하지 않았다.
실제 구매를 어렵게 만드는 조건을 치운 뒤 얻은 “좋다”를 판매 예측에 넣었다.
좋다와 사겠다 사이에는 지갑이 있다.
비키 모위츠는 60년 치 연구를 정리해 이렇게 결론 냈다. 구매의향은 판매 예측에 도움이 되지만, 불완전하다.
설문에서 “살 것 같다”고 말하는 데는 돈이 전혀 들지 않는다.
실제 구매에는 든다.
4. 조사가 바꾼 것은 사업 전망이나 제품이 아니라 자신감이다
제품은 그대로다. 가격은 한국 가격에 환율을 곱했다. 채널은 지원사업이 잡아 준 행사와 이미 아는 유통사다. 광고는 번역했다.
바뀐 것은 투자금과 주문량이다.
조사는 틀릴 가능성을 줄이지 못했다. 틀렸을 때 잃을 돈만 키웠다.
신문은 쓴다. 베트남에서 한국 제품이 뜬다고. 그 기사에 대표님 브랜드 이름은 없다.
나라의 인기와, 대표님 제품을 그 가격에 살 이유는 전혀 별개다. 하지만 다들 착각한다.
5. 첫 주문이 들어오면
그제야 모든 판단이 맞았다고 믿는다.
할인 주문도, 지인의 소개도, 유통사의 시험 발주도 매출에 찍힌다. 할인과 관계로 끌어온 주문과, 그 가격에도 필요해서 산 주문이 한 숫자로 섞인다.
그 숫자로 재고를 늘리고 사람을 뽑는다.
고객이 자기 필요 때문에 다시 사는지는, 고정비가 커진 다음에야 드러난다.
6. “현지 시장이 어렵다”
안 팔리면 대표는 말할 것이다. 현지 시장이 어렵다고.
제품도 가격도 메시지도 채널도 한국에 맞춰 놓고, 사지 않은 고객에게 이유를 돌린다.
현지 고객이 한국 고객처럼 행동해 줘야 성립하는 사업이라면.
그런 방식으로 해도 성공한다면, 그게 더 이상하다.
질문 하나
그 조사에서 어떤 답이 나왔다면, 대표님은 진출을 취소했겠는가.
현지 파트너 계약을 위약금 내고 해지했을까.
보도자료를 정정했을까.
주문량이라도 줄였을까.
David Kim | 데이비드 김
30년 투자은행가 → 아시아 외신 칼럼니스트 → 기업의 가치를 투자자와 시장의 언어로 바꾸는 사람
Alpha Narrative Lab | https://alphanarrativelab.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