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전략
실적을 놓친 날, 대표님은 이유를 몇 개나 준비했나요

IR 컨퍼런스 콜이 시작된 지 11분. 화면에는 슬라이드 14쪽이 떠 있다. 제목은 '일시적 요인'.

매출은 목표에 크게 못 미쳤다. 대표는 마이크 앞에서 목을 한 번 가다듬는다.

"거시환경이 예상보다 어려웠습니다."

"대형 계약의 결제 시점이 다음 분기로 밀렸습니다."

"영업 조직을 개편하는 과정에서 일시적인 공백이 있었습니다."

하나하나 사실일 수 있다. 대표는 지난 일주일, 이 세 문장을 다듬었다. 숫자를 고치는 데 쓴 시간보다 숫자를 설명하는 데 쓴 시간이 길었다.

세 번째 문장이 끝날 즈음 건너편에서 키보드 소리가 멎는다. 투자자들은 더 이상 숫자를 적지 않는다.

한 명이 묻는다. "그 환경은 지난 분기에도 있지 않았습니까?"

대표의 목소리가 반 박자 빨라진다. "물론입니다. 다만 당시에는 회복될 것으로 판단했고, 또한 이번에는…"

IR 담당자가 채팅창에 쪽지를 보낸다. 대표는 읽지 않는다. CFO는 물을 마신다. 그 소리가 마이크에 들어간다.

이제 이 통화에서 분석되는 것은 매출이 아니다. 대표다.

첫 번째 이유까지는 정보다

첫 번째 이유는 정보로 들린다. 두 번째 이유부터는 설명이 아니라 방어처럼 들리기 시작한다. 세 번째 이유가 나오면 질문은 숫자에서 사람으로 옮겨 간다.

처음 질문은 이것이었다. 왜 목표를 놓쳤는가.

그때 질문은 이렇게 바뀐다. 이 사람은 자기 판단이 틀렸다는 걸 아는가. 틀렸다는 증거가 또 나오면 인정할 수 있는가. 아니면 더 그럴듯한 이유를 또 찾을 것인가.

해명은 정보로 읽히지 않는다. 신호로 읽힌다. 그리고 그 신호는 세 가지를 말한다. 이유가 지난 분기에도 있었고, 다음 분기에도 준비돼 있을 것이며, 대표는 자기 판단이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아직 열어 두지 않았다.

한 번의 미스는 숫자를 다시 계산하게 만든다. 그 미스를 인정하지 못하는 태도는, CEO가 앞으로 내놓을 모든 숫자를 다시 검토 분석하게 만든다.

방어하면 방어할 것이 늘어난다

방어에는 이상한 성질이 있다. 질문이 하나 나오면 새 이유가 필요하다. 새 이유는 새 질문을 낳는다. 새 질문은 또 새 이유를 요구한다.

대표는 그 안에서 올인한다. 이 방을 무사히 나가는 것이 이 방에서 해야 할 유일한 일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같은 방에 앉은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대화를 하고 있다. 투자자는 바뀐 현실을 알고 싶다. 대표는 자신이 무능하지 않다는 걸 증명하고 싶다. 한쪽은 판단을 고치려 하고, 다른 쪽은 평판을 지키려 한다.

해명은 상대를 위한 말처럼 들린다. 실제로는 대부분 나를 위한 말이다.

해명은 과거를 변호한다. 책임은 다음 판단을 신뢰하게 한다

스탠퍼드 연구진이 14개 기업의 연차보고서 21년치를 분석했다. 실패를 외부 환경보다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내부 요인에서 찾은 기업이 1년 뒤 더 높은 주가를 보였다.

남 탓을 하는 조직보다, 손으로 바꿀 수 있는 원인을 찾는 조직이 시장에는 더 통제되고 있는 것으로 읽힌다.

여기에 반대되는 두 문장이 있다.

"제가 틀린 게 아니라, 이런 맥락이 있었습니다."

"제 판단이 틀렸습니다. 틀렸다고 본 근거는 이것입니다."

앞의 문장은 과거의 나를 무죄로 만든다. 뒤의 문장은 다음 판단이 정확해질 수 있다는 근거를 준다.

시장은 완벽한 CEO에게 돈을 맡기지 않는다. 자기 평판보다 사실을 먼저 보호하는 CEO에게 맡긴다.

대기업은 더 심하다

스타트업 대표만의 일이 아니다. 대기업에서는 해명이 부서를 거칠 때마다 한 줄씩 늘어난다. 재무팀이 한 줄, 영업이 한 줄, 법무가 한 줄을 보탠다. 마지막에 대표 앞에 놓인 원고는 이유가 열 개다.

누구도 나쁜 일을 하지 않았다. 각자 자기 부서를 지켰을 뿐이다.

그렇게 모두가 조금씩 자신을 지킨 결과, 아무도 회사의 신뢰를 지키지 않았다.

질문 하나

콜이 끝난다. 접속이 하나씩 끊긴다. 투자자들은 어떤 질문도 더 하지 않았다.

CEO는 그것을 이해됐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그럴 수도 있다. 더 이상 믿을 수 없다는 뜻일 수도 있다. 사람들은 납득했을 때도 질문을 멈추고, 포기했을 때도 질문을 멈춘다.

다음 IR콜에서 대표님이 준비할 첫 문장은 무엇인가. 또 하나의 그럴듯한 이유인가, 지난번과 다른 판단의 근거인가.

대표님은 지금, 투자자가 다시 믿어 주기를 바라는가. 아니면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만은 인정받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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