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 #사업전략
전시회 사흘, 명함 수백 장. 고객을 만나러 가는 일은 왜 아무도 하지 않을가?

 

전시회 사흘째 밤이다.

 

대표는 호텔 방 침대에 앉아 명함을 센다. 오늘도 여러 명이 샘플을 보내 달라고 했다. 한국 제품이 좋다고 했다. 다음 분기에 연락하겠다고 했다.

명함은 쌓였다. 그 나라에서 이 제품을 실제로 쓸 사람은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부스에 오는 사람

전시회 부스에 오는 사람은 수입업자이거나 유통업자이다. 수입업자나 유통업는 고객이 아니다. 고객의 대리인이다.

대리인이 아는 것은 자기 거래 습관이다. 어떤 제품이 반품이 적고, 어떤 가격대에서 마진이 많이 남는지. 고객이 이 제품을 아침에 어디서 어떻게 쓰는지, 고객에게 도움이 될지는 그의 일이 아니다.

그러니 열 번을 가도 같은 문장을 듣는다. "좋다. 샘플 보내라."

1959년, 로스앤젤레스

혼다는 1959년 6월 로스앤젤레스에 첫 해외 법인을 세웠다. 처음 6개월 동안 수출한 오토바이는 170대. 미국인은 할리데이비슨과 트라이엄프 같은 큰 오토바이를 좋아했다.

그런데 작은 50cc 슈퍼커브가 이상하게 팔리기 시작했다. 혼다 내부 보고서는 이렇게 적었다. "이렇게 큰 나라에서 작은 오토바이가 잘 팔릴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미국인은 이 오토바이를 일본 사람이 쓰는 방식으로 쓰지 않았다. 픽업트럭이나 캠핑카에 싣고 가서 사냥터와 낚시터에서 탔다. 10대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았고, 학생은 아르바이트비로 샀다.

혼다는 이 삶을 보고 판로를 바꿨다. 오토바이 대리점뿐 아니라 아웃도어 용품점과 스포츠 용품점에서 팔기 시작했다. 월 1,000대를 넘긴 것이 1961년, 1962년에는 4만 대를 넘었다.

전시회에서는 누구도 "우리 고객은 캠핑카에 이 물건을 싣는다"고 말해 주지 않는다. 그건 거기 가 있어야 보인다.

1993년, 삼성의 1년

삼성은 1993년 지역전문가 제도를 시작했다. 이건희 회장의 지시였다. 주재원이 아니다. 직원이 원하는 나라에서 1년을 산다. 현지를 돌아다니고, 현지인과 어울리고, 문화를 몸으로 겪는다.

비서실이 올린 초안은 매년 50명씩 10년이었다. 이 회장은 매년 500명으로 늘리라고 했다. 중국과 러시아에는 1인당 5만 달러 이상이 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그는 사람이 떠날 위험보다 사람이 그 나라를 아는 것이 더 크다고 봤다.

혼다와 삼성에는 공통점이 있다. 둘 다 팔기 전에 먼저 살았다.

사흘짜리 진출

지금 대부분의 스타트업이 해외에 쓰는 시간은 전시회 사흘이다. 정부 보조금으로 부스를 얻고, 남이 만들어 준 컨퍼런스에 가서 명함을 돌리고, 명함을 모은다.

돌아와서 말한다. 이번에도 성과가 있었다. 미팅 몇 건, 명함 몇백 장.

그것은 일이 아니다. 일을 한 기분이다.

명함은 고객이 아니다

고객은 그 부스에 오지 않았다. 대표님이 만난 사람은 수입업자, 브로커, 그리고 그 나라 시장을 설명하는 것이 직업인 사람들이다. 이들은 고객의 삶을 사는 사람이 아니다. 고객의 삶을 전해 주는 사람이다.

대표님의 해외 전략이 이들의 입에서 나왔다면, 그건 전략이 아니라 전해 들은 이야기다. 시장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들려준 시장에 회사의 다음 3년을 걸고 있다.

왜 아무도 가지 않는가

고객을 만나러 가는 일을 왜 아무도 하지 않는가. 비용 때문이 아니다. 불편해서다.

낯선 나라에서 말이 통하지 않고, 음식이 입에 맞지 않고, 이 제품이 왜 필요한지 모르는 사람 앞에 서 있는 일. 대표가 해외에서 가장 편안한 곳이 호텔과 부스라는 사실이 모든 것을 설명한다.

그런데 그 불편이 정보다. 한국 사람인 창업자가 그 나라에서 느끼는 불편 안에, 그 나라 고객이 매일 겪는 불편이 있다. 거기에 우리 제품이 들어갈 틈이 있고,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 한 쓰임이 있다. 불편을 한 번도 겪지 않고 시장을 이해했다고 말하는 것은, 아는 척이다.

해외 조직도 현지화도 그 위에서만 선다. 고객을 한 번도 만나 본 적 없는 사람이 현지 법인장을 뽑고, 현지 가격을 정하고, 현지 마케팅을 짠다. 그것이 지금 벌어지는 일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해외 진출이라고 부른다.

명함이 수백 장이어도 고객 한 명의 하루를 모르면, CEO는 해외에 진출한 것이 아니라 해외에 출장을 간 것이다. 그리고 급속히 줄어드는 런웨이를 그냥 더 태운거다. 

질문 하나

대표님이 진출하려는 나라에서, 이 제품을 쓰는 고객 한 명의 하루를 아침부터 밤까지 말할 수 있는가.

그 사람의 이름은.

그리고 해외진출을 부르짖는 CEO는 왜, 아직 한 번도 그 사람을 만나러 가지 않을까?  

 

David Kim | 데이비드 김

30년 투자은행가 → 아시아 외신 칼럼니스트 → 기업의 가치를 투자자와 시장의 언어로 바꾸는 사람

Alpha Narrative Lab | https://alphanarrativela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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