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한국 벤처 인물열전 - 7, 박건희] '다음'의 잊혀진 공동 창업자

- 1995년, 다음의 공동 창업자 중 한명은 '컴맹'이었습니다.
- 인터넷 회사 첫 화면에 자기 사진 67장을 걸고, 8개월 만에 세상을 떠난 사람.

포털 다음을 만든 사람은? 이재웅, 이택경 그리고 잊혀진 공동창업자, 박건희 대표 이야기입니다.


1. 신문은 '투 톱', 연혁은 '빈칸'

• 1995년 7월 한국일보: "다음커뮤니케이션의 투 톱 이재웅 박건희 사장". 월간 Internet: "두 사람이 공동 대표". 
• 30년 뒤는요? 올해 초 한 경제지는 "포털 다음은 1995년 이재웅씨가 설립했다" 한 줄. 카카오 공식 연혁은 아예 창업자 이름 칸이 없습니다.
• 이재웅을 가운데 두고 고교 동창(박건희)과 대학 후배(이택경)가 뭉친 회사, 그러니까 셋이 맞습니다.


2. 파리 학생식당발 크리스마스 탈출기

• 춘천 출신, 4녀 1남의 막내. 중앙대 사진학과 시절 이미 개인전 두 번, 이문세·이영훈 앨범 재킷까지 찍었습니다. 은사 한정식 교수 왈, "가르칠 것이 별로 없었다".
• 1993년 파리 에꼴 드 보자르 멀티미디어 과정으로 유학. 그런데 원래 목적지는 아프리카였답니다. 
• 그 파리 대학식당에서 영동고 동창 이재웅과 딱 마주칩니다. 한쪽은 인지과학 박사과정, 한쪽은 기사 표현 그대로 지독한 '컴맹'에 인터넷 완전초보.
• 1994년 크리스마스이브, 둘은 학교에 편지 한 장만 남기고 서울행. 두 달 뒤인 1995년 2월, 다음커뮤니케이션이 문을 엽니다.


3. 인터넷 회사의 첫 메뉴는... 사진전

• 1995년 4월, 다음이 처음 내놓은 화제작은 검색도 메일도 아닌 가상화랑 'Virtual Gallery'. 개관전은 박건희 본인 사진 67장이었습니다. 신문 제목은 "인터넷 통해 국내 첫 사진전".
• 본인 설명: "인터넷 안에 한국을 알릴 수 있는 전시공간을 만들고 싶어 전시회를 시작했는데, 의외로 외국에서 많은 질책과 반응이 있어 놀랐습니다."
• 회사 구성도 IT 회사 맞나 싶습니다. 평균 26세, 영화아카데미 졸업자·큐레이터·사진가·디자이너·엔지니어가 뒤섞인 '10인 10색'. 그해 미국 웹 서베이 업체의 '톱5%' 사이트에 뽑혔고, 9월엔 제1회 광주비엔날레를 인터넷으로 생중계했습니다.
• 이재웅이 웹 서버를, 박건희가 웹 서비스를 맡았습니다. 
• "컴맹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는 사람은 제가 전형적인 모델이라는 생각입니다." 2년 전까지 컴퓨터와 담 쌓고 살던 사람이 인터넷 회사 사장 명함을 들고 한 말입니다.


4. '하루 20시간'이 칭찬이던 시절

• 화랑이 이름값을 벌었다면, 월급은 외주가 벌었습니다. 데이콤 '사이버월드' 개발이 첫해 돈줄.
• 1995년 7월 신문은 이 외주를 위해 "하루 20시간을 넘게 일하는" 두 사장의 승부근성을 칭찬했습니다. 다른 잡지는 직원 14명이 "밤낮을 분간하지 못하고 산다"고 썼고요.
• 석 달 뒤인 1995년 10월 10일 아침, 박건희는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쓰러져 다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스물아홉. 창업 8개월 만이었습니다.
• 흔히 '과로사'라고들 하지만 당대 기록은 '심장마비'입니다. 다만 그해 연말 신문엔 한 동료의 말이 남아 있습니다. "건희는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하면서도 늘 즐거운 기분이었다."


5. 회사 연혁엔 없는데, 상 이름엔 '다음'이 붙었다

• 2001년 유족과 이재웅·이택경이 돈을 모아 박건희문화재단을 세웠고, 이듬해부터 젊은 사진가를 뽑는 '다음작가상(Daum Prize)'을 운영해 왔습니다.
• 아이러니죠. 다음 창업사에선 이름이 빠졌는데, '다음'이라는 이름은 그가 남긴 상에 붙어 20년 넘게 살아 있었으니까요.


한메일도 카페도 그가 떠난 뒤의 일이라 다음의 성공을 그의 공으로 돌리면 과장이겠죠. 다만, 그는 인터넷을 문화의 공간으로 본 첫 회사를 (공동) 창업했고, 인터넷을 한국을 알릴 전시장으로 먼저 본 사진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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