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소유주는 사회다. 내가 번 돈은 내 것이 아니며, 나는 단지 사회로부터 자산을 위탁받아 관리하는 '청지기'에 불과하다."
1969년, 대한민국 비즈니스 역사에 전무후무한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국내 최고 제약회사로 성장한 유한양행의 창업자 유일한 박사가 자신의 친인척과 아들을 경영진에서 전원 퇴진시키고, 회사 내부 승진을 거친 전문경영인에게 모든 경영권을 완전 이양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1971년 3월 11일, 그가 세상을 떠난 후 공개된 유언장은 대한민국 전체를 묵직한 울림으로 뒤흔들었습니다.
평생 바쳐 일군 기업의 주식을 단 한 주도 자식에게 세습하지 않고, 교육 재단과 사회에 100% 환원한다는 선언. 아들에게는 "대학까지 졸업시켰으니 스스로 자립하라"며 유산 0원을 남겼습니다.
실패를 성공으로 변화시킨 유명인들의 인사이트를 다룹니다.
장소 1. 일제 세무 당국도 뚫지 못한 철옹성 (1930년대 유한양행 경성 본사)

1930년대 일제 강점기, 유한양행이 민족 기업으로 성장하자 일제 경찰과 세무 당국은 유한양행을 굴복시키고 꼬투리를 잡기 위해 수시로 장부를 압수하고 세무 조사를 벌였습니다.
그들은 유한양행의 뒤를 털면 탈세나 비리가 나올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수개월에 걸친 정밀 조사 끝에 일제 세무관들이 내린 결론은 충격적이었습니다. 1원의 탈세도, 단 한 줄의 허위 작성도 찾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오히려 조사관들이 "한국인 기업 중에 이렇게 완벽하고 정직한 세무 장부는 본 적이 없다"며 감탄하고 돌아섰습니다.
이 장소에서 그가 배운 사실은 이것이었습니다.
"정직함은 가장 뛰어난 비즈니스 방어 기제다. 타협하지 않는 윤리가 구축한 신뢰는 거대한 자본과 권력도 뚫을 수 없는 철옹성이 된다."
장소 2. 해외 동포들과 무장 독립을 결의한 현장 (1941년 미국 캘리포니아 자유한인대회)

1941년 4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재미 한인 단체들이 모여 독립운동의 방략을 논의하는 '해외한인대회'가 열렸습니다. 유일한 박사는 기업가의 신분을 넘어 이 대회에 적극 참여했습니다.
그는 대회의 집행위원으로 활약하며 한인들의 무장 독립운동을 적극 지원했고, 1942년 미군 주정부군 산하 한인 무장 부대인 '맹호군(Tiger Brigade)' 창설에 기여하며 자신의 자금과 네트워크를 독립운동에 쏟아부었습니다.
이 장소에서 그가 배운 사실은 이것이었습니다.
"기업가의 리더십은 자신의 비즈니스 울타리에 갇혀 있어서는 안 된다. 시대가 요구하는 정의 앞에 가장 먼저 행동하는 자가 진짜 리더다."
장소 3. 50세 기업가가 목숨을 걸고 총을 든 훈련장 (1945년 미국 OSS 캘리포니아 카탈리나 섬)

1940년대 태평양 전쟁이 막바지에 달하자, 유일한은 안전한 경영자의 위치를 내려놓고 독립운동의 최전선에 몸을 던졌습니다.
1945년 초, 미국 전략정보기관(OSS)은 일제가 점령한 한반도에 비밀 공작원을 침투시키는 '냅코 프로젝트(Napko Project)'를 가동했습니다. 당시 50세의 나이, 성공한 기업가였던 유일한은 암호명 'Agent A'로 OSS에 자진 입대했습니다.
캘리포니아 카탈리나 섬의 비밀 훈련장에서 50세의 유일한은 젊은 공작원들과 똑같이 진흙탕을 구르며 유격 훈련, 무전 공작, 침투 훈련, 낙하산 점프를 완수했습니다. 실패하면 잔혹하게 고문당하고 처형될 목숨을 건 작전이었습니다.
이 장소에서 그가 배운 사실은 이것이었습니다.
"국가가 없으면 기업도 존재할 수 없다. 기업가가 가진 모든 자원은 국가와 사회가 위기에 처했을 때 언제든 던져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장소 4. 한국 최초 전문경영인 제도가 탄생한 집무실 (1969년 서울 대방동 본사)

광복 후 유한양행은 대한민국 최고의 제약 기업으로 우뚝 섰습니다. 하지만 1969년, 유일한 박사는 세습 경영이 일반적이던 한국 사회에서 친인척을 모두 경영에서 퇴진시키고 전문경영인 조권순 사장에게 경영권을 완전 이양했습니다.
"피를 나누었다는 이유로 자식에게 회사를 물려주는 것은 기업을 망치는 일이며, 사회에 대한 배신이다."
이 장소에서 그가 배운 사실은 이것이었습니다.
"기업의 주인은 혈연이 아니라 능력과 윤리를 갖춘 경영진이어야 한다. 개인의 욕심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조직은 영속할 수 있다."
장소 5. 청지기 경영학이 완성된 유언장의 현장과 100년 유산 (1971년 서울 대방동 본사 & 유한학원)

1971년 3월 11일, 유일한 박사가 서거한 후 공개된 유언장은 한국 사회에 진정한 '청지기 경영학'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었습니다.
- 아들 유일선에게: "대학까지 졸업시켜 주었으니 스스로 자립하라." (유산 0원)
- 딸 유재라에게: "유한중·공고 진입로 부지 5천 평을 기증하고, 남은 주식은 교육재단에 기부하라."
- 손녀 유일링에게: "대학 졸업 시까지의 학자금 1만 달러만 남긴다."
- 소유 주식 전량: "유한학원과 유한재단에 기증하여 장학 사업과 사회 환원에 쓰도록 하라."
그가 심었던 '버드나무'는 시대가 변해도 꺾이지 않는 신뢰의 그늘이 되어 수많은 장학생과 국민들의 삶을 받쳐주고 있습니다.
이 장소에서 우리가 깨닫는 사실은 이것이었습니다.
"내가 번 돈은 내 것이 아니다. 사회가 나에게 잠시 맡긴 자산을 정직하게 관리하다가 다시 사회로 돌려주는 것, 이것이 청지기의 완벽한 마감이다."
Epilogue: 버드나무는 꺾이지 않는다
라초이의 대성공으로 미국에서 안락한 억만장자의 삶을 누릴 수 있었음에도, 유일한 박사는 먼지 날리는 고국의 땅으로 돌아와 약을 찍어내고 총을 들었습니다.
그는 기업가를 '돈을 버는 사람'이 아니라 '사회의 고통을 대신 짊어지는 청지기'로 정의했습니다.
비바람이 불어도 깊게 뿌리내려 지친 민중에게 그늘을 나누어주는 종로의 그 버드나무처럼, 참된 비즈니스는 세상을 향해 자신을 내어줄 때 비로소 영원한 신뢰와 유산으로 남게 됩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기지만, 위대한 기업가는 죽어서 '세상을 살리는 정직과 청지기의 신뢰'를 남깁니다.
오늘 당신이 일구고 있는 사업과 일터에서, 어떠한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당신만의 '버드나무'를 심어보시기 바랍니다.
실패를 성공으로 변화시킨 유명인들의 인사이트를 다룹니다.
※ 본 뉴스레터 Part 2의 사실관계는 유일한 박사의 일제 강점기 세무 조사 일화, 1941년 해외한인대회 참가, 1945년 미국 OSS 냅코 프로젝트(Napko Project) Agent A 참전 기록, 1969년 한국 최초 전문경영인 제도 도입 및 친인척 경영 퇴진, 1971년 유언장을 통한 전 재산 사회 환원 및 유한학원·유한재단 기증 등 공개 보도, 독립유공자 공훈록, 유한양행 90년사 및 공식 역사 기록을 근거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