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VP라고 하면 보통 앱이나 웹서비스를 생각합니다.
랜딩페이지를 만들고,
버튼 몇 개를 붙이고,
사람들이 실제로 쓰는지 확인하고,
반응이 없으면 빠르게 방향을 바꾸기도 하죠.
저도 커리어 내내 IT업계에 몸 담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방식에 익숙했습니다.
그런데 창업하면서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방법을 실물 제품에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개인적으로 제 수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제품인
실물 ‘베개’를 만들고 실험해보고자 했습니다.
가격은 약 20만원.
그러나 한 번 잘못 만들면 그대로 재고가 되는 제품입니다.
이걸 MVP라고 불러도 되는지부터 애매했습니다.
그래서 베개 하나에 가설을 넣었습니다
제가 확인하고 싶었던 건 거창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정말 자기 돈을 내고 더 좋은 베개를 사고 싶어 할까?”
그리고 그 안에 몇 가지 가설을 넣었습니다.
기존 베개에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이 있을 것.
베개의 ‘구조’를 다르게 만들면 그 ‘차이’를 느낄 것.
그리고 그 차이에 ‘20만원’ 정도를 지불할 사람이 있을 것.
이걸 확인하기 위해 ‘레이시보’라는 브랜드를 만들었습니다.
한국인 평균 인체 데이터를 참고해 높이와 형태를 설계하고, 여러 조건을 시뮬레이션하면서 구조를 다듬었습니다.
또한 남녀의 신체 조건 차이를 고려해 높이 조절 패드를 추가했고, 하나의 제품 안에서도 다양한 체형에 대응할 수 있도록 구조를 설계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이게 진짜 MVP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제품을 너무 열심히, 그리고 어렵고 복잡하게 만들었거든요.
오히려 MVP를 만들겠다는 사람이 제품 자체를 완성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쓴 셈입니다.
근데 진짜 어려운 건 만든 다음이었습니다
출시하면 답을 알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지인에게 써보라고 하면 대부분 좋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제가 궁금했던 건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자기 돈으로 살까?”
이건 완전히 다른 문제였습니다.
실제 판매를 시작하고 나서야 이 차이가 보였습니다.
제품을 만드는 동안에는 계속 “어떻게 만들까?”를 고민했는데,
시장이 열리고 나니 고민은 단순해졌습니다.
“왜 안 사지?”
그리고 그때부터 제가 보고 있던 숫자도 달라졌습니다.
총 판매량보다 비지인 구매가 몇 건인지,
어떤 경로로 들어왔는지,
무엇을 보고 결제했는지,
구매한 사람들이 어떤 말을 남겼는지.
첫 번째 비지인 구매가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베개 한 개가 아니라 두 개였습니다.
솔직히 기뻤습니다.
그런데 기뻐하고 나니 또 다른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게 시장이 있다는 증거일까, 아니면 그냥 한 번의 구매일까?”
MVP에서는 오히려 이 질문이 더 중요했습니다.
숫자만 보면 별것은 아니지만, MVP 관점에서는 꽤 중요한 데이터였습니다.
적어도 누군가는 이 제품에 자기 돈을 쓰기로 결정했습니다.
이제부터는 ‘제품이 괜찮다’가 아니라,
‘어떤 사람에게, 어떤 이유로 이 제품이 필요한가’
를 찾아야 했습니다.
실물 제품으로 MVP를 해보니 한 가지가 달랐습니다
IT에서는 MVP를 만들고 빠르게 수정할 수 있습니다.
기능을 하나 빼도 되고, 버튼 위치를 바꿔도 됩니다.
그런데 베개는 그렇지 않습니다.
실물 제품은 제작하기 위해 금형을 만들어야 하고 MOQ가 있으며,
이미 생산한 제품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실물 제품에서 MVP는
제품을 최소한으로 만드는 것보다, 검증할 질문을 최소한으로 만드는 것
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저는 레이시보를 만들면서 베개에서 너무 많은 것을 증명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처음부터 모든 답을 찾을 필요는 없습니다.
“이 제품을 누가 돈 주고 살 것인가?”
그 질문 하나부터 명확히 답을 찾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레이시보는 이제 출시한 지 두 달밖에 되지 않았고, 지금도 검증 중입니다.
오히려 그래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앱이 아니라 베개로 MVP를 만들어도 시장은 같은 방식으로 답을 줄까?
아직은 모릅니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히 알게 됐습니다.
결국 MVP의 시작은 제품을 만드는 순간이 아니라, 시장에 질문을 던지는 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