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번들링으로 매출은 확보하더라도 고객은 내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아래 글은 2026년 09월 23일에 발행된 뉴스레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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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클 3문장 요약
1. OTT와 커머스에서 번들링이 빠르게 확산되는 건, 고객을 모으고 콘텐츠·상품·물류 역량을 모두 직접 갖추는 비용이 너무 커지면서 서로의 강점을 연결하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기 때문입니다.
2. 네이버·컬리, 토스·오아시스마켓처럼 고객을 가진 플랫폼과 전문 사업자가 손잡으면 더 빠르게 경쟁력을 키울 수 있고, 이제 이런 방식은 후발주자뿐 아니라 넷플릭스 같은 선두 사업자에게도 새로운 성장 전략이 되고 있습니다.
3. 다만 번들링으로 매출과 고객 접점은 늘릴 수 있어도 고객과의 관계까지 내 것이 되는 건 아니기 때문에, 브랜드와 제작사는 플랫폼을 활용하면서도 고객이 자신을 기억하고 다시 찾아올 이유를 함께 만들어야 합니다.
이제는 정말 뭉쳐야 삽니다
번들링. 여러 상품이나 서비스를 하나로 묶어 판매하는 방식을 뜻합니다. 최근 이러한 번들링을 자주 볼 수 있는 곳이 OTT 시장입니다. 예를 들어 티빙에서는 프리미엄 이용권을 구독하거나 별도 패스를 추가하면 애플TV 오리지널을 볼 수 있고요. 쿠팡플레이에서는 와우 멤버십 회원이 월 3,300원을 추가로 내면 파라마운트+의 콘텐츠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OTT의 콘텐츠를 하나의 앱에서 즐길 수 있게 된 거죠.
이들이 하나로 묶이기 시작한 건 각자 고객을 모으고 붙잡는 데 드는 비용이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OTT 시장에서 넷플릭스가 압도적인 1위 사업자로 자리 잡으면서, 비교적 작은 규모의 서비스들이 독자적으로 구독자를 확보하고 유지하기는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아무리 좋은 작품을 선보여도 고객을 만날 기회 자체를 얻기 쉽지 않았거든요.
그렇다고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사업자들의 상황이 마냥 나은 것도 아닙니다. 압도적인 구독자를 확보한 선두 사업자 넷플릭스는 콘텐츠에 투자한 비용을 더 넓은 고객 기반에서 회수할 수 있습니다. 반면 이를 따라가는 2·3위 경쟁자들은 상대적으로 적은 구독자로부터 투자금을 회수해야 하죠. 그렇다고 적자를 감수하며 투자를 늘려도 고객이 계속 머물 만큼 풍성한 콘텐츠 구색을 갖추기는 쉽지 않고요.
그래서 번들링이라는 방식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더 많은 고객을 만나려는 OTT는 다른 플랫폼의 힘을 빌려 구독자를 확보하고요. 자리를 내준 플랫폼은 모든 콘텐츠를 직접 확보해야 하는 부담을 덜면서 경쟁력을 보완합니다. 고객 역시 익숙한 서비스 안에서 더 많은 콘텐츠를 즐길 수 있고요.
그리고 이러한 결합은 최근 콘텐츠를 넘어 커머스로도 확장되고 있습니다. 물론 엄밀히 말하면 상품이나 구독권을 하나로 묶어 파는 전통적인 번들링과는 형태가 조금 다릅니다. 다만 고객이 모여 있는 플랫폼에 다른 사업자의 상품과 전문성을 결합한다는 원리는 비슷합니다. 커머스 역시 고객을 모으는 데 비용이 들고, 전문적인 상품 구색과 자체 물류 역량을 갖추려면 상당한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시장의 기준이 되어가는 번들링
이러한 결합으로 성과를 내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가 네이버와 컬리입니다. 컬리N마트를 통해 컬리는 새로운 고객을 만날 접점을 얻었고, 네이버는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신선식품 구색과 배송 역량을 보완할 수 있었죠. 실제로 컬리N마트의 월 거래액은 출시 1년 만에 초기 대비 약 10배로 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성장이 최근 네이버의 거래액 성장과 컬리가 영업흑자 기조를 이어가는 데도 일정 부분 기여했을 것으로 보이고요.
그리고 최근에는 비슷한 방식으로 토스가 오아시스마켓과 손잡았습니다. 오아시스는 상품과 배송 역량을 토스쇼핑에 제공하고, 토스는 고객 접점을 넓혀주는 방식이죠. 토스 이용자는 오아시스에 별도로 가입하지 않아도 앱 안에서 상품 검색부터 결제, 배송 조회까지 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오아시스는 물동량을 늘려 단위당 물류비를 낮추고, 매입 규모를 키워 공급업체와의 협상력을 높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토스 역시 상품과 물류에 직접 투자하는 부담을 줄이면서 장보기 서비스를 강화할 수 있고요.
OTT와 커머스에서 이런 결합이 매력적인 이유는 비슷합니다. 선두 사업자가 가진 규모를 단기간에 따라잡기 어려운 상황에서 각자의 강점을 연결하면, 모든 역량을 직접 쌓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기 때문입니다. 콘텐츠 확보에 강한 기업과 고객을 모으는 데 강한 기업이 손잡듯, 상품과 배송에 강한 기업이 대규모 고객 기반을 가진 플랫폼과 만나는 겁니다.
그렇다고 이런 전략이 후발주자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이미 충분한 규모를 갖춘 기업이라도 모든 영역을 직접 운영하고 투자하는 데는 부담이 있으니까요. 직접 운영하면 품질과 고객 경험을 세밀하게 통제할 수 있지만,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할 때마다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갑니다. 반면 전문 사업자와 결합하면 이런 부담을 줄이면서도 빠르게 새로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최근 넷플릭스까지 미국에서 피콕이나 폭스원 같은 경쟁 OTT를 자사 앱에 들이는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아직 구체적으로 결정된 건 없지만, 선두 사업자 역시 다른 서비스와의 결합을 성장 수단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후발주자에게 번들링이 생존 전략이라면, 선두주자에게는 추가 성장을 위한 선택지가 될 수 있는 셈인 거죠.
비슷한 변화는 오프라인 유통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과거 롯데나 신세계 같은 유통 기업들은 전문점이나 브랜드 사업에 직접 투자하고, 이를 자사 매장의 경쟁력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유니클로, 무인양품, 하이마트 등을 운영하거나 들여온 롯데가 대표적이죠.
하지만 이제는 무신사, 올리브영, 다이소처럼 이미 고객을 끌어모으는 힘을 가진 외부 전문 유통업체를 유치하는 데도 적극적입니다. 직접 사업을 키운다고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고, 이미 고객이 찾는 브랜드와 리테일러가 훨씬 빠르게 방문 이유를 만들어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형태는 다르지만 핵심은 같습니다. 고객을 가진 플랫폼이 모든 상품과 서비스를 스스로 만들기보다, 이미 경쟁력을 갖춘 외부 사업자를 연결해 자신의 매력을 높이는 방식이니까요.
브랜드는 출구도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는 콘텐츠와 상품을 만드는 제작사·브랜드에도, 이를 모아 판매하는 중간 플랫폼에도 큰 기회이면서 동시에 위기이기도 합니다. 더 큰 플랫폼의 고객을 만날 수 있다는 건 분명 매력적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늘어난 고객과의 관계가 과연 누구에게 쌓이는지는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고객이 특정 플랫폼 안에서 상품을 발견하고 구매한 뒤, 다음 구매 역시 같은 플랫폼의 추천을 따라 한다면 어떨까요. 브랜드의 판매는 늘어도 고객과의 관계는 플랫폼에 쌓이게 됩니다. 콘텐츠 역시 고객이 제작사를 기억하고 다음 작품을 찾아보기보다, OTT가 추천하는 작품을 이어서 소비한다면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고요. 더 큰 플랫폼에 입점한 전문 유통업체나 OTT 역시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물론 유통 단계가 하나 더 생긴다고 생산자의 이익이 곧바로 줄어드는 것은 아닙니다. 판매량이 늘고 고객 확보 비용이 줄면서 오히려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도 있죠. 다만 특정 플랫폼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고 고객을 만나는 다른 경로가 약해진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플랫폼의 노출 방식이나 거래 조건이 바뀌어도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결과적으로 협상력 역시 약해질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이 자체적인 고객 기반입니다. 자사몰이나 자체 채널이 될 수도 있고요. 강력한 팬덤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채널을 갖추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고객이 어디에서 처음 만났든, 다음에는 그 브랜드나 제작자의 이름을 기억하고 다시 찾아올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핵심은 플랫폼 밖에서도 고객이 나를 기억할 이유를 만드는 일입니다. 최근 패션 브랜드들이 매장은 물론 카페 같은 식음료 공간까지 열며 고유한 경험을 강화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습니다. 나영석 PD가 동료 제작진과 함께 직접 플레이어로 전면에 나서 팬덤을 만드는 것 역시 마찬가지고요. 플랫폼이 열어주는 성장 기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도, 그 안에서 만난 고객과 자신만의 관계를 쌓아야 하는 겁니다.
결국 번들링 시대에는 얼마나 많은 고객을 만났는지만큼이나, 그중 얼마나 많은 고객이 나를 기억하고 다시 찾아오는지도 중요해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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