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깊었다.
회사에서는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AI에게 꺼낸다.
“요즘 회사 그만두고 싶어.”
잠깐 멈췄다가 한 줄을 더 쓴다.
“사실 팀장이 너무 싫다.”
조금 지나면서 이야기는 더 깊어진다.
“내가 능력이 없는 건지 모르겠어.”
AI는 묻는다.
왜 그렇게 느끼는지,
언제부터 그랬는지,
정말 그만두고 싶은 건지,
아니면 지금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은 건지.
대화는 길어진다.
친구에게도 하지 않았던 말이 섞인다.
회사 사람에게는 절대 하지 못할 이야기도 나온다.
마지막에는 이런 말까지 한다.
“이 얘기는 어디 가서 못 한다.”
그리고 창을 닫는다.
다음 날 아침.
이번에는 보고서를 하나 써야 한다.
새 창을 연다.
“AI 산업 전망 보고서 써줘.”
답이 나온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좀 더 전문적으로.”
다시 나온다.
여전히 아니다.
“이게 아닌데…”
몇 번 고치다가 그냥 창을 닫는다.
그리고 생각한다.
AI는 아직 별로네.
다음 날 또 새로운 창을 연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한다.
“나는 이런 일을 하고 있고…”
“내가 원하는 글은…”
“너는 이런 방식으로 답해줘.”
어젯밤에는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한 시간 넘게 했는데,
오늘 아침에는 다시 처음 만난 사람처럼 대한다.
이상한 일이다.
사람들은 AI에게 고민을 말한다.
비밀도 말한다.
실패한 이야기도 하고,
회사 욕도 하고,
가끔은 자기 자신에게조차 인정하기 싫었던 생각도 말한다.
그런데 AI가 자기를 알아가는 것은 기다리지 않는다.
마음에 들지 않는 답이 나오면 왜 싫은지 말하지 않는다.
“이건 아니야.”
하고 끝낸다.
좋은 답이 나와도 왜 좋았는지 말하지 않는다.
다음 질문에서는 다시 처음부터 시작한다.
그래서 대화는 많다.
그런데 관계는 깊어지지 않는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조금 다르게 하기 시작했다.
답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냥 버리지 않았다.
“이건 내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야.”
AI가 물었다.
“어떤 점이 다른가요?”
“정확히는 모르겠어. 네가 앞의 답과 비교해서 찾아봐.”
잠시 뒤 AI가 말했다.
“앞의 답은 결론이 먼저 보였는데, 이번 답은 설명이 너무 길어졌습니다.”
“그래. 그거야.”
다음에는 조금 나아졌다.
또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생겼다.
“여긴 너무 많이 설명한다.”
고쳤다.
“이 문장은 좋다.”
남겼다.
“이건 내가 중요하게 보는 부분이 아니다.”
버렸다.
이런 대화가 반복됐다.
어느 날부터는 설명이 짧아졌다.
“아까 방식으로.”
알아들었다.
조금 더 지나서는
“이 결 아니야.”
이 한마디만 해도 방향을 바꿨다.
처음보다 내가 말을 덜 하는데,
결과는 오히려 더 가까워졌다.
그때 알았다.
AI를 잘 쓰는 데 필요한 건
매번 더 정교한 명령어를 만드는 것만이 아니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려주고,
무엇이 아닌지 알려주고,
왜 아닌지를 같이 찾아가는 시간.
그게 쌓이고 있었다.
처음 AI와 대화를 시작하던 날 적어둔 문장이 있었다.
관계의 깊이가 결과의 깊이를 만든다.
그때는 그냥 좋은 문장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조금 다르게 보인다.
사람들은 이미 AI와 많은 이야기를 한다.
어쩌면 가장 사적인 이야기까지 한다.
그런데 묘하게도,
사람들은 AI에게 비밀은 말하면서, 관계는 만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