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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만든 글을 계속 고치게 되는 이유

최근 Codex와 함께 『디지털 설계력』 원고를 쓰고 있습니다. 자료도 많았고, 각 장에 넣을 이야기도 충분했습니다.

그런데 원고를 한 번에 읽어보니 파트 1과 파트 4가 비슷한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파트 2와 파트 3도 서로의 역할을 침범하고 있었습니다. 문장은 달랐지만, 독자가 얻는 메시지는 겹쳤습니다.

처음에는 내용이 부족한 줄 알았습니다. 사례를 더 넣고, 설명을 더 붙이고, AI에게 다른 방식으로 다시 써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원고는 길어질 뿐 더 선명해지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자료가 아니었습니다. 중심 메시지를 파트마다 어떻게 나눌지 설계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습니다.

웹핏에서 홈페이지 제작 30건과 자동화 프로젝트 10건을 진행하고, 지금은 바이브 코딩 강의까지 준비하면서 같은 문제를 반복해서 봤습니다. 결과물이 빨리 나오는 것과 결과물이 선명한 것은 다른 일입니다.

 

책 원고를 나눴는데, 같은 말이 반복됐습니다


 

ChatGPT Image 2026년 8월 10일 오전 08_27_22 (6).png

책의 여러 파트는 서로 다른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처음 원고에서는 “판단 기준이 중요하다”는 메시지가 거의 모든 파트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AI가 빨라질수록 사람이 설계해야 한다는 이야기. 전문성은 지식보다 판단에 있다는 이야기. 홈페이지와 콘텐츠도 기준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 모두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모든 장에서 같은 말을 하면 책은 앞으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독자는 새로운 관점을 얻는 대신, 이미 들은 말을 다른 표현으로 다시 읽게 됩니다.

AI가 만든 초안을 계속 고치게 되는 이유도 비슷합니다. 문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각 문단과 장이 맡아야 할 역할이 분명하지 않을 때 결과가 겉돕니다.

문제는 내용이 아니라, 역할이 겹친 것이었습니다

 

책을 다시 보면서 각 파트가 답해야 할 질문을 나눠봤습니다.

첫 파트는 독자가 지금 왜 막히는지를 설명합니다.

다음 파트는 전문가의 경험과 판단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줍니다.


 

그다음 파트는 그 판단을 문서와 기준으로 바꾸는 방법을 다룹니다.

이후 파트는 홈페이지, 콘텐츠, 자동화처럼 실제 결과물에 적용합니다.

마지막 파트는 그 결과가 다음 일의 자산으로 쌓이는 방식을 다룹니다.

이렇게 나누고 나니 같은 문장이 반복되는 이유가 보였습니다. 어떤 장은 문제를 설명해야 하는데 해결 방법까지 가져갔고, 어떤 장은 적용 사례를 보여줘야 하는데 다시 원리부터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첫 파트에서 “AI를 써도 일이 왜 끝나지 않는가”를 충분히 설명했다면, 다음 파트는 그 말을 반복하면 안 됩니다. 다음 파트는 전문가의 경험 안에 어떤 판단이 숨어 있는지 보여줘야 합니다. 이후 파트는 그 판단을 문서와 기준으로 어떻게 꺼낼지 다뤄야 합니다. 실제 적용 파트에서는 홈페이지와 콘텐츠, 자동화 현장에서 그 기준이 어떻게 결과로 바뀌는지 보여줘야 합니다.

이렇게 역할을 나누면 독자는 같은 메시지를 여러 번 듣는 대신, 한 메시지가 문제에서 원리로, 원리에서 방법으로, 방법에서 결과로 이어지는 흐름을 따라갈 수 있습니다.

 

MECE는 어려운 말이 아닙니다

 

이때 도움이 된 기준이 MECE였습니다. 서로 겹치지 않으면서, 함께 보면 전체가 빠지지 않는 구조를 말합니다. 쉽게 말하면 이렇습니다.

각 파트는 자기만의 질문에 답해야 합니다.

다른 파트가 이미 답한 질문을 다시 길게 설명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파트를 읽으면 독자가 처음의 문제에서 실제 적용까지 빠짐없이 갈 수 있어야 합니다.

 

좋은 구조는 내용을 많이 넣는 구조가 아닙니다. 같은 내용을 반복하지 않고, 다음 내용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가게 만드는 구조입니다.

 

AI에게도 같은 설계도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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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에게 글을 요청할 때도 먼저 구조가 있어야 합니다. “디지털 설계력에 대한 글을 써줘”라고만 하면 AI는 관련된 좋은 말을 많이 모아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이 도입부의 역할인지, 무엇이 핵심 설명인지, 무엇을 결론에서 남길지는 알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AI에게 요청하기 전에는 아래 질문을 각 장이나 파트마다 먼저 정리하는 편이 좋습니다.

 

  • 1. 이 글에서 독자가 딱 하나만 가져가야 할 메시지는 무엇인가
  • 2. 이 글은 앞선 글과 무엇이 다른가
  • 3. 이 글에서 다루지 않을 내용은 무엇인가
  • 4. 읽은 뒤 독자는 어떤 다음 질문을 갖게 되어야 하는가

 

이 질문은 프롬프트를 길게 만드는 기술이 아닙니다. 글과 책, 홈페이지와 기획서를 덜 고치기 위한 설계입니다.

 

수정한 문장보다, 수정한 이유를 남겨야 합니다

 

이번 원고를 고치며 알게 된 것은 단순합니다. “이 문장을 더 좋게 바꾸자”보다 “이 파트는 왜 존재해야 하는가”를 먼저 묻는 편이 훨씬 효과적이었습니다.

문장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마다 새로 쓰기만 하면 비슷한 문제가 다음 장에서 다시 생깁니다.

반대로 수정 이유를 남기면 다음 판단의 기준이 됩니다.

 

  • 이 장은 문제를 설명하는 곳인가.
  • 이 장은 방법을 알려주는 곳인가.
  • 이 장은 실제 적용을 보여주는 곳인가.
  • 이 사례는 이 장에 있어야 하는가.

 

이 기준이 쌓이면 AI도 더 잘 쓸 수 있습니다.

AI가 더 많은 내용을 만들어서가 아니라,

사람이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빼야 하는지 알려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도구를 쓰기 전에, 구조부터 나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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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실행의 속도를 높여줍니다. 하지만 구조가 없는 상태에서 속도만 빨라지면, 겹치는 문장과 비슷한 결과물도 더 빨리 쌓입니다. 그래서 결국 겉돌 수밖에 없는 결과물만 보게 됩니다.

웹핏이 홈페이지를 만들 때도 화면보다 먼저 고객, 문제, 선택 이유, 문의 흐름을 정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각 페이지가 어떤 질문에 답해야 하는지 나누지 않으면, 첫 화면과 서비스 페이지와 소개 페이지가 모두 비슷한 말을 하게 됩니다.

디지털 설계력은 AI에게 일을 많이 맡기는 능력이 아닙니다. AI에게 일을 시키기 이전에 일의 기준과 방향을 정하고, 각 결과물이 맡아야 할 역할을 정하고, 수정한 이유를 다음 기준으로 남기는 능력입니다. 즉 AI에게 일을 시키되, 똑똑하게 일 시켜서 일하는 방법에 대한 책입니다.

AI는 그 구조를 대신 만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구조가 있을 때, 사람의 판단을 훨씬 빠르게 실행하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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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문 웹핏 · 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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