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서울 강남과 LA에서 일하는 한미 양국 회계사입니다. 개발자가 아닙니다. 그런데 얼마 전 룰 엔진, 서버리스 백엔드, 스팸 방어까지 붙은 웹 도구를 라이브에 올렸고, 2주 넘게 운영하며 계속 고치고 있습니다. 이 글은 그 과정에서 배운 것들의 기록입니다.
1. 시작은 "매주 똑같은 질문"이었습니다
미국 진출 상담의 첫 30분은 거의 항상 같습니다. "델라웨어가 좋다던데요?" "와이오밍이 싸다던데요?" 정답은 "당신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인데, 그 '상황'을 가르는 변수는 사실 11개 정도로 정리됩니다. VC 투자 계획, 주주 구성(한국 법인인지 개인인지), 실제 사업장 위치, 비자 계획, 이익 송금 계획… 매번 말로 풀던 이 결정 트리를 도구로 만들면 어떨까 — 여기서 출발했습니다.
2. 해외 도구 8개를 뜯어보고 확신했습니다
만들기 전에 Stripe Atlas, doola, Firstbase, ZenBusiness, LegalZoom 등을 전부 돌려봤습니다. 공통점: 전부 '개인 창업자가 미국에서 창업'하는 전제입니다. 한국 법인의 자회사 구조, 한미 조세조약, 외국환거래법 신고 의무 — 한국에서 진출하는 사람에게 정작 중요한 것들은 아무도 다루지 않았습니다. 시장의 빈 자리가 명확하면 만들 이유가 생깁니다.
3. AI가 아니라 룰 엔진을 선택했습니다
요즘 분위기면 LLM에 답변을 던지고 추천을 받는 게 빨랐을 겁니다. 하지만 세무 조언은 오답 한 번의 비용이 너무 큽니다. 그래서 제가 직접 검증한 결정 트리를 코드로 고정하고, 테스트 63개로 회귀를 막았습니다. AI는 개발 과정에서만 썼습니다 — 경쟁 도구 조사, 세법 개정사항 검증(2025년 FinCEN BOI 면제, 2026년 텍사스 마진세 면세점 인상 같은), 그리고 코드 작성 자체를요. "AI로 만들되 AI가 답하지 않는 도구"가 제 결론이었습니다.
4. 게이트 설계에서 제일 오래 고민했습니다
리드젠 도구의 정석은 "결과 보려면 이메일 내놔"입니다. 퀴즈 퍼널의 옵트인 전환율이 40% 나온다는 벤치마크도 있습니다. 그런데 세무 도구는 신뢰가 전부입니다. 그래서 핵심 추천은 공개하고, 상세 리포트(주별 비용 비교, 원화 환산 총비용, 한국 신고 체크리스트)만 이메일로 잠갔습니다. 이탈해도 응답 데이터는 익명으로 남겨서 어떤 유형의 방문자가 오는지는 배울 수 있게 했고요.
5. 라이브 후에 진짜 문제가 나왔습니다
배포하고 끝이 아니었습니다. 운영하면서 발견한 두 가지가 특히 아팠습니다.
첫째, 선택지에 없는 주를 고른 사용자는 엉뚱한 답을 받고 있었습니다. 사업장 주 선택지를 캘리포니아·뉴욕·텍사스·플로리다·워싱턴 5개만 두고 나머지는 "그 외 주"로 처리했는데, 정작 제 엔진의 핵심 원칙이 "실제 영업하는 주에 직접 설립하라"였습니다. 조지아(현대·기아 클러스터)나 뉴저지를 고른 사람은 그 원칙이 적용되지 않고 델라웨어를 추천받고 있었던 거죠. 한국 기업이 실제로 몰리는 6개 주를 추가하고, 그 갭을 잡아내는 회귀 테스트부터 먼저 썼습니다.
둘째, 제가 쓴 글을 고객이 못 읽는다는 걸 뒤늦게 알았습니다. 결과 화면에 "블로커 C-Corp 구조의 표준 관할" 같은 문장이 있었는데, 업계에서만 쓰는 은어입니다. 사용자 노출 문구 168개를 전수 검토해 34곳을 고쳤습니다. 라틴어(situs, bona fide), 설명 없는 약어(ECI, UBTI), 직역 한자어를 걷어내고 "한국 본사가 미국 세무에 직접 노출되지 않도록 중간에 두는 미국 법인"처럼 풀어썼습니다. 그리고 금지어 21종을 스캔하는 가드 테스트를 넣었습니다 — 나중에 제가 무심코 은어를 다시 쓰면 테스트가 깨지도록요.
6. 배운 것
- 전문직의 반복 상담은 거의 다 결정 트리입니다. 코드로 옮기면 상담의 앞 30분이 자동화되고, 상담은 뒤의 진짜 어려운 30분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 도구를 만들며 제 지식의 구멍도 발견했습니다. "안다"와 "룰로 쓸 수 있을 만큼 안다"는 다릅니다. 뉴욕 신문공고 실비 같은 건 결국 카운티별 데이터를 다시 조사해야 했습니다.
- 전문가의 언어는 기본값이 아니라 습관입니다. 저는 제 문구가 충분히 쉽다고 믿었는데 아니었습니다. 도메인 전문가가 만드는 도구의 진짜 난이도는 로직이 아니라 번역에 있었습니다.
- 비개발자에게 지금은 확실히 특이점입니다. 다만 AI가 짜준 코드를 '검증하는 눈'은 여전히 도메인 전문가의 몫이었습니다. 세무 룰의 우선순위 충돌(익명성을 원하는데 VC 투자도 원하면?) 같은 건 AI가 아니라 제가 정해야 했습니다.
완성물은 여기 있습니다: https://sw-cpas.co.kr/tools/us-incorporation-finder/
같은 고민(전문 지식의 도구화)을 하는 분들과 이야기 나누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