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나는 안 씻고 헬스장부터 간다
씻지 않는다. 세수도 안 한다. 그냥 운동복 입고 나간다. 헬스장 가서 15분 러닝, 가볍게 웨이트 몇 세트. 끝나면 거기서 씻고 갈아입고 바로 출근.
그래서 항상 백팩을 메고 다닌다. 출근할 땐 운동복이, 퇴근할 땐 갈아입을 옷이 들어있다.
씻으면 안 가게 된다. 샤워하고 나면 이미 상쾌해져서 "오늘은 패스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안 씻은 채로 나가면 어차피 헬스장에서 씻어야 하니까 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매일 간다.
"급할수록 시간내서 운동하세요"
요즘 이직 준비하는 분들의 이력서를 봐드리고 있다. PM, PO, 마케터, 기획자. 지난 일주일만 해도 이력서 컨설팅 미팅 20건 넘게, 봐드린 이력서는 40건이 넘는다.
그분들을 만나면서 느낀 게 있다.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한 사람이 정말 많다. 서류가 안 되고, 면접이 안 되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싸움에 지쳐 있다.
그런 분들께 나는 꼭 이 말을 한다.
"급할수록 시간내서 운동하세요."
이력서가 급한데 운동이라니. 다들 그런 눈으로 본다.
근데 매우 도움이 된다.
100번 떨어졌다
내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건, 나도 그랬기 때문이다.
디자인 직군에서 PM으로 전환하려고 했다. 그런데 PM으로 회사에서 근속한 경력은 6개월짜리 망한 서비스 하나뿐.
이력서를 쓰려니 막막했다. 자랑할 숫자가 없었다. 서비스가 망했는데 무슨 임팩트가 있겠나.
서류를 넣으면 떨어졌다. 또 넣으면 또 떨어졌다. 진짜 100번은 떨어진 것 같다.
거부당하는 메시지가 나를 흔든다
이직 준비의 고통은 대부분 '거부'에서 온다.
서류 탈락 메일 한 통. 면접 후 불합격 통보. 객관적으로 보면 핏이 안 맞았거나 타이밍이 안 맞았을 수 있다. 내 탓이 아닐 수도 있다.
그래도 거부당하는 메시지 자체가 나를 흔든다. 내가 부족한가. 이러다 영영 못 가는 거 아닌가. 머리가 복잡해지고, 손이 안 움직이고, 더 불안해진다.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건 나밖에 없다
그때 나를 버티게 해준 건 운동이었다.
서류 결과는 내 손에 없다. 면접 결과도 마찬가지. 경쟁자가 누군지, 회사 내부 사정이 어떤지, 그런 건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운동을 갔다. 필라테스를 하루에 한 번, 무슨 일이 있어도 움직였다. 서류 떨어진 날도, 면접 광탈한 날도. 답답할수록, 막막할수록, 더 움직였다.
몸을 움직이면 뭔가 풀린다. 생각이 정리되고, 다시 앉을 힘이 생긴다. 그래서 버틸 수 있었다. 100번 떨어져도 101번째 지원서를 낼 수 있었다.
힘들수록 더 운동에 나를 가둔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힘들면 오히려 더 운동에 나를 가둔다. 아침에 러닝을 하면 하루를 집중할 수 있다. 머리가 복잡하고 마음이 무거운 날엔 요가를 간다.
운동을 하고 나면 머리가 가벼워진다. 생각이 집중되고, 오늘도 해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몸을 움직이면서 생기가 돈다.
루틴은 나를 외부 변수로부터 지켜준다
그렇다고 매일 완벽하게 가진 않는다.
오전에 중요한 업무 미팅이 있으면 패스. 아기 때문에 밤잠을 설친 날엔 무리하지 않고 쉰다. 컨디션이 바닥일 때 억지로 운동하면 오히려 하루가 망가진다.
중요한 건 '매일 완벽하게'가 아니다.
루틴 안에 나를 두되, 외부 변수에 크게 흔들리지 않는 것.
서류 떨어졌다고 루틴을 깨지 않는다. 면접 망쳤다고 하루를 포기하지 않는다. 못 가는 날이 있어도 괜찮다. 내일 다시 가면 된다. 이 유연함이 루틴을 오래 유지하게 해주고, 그 루틴이 나를 지켜준다.
결국 연봉 1.5배 올려서 합격했다
100번 떨어지고, 여름 두 달을 땀띠 나도록 이력서만 고쳤다. 그리고 합격하기 시작했다. 한 곳이 아니라 여러 곳에서. 연봉은 기존 대비 1.5배 이상. 처음으로 기업을 '선택'할 수 있는 위치가 됐다.
최근에 또 이직했다. 감사하게도 좋은 기회들이 왔고, 그중에서 고를 수 있었다. 지금은 즐겁게 일하고 있다.
답답할수록, 움직이세요
이직은 체력전이다.
좋은 이력서를 쓰려면 맑은 정신이 필요하다. 면접에서 빛나려면 안정된 멘탈이 필요하다. 거부당하는 메시지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외부는 어차피 내 맘대로 안 된다.
머리 복잡할 땐 일단 밖으로 나가보자. 걷다 보면 단단해진다.
나는 그렇게 버텼고, 지금도 그렇게 버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