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도체 납치에 대하여
공기가 차갑게 식어버린 회의실에서, 팀장은 완벽한 데이터와 논리를 가지고 A안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틀린 말은 하나도 없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김 대리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고, 이후의 대화는 더 이상 생산적인 논쟁이 아닌 감정적인 방어전으로 변질되기 시작한다.
우리는 흔히 조직에서의 소통이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이루어진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경영학과 신경과학의 관점에서 뜯어보면, 회의실의 진짜 지배자는 논리(Logic)가 아니라 뇌의 본능(Instinct)이다.
좋은 싸움 vs 나쁜 싸움의 경계
앞선 글에서 언급했던 캐슬린 아이젠하르트(Kathleen M. Eisenhardt)는, 최고의 팀을 '갈등이 없는 팀이 아니라, 잘 싸우는(Good Fight) 팀'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글 읽어보기) 여기서 '잘 싸운다'는 것은 업무 자체에 대한 이견인 과업 갈등(Task conflict)을 치열하게 나누되, 이것이 사람에 대한 비난인 관계 갈등(Relationship conflict)으로 번지지 않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 경계가 겨우 종이 한 장 차이와 가깝다. 연구에 따르면, 구성원들이 갈등을 다룰 때 '적극적이지만 호의적이지 않은(Active but not agreeable)' 태도를 보일 때 문제가 발생한다. 이는, '내용은 맞는데(Active), 말투가 공격적이거나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Not agreeable)' 경우다. 이때 발생하는 부정적 정서(Negative affect)는, 갈등이 가진 혁신의 잠재력을 완전히 상쇄해 버린다. 왜 그럴까?
말투가 상대의 뇌를 셧다운 시킨다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는 가장 명쾌한 답은 뇌과학에서 찾을 수 있다. 상대방이 공격적인 톤이나 비꼬는 태도("How you say it")로 말을 걸어오면, 우리의 뇌는 그 내용(What)을 분석하기 전에 위협으로 먼저 인식한다. 이때 뇌의 경보 장치인 편도체(Amygdala)는 즉각적으로 활성화된다. 그래서 편도체가 "삐용삐용! 비상사태!"라고 선포하면, 뇌는 생존을 위한 '투쟁-도피 반응(Fight or Flight Response)' 모드로 전환된다. 그다음은? 이미 우리가 잘 알고 있다시피 심박수가 솟구쳐 올라가고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분비된다.
그런데 치명적인 문제는 그다음부터이다. 그렇게 편도체가 과활성화되면, 인간의 고등적인 사고, 논리적인 판단, 그리고 충동 조절을 담당하는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으로 가는 혈류와 에너지가 차단되어 버린다. 이러한 현상을 다니엘 골먼(Daniel Goleman)은 '편도체 납치(Amygdala Hijack)'라고 불렀다.
즉, 앞선 상황에서 팀장이 (지적하는) 공격적인 태도로 말하는 순간, 김 대리의 이성을 담당하던 전전두엽은 꺼져버린 것이다. 논리를 이해해야 할 뇌 부위가 파업을 했는데, 아무리 훌륭하고 논리적인 데이터나 의견을 들이민들 입력이 될 리가 없다. 그러니 결국 남는 것은 "기분 나쁘다"는 감정적 잔여 물 뿐인 것이다.
심리적 안전감은 단순한 매너가 아니라, '생존 과학'이다
“무엇을 말하느냐보다 어떻게 말하느냐가 더 중요하다(What you say isn’t as important as how you say it).”
익숙해서 어딘가 오래된 격언 같지만, 이는 결국 뇌의 작동 원리를 꿰뚫는 말이다. '어떻게(How)'가 부드럽고 수용적일 때(Agreeable), 상대의 편도체는 안정을 찾는다. 그러면 뇌가 안전하다고 느낄 때 비로소 전전두엽이 켜지고, 그때야 비로소 우리가 원하는 '창의적인 대안'과 '생산적인 논쟁'이 가능해진다.
Google이 밝혀낸 고성과 팀의 유일한 공통점이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이었던 이유는 어쩌면 아주 단순하다. 안전한 환경을 기반으로, 팀원들의 이성과 논리를 담당하는 전전두엽이 24시간 켜져 있는 상태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리더는 뇌의 상태를 관리하는 사람
그렇기에 당신이 리더 또는 동료로서 해야 할 일은, 상대를 논리로 '제압'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의 논리가 상대의 뇌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도록 '활주로를 닦아주는 것'이다.
만약 다음 회의 때 누군가와의 논쟁이 예상된다면, 나의 말이 얼마나 논리적인지를 점검하기 전에, 나의 목소리 톤이나 태도가 상대의 편도체를 자극하고 있지는 않은지 먼저 점검하는 것이 현명하다. 상대의 뇌가 '공격'이 아닌 '협력' 신호를 감지할 때, 비로소 진짜 대화가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나에게도 그대로 돌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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