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퍼블리 박소령 대표님 "실패를 통과하는 일" 독후감 (1)
TL;DR
- 10년 동안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특히 도망치지 않고 스스로 끝을 맺으신 점에 깊은 존경을 표합니다.
- 또 공개하기 쉽지 않은 이야기를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큰 도움이 됐습니다.
- 많은 부분에서 배우고 공감하였지만 생각이 좀 다른 부분도 있었습니다.
- 책에서는 리드 호프먼의 “블리츠스케일링”이 생존자 편향(Survivorship Bias)의 오류에 해당한다는 지적을 언급합니다. 저도 공감합니다. 그런데 반대로 이 책의 일부 내용은 결과 편향(Outcome Bias)적 측면, 즉 실제로는 어떤 요소가 실패에 기여한 정도가 없거나 적음에도 불구하고 실패한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그 요소를 과대하게 해석한 측면이 없지 않나 생각했습니다.
- 대표님은 책임감이 강한 분이어서 실패를 되돌아보며 조금이라도 반성할 거리가 있는 부분은 샅샅이 뒤져 반성하신 것 같았습니다. 예를 들어 비용 통제에 소흘했던 점이나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회고하며 반성하셨습니다.
- 하지만 스타트업은 멱의 법칙(Power Law)이 지배하는 게임이고 창업자의 시간과 에너지는 한정된 자원입니다. 스타트업 업무 중 약 20%에 해당하는 부분이 전체 성과의 80%를 만들어 낸다고 생각합니다. 일부 영역에서 실수가 있더라도 성과를 드라이브하는 영역에서 좋은 퍼포먼스를 낼 수 있다면 실수는 상쇄됩니다. 비용이나 커뮤니케이션 등도 물론 중요한 일이지만 그것들이 스타트업에서 가장 중요한 20%에 해당하는지는 의문이 있습니다. 창업자는 일부 영역이 sub-optimal한 상태란걸 인지하더라도 자신의 한정된 시간과 에너지를 핵심이 되는 20%에 집중하는 것이 맞지 않나 생각합니다.
- 핵심이 되는 20%는 스타트업의 큰 방향성과 관련된 일들,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떤걸 그만하고 정리할 것인가 등에 관한 일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에서 가장 기대됐던 부분은 PMF를 찾아 가는 과정에 대한 회고였습니다. 계몽주의 사업의 한계를 이야기하신 부분, 성공한 서비스가 건드리는 인간의 본성과 7대 죄악을 연결시키는 부분은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한 분석이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갔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예를 들어 7대 죄악 중 색욕 부분에서는 온리팬즈(OnlyFans) 같은 서비스를 다루며 좀 더 깊이 분석해 보았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온리팬즈의 매출액, 사용자 수, 성장률 등을 보고 있으면 머리가 어질어질합니다. 사업이란 게 결국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공급해주고 그 대가를 받는 일이라고 했을 때, ‘과연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을 갖게 합니다. 이런 물음은 정답이 없는 어려운 문제지만 실제 몸으로 부딪치며 밀도 높은 경험을 하신 대표님의 이 문제에 대한 생각을 더 듣고 싶었는데 아쉬웠습니다.
- 또 스타트업은 그 본질에 있어서 운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큰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스타트업들도 돌아보면 큰 행운이 따랐기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우버는 유례를 찾기 힘든 초저금리 시대 속에서 엄청난 양의 자본을 조달할 수 있는 행운이 있었고, 퍼블리가 안타까운 결말을 맺은 데에도 갑작스런 코로나 사태와 그로 인한 벤처 자본 시장의 자금 경색이 영향을 끼쳤습니다. 만약 우버도 시장 지배력이 충분하지 않았던 상태에서 코로나 사태를 맞았다면 결과가 어떻게 됐을지 알 수 없습니다.
- 그래서 스타트업은 될 때까지 계속해서 영리한 베팅을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러번 반복해서 베팅할 수 있으려면 창업자는 스스로를 지킬 수 있어야 합니다.
- 대표님은 퍼블리에서의 마지막 1년을 매우 고통스럽게 보내셨습니다. 안타까웠습니다. 물론 어려움을 겪는 스타트업의 창업자가 행복할리 만무하겠습니다만, 그래도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조금 더 이기적이셨어도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선배 창업가에 대한 인간적인 연민 차원에서가 아니라, 우리가 플레이하고 있는 이 게임의 본질 차원에서 든 생각이었습니다.
- 성공한 스타트업 중에는 한 번에 잘 된 경우도 있지만, 한 번 망했다가 두 번째에 성공한 회사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와 반대로 한참 잘 나가다가 실패한 후 재기에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는 매우 많습니다. 이건 창업이 개인의 능력, 노력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도 운이 작용하는 요소가 더 크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똑똑하고 성실한 창업가라도 폭군 같은 불운 앞에선 한없이 무력한 존재일 뿐입니다.
- 그때 만약 창업가에게 목숨이 하나 더 있다면, 그래서 실패한 후에 한 번 더 도전할 수 있다면 성공 확률은 비약적으로 높아질 수 있습니다. 두 번째 도전을 할 수 있었던 창업자들을 보면 집이 부잣집이었던 경우가 많습니다. 그 창업가 가족의 현금과 기타 유무형의 자산이 그 분들을 보호해 주었고 두 번째 기회를 마련해준 것입니다.
- 두 번째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것이 창업가에게는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창업자는 스스로를 보호해야 합니다. 스스로를 보호한다는 것은 창업자의 현금과, 시간, 건강을 지키는 것을 말합니다. 퍼블리에서 마지막 1년 동안 있었던 일들, 그때 하신 작업들이 이 틀에 딱 맞는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냥 일반론적으로 말했을 때 실패를 정리함에 있어서는 설사 업계에서의 평판을 좀 잃더라도 창업가는 두 번째 기회를 확보하기 위해 분투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의 전제는 창업자가 다시 창업을 하겠다는 의지가 있을 때의 이야기이긴 합니다.
- 어쨌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면, 이 모든 단상은 일이 다 끝나고 난 뒤에 현장에 없었던 참견꾼으로서의 짧은 생각일 뿐입니다. 악전고투의 치열한 현장 속에서 고뇌하며 결정을 내려오신 대표님의 그것과 무게가 같을 수 없습니다. 누구나 링 위에 올라가기 전에는 그럴싸한 계획을 갖고 있지만 일단 링에 올라가 흠씬 두들겨 맞은 다음부터가 본게임의 시작일텐데, 만약 제가 당시 현장에 있었다면 대표님이 하신 것의 절반만큼이라도 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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