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영 #프로덕트 #기타
수십 년째 그대로인 ‘안전점검’, 왜 IT 스타트업의 기회인가?

안녕하세요.
국내 최초의 설비 안전점검 SaaS ‘지킴e’를 만들고 운영하고 있는 유광열입니다.

안전점검으로 무슨 스타트업을 한다는 거지?
라며, 생소해 하실 분들이 많으실텐데요. 실제로 그런 반응도 많이 있었습니다.

사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설비 안전점검을 법으로 의무화한 나라입니다.
그런데도 점검현장에서는 여전히 종이 점검지에 수기로 작성하고, 이를 서면으로 대면 전달하는 아날로그 방식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었죠.

저는 이 과정을 지켜보며, 복잡하고 어려운 안전서비스를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디지털화하면, 안전의 질도 높이고 산업 전반에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발견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지킴e’를 만들게 된 출발점이었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제가 이 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수십년이 지나도 바뀔 기미가 보이지 않는 이 업계에서 주변의 조언과 현장의 경험과 관심이 쌓여 자연스럽게 이 문제를 깊이 들여다보게 됐고, 
결국 많은 시행착오 끝에 결국 SaaS 형태의 서비스로 풀어야겠다는 결론에 닿았습니다.

이 글에서는 제가 어떻게 ‘안전점검’이라는 낯선 분야에서 시장의 기회를 발견하고,
스타트업을 시작하게 됐는지 그 과정을 한번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건축 전공자가 전기안전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

 

2000년도 초반 밀레니엄 시대 학번에 건축을 전공하던 학부시절, 
설계사무소나 건설사로 진로를 정하는 대부분의 동기들과는 달리 부동산 분야에 관심이 좀 있었던 저는 때마침 건설경제 전공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제 진로를 바꿔 놓았습니다.

“이제 우리나라도 점점 경제성장이 완성단계에 접어들면, 건물도 더이상 지금처럼 계속 지을수 없게 된다. 앞으로는 건설 중심의 산업에서 건물 사용단계인 유지관리 중심으로 넘어갈 거야. 미국이나 일본처럼.



저는 그 말씀이 머릿속에 확 꽂혔습니다.
아, 이제는 부동산 시장도 짓는 만 하는 건설사 중심 시대에서, 
기존 건물을 ‘잘 관리해서 가치를 유지시켜주는 자산관리 서비스 중심으로 옮겨가겠구나” 하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자연스럽게 ‘건물 유지보수(FM)’와 ‘부동산 자산 관리(PM)’라는 키워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친구들이 방학마다 건설회사나 설계회사로 인턴 자리를 찾아 나갈 때, 저는 구조설계 사무실에 있는 선배들을 쫓아다니며 안전진단 현장을 따라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졸업반이던 2008년 여름방학, 일손이 부족하던 아버지 회사에서 잠시 일을 돕게된 것이 
지금의 창업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사실 그 전까지는 아버지께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시는지 정확히 몰랐습니다. 
단지 전기안전관리라는 사업을 한다는 것만 알고 있었을 뿐이었죠. 

그런데 알고 보니 아버지 회사는 전기 뿐만이 아니라, 소방, 기계 분야 등 산업설비 전반에 대한 안전점검 서비스를 제공하는 국내에서도 손에 꼽히는 규모의 시설관리 전문 회사였습니다.

그 중에서 제가 맨처음 돕게 된 일은 전기안전진단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이었는데,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현장에서 기술자 분들이 수기로 작성해오면 사무실로 들어와 다시 한글 파일로 저장하기 위해 옮겨서 복+붙하기를 반복하고 있던 겁니다.
 


그나마 1년에 한번 하는 연차정밀진단 보고서는 파일에라도 옮겨서 저장해두지만,
1달에 한번 하는 월차점검보고서는 그냥 종이 점검지에 작성해서 고객에게 전달하고 끝내는 아날로그 방식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구시대 유물인줄로만 알았던 먹지가 아직까지 이용되고 있다니요..)

‘아니, 왜 아직까지 이렇게 종이에 적고 있지? 왜 아무도 전산화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지?”
저는 이 같은 현장 상황과 변하지 않은 점검방식에 의문을 가졌고 시간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 안전관리의 현실, 그리고 해결하고 싶은 문제

 

그 고민에 해답을 찾던 중 저는 한국이 전 세계에서 설비 안전점검을 법으로 의무화하고 있는 유일한 나라’라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왜 우리나라만 의무로 지정했을까?”
만약 안전관리가 자발적으로 시행됐다면, 더 효율적인 방식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을까?

그 배경에는 한국 사회 전반에 뿌리내린 ‘안전불감증’이라는 특유의 문화적 현상이 있습니다.
이는 우리말에만 존재하는 개념으로, 해외에는 정확한 대응어조차 없을 만큼 독특한 표현입니다.
더 놀라운 건, 이 이야기를 한국 사람들에게 하면 대부분 고개를 끄덕이며 웃습니다.
그만큼 이 현상은 우리의 일상과 문화 속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는 의미일지도 모릅니다.
 

한국은 눈부신 속도로 산업화를 이룬 나라로,
지금도 많은 개발도상국들이 우리의 성장 모델과 기술 인프라를 벤치마킹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빠른 발전 속도만큼 안전 의식이 따라오지 못한 측면이 있습니다.
실제로 한국의 산업재해 사망률은 OECD 평균 대비 월등히 높으며,
비슷한 경제 수준의 국가들과 비교해도 최소 5~10배 이상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인프라가 부족해서 발생하는 개발도상국형 사고와는 다릅니다.

지킬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간과되거나 무시되어 발생하는 사고가 많다는 점에서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기사참고: 연합뉴스기사)
 

결국 한국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법적 안전점검 의무제도를 갖게 되었고,
이 제도는 때때로 ‘불편한 규제’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매뉴얼 기반의 안전관리 시스템을 제도화한 유일한 사례라는 점에서 굉장히 주목할 만한 구조입니다.
 

저는 이 점에서 하나의 기회를 보았습니다.
비록 규제에서 출발했지만, 지금의 한국식 안전점검 체계는 법과 시스템이 정비된 ‘수출 가능한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동남아, 중동, 남미 등 안전 인프라가 아직 미비한 국가들에서는
지키고 싶어도 방법을 몰라 지키지 못해 사고가 반복되는 상황이 많습니다.

The scene with emergency workers where Kyaw was electrocuted.
기본적인 점검 서식조차 없어 설비 고장을 제때 파악하지 못하고,
기록이 남지 않아 동일한 문제가 재발하는 현실 속에서
한국식 매뉴얼 중심의 점검 시스템은 바로 현장에 적용 가능한 안전관리 교본이 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빅데이터와 AI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시대입니다.
저는 이 기술적 흐름과 한국의 제도화된 안전점검 구조를 결합해,
디지털 기반의 글로벌 안전관리 솔루션으로 확장할 수 있는
지금이야말로 가장 적절한 타이밍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 아무도 이걸 디지털로 안 만들었을까?”

 

저도 처음부터 “디지털 안전점검 프로그램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기존의 안전점검 유지고객을 대상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장해보는 쪽에 집중했습니다.

예를 들어 노후 장비 교체사업, 에너지 절감 컨설팅, 장비 유통 등 
우리가 이미 확보한 고객 기반에 새로운 사업을 얹어보려 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기대와 달랐습니다.
우리가 새롭게 진출한 시장에서는 이미 더 강한 경쟁력을 가진 업체들이 탄탄한 입지를 확보하고 있었고, 평소 우리를 좋게 평가하던 기존 고객들조차 새로운 영역에서는 우리를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 시도의 문제는 우리가 가진 ‘핵심 역량’을 살리지 못했다는 점이었습니다.
겉보기엔 연관 사업처럼 보였지만,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영역과는 본질적으로 달랐던 것입니다.
그때는 그것이 최선이라고 믿었지만, 타 경쟁사보다 차별점이 두드러졌나 하면 그렇진 않았던 것이죠.


그래서 생각을 바꿔보기로 했습니다. 
‘아직 해결하지 못한 문제’ 중에서 나의 강점을 살릴 만한 솔루션은 무엇일까? 
그러다가 여전히 종이와 워드를 쓰는 아날로그식 현장에 눈길이 갔습니다. 

놀랍게도 이 문제는 여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회사 동료들과 주변 회사들에 물어봤지요.
‘종이점검을 계속 유지해야하느냐?” “디지털안전점검이 필요하지는 않은가?”
소위말해 Needs를 물어본 것이죠.

변화가 두려운 일부 극소수를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은 
언제까지 이렇게 종이로 하느냐
디지털로 변하지 않으면 안전관리의 미래도 없다”며 
지금의 안전점검 방식에 대해 개선이 필요함을 매우 많이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한번 시도해보자 생각했습니다. 
처음엔 단순하게 생각했습니다.
PM을 채용하고, 개발사를 선정하면 ‘누군가 만들어줄 수 있을 것’이라 여겼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명확한 실패였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이 시장의 문제점과 본질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직접 나서야만 
“겨우 가능하겠구나”라고 말이죠.

 


그래서, 직접 만들기로 했습니다.

 

문제는, 저는 IT개발 프로젝트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주변에 개발자도 없었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죠.

그래서 저는 창업 카페, 창업 교육과정, 개발자 네트워크 같은 곳을 찾아다니며
일단 사람부터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개발자를 만나면 제가 경험한 산업 이야기를 들려주고, 또 거절당하면
“혹시 다른 분을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라며 매달리다시피 했습니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다니다 보니, 오히려 확신이 더 강해졌습니다.
이 시장은 ‘의미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냥 몰라서 아무도 손대지 않았던 영역’이라는 것을요.

200만 명이 넘는 기술자가 일하고, 연간 10조 원 이상의 규모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이 산업을 어떻게 디지털화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 뒤로 몇 년 동안, 뜻이 맞는 개발자들과 팀을 꾸렸다가 해체하고,
기획 → 개발 → 폐기 → 다시 기획을 수차례 반복하며,정말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기능 위주의 시스템이 아니라,
현장을 가장 잘 이해하고, 사용자가 가장 쉽게 쓸 수 있는 솔루션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리고 이런 지난한 과정 끝에 ‘이제는 세상에 내놓을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드디어, 올해 2월 국내 최초의 안전점검 SaaS ‘지킴e’를 런칭했고, 
2개월만에 점검기술자 450명, 등록건물 13,000개를 돌파하여 빠르게 안전데이터를 확보해 나가고 있습니다.

 

 

나는 무엇을 해결하고 싶은가?

 

제가 주목한 문제는 단순히 종이 점검지를 디지털로 바꾸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진짜 문제는, 그 기록들이 ‘데이터’로서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한다는 점이었습니다.

현장의 안전점검기록은 실시간으로 저장되지 않고,
필요할 때 쉽게 조회하거나 분석할 수도 없습니다.
누가, 언제, 어떻게 점검했는지도 알기 어려운 구조에서
사고를 사전에 막는 게 아니라, 사고가 난 뒤에야 문서를 뒤적이는 현실이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그 현실을 바꾸고 싶었습니다.
기술을 접목하면 더 정확하고, 더 빠르고, 더 신뢰할 수 있는 점검이 가능하다고 믿었습니다.
그 믿음이 결국 ‘지킴E’라는 플랫폼으로 이어졌고,
지금은 수많은 현장에서 매일 수백 건의 점검이 이 시스템을 통해 이뤄지고 있습니다.

물론 여전히 갈 길은 멉니다.
기존 방식을 바꾸는 건 언제나 쉽지 않으니까요.

그래도 저는, 이 산업에서 변화가 왜 필요한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확신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종이점검 방식에 익숙하고 바뀌는 걸 꺼리는 분들을 꾸준히 만나고 있습니다.
그럴 때 저는 억지로 바꾸려 하지 않습니다. 설득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대신 이렇게 묻습니다.

무엇을 해결해드리면 지금의 불편함이 사라질까요?

그 질문 하나만은,
앞으로도 제가 계속 이 일을 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될 겁니다.

 

 

 

<다음 글 예고>
2. 3억을 태운 IT프로젝트가 실패한 이유, 그리고 깨달은 교훈.
 👉 개발사도 있었고 예산도 있었는데, 왜 안 됐을까?

3. 시도한 사람이 없던 것이 아니었다. 성공한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 아무도 안 했던 게 아니라, 아무도 끝까지 못 했던 이유

4. 지킴e는 어떻게 2개월 만에 13,000개 건물을 확보했나?
👉 제품도, 회사 이름도 생소했는데 사람들이 몰린 이유

5. 소비자 말을 절대 그대로 믿으면 안되요.
👉 “어유..있으면 당연히 쓰지~”이런말 절대 믿지 마세요 – B2B 창업자의 필드 리서치 실전기

링크 복사

유광열 마이스터 · CEO

댓글 2
광열 님의 아티클이 EO 뉴스레터에 실렸습니다. 이번 주 이오레터를 확인하세요!

>>> https://stib.ee/2zsH
좋은 글 감사합니다!
추천 아티클
유광열 마이스터 · CEO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