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5. 6명에서 24명, 두번째 방글라데시 출장
안녕하세요. 저는 포텐셜의 대표 신동섭입니다.
방글라데시에서 북미, 한국, 일본 대상으로 소프트웨어 에이전시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비슷한 도전을 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1. 준비
이번 출장은 정말로 배운 것도 많고, 많은 자극을 받았던 출장이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할 지 모르겠지만 하나씩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이번 출장은 팀내 Siam의 제안에서 시작되었다.
Siam
"루카스, 우리 요 몇 달간 프로젝트 정말 쉴새 없이 달리기도 했고, 한번 리프레쉬가 필요할 것 같은데 직원여행 가는거 어때?"
Lukas
"음 일단 나는 괜찮은데, 팀원들이 정말 직원여행 좋아하는거 맞어? 한국은 대표가 추진하는 직원여행을 조금 싫어하는 경향이 있거든"
Siam
"우리는 정말 좋아해. 그리고 회사를 외부적으로 알리는 효과도 있고, 루카스 네가 오케이만 해준다면 우리가 알아서 준비해볼게"
그렇게 팀은 직원여행을 기획했고, 나는 와이프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출장 승인을 얻어냈다. (지금은 아이가 하나지만, 둘이되면 더 힘드니 지금 한번 더 가야 하지 않겠느냐...)
팀원들은 늘 내가 바쁜걸 알기에, 모든 면에서 나를 배려해준다. 호텔 선정 / 비행기 예약 / 버스 예약 / 회사 굿즈 제작 등을 모두 알아서 해줬다.
2. 변화
올해 2월 28일, 방글라데시 다카에 처음 도착했던 때가 기억이 생생하다. 낯선 국가, 낯선 도시, 뿌연 하늘, 엄청난 교통 체증 등 모든 것들이 낯설었지만 두 번째 방문이라 그런지, 조금씩 익숙해졌다. 교통체증에도 여유를 갖게 되었고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방글라데시 소년 소녀들에게도 미소로 화답하는 여유를 갖게 되었다.
공항에 도착하자 Siam과 Afnan이 기다리고 있었다. 팀원들은 이미 직원여행 장소인 Cox's Bajar 로 이미 출발해 있었고, 우리는 다음날 국내선 비행기로 이동할 예정이었다.
모니터로만 보다가 실제로 얼굴을 만나보는 건 리모트워크가 주는 재미 중의 하나다. 누구의 덩치가 큰 지 작은 지 예상할 수 없는데, 한 예로 늘 꾸부정하게 앉아 있던 Siam은 정말 엄청나게 큰 덩치를 자랑하고, 거꾸로 엄청 커보였던 팀원이 막상 만났을 때에는 작던걸 보면 참 재미있다. Afnan은 내가 예상했던 그대로의 모습 이었다.
다음날 국내선을 타고 Siam과 Cox's Bajar로 이동했다. 나는 비행기를 타면 꼭 옆자리에 앉아있는 승객에게 말을 건다. (인생은 행운과 노력으로 결정되는데, 사실 행운도 일정부분 노력으로 올릴 수 있다.) 그 사람의 인생을 들어보는 것도 즐겁고, 예상치 못한 비즈니스 기회를 발견하기도 한다. 시암 옆에 앉아 있는 저분은 다카에서 부동산 개발업을 하는데, 신기하게 오늘 우리가 가는 리조트의 지분을 보유중이라고 했다. 나중에 다카에 사옥을 올리게 되면 꼭 연락달라고 하셨다. 다카에서 점심을 사주신다고 하셨으나, 일정이 안되어 패스
콕스바자르는 한국으로 치면 제주도 같은 곳이다. 신혼여행으로도 많이가고, 괜찮은 호텔들이 있어 직원여행으로도 많이 간다고 했다.
우리가 머물게 된 곳은 콕스바자르의 Sea Pearl 리조트 라는 곳이다. 아쉽게도 나는 호텔, 리조트 등에 관심이 없다. 팀원분들은 좋아했던 것 같다. 방글라데시 페이스북에는 직원여행 관련 포스팅이 많이 올라오는데, 어떤 회사가 어느 숙소에 머물렀더라 이런걸 다 아는걸 보면, 회사의 복지를 간접적으로 가늠할 수 있는 척도 인것 같았다.
(프로그램이 많아, 자세한 직원 여행 내용은 생략..)
9개월 사이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6명의 작은 팀이 24명으로 늘어났고, 진행하는 프로젝트도 많아졌고, 규모도 커졌다. 회사 매출도 올라갔지만, 내 삶에 변화는 없었다. 먹던거 먹고, 입는거 입는다. 변화라면 스트레스 강도가 점점 커졌다. 회사가 직면한 문제도 달라졌다.
1년 전 과제
- 방글라데시 개발자 채용을 잘할 수 있을까?
- 리모트로 회사 운영이 가능할까?
- Flexible Working Hour로 회사 운영이 가능할까?
- 내가 개발을 잘하는 게 아닌데, 좋은 개발사로 키울 수 있을까?
- 내가 개발을 계속하는게 맞는 걸까?
- 팀장 경험이 없는데, 팀을 잘 운영할 수 있을까?
지금 과제
- 프로젝트 매니징을 어떻게 더 최적화할까?
- 어떻게 하면 내가 세일즈만 해도 회사가 돌아가게 만들까?
- 어떻게 하면 회사 현금흐름을 예측가능하게 운영할까?
- 어떻게 하면 방글라데시에서 제일 다니고 싶은 회사로 만들까?
- 어떻게 하면 공평한 인센티브 시스템을 만들까?
지금 고민하고 있는 문제들도 곧 해결이 될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문제들이 나타나 더 큰 스트레스를 주겠지. 사업은 이 문제와 스트레스가 앞으로도 영원히 반복될 거라는 걸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1년 전 나에게 팁을 줄 수 있다면, '너무 모른다는 것에 대해 겁먹지 말고, 지금 처럼 책 읽고, 다른 사람들에게 질문을 많이 하다보면, 답을 곧 찾을 거다' 라고 말해주고 싶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태어나서 한번도 서로 만나본적 없던 방글라데시 개발자 / 디자이너들이 가족들을 대동해 콕스 바자르란 외딴 곳에서 만나 한국에서 온 대표와 프로필 사진을 찍고 있다. 아마 확률로 따지자면 소숫점 아래로 정말 낮을 것이다. 나의 작은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회사가 사람들 사이에 인연을 만들고, 기억을 남기게 되는 장면을 보고 있자니 감회가 새로웠다. 앞으로는 또 어떤 모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4. 방글라데시의 영웅들
이번 출장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날이었다. 이 일을 시작하면서, 팀원들에게 귀가 따갑게 들은 두 회사 'Musemind'와 'Brainstation 23'의 CEO를 만날 수 있는 날이었다. 한국에 있을 때 부터 두 분을 만나기 위해 여러 경로로 컨택을 했다. 이메일, 지인 등등. 정말 감사하게도 미팅이 잡혔고, 두 분다 결혼을 하셔서, 사모님을 위한 선물을 미리 올리브영에서 한아름 샀다.
뮤즈마인드는 2022년에 설립된 2년밖에 되지 않은 디자인 에이전시다. 하지만 월에 $1M 넘게하고 있고, 성장속도도 정말 빠르다. 실력은 두말할 것도 없다. 너무 잘한다. 한국에 있을 때부터 늘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운이 좋게도 대표 Nasir 씨를 직접 만날 수 있었다.
2021년 그가 프리랜서로 활동할 때부터, 2022년 사업을 시작하고 오늘의 뮤즈마인드가 있기까지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Nasir
"방글라데시의 많은 개발 에이전시들이 코드만 보고 있을때, 우리는 디자인에 집중한 유일한 에이전시 였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개발 에이전시에서 디자인을 등한시 하고 있을때, 우리는 결국 클라이언트가 보게되는건 디자인(프론트엔드)라는 걸 알았어요. 그래서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는 디자이너들을 채용하고, 글로벌 탑티어 디자인 에이전시가 되겠다는 비전으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번 돈을 대부분 재 투자했습니다. 사무실에 아이맥을 채우고, 정말 큰 돈을 들여 인테리어를 했습니다.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을 주려면 꼭 필요한 투자였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 당시에는 너무 많은 비용이 나가 조금 무섭기도 했습니다)"
Lukas
"회사는 성장하면서 여러 단계에서 다른 문제에 직면한다고 생각합니다. 1명일 때, 20명일 때, 50명일 때. 저희는 24명일 때의 문제를 겪고 있는데요. 저희는 세일즈에는 문제가 없지만 오퍼레이션에 문제가 많습니다. 뮤즈마인드는 어떻게 해결했는 지 들려줄 수 있을까요?"
Nasir
"좋은 소식은 일단 비즈니스는 잘 작동하고 있다는 겁니다. 회사가 돈만 벌고 있으면, 그 외의 문제는 부차적이니 크게 고민하지 않아도 됩니다. 시니어급의 프로젝트 매니저를 먼저 채용해보는건 어떨까요? HR쪽도 채용을 해보니 정말 많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오퍼레이션 문제는 회사의 단계에 따라 성격만 달라질 뿐이지, 평생 고민하게 되니 너무 걱정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쉬운 타입의 문제 입니다."
Lukas
"에이전시 비즈니스 모델은 크게 3개의 기둥으로 이뤄져있다고 생각합니다. 1) 세일즈, 2) 오퍼레이션, 3) 컬쳐. CEO로서 하나에 집중한다면 어디에 집중하시겠나요? 실제로는 어떻게 하고 계신가요?"
Nasir
"무조건 세일즈 입니다. 저는 지금 다른 업무는 보지 않고 있습니다. 세일즈에 집중하게 된건 8개월 밖에 되지 않았는데,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던 것 같아요. 저도 디자이너 출신이다 보니 계속 디자인 업무를 하고 싶은 유혹에 시달리게 되는데, 대표는 무조건 세일즈에 집중해야 한다고 봅니다."
"아 참, 추가로 외부 컨설턴트에게 상담을 한번 받아보는 것도 추천합니다. 회사 대표들은 대개 Bias Risk를 겪기 쉬운데, 외부 시선을 통해 이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저희도 외부 컨설턴트 도움으로 매출이 정말 많이 늘어났어요"
뮤즈마인드 방문을 통해 느낀건, 정말 활기차고 회사 전체가 뮤즈마인드만의 문화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또한 젊은 CEO가 운영하는 회사다 보니, 방글라데시 디자이너들에게 주는 영향력도 굉장히 크다고 본다. 이 회사가 가장 무서운 점은 우리나라의 삼성전자나 하이닉스처럼 '방글라데시에서 가장 가고 싶은 디자인 회사로 자리매김했다는 점'이다. 너무 부러웠고, 많이 배웠다.
또 다른 회사는 Brainstation23라는 곳이다.
이 방문이 얼마나 몰입되고, 흡입력 있었냐면 흔한 사진 하나 찍지 못했다. Brainstation23의 대표 Raisul 씨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걸 알고 있었다. 포텐셜을 시작할 때부터 가장 닮고 싶은 회사가 바로 Brainstation23 이었으니까. 그의 모든 인터뷰들을 몇 번씩이나 봤는 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접 만난 그는 어나더레벨이었다.
Brainstation23은 800명의 개발자가 근무하고 있는 개발에이전시다. 방글라데시 컴퓨터과학 졸업생이라면 누구나 이 회사에 들어가고 싶어한다. 전체적인 개발자의 수준이 매우 높고, 2006년에 세워진 회사인 만큼 안정적인 프로세스가 구축되어 있다. 사실 Raisul씨가 잠재적인 경쟁사가 될 수 있는 곳의 대표를 만나줄 필요는 전혀 없었다. 대표의 시간이 회사의 가장 중요한 자산임을 너무나 잘 알기에, 사실 그가 만나줄 기대는 전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말 감사하게도 방문을 허락해 주셨다.
일단 규모가 정말 컸다. 3곳의 사무실 중 하나를 방문했는데, 몇 백 석의 모니터와 데스크탑이 일렬로 배치 되어 있었다. 미팅은 작은 미팅룸에서 진행이 되었다. 소탈해보이는 Raisul씨가 한 손에 책, 수첩을 든 채로 미팅룸에 들어오셨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는 어마어마한 독서가였다.)
일단 제너럴한 질문으로 시작했다.
Raisul
"언론에 공개된 이야기는 어느정도 아실테니 넘어가고, 다루지 않은 이야기를 해볼게요. 이건 제가 최근에 읽기 시작한 'Leadership Pipeline'이라는 책인데, 각각의 리더에게 적절한 책임감을 분배하는게 중요하다는 내용의 책이에요. 예를들어 12명의 프로젝트 매니저를 관리해야 하는 특정 포지션이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이 때 이 포지션에게 모든 프로젝트 성공여부의 부담을 지워서는 안됩니다. 프로젝트의 성공은 프로젝트 매니저에게 달려 있지, 프로젝트 매니저를 관리하는 사람에게 달려있는게 아니니깐요. 리더쉽을 파이프라인 형태로 관리해야한다는 것을 최근에 배웠어요"
하면서 책을 펴시는데, 모든 장에 형광펜으로 줄이 빽빽히 그어져 있었다.
Raisul
"피터 드러커였나, 사람들은 무능함이 들어나는 단계까지 승진한다(People are promoted to level of incompetency) 라는 이야기에 대해 들어본적이 있을거에요. 어떤 책에서 봤는데, 구글은 이런식으로 해결하더라구요. 무조건 승진시키기 전에 관련 직무를 미리 테스트 해보는거에요. 테크리드에 승진시키고 싶다면 테크리드 관련 업무를 미리 줘보는거죠. 잘하면 승진시키면 되고, 못하면 다른 사람을 테스트 해보면 됩니다. 이런식으로 리스크를 관리하는 거죠
Raisul
"모든 사람은 전문가 타입과 리더 타입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특히 개발자는 더 그래요. 리더타입과 전문가 타입을 잘 구분해서 승진 시켜야 합니다. 뭐 일반적인 이야기는 이 정도면 되었고, 내가 진짜 도움이 될 수 있는 구체적인 문제가 있을까요?"
Lukas
"저희는 현재 팀원 규모가 커지면서 오퍼레이션에 문제를 겪고 있습니다. 지금 규모의 회사에 이르기까지 여러 단계에서 오퍼레이션 문제를 겪으셨을텐데, 30명 때에는 어떻게 해결하셨나요?"
Raisul씨는 시계를 잠깐 보시더니, 내가 30분 후에 미팅이 있어 다 끝낼 수 있을 지 모르게는데, 우리 회사는 어떻게 하는 지 보여줄게요. 그러더니 보드마카를 꺼내시더니, 화이트보드에 판서를 하면서 현재 브레인스테이션23이 어떻게 scalable하게 프로젝트 매니징을 하고 있는 지 정말 상세히 하나씩 말그대로 강의를 해주셨다
정말 감동했다. 이 정도 규모를 이끄는 회사의 대표가 자신의 지식을 나누는데에 이렇게 진심일 수 있구나. Raisul씨의 원포인트 레슨은 다음 미팅 시간을 훨씬 넘긴 시간이 지나서야 끝이 났다.
사무실을 나오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오늘 받은 것에 대한 감사함, 나는 미래에 나의 경쟁사가 될지도 모르는 후배 창업가에게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알려줄 수 있을까에 대한 의심 등등 다양한 감정이 복합적으로 들었다. 늘 손에 쥐어져있는 책, 책에 적혀져 있는 빽빽한 메모, 나의 말에서 중요포인트를 수첩에 적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좋은 CEO의 덕목을 간접적으로 배울 수 있었다.
미팅이 끝나고 몇 시간 후 바로 인천행 비행기를 탔다. 밤비행기 였는데 잠이 잘 오지 않았다. 많은 것들을 배우고 많은 자극을 받을 수 있던 출장이었다. 세상은 정말 넓고, 고수들은 정말 많다.
귀국하자마자 몸살이 나서, 몸 상태가 좋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짬을 내서 블로그를 쓴다.(늙어서 그런지 기억력이 감퇴되어 빨리 쓰지 않으면 까먹는다) 방글라데시에 있었을때는 멀쩡하다고 생각했는데, 집에 도착하자마자 긴장이 풀렸나 보다.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는 기회로 삼아야겠다.
방글라데시 두번째 출장 끝!
다양한 질문, 커피챗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