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지 않고 말로 '시켜서' 만든 앱. 검색 다음의 권력은 사람을 '하고 싶게' 만드는 쪽으로 넘어간다. 당신 회사는 주인공입니까, 부품입니까?
벤 톰슨(테크 뉴스레터 스트래터처리 운영자)은 개 산책 시키는 시간에 앱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정확히는 말로 '시켰'습니다.
Meta의 새 AI 에이전트 Muse에게 "인스타그램에 저장해둔 레시피 좀 정리해줘" 했더니 PDF를 줬다. "PDF는 좀..." 하고 툴툴대자 이번엔 아예 레시피 정리 앱이 폰에 떴다. 걸린 시간 5분.
그의 폰에 이미 깔린 앱이 689개. 그러니 이건 690번째 앱인데, 톰슨은 숫자는 690이지만 사실상 '무한대'라고 합니다. 말만 하면 또 나오니까.
1. 앱은 '까는 것'에서 '시키는 것'으로
• 에이전트의 정체는 그냥 AI가 아니라 '컴퓨터를 손에 쥔 AI'. 확률로 말하는 AI가 정확하게 계산하는 컴퓨터를 부려먹는 구조
• 그래서 Muse 발표의 진짜 뉴스는 모델이 아니었음: Meta가 미국 사용자 전원에게 2코어, 8GB 메모리짜리 가상 컴퓨터를 한 대씩 나눠준 일. 보통 사람이 에이전트를 실제로 굴릴 사실상 유일한 방법
• 이제 AI는 화면 있는 앱이든 웹사이트든 사람 대신 클릭함. 톰슨 왈, "나는 앱 전문가가 아니라 그냥 일을 끝내고 싶은 사람"
• 결과: 모두가 같이 쓰던 기성 화면 대신, 나만을 위한 일회용 화면. 실제로 그가 직접 여는 앱 수는 빠르게 줄고 있음
2. 검색의 시대가 가고 '영감'의 시대가 온다
• 웹의 역사부터: 인쇄기와 배송 트럭이 필요하던 시절엔 출판물 자체가 귀했음. 유통이 공짜가 되자 정보가 넘쳐났고, '찾아주는 자'가 왕이 됨. 구글과 메타가 그렇게 광고 제국을 세움
• 지금 똑같은 일이 '실행'에서 벌어지는 중. 에이전트 덕에 할 수 있는 능력은 남아도는데, 정작 모자란 건 '뭘 하고 싶은지'
• 그래서 다음 권력은 사람에게 하고 싶은 일을 떠올리게 해주는 쪽. 수요를 넘어 '욕구'까지 쥐는 문지기
• 나머지 앱과 서비스는? 화면 뒤 '부품'으로 숨고, 문지기 에이전트가 던져주는 떡고물이라도 받으려 발버둥. 웹 시절 출판사들이 검색 공룡 앞에서 겪은 바로 그 신세
3. 내 에이전트는 결국 하나, 그 자리를 누가 먹나
• 모델은 갈아끼울 수 있음. 그런데 에이전트는 내 맥락, 로그인, 파일을 많이 알수록 똑똑해짐. 한번 정들면 못 떠나고, 개인이든 회사든 결국 하나만 씀
• 마이크로소프트도 정확히 그 자리를 노림: 새 Copilot에 '디지털 팀원' Autopilot 탑재. 자체 클라우드 컴퓨터로 내가 자는 동안에도 Teams 채널 지켜보고 반복 업무 처리. 사티아 나델라는 대놓고 "업무용 새 OS"라고 선언
• 세일즈포스는 아예 주력 제품을 Claude 플러그인으로 내놓고 세 자릿수 프리미엄을 붙이겠다고. 사람이 자기 화면을 안 들여다볼 미래를 알면서도 통행료부터 챙기는 배짱.
• 승부는 유통망에서: 지구상 거의 모든 사람에게 닿는 메타, 거의 모든 직장인에게 닿는 마이크로소프트. 판이 생각보다 훨씬 빨리 정리될 수 있다는 게 톰슨의 경고
재밌는 건 Meta입니다. 2013년 '페이스북 홈'을 내놓으며 "앱이 아니라 사람이 중심"이라고 외쳤다가, 톰슨한테 "사람들이 폰을 쓰는 건 사람 때문이 아니라 '일' 때문"이라고 한 소리 들었던 바로 그 회사. (그때 톰슨 홈 화면 앱 151개 중 사람 관련 앱은 고작 4개였다고) 그 회사가 십수 년 돌고 돌아, 이번엔 '일'을 대신 해주는 에이전트를 들고 참전했습니다.
톰슨은 이 모든 걸 2007년 잡스의 한마디로 묶습니다. 아이폰 발표 때 "아이팟, 전화, 인터넷 기기... 이해되시나요? 이건 세 개가 아니라 하나입니다." 그날 청중이 정작 놓친 게 제일 혁신적이던 '인터넷 기기'였듯, 지금 우리가 놓치는 건 '화면이 사라진다'는 쪽일지 모릅니다. 에이전트를 직접 써본 사람에겐 너무 뻔한데, 안 써본 사람은 도무지 감을 못 잡을 겁니다.
앱이나 SaaS 하시는 분들, 한 번쯤 스스로 물어보셔야 합니다. 우리 서비스는 고객이 직접 찾아오는 '주인공'인가, 남의 에이전트가 불러다 쓰는 '부품'인가. 톰슨 말대로 사람들은 앱이라서 앱을 쓴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일을 끝내려고 썼을 뿐. 말 한마디로 끝나는 맛을 보고 나면, 메뉴 다섯 번 눌러 들어가던 예전 방식이 '야만'처럼 보일 거라고 하더군요. 투자하는 쪽 질문도 바뀝니다. "사용자 몇 명 모았나"에서 "누구의 에이전트 안에서 살아남나"로.
(Open AI의 새로운 Agent 서비스 'Dots'를 개인화시켜 진짜 비서처럼 쓰고 있는 입장에서, 감히 예측컨데 이제 인터넷 브라우저에서 모바일 앱을 거쳐 AI Agent로 기본 UI/UX가 대전환을 하고 있다)
출처: Ben Thompson, "Apps, Agents, and Aggregation", Stratechery (2026년 9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