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보단 상대방이 좋아할 만한 걸 먼저 고민해야 합니다
아래 글은 2026년 09월 30일에 발행된 뉴스레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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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클 3문장 요약
1. 한국 뮤지컬 시장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지만 일부 인기 공연에 매출이 쏠리고 있어, 앞으로는 기존 팬덤을 넘어 공연을 자주 보지 않던 새로운 관객까지 끌어들이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됐습니다.
2. 이에 〈디어 에반 핸슨〉은 책을, 〈헬스키친〉은 음악을 활용해 공연장 밖으로 나섰고, 사람들이 평소 즐기던 취향과 경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작품을 발견하도록 만들었습니다.
3. 결국 새로운 고객을 만나려면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전달하기보다, 상대가 이미 무엇을 좋아하는지부터 살펴보고 그 관심사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런 제안은 처음이었습니다
‘디어 에반 핸슨 뮤지컬 작품 소개 및 구독자 초대 이벤트 제안의 건’.
처음 이메일 제목을 봤을 땐 솔직히 잘못 본 줄 알았습니다. 뮤지컬 공연 초청 제안이라니, 커머스 비즈니스 트렌드를 다루는 뉴스레터 트렌드라이트에는 꽤 뜻밖의 일이었거든요. 그간 많은 제안을 받아봤지만 대부분 경영 서적이나 강연 관련 내용이었으니까요.
더군다나 개인적으로도 뮤지컬은 1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할 만큼 낯선 분야였기에 작품 이름부터 생소했습니다. 검색해 보고 나서야 2017년 토니상에서 작품상을 받은 작품이자, 2010년대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주목받았던 작품 중 하나라는 걸 알았는데요. 그제야 정말 공연 초청 협업 제안이 왔다는 게 실감 나더라고요.
물론 감사한 제안을 수락하고 초청 이벤트를 진행하는 것으로 그칠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여기까지 오니 오히려 궁금해졌습니다. 도대체 왜 트렌드라이트에 이벤트를 제안한 걸까? 요즘 뮤지컬 마케팅은 어떤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단순히 초청 이벤트를 진행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뮤지컬 〈디어 에반 핸슨〉과 〈헬스키친〉을 선보이는 에스앤코 측과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이를 통해 뮤지컬 업계가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왜 공연장을 벗어나 예상치 못한 곳까지 새로운 관객을 찾아 나서고 있는지 들어봤는데요. 공연 마케팅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고민해 볼 만한 문제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습니다.
새로운 관객이 필요했습니다
사실 한국 뮤지컬 시장의 외형적 성장은 결코 나쁘지 않습니다. 코로나19로 위축됐던 시장이 회복된 이후에도 규모는 꾸준히 커져 왔거든요. 하지만 여전히 고민도 많다고 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일부 흥행 공연으로 매출이 더욱 쏠리고 있다는 점인데요. 실제로 2025년 뮤지컬 상위 10개 작품의 티켓 판매액 비중은 35.7%로 전년 대비 4.7%p 높아졌습니다. 시장이 커지는 와중에도 일부 인기 공연에 대한 의존도는 오히려 높아진 거죠.
뮤지컬 관객 중에는 한 작품을 여러 차례 관람하는 ‘회전문 관객’도 있고, 1년에 한두 번 정도 공연을 보는 관객도 있습니다. 팬덤의 반복 관람은 제작사가 유명 배우를 기용하는 중요한 이유가 되는데요. 일반 관객의 관심을 끄는 데도 널리 알려진 스테디셀러 작품이 유리할 수 있고요. 이처럼 검증된 배우와 작품에 기대는 방식은 당장의 흥행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여기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장기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어렵게 만들 수 있습니다.
물론 기존 팬들의 재관람은 작품을 지탱하는 중요한 기반입니다. 다만 여기에만 기대서는 관객층을 넓히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시장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그동안 공연을 보지 않던 사람들의 첫 관람도 함께 만들어내야 합니다. 나아가 이들이 다양한 작품에도 관심을 갖고 새로운 관람에 도전하면서, 뮤지컬을 꾸준히 즐기는 관객으로 자리 잡도록 해야 하는 거죠.
문제는 이러한 신규 관객의 관심을 얻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들은 ‘어떤 뮤지컬을 볼까’보다 ‘이번 주말에 무엇을 할까’라는 훨씬 넓은 선택지 안에서 공연을 비교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뮤지컬은 다른 공연뿐 아니라 전시와 콘서트, 팝업스토어와 스포츠 등 다양한 여가 활동과 관객의 시간과 비용을 두고 경쟁해야 하는 셈입니다.
작품을 발견하는 입구를 늘려 나갑니다
뮤지컬 〈디어 에반 핸슨〉과 〈헬스키친〉 역시 새로운 관객을 만나는 일이 중요한 과제였습니다. 더욱이 두 작품 모두 국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스테디셀러는 아니었기에, 어떻게 관심을 끌 것인지 고민이 필요했을 겁니다.
다만 두 작품의 출발점은 조금 달랐다고 합니다. 우선 〈디어 에반 핸슨〉은 2024년 한국 초연을 거쳐 2026년 두 번째 시즌을 맞은 작품입니다. 제작사는 초연 당시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작품상을 받는 등 기존 뮤지컬 관객 사이에서는 어느 정도 인지도를 확보했다고 판단했는데요. 두 번째 시즌의 과제는 이렇게 쌓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관객층을 넓히는 일이었던 셈입니다. 기존 관객에게는 다시 볼 이유를, 아직 작품을 접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처음 보러 올 이유를 만들어야 했던 거죠.
〈디어 에반 핸슨〉의 초청 이벤트 제안이 트렌드라이트에까지 오게 된 것도 같은 맥락이었습니다. 다양한 여가 활동 사이에서 공연을 선택할 사람을 찾는다면, 새로운 콘텐츠와 경험에 관심이 많은 독자들도 잠재 관객이 될 수 있으니까요. 제작사는 트렌드라이트 구독자들이 새로운 브랜드와 콘텐츠를 발견하고 경험하는 데 적극적일 것이라고 봤습니다. 초청 이벤트를 통해 ‘이 작품은 조금 궁금한데?’라는 호기심을 만들고, 이를 첫 관람으로 연결하려 한 거죠.
반면 〈헬스키친〉은 한국 초연 작품이었기에, 국내에서 작품명이나 이야기를 알고 있는 관객이 상대적으로 제한적이었다고 합니다. 이에 제작사는 작품 자체보다 앨리샤 키스와 그의 음악이 대중에게 더 익숙하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그래서 작품명을 먼저 알리기보다는 앨리샤 키스의 음악, 1990년대 뉴욕, 스트리트 문화와 춤처럼 사람들이 이미 관심을 가질 만한 요소를 작품으로 들어오는 입구로 만드는 데 집중했다고 하죠.
이러한 접근은 제작사가 현장에서 체감하는 공연 홍보의 변화와도 맞닿아 있었습니다. 최근 가장 크게 느끼는 변화가 무엇인지 묻자 다음과 같이 답해주셨습니다.
“가장 크게 체감하는 변화는 ‘공연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만으로는 새로운 관객의 관심을 얻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캐스팅과 포스터, 공연 일정 같은 정보는 이미 작품이나 배우에게 관심이 있는 관객에게 여전히 중요합니다. 하지만 공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이러한 정보만으로 관심을 끌기 어렵다는 겁니다. 더욱이 관객들의 콘텐츠 소비는 취향에 따라 점점 더 세분화되고 있고요. 따라서 이제는 ‘이 작품을 어떻게 홍보할 것인가’와 함께 ‘이 작품 안에 어떤 취향의 입구들이 있는가’를 찾는 과정이 중요해졌다는 거죠.
실제로 두 작품이 이러한 입구를 만들어가는 과정도 흥미로웠습니다. 먼저 〈디어 에반 핸슨〉이 주목한 것은 책이었습니다. 뮤지컬을 바탕으로 동명의 소설이 나온 작품인 만큼, 하나의 이야기를 무대와 책으로 모두 만날 수 있다는 접점이 있었거든요. 알라딘의 ‘읽고 온 김에’와 같은 협업도 바로 여기에서 출발했습니다. 기존 관객에게는 소설을 통해 인물의 내면과 관계를 더 깊이 들여다볼 기회를,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익숙한 방식으로 작품을 발견할 계기를 제공하려 한 겁니다.
〈헬스키친〉과 바이닐 한강의 협업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방문객들이 헤드셋을 쓰고 앨리샤 키스의 음악과 〈헬스키친〉의 오리지널 브로드웨이 캐스트 레코딩을 직접 감상할 수 있도록 했는데요. 출연 배우들이 ‘1990년대’와 ‘뉴욕’이라는 키워드에 맞춰 음반을 추천하는 "ACTORS’ PICK" 큐레이션도 함께 구성했다고 합니다. 원래 그 공간을 찾은 사람들이 즐기던 ‘음악을 발견하고 듣는 경험’ 안에 작품을 자연스럽게 담아낸 거죠.
물론 이러한 협업은 대규모 미디어 광고보다 도달 범위가 좁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작사는 직접 음악을 듣는 경험이 작품에 더 깊은 관심을 만들 수 있다고 봤습니다. 그래서 “대규모 채널은 인지도를 만드는 데, 취향이 명확한 채널과 공간은 작품에 대한 관심과 경험을 깊게 만드는 데 각각의 역할을 부여하는 편”이라고 설명했고요.
이러한 사례에서 흥미로운 점은 공연장 밖으로 옮겨간 홍보가 상대의 취향에 맞춰 달라졌다는 데 있습니다. 책을 읽는 사람에게는 이야기를, 음악을 듣는 사람에게는 노래를 먼저 건네며, 상대가 평소 즐기던 방식으로 작품의 매력을 경험하도록 한 거죠.
상대의 관심사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다만 제작사 역시 이러한 마케팅 방식에는 아직 보완해야 할 부분이 많다고 털어놓았습니다. 공연장 밖에서 새로운 경험을 만들고 작품에 관심을 가질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관심이 실제 공연 관람으로 이어지려면 더욱 정교한 설계와 검증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콘텐츠를 재미있게 보거나 음악을 인상 깊게 듣더라도, 공연 티켓 구매까지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으니까요. 설령 실제 관람으로 이어지더라도 이를 정확히 측정하기란 쉽지 않고요.
하지만 그럼에도 이처럼 무대 밖으로 나와 작품을 알리려는 시도 자체는 의미가 있어 보였습니다. 갈수록 취향은 세분화되고 업의 경계는 무너지는 상황에서, 익숙한 무대를 벗어나 새로운 고객을 만나고 우리의 매력을 전하는 일은 공연 업계에만 국한된 과제가 아니기 때문이죠.
그런 맥락에서 이번 인터뷰 중 특히 기억에 남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새로운 관객을 만나기 위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을 하나 꼽아달라는 질문에, ‘우리의 언어가 아니라 상대의 관심사에서 출발하는 것’이라고 답해주신 부분이었죠. 우리 브랜드나 상품을 모르는 사람에게 그 매력을 전하려면 무작정 우리 이야기만 들려주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상대가 이미 관심을 가지고 좋아하는 것과 연결될 때, 비로소 우리 이야기를 들어볼 이유가 생기니까요. 더욱이 이는 브랜딩을 넘어 우리 일상에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는 원칙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종종 우리 브랜드, 혹은 나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 다가가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무작정 하고 싶은 이야기를 꺼내기보다, 상대가 이미 무엇을 좋아하는지부터 살펴보면 어떨까요? 어쩌면 우리의 이야기를 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상대가 좋아하는 이야기에서 시작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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