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AI시대, 디자이너로 살아남기’ 뉴스레터 1화를 살짝 수정해서 올린 글이에요.
AI 시대의 프로덕트 디자인, 제품 공학에 대한 책을 26년 상반기에 출간 예정이에요.
알림 신청 해주시면 출간을 가장 빠르게 알려드릴게요.
안녕하세요, 강영화 입니다.
첫번째 글을 발행하고 2주동안 여러 메시지들을 받았어요. 많은 분들이 공감해주신다는 이야기를 해주셔서 감사한 시간이었어요. 반응을 보면서 아이디어도 많이 얻었고, (의견을 주신 듀진님, 지인님, 아프로님, 답장 주신 김재표님 감사해요.) 지금 시대에 필요한 글이라는 확신도 들었지요.
AI 시대, 디자이너로 살아남기 시리즈
1화 : 잘 하는 디자이너가 가진 6가지 스킬셋
2화 : AI 네이티브 프로덕트 디자인
3화 : 쉬운 디자인 / 어려운 디자인
4화 : 2026년, 1인 1팀이 되어 일한다는 것
5화 : 요즘 만나는 좋은 디자인
6화 : 10년차 디자이너 두 명의 AI 네이티브 워크플로우 삽질기
7화 : 비디자이너의 제품 디자인을 도와주다
8화 : 에필로그
두번째 글은 “AI 네이티브 프로덕트 디자인”입니다. AI 네이티브 제품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기존 제품을 만들 때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고민을 하게 되었거든요. 디자인 방법론도 달라지고, 팀의 구조도 달라지고, 디자이너의 역할 역시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걸 느꼈어요. 그래서 이 경험을 한번 정리해보고 싶었습니다.
디자이너뿐 아니라 AI 때문에 시대의 변화를 정면으로 맞고 있는 모든 분들의 생각 정리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들어가며
작년 3월부터 지금까지 저희 창업팀은 실리콘밸리를 오가며 AI 영어회화 앱 엘스(Else)를 만들고 있습니다. AI 네이티브 앱이고, 매우 기술 집약적인 제품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제가 10년 넘게 디자이너로 일하며 해왔던 일 중 가장 난이도가 높습니다. 그래서 더 재미있기도 해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정말 즐겁게 만들고 있어요.
이번 글에서는 그동안 AI 네이티브 제품을 만들며 들었던 생각들, 그리고 이 시대에 필요한 디자이너상과 앞으로 변화할 디자이너의 역할에 대한 생각을 풀어보려 합니다.
AI 네이티브 제품이란?
먼저 AI 네이티브 제품의 정의부터 짚고 넘어가 보겠습니다.
AI 네이티브 제품은 “AI를 쓰는 제품”이 아니라, “AI 없이는 성립하지 않는 제품”입니다.
단순히 AI를 활용한다고 해서 AI 네이티브 제품이 되지는 않습니다. 기존 제품에 AI 기능을 덧붙이거나, “AI-powered”라는 라벨을 붙인다고 해서 제품의 본질이 바뀌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 경우 AI는 어디까지나 보조 수단에 머물고, 제품의 핵심 경험은 그대로인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AI 네이티브 제품은 다음 셋 중 최소 하나를 제품의 핵심 가치로 삼습니다.첫째는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것(Enable)입니다. 과거에는 전문가만 할 수 있었던 일을 AI를 통해 누구나 가능하게 만드는 것입니다.둘째는 가속화(Accelerate)입니다. 기존에 사람이 하던 일을 훨씬 빠르게, 지체 없이 이뤄지도록 만드는 것입니다.셋째는 제거(Eliminate)입니다. 불필요하거나 번거로운 단계를 아예 없애서 사용자에게 더 직관적이고 간결한 경험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AI 네이티브 제품에 대해서는 두 가지 차원에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 AI를 사용해 디자인하기: 실제 워크플로우, 도구, 일상 속에서 AI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 AI를 위한 디자인하기: AI 중심 제품을 만든다는 것이 기존 제품 개발 방식과 어떻게 다른지, AI 네이티브 제품을 만들기 위해 무엇을 고려해야 하는지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Designing with AI: AI를 사용해 디자인하기
AI를 사용해서 제품을 만드는 비용은 분명히 낮아졌습니다. 하지만 디자인 워크플로우는 아직 충분히 통합되지 않았습니다.
다들 경험하셨듯이, 2023년 ChatGPT가 대중화되며 AI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습니다. 그 이후 많은 것이 바뀌었습니다. 시장에는 코딩 도구를 비롯해 다양한 AI 도구가 쏟아지기 시작했고, 제품을 만드는 비용도 특히 엔지니어링 측면에서 크게 낮아졌습니다. 비개발자도 바이브 코딩을 활용해 실제로 동작하는 꽤 그럴싸한 앱을 만들 수 있게 되었지요.
그래서인지 이제는 ‘대충 만든 MVP’로 버티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사용자의 눈높이는 높아졌고, 제품의 완성도 자체가 경쟁력이 되었습니다. 호기심을 기반으로 AI를 영리하게 활용하는 팀과 개인도 정말 많아졌습니다. 그동안 노동집약적으로 해결해야 해서 어려웠던 일들을, 똑똑한 사람들이 AI를 레버리지 삼아 해결하고 있습니다. AI 덕분에 우리는 훨씬 더 좋은 것을 만들 수 있게 되었고,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더 야심찬 것들까지 시도하고 있어요.
제품을 기획하고 디자인하는 과정에서도 AI를 활용할 수 있는 범위가 점점 넓어지고 있습니다. 제품의 그래픽 에셋이나 UX 라벨을 만드는 것뿐 아니라, 유저 리서치 결과를 정리하거나 간단한 휴리스틱을 바탕으로 예측하는 일도 꽤 잘해요. 디자이너가 프로덕션 코드를 직접 고치며 완성도를 높이거나, Figma Make나 Cursor 같은 도구로 마이크로 인터랙션을 직접 구현하면서 엔지니어와 커뮤니케이션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전체 디자인 워크플로우를 하나로 통합하는 AI 도구는 아직 없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워크플로우의 각 단계에서 분절적으로 AI를 사용할 뿐, 전체 흐름을 설계해주는 수준의 도구는 아직 충분히 쓸 만하지는 않습니다.
디자인 시스템과 데이터가 아주 많이 쌓인 빅테크 팀들에서(예를 들면 국내 기업 중에서는 토스 같은 곳) 디자인까지 에이전틱하게 만들 수 있게 된다면, 그때는 디자인도 에이전트가 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이 문제가 너무 어렵기 때문에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봅니다.
그 이유는 디자인 아웃풋이라는 것이 직관이 크게 개입하는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디자인 결과물을 만들 때 깔려 있는 모든 전제, 팀과 디자이너가 해온 의사결정 과정이 전부 데이터베이스화되지 않는 한, 이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Designing for AI: AI를 위한 디자인하기
다음은 AI를 위한 제품을 만드는 것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AI 네이티브 제품을 만드는 방식은 기존 제품 개발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접근을 요구합니다. 기술적으로도, 디자인 개념적으로도 많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기술적으로 가장 큰 차이점은, LLM을 사용하면 결과가 항상 결정적(deterministic)이지 않다는 점입니다. 쉽게 말하면 결과에 대한 불확실성이 강해졌다는 뜻입니다.
기존 방식의 제품 개발은 비교적 단순합니다. A를 입력하면 A라는 결과가 항상 같은 방식으로 나올 것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LLM을 사용하면 A를 입력했을 때 결과로 ABCD 중 하나가 나올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이 차이가 어려움을 만드는 핵심입니다.

기존 디지털 제품은 기본적으로 사람이 주도했습니다. 기획자가 흐름을 짜고, 디자이너가 구조를 만들고, 개발자가 화면을 구현하는 순차적인 프로세스였지요. 전통적인 디자인은 대체로 ‘템플릿을 먼저 만들고, 그 안에 데이터를 채워 넣는’ 방식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뉴스 앱이라면 기사 리스트 템플릿을 먼저 만들고, 그 안에 콘텐츠를 넣는 식이에요.

하지만 AI 기반 앱은 이 순서를 뒤집습니다. AI가 데이터를 먼저 처리하고 생성하며, 템플릿은 그 흐름에 따라 유동적으로 구성됩니다. 예를 들어 구글 제미나이처럼 AI가 실시간으로 추천을 제공하거나 대화 흐름을 주도하는 경우, 인터페이스는 고정되지 않고 AI의 응답에 맞춰 바뀌는 거죠.

엘스를 만들면서도 그런 경험을 자주 했습니다. AI와 대화하며 영어 회화를 연습하는 기능을 구현할 때, LLM의 응답을 역이용해서 인터페이스를 바꾸거나, 좁은 컨텍스트 윈도우를 사용자 경험 관점에서 보완할 수 있는 기능을 추가하곤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디자이너가 고려해야 하는 대상은 더 이상 인간 사용자만이 아니었습니다. AI가 사용자 앞에서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까지 디자인의 범위 안으로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실제로 저희 팀은 디자이너나 앞단에서 사용자를 만나는 플로우를 책임지는 사람이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을 하기도 합니다.
엘스를 만들며, 앞으로 AI가 들어간 앱은 기획 구조, 데이터 처리 방식, 인터페이스 흐름까지 모두 인공지능 친화적으로 다시 구상해야 한다는 것을 실감했어요. 프로덕트 디자이너의 미래도 이 흐름과 결코 동떨어져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AI 시대에 중요해지는 역량 1: 기술에 대한 이해
지난번 글에서 잘하는 디자이너가 가진 6가지 역량에 대해 다루었어요. 그중 앞으로는 기술에 대한 이해가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AI 시대의 제품을 만드는 역량으로 바꿔 말하면, AI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이해하는 능력이 점점 더 중요해진다는 뜻입니다.
AI를 위한 제품은 디자인 프로세스도 완전히 다릅니다. 기존 디자인 프로세스는 보통 사용자 문제 → 문제의 핵심 파악 → 해결책 탐색의 순서로 진행됩니다. 하지만 AI를 위한 디자인은 종종 거꾸로 가야 합니다. 여전히 사용자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먼저 이 기술이 지금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부터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능력을 바탕으로 “이걸로 어떤 문제를 정말 가치 있게 해결할 수 있을까?”를 역으로 매핑하는 거죠.
2019년 카네기멜론에서 진행한 NLP(언어기반 AI)관련 연구가 있습니다. 이 연구에서는 디자이너 절반은 문제부터 시작했고, 나머지 절반은 능력(capability)부터 시작하게 한 뒤 두 그룹의 과정과 결과를 비교했습니다. 그 결과 능력부터 시작한 그룹이 더 일관되게 좋고, 실제로 만들 수 있는 아이디어를 냈다고 합니다. 반대로 문제부터 시작한 그룹은 너무 이상적이거나 현실적으로 구현이 어려운 방향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았고요.

기술에 대한 이해가 중요한 이유는 AI의 능력이 너무 빠르고 예측 불가능하게 바뀌기 때문입니다. LLM이라는 재료 자체가 아직도 새롭고, 계속 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기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항상 알고 있어야 하고, 거기서부터 “이걸로 사람들에게 10배 더 나은 경험을 어떻게 줄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물론 블랙박스를 만들지 말 것, AI가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게 할 것 같은 AI를 사용하는 앱의 기본 원칙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더 중요해지는 것은 ‘무엇이 가능한가’에서 시작하는 사고방식입니다. 직관과는 반대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앞으로 디자인을 풀어가는 데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생각해요.
LLM의 한계
다만 제품을 만드는 입장에서 느낀 것은, LLM이 정말 강력하지만 모든 것을 잘하는 건 아니라는 거예요.
저희도 “이거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네”라고 생각했다가, 막상 구현해보면 “이건 별로다”, “이 방향은 아니다” 싶었던 적이 많았습니다. 사용자의 기대치도 높아져서 “AI니까 당연히 이 정도는 하겠지”라고 생각하는데, 실제 제품은 그 기대에 계속 걸리게 됩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디자이너가 AI의 한계를 정말 잘 이해하고, 평가와 구현 과정 자체에 디자인이 깊이 개입하는 팀이 잘하는 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뭔가 하기는 하지만, 우리가 정말 원했던 일을 해내지는 못하는 그저 그런 기능을 출시하게 되는 거예요.
AI 시대에 중요해지는 역량 2: 문제 해결력
기술 이해가 ‘무엇이 가능한가’를 아는 것이라면, 문제 해결력은 ‘왜 그것을 해야 하고, 그것으로 어떤 가치를 만들 것인가’를 설계하는 능력입니다.
프로덕트 디자인의 핵심은 사용자의 문제를 이해하고, 실현 가능한 방식으로 팀과 함께 해결해나가는 과정 전체를 설계하고 탁월하게 풀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문제를 잘 정의해야 하고, 유저와 데이터를 함께 보는 눈을 가져야 하며, 팀과 함께 고민하고 만들어가는 힘이 필요합니다.
문제 정의를 잘 한다는 건 누구의 어떤 문제를 풀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묻고 답하는 것입니다. 문제를 정의하는 과정에 깊이 관여할수록, 디자인이 동작하고, 살아있는 제품을 만들 수 있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는 사용자 인터뷰, 사용성 테스트, VOC, 데이터 분석 같은 리서치가 필수적이죠. 예를 들어 “유저가 예약 버튼을 못 찾는다”는 것은 그저 현상일 뿐입니다. 진짜 문제는 예약 기능이 언제 왜 필요한지에 대한 맥락이 사용자가 느끼기에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생긴 혼란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문제의 근본을 보려는 태도가 필요해요.
실제 제품이 사용자 관점에서 문제를 잘 해결했는지도 디자이너가 가장 잘 아는 영역이에요. 문제를 정의했다면, 실제로 이 문제를 해결했는지 판단하고 의사결정하는 것까지가(환경이 받쳐주지 않는다면 적어도 시도하는 것까지가) 디자이너의 몫이라고 봐요.
그러기 위해서는 사용자 경험을 추측이 아니라 데이터와 실제 목소리로 이해할 줄 알아야 합니다. 설문조사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인뎁스 인터뷰나 사용성 테스트처럼 맥락을 들여다보는 정성적 방법과, 퍼널 분석·전환율·리텐션 같은 정량적 지표를 함께 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한 거죠.
결국 앞으로는 넘나드는 사고가 더 중요해질 것입니다. 제품의 큰 비전과 방향을 설계하면서도, 실제 구현 가능한 방법이 무엇인지 디자인적으로도 기술적으로도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큰 비전을 실제로 풀 수 있는 단위로 쪼개서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즉, 구조화 능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예요.
구조화의 중요성
앞으로 우리는 레퍼런스가 없는 제품을 더 많이 만들게 될 것입니다. AI 네이티브 제품은 전체로 보면 전례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0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은 아니에요.
구조화해서 바라볼 수 있다면, 레퍼런스가 없는 문제를 레퍼런스를 찾을 수 있는 문제로 바꿀 수 있습니다. 새로운 것을 만든다고 해서 매번 처음부터 시작하면 너무 비효율적이에요. AI 네이티브 제품도 쪼개서 보면 익숙한 패턴들의 조합인 경우가 많습니다. 구조화할 줄 알아야 속도도 납니다.

제가 레퍼런스를 찾을 때 쓰는 구조화 방식은 아래 순서를 따라가요.
- 먼저, 기능을 쪼갭니다.
- 패턴을 찾아 매핑합니다.
- 우리 맥락에 맞게 다시 조립합니다.
즉, 서비스를 기능 단위로 분해하고, 각 기능이 어떤 기존 패턴과 유사한지 매핑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앱을 켤 때 AI 대화 세션이 자동으로 시작되는 기능을 디자인할 때는, 그것이 ‘재생된다’는 메타포와 비슷하다고 느껴 음악 앱의 화면들을 많이 살펴봤어요. 또 홈 화면에서 학습지 카드를 보여줘야 할 때는, 카드 UI를 사용하는 다양한 앱의 화면을 참고했어요.
교육 앱이라고 참고하는 UI가 꼭 교육 앱일 필요는 없었어요. 게임, 데이팅 앱 등 전혀 다른 도메인에서도 비슷한 동작을 하는 패턴들을 찾아봤습니다.
문제를 잘 정의하는 것과, 그걸 풀 수 있는 단위로 쪼개는 것은 세트입니다. 큰 문제를 정의했다면, 이제 그것을 풀 수 있게 분해하면 됩니다.
AI 번아웃, 그리고 시장이 원하는 디자이너
AI는 제품을 빌딩하는 기존 구조를 완전히 흔들어놓았습니다. 작년부터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AI 번아웃”이라는 말이 퍼지고 있죠. 열심히 쌓아 올린 모래성 위로 파도가 덮쳐오는 느낌입니다. 주니어든 시니어든 상관없이 “이제 뭘 해야 하지?”, “AI가 내 일자리를 가져가는 건 아닐까?” 같은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2026년에 창업팀을 운영하면서 이제 팀에 사람이 많이 필요하지 않은 시대라는 걸 체감하게 됩니다. ‘Lean AI Leaderboard’ 같은 사이트를 보면 팀원 한 명이 얼마나 많은 매출을 만들어내는지 순위로 보여주는데, 초소형 팀이 수십억 규모의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사례들이 등장합니다. AI 덕분에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빠르게 배우고 실행할 수 있는 환경이 생겼기 때문이죠.
그래서 앞으로는 팀의 모양도 더 다양해질 것 같습니다. 디자이너를 채용할 때도 단순히 역할을 채우기보다, 팀에 정확히 기여할 수 있는 뚜렷한 강점을 가진 사람을 찾게 될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디자이너와 다른 직무의 경계도 점점 흐려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실리콘밸리에서는 디자인 엔지니어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었습니다. 저 역시 팀 안에서 개발, 디자인, 마케팅 등 여러 일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기술이 제약을 줄이면서 역할의 범위가 자연스럽게 확장되고 있는 것 같아요.
앞으로는 다수의 디자이너를 세분화해 채용하기보다, 산업과 제품 전반을 이해하는 시니어리티 있는 소수의 디자이너를 찾는 흐름이 더 강해질 것 같습니다. 오래 일한 시니어들에게는 이런 변화가 정체성을 흔드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답답함을 느낀다면 직접 한번 해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주말 몇 시간만 바이브 코딩을 해봐도 무엇이 바뀌고 있는지 훨씬 생생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이제는 모두가 새롭게 배우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주니어 디자이너에게 결코 쉬운 환경은 아닐 것입니다. AI가 단순 업무를 빠르게 대체할수록, 충분한 실무 경험을 쌓기도 전에 “어떤 문제를 정의할 수 있는가?”, “어떤 가치를 만들 수 있는가?” 같은 질문에 답을 해야 해요.
이 시대의 디자이너에게는 틀을 깨는 사고가 더 중요해졌어요. 회사가 시키는 일을 단순히 하는 시대는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대신 나에게 집중하며,
“나는 어떤 문제를 풀고 싶은가?”
“이 시대에 나는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나만의 답을 내릴 수 있는 디자이너에게 AI는 위협이 아니라 강력한 동료이자 기회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AI 시대의 제품 이야기를 하다 보면, 결국 “그럼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으로 돌아옵니다. 어쩌면 이 변화가 모두에게 똑같이 맞는 것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돌아보면, 80~90년대 컴퓨터가 그래픽 디자인에 들어왔을 때도 그 변화를 자신의 길이 아니라고 느낀 디자이너들이 있었습니다. 모두가 반드시 이 흐름에 올라타야 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호기심이나 관심이 크지 않다면 이 변화는 분명 힘들 수 있거든요.
최근 제 주변에도 전혀 다른 분야로 전직한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AI로 크게 달라지는 시대를 보며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를 묻게 되었고, 그 질문 끝에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사람들.
요즘은 “어느 회사에 다니는가”보다 “어떤 삶을 살고 싶고, 어떤 문제에 시간을 쓰고 싶은가”가 더 중요해지고 있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이 일을 왜 하느냐는 질문은 곧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나는 어떤 가치를 좇고 싶은가?”라는 질문과 연결됩니다. 이걸 생각해보지 않으면, 하드스킬이 좋아도, 어느 정도 돈을 벌어도 허무해질 수 있습니다.
디자인과를 나왔다고 꼭 디자이너로만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오래 엔지니어로 일했다고 해서 계속 그 길만 가야 하는 것도 아니고요. 오히려 지금은 남들과 다르게 살고, 자기만의 발자취를 남기는 것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바운더리가 흐려진 지금, 사람들이 더 많이 도전하면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어떠셨나요? 사실 전 이 글을 쓰면서 둥둥 떠다니던 생각들을 언어화하고, 정리할 수 있어서 속이 뻥 뚫리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렇게 생각 정리를 도와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생각을 정리하게 도와준 다양한 인풋이 있었어요. 그 중 하나는 <소프트웨어 개발의 진화> 관점으로 발표한 앤드루 카파시 전 테슬라 AI 이사의 최근 강연입니다. 강력 추천! 꼭 강연을 살펴보고 본인의 생각을 정리해 보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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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 넘는 시간동안 디자인을 했지만, AI시대에는 또 다른 보법이 필요하겠더라고요. 이런 내용을 꾹꾹 눌러담아 책을 쓰고 있어요. 2026년 상반기에 나오는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살아남기: 인공지능의 시대, 디자이너의 일(가제)" 책이 궁금하시면 알림신청 해주세요. 가장 빠르게 알려드릴게요 :)👉 출간 알림 받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