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메버릭 코퍼레이션을 리드하며, 첫번째 공간 메버릭 하우스를 만들어가고 있는 오한결입니다.
앞으로 종종 글을 통해 저의 경험과 관점을 공유하려고 합니다. 그 전에, 제가 2025년 7월 26일에 썼던 글을 시작으로 나아가보겠습니다. 앞으로 대한민국의 공간은 이렇게 바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본이 몰리는 공간은요. ‘광장’이 다양한 형태와 성격으로 많아질 것입니다.
그럼 한번 시작해볼까요?
[‘광장’ 개념의 재정립] (1)
[개요]
나는 ‘광장’ 개념을 재정립하려는 시도를 해보려고 한다.
그에 맞춰 서론에서는 개념 재정립의 필요성과 그 당위를 설명하는 맥락을. 본론에서는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의 광장 개념의 차이와, 광장의 속성 그리고 쓰임새. 마지막으로 메버릭 하우스가 지향하는 ‘광장’에 대한 개념 정리를 통해 매듭을 지어보려 한다.
[서론]
’다양한 삶과 비전이 교류하고 연결되는 연대와 지지의 광장’
메버릭 하우스의 방향과 의지가 담긴 문장이다. (25년 chapter 1의 메버릭 하우스 형태에 한정)
’다양한 삶과 비전’
’교류하고 연결되는’
’연대와 지지’
그리고 ‘광장’ 까지.
그 어느 문장 단어 하나하나 우리에게 익숙한 것이 없다.
대한민국에 다양한 삶과 비전이 존재하는 것이 기본값이었는가? 교류하고 연결되는 양상이 자연스러운 것이었는가?
연대하고 지지한다는 문장이 일상적으로 많이 쓰이는가?
광장이라는 물리적 개념은 우리의 한정 된 경험에 갇힌 채 쓰여지지 않는가?
메버릭 하우스가 이러한 ‘이상적이기에 익숙치 않은 문장’을 나열한 데에는, 이 개념들이 우리에게 점차 익숙해지기를 바라는 소망 그리고 우리는 함께, 그렇게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믿음이 반영되어있다. 이상이 일상적으로 행해질때 이상은 더 이상 ‘이상한’ 것이 아니기에.
’다양한 삶과 비전’이 존재하고, ‘교류하고 연결되는 것이’ 자연스럽고, 그 가운데 ‘연대와 지지’의 가치가 살아 숨 쉰다면. 이 모든 양상이 이뤄지는 환경 내지 사회가 존재할 수 있음을 증명해낼 수 있다면. 우리가 실제로 이런 사회를 ‘함께 만들수 있는 힘’ 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인식한다면.
그때 비로소 세상에 희망을 품고 서로를 믿을 수 있을 것이기에, 개인의 삶에서 용기를 내어 나아갈 수 있게 될 것이기에,
필자는 그 믿음에 젊음을 베팅했지만 성패는 내게 달려 있지 않다는 위험한 생각을 함과 동시에 일말의 확신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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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을 일상으로 만드는 것은 사상이자 개념 그리고 인식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동시대는 그 어떤 시대보다 ‘인식과 이미지’ 가 중요한 시대라고 볼 수 있다.
인식이 이미지로 전환되고 생성된 이미지가 타인에게 전파되는 속도가 굉장히 빠른 시기인만큼, 어떤 언어와 행동을 내비치는가에 따라 인식이 형성이 되고 그 인식은 이미지로 전환되어 ‘소비되는 것’으로 확대재생산된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첨예하게 다뤄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행동은 일시적으로 포착되어 사진-영상 또는 묘사를 통해 언어라는 매체를 통해 전파된다. 허나 그것은 비교적 수명이 짧다.
허나 언어 즉 개념은 무한하다. 정신은 죽지 않는다는 말은 개념이라는 것은 시대에 맞춰 가변적일 수 있기 때문에 나온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므로 필자는 언어 즉 개념을 더욱 첨예하게 다뤄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고로, 위 문장과 단어 중 특히 ‘광장’이라는 단어를 사용함에 있어 대한민국에서 쓰이는 ‘광장’이라는 개념을 재정립 하는 시도를 통해 우리가 바라보는 초점을 조금은 일치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본론]
1.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의 광장
언어의 한계는 명확하다. 개념은 객관적으로 정의될 수는 있으나 그 ‘객관성’ 이라는 것도 일정 문화권, 언어권에 따라 쓰이는 맥락과 위계, 속성이 달라질 수 있다.
고로 우리 대한민국에서 쓰는 ‘광장’과, 필자가 경험한 유럽권의 ‘광장’은 같은 단어라는 이유로 동일시하기에는 꽤나 많은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유럽권의 ‘광장’은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에서 시작되어 로마의 ‘포럼’ 그리고 중세시대 교회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상권과 마을 사람들이 모이는 ‘공터’로 진화했는데, 광장의 본질은 아고라의 뜻처럼 ‘모이는’ 곳이라는 것이다. 광장의 역사적인 배경과 쓰임새를 논하려면 꽤나 딥하게 들어가야 하기에, 그것보다는 지금 당장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현대의 광장에 한해서 얘기해보겠다.
대한민국의 광장이라고 하면 사실 ‘광화문 광장’이 대표적이다.
필자는 유럽의 광장 중 마드리드의 ‘마요르 광장’과 런던의 ‘트라팔가 광장’ 그리고 로마의 ‘나보나 광장’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광장의 ‘다름’을 몇가지로 분석해보려고 한다.
1) 일상과 맞닿음
광화문 광장에 비해 유럽권의 광장은 시민의 삶과 굉장히 밀접한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그 이유는 지리적인 측면이 있을 것. 동네에 작고 큰 광장이 수없이 많이 포진되어있다. 특히 베니스 같은 도시를 가보면 골목 골목 마다 작은 광장들을 마주치게 된다. 그렇다면 이 작고 큰 광장은 어떻게 이루어져있는가?
2) 이동하는 곳이 아닌 멈춰있는 곳
광장은 기본적으로 도보처럼 이동만을 위한 공간이 아닌 멈출 수 있고, 앉고, 교류하고 연결될 수 있는 공간이다.
벤치가 많고, 무언가를 구입할 수 있는 상점이 많고, 먹고 마실 수 있는 음식점이 많다. 가운데에는 분수가 있거나 동상이 있거나 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빙 둘러 앉는다. 서로 눈빛을 교환하기에도, 서로가 어떤 행위를 하고 있는지도 관찰할 수 있는 정도의 거리감으로 조성되어 있다.
3) 매일 다른 풍경, 다채로운 행위의 연속
광장은 어제와 오늘 움직이지 않는다. 위치는 똑같다.
그러나 동시에 다르다. 이것이 광장의 핵심일 수도 있다.
광장의 구성요소는 똑같다, 물리적인 조건 그리고 광장의 위치. 허나 풍경은 매일매일 달라진다. 그 이유는 광장 안에 있는 다채로운 사람들 즉 행위자가 매일 달라지기 때문이다.
광장을 구성하는건 곧 광장을 향유하는 사람들이다.
어제는 누가 버스킹을 했다. 오늘은 마술쇼를 한다. 어제는 맥주집에 사람이 많았는데 오늘은 와인집에 사람이 더 많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교류하고 연결된다. 광장은 바뀌지 않는다, 그 안에 사람들이 바뀔 뿐. 고로 광장은 환경의 속성을 띄게 된다.
나는 위 3가지 속성이 필자가 재정립하고자 하는 ‘광장’의 기본 전제 속성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반해 대한민국에서 광장하면 떠오르는 광장인 광화문 광장은 어떠한가 살펴보겠다.
광화문 광장은 과연 시민의 일상에 맞닿아 있을까? 광화문을 통해 출퇴근하고, 통행하는 분들은 많지만, 그것은 거대한 산책로의 기능이지 광장의 기능은 아니다. 일상적이려면 친근해야 되는데 매번 커다란 기획 전시가 연속되고 경찰관분들의 상시 순찰이 덤해져 광장과 친해지기 어렵게 만든다.
그렇다면 광화문은 우리에게 멈춰서 서로의 존재를 느끼고 교류하고 연결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공간일까?
기본적으로 앉아 있을 곳들은 다 숨겨져 있다. 사이드에 치우쳐져있는데 그렇기에 더욱 개별적이며 독립적인 공간으로 전락한다. 개방되거나 공공의 것이 아닌 먼저 앉은 사람이 임자인 곳으로만 기능하게 된다.
구조적인 측면과 동시에 정서적인 측면에서도,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관심이 없는 우리는, 옆테이블에 앉은 사람을 경계하거나 관심있게 보거나 하고, 말을 건네면 이상한 사람 취급받는 스몰토크 부재의 정서적 분위기라는 것 또한 간과해서는 안된다.
광장이 일상과 맞닿아 있지 않아 친근함이 결여 된 상태이면서 멈춰서 서로를 인지함으로서 교류하고 연결될 수 없는 구조라는 사실을 우리는 함께 밝혔는데, 이 두가지 속성이 부재된 대한민국의 광장에는 향유자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축소된다.
대한민국의 광장은 ‘매일 다채롭게 달라지고, 향유자가 만들어가는 광장’과 달리 변화 될 여지도, 주체성도 발휘되지 않는 매일매일 같은 경험을 주는 지루하고 고루한 공간 개념으로 전락한다.
광장이라는 개념을 재정립하려는 시도 가운데, 나는 위 ‘3가지 속성을 가진 공간이 곧 광장’이다 라는 주장을 펼친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의 새로운 광장 개념에는 광화문 광장 보다 비교적 광장의 기능을 더 잘 수행하고 있는 곳은 한남동 앤트러사이트일 수 있다는 생각을 이어서 하게 된다.
’광장’ 이라는 단어가 붙는다 해서 광장이 아니고, 실제 그 속성에 맞춰 기능을 수행하는 곳이 곧 광장이라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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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의 세가지 속성을 잘 들여다보면, 이것은 환경-사회의 속성과 맞닿아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일상과 밀접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며, 우리가 어떤 방향과 의지를 갖고 행동하느냐에 따라 그 환경, 사회가 변화 할 수 있고 또 변화 된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사회를 물리적인 형태로 옮긴 것이 곧 재정립 된 ‘광장’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광장을 더욱 잘 생성하고 활용할 수 있으려면 단순 '일정한 목표를 갖고 모이는’ 광장이 아니라 일상적이며 동시대적이고, 서로 연결되고 교류할 수 있는, 매일매일 다채로워지는, '다양한 삶과 비전이 모이는’ 광장으로서의 개념 확장 내지 재정립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새롭게 재정립한 광장이라는 개념, 단어가 메버릭 하우스의 역할과 기능에 맞는지 알아보자.
메버릭 하우스는 일상과 맞닿아 있는가? 메버릭 하우스는 서로를 인지하고, 교류하며 연결될 수 있는 구조인가? 메버릭 하우스는 매 순간 향유자에 따라 그 안의 풍경이 다채롭게 변화되는가?
메버릭 하우스는 하나의 환경이자 토대인가? 구성요소와 핵심 가치, 속성은 유지되어도 그 안에서의 다채로움과 새로운 가능성과 가치가 만들어지는가?
’더 연결되고 확장되는 광장’을 모토로 더 넓게 움직이려고 노력하고 있는가?
필자는 ‘광장’이라는 개념을 재정립하려는 시도를 통해 광장이라는 개념의 인식과 이미지를 재구성하고,
우리의 삶에 대입해봄으로서, 광장의 중요성을 함께 나누고자 하였다.
우리가 광장을 만들 수도, 향유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각자가 환경-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목도했을때 비로소 주체적이고도 사회적인 시야를 가질 수 있게 된다.
비로소 세상에 희망을 품고, 서로를 믿을 수 있게 될 것이다.
필자는 위 3가지 속성을 가진 작고 큰 광장이 많아지길 희망한다. 서로의 일상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서로와 연결되는 가운데 더욱 다채로운 풍경이 만들어지기를.
다양한 삶과 비전이 교류하고 연결되는 광장으로서의 대한민국을 진심으로 바라며.
그 열쇠는 우리 모두의 손에 있다는 사실을, 고로 희망을 잃지 말자는 말을 끝으로 광장 개념의 재정립을 매듭짓겠다.
저는 01년생 26살, 서울 거주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지속가능 한 발전을 위해 날카로운 시선과 넒은 시야, 고도의 집중과 실행을 쌓으며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커피챗은 언제든 환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