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템 선정 #사업전략 #마인드셋
배운 사람들이 창업하면 망하는 이유

순진한 창업을 했었죠.

한 대표님이 술자리를 빌어 직언을 하나 해줘도 되겠냐고 묻습니다. 존경하는 분이라 그러시라 했습니다. 그는 짧게 한마디만 했습니다. 처음엔 기분이 상했다가 그 이후로 약 3년 간 그 문장이 은은하게 박혀서 저를 괴롭혔습니다.

맞말이라 직감해서 뼈아팠을 것인데 당최 문제의 진원지가 어디인지 짚어내질 못했는데 작년에 환부를 찾아냈습니다. 기뻐서 헤실헤실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넙죽넙죽 허공에 감사인사를 드리기도 했고요. 그리고 2년째 그걸 도려내고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르코는 사업을 오래 했는데도 순진하네요.”

창업 초기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이 꽤 많았습니다. 남들 안하는 거 한발 앞서 도전하곤 했으니까요. “대박 날 것 같아. 멋진 도전이야. 응원해요.” 지금도 페이스북에 들어가면 눈뜨고 못봐줄 제 포스팅과 응원 댓글이 무수히 달려있습니다. 자아가 비대해질 때면 들어가서 정신차리려고 지우지 않고 뒀습니다. 지인만 그런 건 아닙니다. 프로세스 이코노미인지 뭔지 SNS에 올리면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제 비전에 동참하고 저를 응원해주었습니다. 든든한 지지자를 등에 없고 기대감에 론칭을 했지만 그들은 결제하지 않았습니다. 왜 등돌린 걸까요?

창업하면 가장 먼저 지지자를 만나고 그 다음 고객을 만납니다. 지지자는 콘텐츠를 소비하고 고객은 제품을 소비합니다. 지지자는 명분을 소비하고 고객은 욕망을 소비합니다. 지지자는 가치있는 명분에 좋아요, 팔로우, 댓글로 지지를 표함으로써 비전에 동참한다는 자기 만족을 느끼며, 성공할지도 모를 사람과의 관계 보험을 들며, 자신이 가치있는 사람이라는 효능감을 얻습니다. 댓글 한 줄에 3가지를 무료로 얻을수 있으니 ROI높은 사회적 활동입니다.

하지만 고객은 다릅니다. 돈을 지불합니다. 자신에게 이게 왜 필요한지, 이정도 돈을 낼만한 가치가 있는지 정확히 판단합니다. 지지자가 등을 돌린게 아니라 제가 지지자를 고객이라 착각한 것이죠.

지지자들만의 잔치에서 박수받고 겉멋 잔뜩 들었던 시절, 르코

박수는 쏟아지는데 매출이 쌓이지 않았던 이유는, 명분만 팔았기 때문입니다.

지난 17년간 사업을 해오면서(그중 10년 이상은 순진했던 것 같고요)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잘 팔리는 제품, 성공한 창업가들, 흥한 비즈니스는 모두 욕망을 간파하고 명분으로 잘 포장해서 위신을 세워줍니다. “르코는 순진하네요.” 라는 말을 풀어쓰면 이렇습니다.

“명분만 좇고 사람들이 진짜 원하는 욕망은 짚어내지 못하네요.”

인류 역사상 가장 폭발적으로 팔려 나갔던 제품은 종교가 팔았던 '면죄부'입니다. 인간은 욕망을 따르고 싶어 하지만, 동시에 그 욕망을 부끄러워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욕망을 정당화해줄 세련된 포장지, 즉 '명분'을 간절히 원합니다.

창업한다면, 성공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제품이 아니라 재고 만들지 않으려면 고객의 욕망을 정확히 읽어내고, 그것을 구매하는 행위가 가치있어 보이게끔 우아한 명분 쇼핑백에 담아서 줘야 합니다. 근데 이걸 하려면 먼저 해야할 게 있습니다. 바로 창업자 자신을 겹겹이 둘러 싸고 있는 명분 포장지를 걷어내야 합니다.

자금이 부족해서, 역량이 부족해서 망한건 괜찮은데 세상물정 모르고 순진해서 망해보니 아주 뼈아프더군요. 인간의 욕망은 선하지도 추악하지도 않습니다. 이는 그저 본성일 뿐입니다. 손가락질 하며 “쯧쯧쯧” 가치판단 하지 않아야 순진하게 망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나아가 어떤 현상이든 가치판단 하지 않아야 진실에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진실이 매출을 일으키는 열쇠입니다.

그걸 걷어내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 지 이야기해 볼게요.

 

차마 약을 팔수 없었던 한의사..

똥이 마려워 미칠 것 같지만 “잠시 바람좀 쐬고 올게요”라고 합니다. 돈 왕창 벌고 싶지만 “사람들이 나다움을 찾길 바라 창업했어요”고 말합니다. 오늘 따라 유독 잘나온 셀카를 올리면서, “오늘 좀 피곤함 ㅠㅠ”이라고 씁니다. 우리는 욕망과 다른 말을 하도록 훈련받았습니다. 창업가는 이걸 간파할수 있어야 순진하게 망하지 않습니다.

파이프를 그려놓고 파이프가 아니라고 하는 르네 마그리트처럼 우리는 욕망을 가졌지만 그것이 아니라고 세련되게 표현하는 언어를 훈련받고 자랐습니다.

 

창업가라면 2개 국어를 할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는 생물학적 언어, 욕망이고 하나는 사회적 언어, 명분입니다.

명분은 문화적 산물로써 내 위신과 체면을 세워주는 사회적 포장지입니다. 인간은 긴 진화의 과정 속에서 원초적 욕망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을 천박하거나 위험한 행동으로 여기도록 학습되었습니다. 만약 모든 사람이 돈, 권력, 성욕, 지배욕 등 날것 그대로의 욕망만 내뱉는다면 사회는 매 순간이 충돌과 전쟁터가 될 것입니다. 따라서 명분은 서로 다른 욕망을 가진 개인들이 부딪히지 않고 협력하게 만드는 ‘사회 운영체제’입니다.

반면 욕망은 돈, 권력, 성적 매력, 우월감 등 찐 내용물입니다. 사람들은 문화적으로 학습된 사회적 언어를 통해 자신의 욕망을 감추려 하지만, 실제 행동을 하게 만들고 지갑을 열게 만드는 동력은 언제나 이 생물학적 레이어에서 발생합니다.

가령, “잘 다니던 대기업을 뛰쳐 나와서 창업한 대표(명분)”라는 클리셰는 틀렸습니다. 잘 다니지 못해서, 거기 있으면 말라 죽을 것 같으니까 나온 것(욕망)입니다. “우리는 인류의 연결을 돕는다”는 메타의 거창한 명분 뒤에는 광고 시장 독점과 수익 극대화라는 욕망이 숨어 있고 스타링크 뒤에는 가상세계의 교황이 되려는 일론 머스크의 욕망이 숨어있습니다. 생물학적 레이어에서 보면 진실이 보이죠.

비즈니스는 상대방이 차마 말하지 못하는 날것의 욕망을 가장 세련된 명분으로 해소해주는 것입니다. 고객이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면서도 스스로를 품격 있는 사람이라 믿게 만드는 포장지를 제공하는 것, 그것이 창업가가 갖춰야 할 기본기입니다.

왜 우리는 짜치는 욕망을 우아하게 설계하지 못할까요.

여기 다섯 가지 섹터가 있습니다. 나열된 기준이 무엇일까요?

부동산/주식 → 사업 → 정치 → 예술 → 공부

명분과 욕망입니다. 왼쪽으로 갈수록 명분을 뚫고 욕망만 남은 섹터고, 오른쪽으로 갈수록 요망한 욕망을 제거하고 명분만 남은 섹터입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돈벌이'를 천대하고 '공부(학문)'를 우대하는 문화에서 자랐습니다. 공부에 전념하고 그 주변의 고상한 담론을 체화한 사람일수록 돈을 입에 올리는 것을 경계하고, 심지어는 경멸하기까지 합니다. 사농공상이 아직도 작동하죠. 하지만 비즈니스는 이 스펙트럼의 가장 왼쪽, 즉 인간의 날것 그대로인 욕망을 간파하는 창업가가 살아남는 게임입니다.

남보다 우월해지고 싶고, 노력 없이 일확천금을 얻고 싶고, 매력적인 이성에게 선택받고 싶고, 최대한 게으르게 살면서도 대접받고 싶은 것. 이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능입니다.

그런데 소위 '배운 사람들'은 이 욕망의 민낯을 마주하는 것을 몹시 힘들어합니다. 남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행위 자체를 가증스럽게 여기고, 결정적으로 나 또한 그런 욕망 덩어리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자아는 계속 '멋진 모습'으로만 일하고 싶어 합니다. 시장의 욕망을 못본 체하고 제품을 만들면 창업자의 체면만 차린 '예쁜 쓰레기'가 탄생합니다. 배운 사람들의 지독한 인지부조화가 낳은 결과물이죠.

이 지독한 '체면의 병'을 보여준 사례가 있었습니다.

한의원에서 한약 매출은 중요합니다. 진료 후에 한약을 권하면 객단가와 수익률이 단숨에 올라가죠. 하지만 많은 한의사가 신성한 진료실에서 환자에게 한약을 팔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견디지 못합니다. '내가 의사지, 장사꾼인가?'라는 생각에 입이 떨어지지 않는 겁니다. 한약 처방은 의학적 지식이 필요해 상담 실장이 대신해 줄 수도 없으니, 결국 수익은 제자리걸음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한 똑똑한 한의원들은 어떻게 할까요? 그들은 한의사의 체면을 지켜주면서도 욕망(수익)을 실현할 시스템을 만듭니다. 아예 한의사를 만나기 전에, 상담사가 '3개월 패키지 케어 프로그램'을 제안하고 계약까지 마치죠. 돈 이야기는 시스템 뒤로 숨기고, 한의사는 까운입고 진료라는 우아한 '명분'에만 집중하면 됩니다. 이렇게 하려면, 모든 병을 고치는 한의원이 되면 안됩니다. 니치해져야 하죠. 비대칭 교정 전문이라고 해볼게요. 그럼 비대칭인 사람만 찾을 것이고 맞춤형 케어 프로그램을 제안받는 프로세스가 자연스러울 뿐만 아니라 신뢰가 갑니다. 이미 다 준비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으니까요. 그럼 나가서 비대칭으로 고생하는 친구에게 소개할 것이고요. 선순환하죠.

한의사뿐만 아니라 직장 오래 다닌 시니어들이 사업을 시작하면 어려움을 겪는 이유도 같습니다. 돈 이야기는 뒤에서 회사가 다 해주고 있었던 건데 이제 직접 해야하니 이게 영 입이 안떨어지는 것입니다.

체면 내려놓고 이제 우리도 팔아봅시다.

 

이제부터 진짜 존잼입니다. 욕망 파는 법!

요가복 어떻게 파는 지 아시나요?
평소에도 입을 수 있게 만들어서 요가하는 우아한 모습을 찍어서 파는 거예요. 
전자책 어떻게 파는 지 아시나요?
안 읽기 때문에 유익할 것 같은 느낌만 담아서 파는 거예요. 
모임은 어떻게 파는 지 아시나요?
이성을 만날수 있도록 설계해서 지적인 사람들의 모임으로 파는 거예요.
디저트는 어떻게 파는 지 아시나요?
달게 하되 건강한 재료를 조금 넣어서 건강한 단맛이라고 파는 거예요.
수제맥주 어떻게 파는 지 아시나요?
로컬리티 담아서 4캔 만원에 포함시켜야 팔려요. 
웰니스(공간) 어떻게 파는 지 아시나요?
사진 잘 나오게 만들어서 “나다움, 나알기”라고 해야 팔려요.

지금부터 8가지의 비즈니스를 명분과 욕망으로 해체해보겠습니다. 당신이 어떤 욕망에 꽂혀서 명분을 구매했는지 역으로 들여다 보시길 바랍니다. 순진해서 망하면 뼈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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