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팔, 팔란티어, 메타(페이스북), 오픈AI, 링크드인까지. 모두 이 사람이 창업하거나 투자했습니다.
오늘은 실리콘 밸리의 보수적인 킹메이커, 미국 공화당을 자신의 당으로 만든 자 등으로 다양한 수식어가 붙는 피터 틸(Peter Thiel)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그는 실리콘 밸리에서 시작해 억만장자가 된 비즈니스맨이면서, 보수적인 정치 활동가이기도 합니다.
그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철학과 공적 발언, 행동으로 주목을 받기도 하는데요. 그의 비즈니스 철학은 무엇인지, 요즘 그의 관심사인 원자력, AI, 불멸에 관한 의견은 어떤지, 그리고 이 모든 것의 근본으로서 그가 성장지상주의자로서 ‘성장’에 모든 것을 거는 이유는 무엇인지 살펴봤습니다.
<아티클 네비게이션>
1. ‘논란의 중심’이 된 12조 원 자산가에 관한 단상
2. 페이팔, 팰런티어, 4개의 투자사 이끈 비즈니스맨
3. 피터 틸의 최근 관심사 - 원자력, AI, 불멸
4. 피터 틸이 믿는 성장지상주의의 정체
‘논란의 중심’이 된 12조 원 자산가에 관한 단상
그는 페이팔과 팰런티어를 창업했고 4개의 투자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메타, 오픈AI, 스트라이프, 링크드인 등에 투자해서, 실리콘 밸리의 미다스 손으로도 불립니다. 또한 일찍이 우파 정치 활동가로도 나서서 주목을 받았습니다.
피터 틸은 이런 이력과 역량 뿐만 아니라 독특한 캐릭터와 구설수에 오를 만한 언행 및 행동으로 주목을 받습니다. 그는 ‘성장’을 지상 목표로 여기며, 민주주의를 믿지 않고, 고등교육이 경쟁과 적응을 강조하는 것을 비판하고, 기술의 끝없는 발전을 원합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을 ‘막는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에 반발심을 갖습니다. 스스로 “무능하게 보이는 것보다는 악당으로 보이는 게 낫다”고 할 정도죠.
또 한 명의 실리콘 밸리 거물, 링크드인 공동창업자인 리드 호프만(Reid Hoffman)은 대학 시절부터 피터 틸을 알고 지냈습니다. 그는 피터 틸의 사고 패턴에 관해 이렇게 언급했습니다.
“그는 거창하고 유토피아적인 희망을 끊임없이 내세웠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사로잡고 있는 어떤 비전이든 세상이 기꺼이 들어주지 않는다는 사실에 분노했습니다. 피터는 물이 반쯤 차 있는 잔에 대해 ‘잔이 반쯤 비어있다’는 게 아니라 ‘잔이 완전히 비어있다’고 말하는 경향도 있었습니다”
피터 틸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가 ‘원칙 없이 얽힌 위선’으로, 그저 원하는 건 뭐든 할 수 있어야 하는 자라고 평합니다. 혹은 진부하게 뻔뻔한 억만장자이며 기술의 무분별한 발전을 원하는 인물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반면 피터 틸의 극성 추종자들은 그의 미래관이 참신하고, 그가 동시대인은 알지 못하는 무언가를 알고 있다고 여기며 마치 컬트를 따르듯이 그에게 열광하기도 합니다.
피터 틸은 이렇게 한 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운 인물이지만 한 가지 명확한 점은 있습니다. 바로 그가 성공한 창업자이자 투자자라는 점입니다.
페이팔, 팰런티어, 4개의 투자사 이끈 비즈니스맨
피터 틸은 웹 기반 디지털 지갑, 이메일 기반 결제 시스템인 페이팔의 공동창업자로 먼저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피터 틸을 포함해 맥스 레브친, 루크 노섹 등은 ‘쉽고 안전한 온라인 송금’이라는 심플한 미션을 가지고 1998년 페이팔을 창립했습니다. 그들은 온라인 결제의 잠재력을 가장 먼저 발견했고 이를 빠르게 비즈니스로 구축했습니다.
페이팔은 공격적인 추천(레퍼럴, Referral)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사용자 기반을 빠르게 확장시켰어요. 덕분에 당시 최대의 온라인 경매 마켓플레이스 이베이(eBay)의 주요 결제 서비스가 됐고요.
당시 세간에는 ‘기존 금융 기관과 경쟁이 안 될 것이다’, ‘사기 문제를 극복하지 못할 것이다’라는 우려가 있었지만 페이팔은 그런 우려를 불식시키고 2002년 상장에 성공했습니다. 이후 15억 달러(현재 약 2조 원) 규모로 이베이에 인수됐죠.
피터 틸이 페이팔을 성공시킨 과정에서 다음 세 가지 포인트를 짚어볼 수 있습니다.
- 네트워크 효과 - 새로운 사용자 한 명이 기존 사용자의 가치보다 얼마나 더 큰 가치를 서비스에 더할 수 있는지, 네트워크 효과를 파악해야 합니다. 페이팔은 이를 파악한 뒤 추천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진행해서 초고속 성장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피터 틸은 네트워크 효과에 대해 “역설적이게도 네트워크 효과 사업은 특히 작은 시장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또한 네트워크 효과는 강력할 수 있지만 초기 사용자에게 제품이 가치를 제공하지 않는 한 결코 그 효과를 거둘 수 없습니다”라고 언급했어요. - 유통(distribution) - 페이팔은 ‘공짜 돈’ 같은 수단을 사용해서라도 사용자 확보에 집중했습니다. 단순히 제품을 만들고 사용자가 오기를 기대한 것이 아니라 타깃 고객에게 어떻게 다가갈지 고민했고 방법을 찾은 후에는 거침없이 실행했습니다.
피터 틸은 유통에 대해 “제품을 차별화하지 않더라도 뛰어난 판매와 유통만으로 독점을 구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반대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제품이 아무리 강력하더라도, 사용자의 습관은 무섭습니다(쓰던 걸 씁니다). 또한 사용자 누구나 제품을 처음 사용해 보는 순간 바로 좋아하게 되더라도, 기업은 강력한 유통 계획으로 그 제품을 뒷받침해 주어야 합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 독점 - 페이팔은 기존 시스템을 개선한 것이 아니라 온라인 결제의 잠재력을 먼저 알아본 비즈니스맨들이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한 것입니다. 따라서 페이팔은 틈새시장에서 지속적으로 독점적인 가치를 창출할 수 있었습니다.
피터 틸은 독점에 집착하기로 유명하죠. 그는 “독점은 모든 성공적인 비즈니스의 조건입니다. 모든 실패한 기업은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했습니다”라든지 “새로운 것을 창조할 때마다 우리는 0에서 1로 나아갑니다”(<제로 투 원(Zero to One)>)라는 말로 창조적인 독점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페이팔을 매각해 재정적인 성공을 거둔 피터 틸은 2003년 팰런티어(Palantir)를 공동창업했습니다. 팰런티어는 AI 및 데이터 기업이자 국방·보안 기관을 주요 고객으로 두고 있는 기업입니다. 올해 연 매출 예상치는 38억9000만(약 5조3000억 원)~39억200만 달러(약 5조4000억 원)으로 시가총액 1634억 달러(약 225조 원)를 달성했습니다.
팰런티어의 솔루션은 페이팔 출신 맥스 레브친 팀이 개발한, 정교한 사기 방지 시스템에서 발전됐습니다. 이 시스템은 페이팔에서 인간 분석가와 강력한 알고리듬을 결합해 조직적인 집단의 금융 범죄를 탐지하고 예방하는 데 효과가 컸어요.
피터 틸은 9/11 테러 이후 해당 시스템을 국가 안보에도 적용할 수 있겠다고 확신했습니다. 정부는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보유했지만, 이를 효과적으로 분석하고 인사이트를 도출할 소프트웨어 도구를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초기 팰런티어는 정부기관을 위한 주력 플랫폼으로 제공됐습니다. 물론 팰런티어는 이후 금융, 의료, 제조, 자동차 등 다양한 산업 분야로도 솔루션을 확장했죠.
팰런티어는 정부의 민간인 감시와 법 집행 등에 솔루션을 사용하기 때문에 논란의 중심에 서곤 합니다. 특히 개인정보보호 관련 단체와 시민 자유단체의 거센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합니다.
피터 틸이 팰런티어를 성공시킨 과정에서 다음 세 가지 포인트를 짚어볼 수 있습니다.
- 거대한 미션 - 팰런티어는 기술로 테러리즘 등 복잡한 데이터 저장소처럼 트렌드를 쫓지 않고, 진정으로 중요하고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에 도전하는 기업입니다.
피터 틸이 “기술이 선진국의 생산성 향상에 가장 큰 원동력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기술이 자유무역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봅니다”라고 언급한 코멘트와도 일치합니다. - 외부 갈등은 내부 결속 - 팰런티어의 일은 국가 안보와 데이터 관련 이슈 때문에 본질적으로 논쟁의 여지가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기업들은 철학적이고 윤리적인 입장을 명확하게 표현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이는 조직 내 공감대를 형성하고, 강한 목적의식을 심어줄 수 있습니다.
피터 틸은 “거대하고 초월적인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엄청난 규모로 세상을 바꿀 혁명적인 운동에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말입니다”라고 언급했습니다. - 10X 기술 구축 - 팰런티어는 공격적인 마케팅, 세일즈보다 심층 기술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따라서 독창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어 가능한 기술을 우선시하고 있습니다.
피터 틸은 저서인 <제로 투 원(Zero to One)>에서 “경험상 독점 기술은 진정한 독점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가장 유사한 대체 핵심 기술보다 최소 10배 이상 우수해야 합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피터 틸은 현재 투자사 네 곳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파운더스 펀드는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기술 혁신에 투자하는 그의 주력 벤처 회사고요. 클라리움 캐피털 매니지먼트는 헤지펀드, 미스릴 캐피털은 후기 단계 딥테크 기업 투자사, 발라는 초기 단계 글로벌 핀테크 특화 펀드입니다.
피터 틸은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통해 다음과 같이 자신만의 고유한 투자 철학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앞서 페이팔과 팰런티어의 비즈니스 포인트에서 피터 틸의 다른 원칙들을 다뤘기 때문에 아래는 그 외의 철학들을 공유합니다.
- 제1원칙 - 피터 틸은 피투자사들에게 역발상적 사고를 장려하고, 그들이 공식에 따른 것이 아니라 제1원칙에 따른 사업을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제1원칙은 어떤 문제에 대한 생각이나 사실들을 덜어냄으로써 본질이 남을 때까지 압축해나가는 사고 방식을 말합니다. (일론 머스크가 주창해 유명해진 게념입니다.)
“가장 반항적인 것은 대중의 의견에 맞서는 게 아니라 스스로, 자주적으로 생각하는 힘입니다” - 잠재력 - 피터 틸은 소수의 매우 성공적인 투자자가 대부분의 수익 창출을 한다고 믿습니다. 따라서 타깃 스타트업을 신중하게 선택하는 편입니다.
“전체 펀드의 가치를 회수할 잠재력이 있는 기업에만 투자하세요” - 세상을 바꾸는 비밀 - 피터 틸은 훌륭한 기업이 될 가능성이 있는 스타트업은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비밀스러운 사명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스타트업의 본질이 사명 중심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훌륭한 기업은 세상을 바꾸려는, 비밀 모의작당을 합니다. 그 비밀을 공유하면, 그 사람은 공모자가 됩니다”
피터 틸의 비즈니스 성공담을 보니, 자연스럽게 최근 관심사가 무엇일지 궁금해집니다. 그와 관련해서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피터 틸의 최근 관심사 - 원자력, AI, 불멸
피터 틸의 파운더스 펀드는 올해 4월 우리늄 농축 스타트업 ‘제너럴 매터(General Matter)’에 5천만 달러(약 680억 원)를 투자했습니다.
이 스타트업은 현재 상업적인 용도보다 최대 4배 농축된 우라늄을 생산하는 기술을 아예 처음부터 개발해서, 새로운 종류의 첨단 원자로에 원료를 공급하려 합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해당 기술을 개발하는 데만 수십억 달러가 들어갈 것이라고 해요.
피터 틸은 2015년부터 원자력 “탄소 없는 세상을 말로만 외칠 것인가. 화석 연료를 대체하고 싶다면 원자력 에너지가 필수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10년 후인 지금, AI 데이터 센터의 전력 수요가 폭증하는 시대가 됐어요. 더불어 미국은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며 에너지 자립, 국가 안보, 그리고 탈탄소화에 있어 원자력의 역할을 중시하고 있고요.
제너럴 매터는 비즈니스 미션 측면에서나, 시기적으로나 어찌보면 당연하게 피터 틸의 관심을 사로잡는 훌륭한 투자처가 됐을 것입니다.
한편, 원자력 에너지를 확실히 선호하는 데 반해 피터 틸은 지금의 화두인 AI에 관해서는 (자신이 여러 AI 스타트업에 투자를 했으면서도)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입니다.
피터 틸은 ‘전통적으로 똑똑한 AI’는 큰 차이를 만들지 못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다음처럼 AI를 인터넷에 비유했습니다.
“인터넷은 1999년 다양한 아이디어가 폭발적으로 가득한 ‘풍요의 보고’가 될 줄 알았으나 결국 (실망스럽게도) 사회순응적인 기술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인터넷이 없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합니다. AI도 체제 및 관습에 순응하게끔 지능이 발전한다면 인터넷과 비슷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도 AI를 계속 발전시키려고 시도해 봐야죠. 안 그러면 아무 성장도, 발전도 없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피터 틸은 논란의 여지가 있는 분야, 즉 불멸과 트랜스휴머니즘에 여전히 관심이 많습니다. 트랜스휴머니즘은 (피터 틸의 정의에 의하면) ‘사람이 기술을 기반으로 마음과 정신, 온몸을 바꾸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그는 항노화 및 트랜스휴머니즘을 연구하는 주요 기관으로 틸 재단을 운영해 오고 있으며, 틸 재단은 지속적으로 노화 조절을 연구하는 SENS 연구 재단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그는 인간 수명 연장 연구를 하는 메투셀라 재단에도 2006년부터 쭉 기부를 하고 있습니다.
피터 틸은 ‘노화’를 (과학과 기술로) 해결해야 할 문제로 여깁니다. 따라서 인간의 조건을 향상하는 트랜스휴머니즘 기술, 냉동 보존 기술 등으로 극복해야 한다고 봐요.
(그런 맥락에서) 피터 틸의 목표는 단순히 몇 년을 더 사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재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는 트랜스휴머니즘 기술에 관해 이렇게 언급한 바 있습니다.
“AI 지지자들은 디지털 불멸, 인간과 기계의 융합을 말하지만 나는 그 비전이 (내가 상상하는 급진적인 비전에 비해) 애처로울 정도로 작다고 생각한다. 나는 컴퓨터에 업로드되어 시뮬레이션으로 프로그래밍되는 것이 아니라, 내 몸 그대로 불멸하고 싶다”
피터 틸은 현재 항노화, 치매, 불멸 연구가 너무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고 불평합니다. 그는 심지어 이 연구들이 무시받고 있다고 생각하며, 더더욱 높은 목표를 가지고 가열차고 야심차게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해요.
그러나 일각에서는 피터 틸이 사실상 ‘기술 종교’를 만드는 것이 아니냐고 우려합니다. 그가 기술을 거의 모든 문제의 궁극적인 해결사로 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종교적인 측면에서 주된 목표 중 하나였던 ‘불멸’도, 그는 기술 발전으로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는 거죠.
종교와 과학이 화합을 이루어야 한다는 데는 대부분 동의할 테지만, 기술이 발전하면 인간이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피터 틸의 주장에는 논란의 여지가 생깁니다.
피터 틸이 이렇게 관심 있는 주제들에 보이는 주된 태도는 ‘불안’입니다.
리드 호프만이 언급했듯이 피터 틸은 자신이 관심 있어 하는 일이 막히면 부정적인 감정을 보이는데요. 피터 틸은 지금 기술의 발전이 정체되어 전체적인 성장도 느려져 버렸다고 현실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자신의 관심사를 현실화하는 일이 요원해지는 상황을 두려워하고 불안해하고 있죠.
그래서 실리콘 밸리의 다른 이들도 자신과 비슷하게, 지금이 침체기라는 감각을 뚜렷하게 느끼고 더 빠른 기술의 발전과 변화와 성장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피터 틸이 믿는 성장지상주의의 정체
“1750년에서 1970년 사이 200년 동안은 변화에 가속이 붙었습니다. 그때는 새로운 기술을 거침없이 활용해서 배, 기차, 자동차, 비행기 등이 빠르게 발전했고 어마어마한 성장을 이뤘습니다. 콩코드 비행기가 하늘을 날았고 아폴로 미션도 성공했죠. 하지만 이후 갑자기 모든 것이 느려졌습니다.
(물론) 컴퓨터, 소프트웨어, 인터넷, 모바일 기술이 등장했고, 직전 10년~15년 전부터 지금까지는 크립토 기술과 AI 기술이 크게 발전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기술들이 일반화된 정체감을 타개하지는 못했다는 것입니다”
피터 틸은 세계가 정체됐고 기술 침체기를 맞이했으며, 인류가 그에 대해 더 빨리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데 큰 두려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는 정체기를 감각하고 있는 이유들을 지속해 이야기했죠.
그는 그 이유 중 하나로 물리학, 암, 치매 연구, 바이오테크 등 ‘고도로 전문화된’ 분야가 제대로된 성과를 내지 못하고, 따라서 진보를 이루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언급했고요.
다른 하나로는 부모 세대가 아이 세대의 삶의 질을 더 향상시킬 환경을 만들 수 있다는 기대감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침체기의 신호를 느낄 수 있다고 말했어요.
나아가 그는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사람들이 저항할 수도 있고, 성장에 기반한 제도와 관습이 불안정해지고 결국 사회가 무너질 수도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럴 때 봉건주의, 권위주의 등이 틈탈 것이라고도 하죠.
그래서 그는 당장 물리적인 혁신(에너지, 운송, 제조업 등)에 더 많이 투자해서 자원 고갈을 막고 성장을 지속해서 미래로 갈 예산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변합니다.
따라서 그에게는 ‘성장’이 지상 목표입니다. 자연스럽게 그는 국내외 규제에 적극 반대하고요.
피터 틸은 규제기관인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인류가 ‘복종했다’며 반발심을 드러냅니다. 또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에 대해서는 세계 어디든 원자력 발전소를 짓는 과정에 개입해서 규제할 수 있다고 비판합니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피터 틸은 2016년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슬로건을 들고 나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선거 운동에 적극 참여했고 펀딩도 했어요. 그 이유는 미국 행정부가 완전히 혼란에 빠지며 모든 규제를 철폐해야만 사람들이 제대로 위기를 느끼고, 성장을 향해 진정한 갈망을 보일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는 당시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피터 틸이 상상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후 그는 “당시 베팅을 잘못했다”고 인정했고, 지금은 정치권에 펀딩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2025년 현재 피터 틸의 인맥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고위층에 널리 포진해 있어요.
피터 틸은 여전히 지금의 정부가 그나마 최선의 옵션이라며,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기술을 급발전시켜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집니다. 그리고 우파 정치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하지만 피터 틸은 “지금보다 훨씬 큰 리스크를 감당해야만 한다”고 과감하게 말해요.
흥미롭게도 피터 틸은 자신을 억만장자로 만들어 준 터전인 실리콘 밸리에도 더 큰 리스크를 감당하지 못한다는 화살을 돌리기도 합니다. 그는 여전히 실리콘 밸리에서 혁신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지지한다면서도, 인류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키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고 꼬집습니다.
1. 실리콘 밸리에서 IQ는 중요하지 않다
우선 그는 실리콘 밸리에 IQ가 높은 사람들이 엄청난 것을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믿는 이데올로기가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틸은 인재가 똑똑하면 오히려 훌륭한 일을 하지 못하고 성과를 내지 못할 거라고 여기죠. 피터 틸에 따르면 그들이 역발상을 하지 못하고 환경에 순응하기 쉬워지기 때문입니다.
그는 혁신이 일어나는 곳에서는 똑똑함보다 ‘사회가 어딘가 크게 잘못됐다는 감각을 느끼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우리는 천재보다 용기가 부족한 세상에 살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2. 실리콘 밸리에는 야망이 없다
더불어 그는 실리콘 밸리에 대해 기술의 의미를 더 거시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야망이 작아질 수밖에 없다고 신랄하게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AI를 주제로 이야기한다면 실리콘 밸리에서는 “AI의 IQ 점수는 얼마일까요?”, “범용 인공지능(AGI)을 어떻게 정의할까요” 등의 끝없는 기술적인 논쟁에 휘말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피터 틸은 해당 논쟁이 너무 미시적이고, 중간 단계의 중요한 질문들을 생략했기 때문에 의미가 없다고 봐요. 그는 “AI 기술의 발전은 예산 부족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국제적인 지정학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거시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라는 더 야심찬 질문들이 실리콘 밸리에서도 나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워싱턴 대학교 교수 겸 역사학자 마거릿 오마라(Margaret O'Mara)는 피터 틸의 이러한 발언들에 대해, “자유주의자면서도 냉전 때 정부가 경제에 개입했던 황금기를 회상하는 것 같아 부조화스럽다”고 언급했습니다.
그러나 오마라 교수는 실리콘 밸리가 애초에 원자 탄두용 컴퓨터를 개발하는 프로젝트에서 시작됐기 때문에 피터 틸의 뜻대로 된다면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이기는 하다고 덧붙였습니다.
3. 실리콘 밸리는 겉과 속이 다르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피터 틸은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실리콘 밸리의 어두운 진실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실리콘 밸리의 저명한 창업가, CEO들은 그동안 진보적인 성향을 보여왔는데, 그들의 기업과 제품이 실제로 그런 가치나 대의를 증진했는지는 늘 의문이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테크 플랫폼들은 모두 ‘민주화’를 지향한다고 주장하지만 사실 가장 중앙집권적인 시스템을 갖추었습니다.
그랬을 때 피터 틸의 발언과 행보는 실리콘 밸리의 이런 면모를 다시금 두드러지게 보여주면서, 일견 그가 가장 정직해 보이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에 관해 뉴요커는 “피터 틸은 실리콘 밸리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는 인물인 한편, 사람들에게는 전형적으로 ‘나쁜 갑부 악당’으로 비치기도 한다”고 평가했습니다.
이렇게 피터 틸은 흥미로운 인물입니다. 그는 인류학, 정치 이론, 첨단 기술 이론, 금융, 종교 관련 용어를 유창하게 넘나드는 지적 정체성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솔직히) 이렇게 독특한 조합으로 발화되는 그의 말들이 전부 다 응집력 있게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지성을 중시하는 기술 문화에서 틸은 자신을 지성인처럼 보이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게다가 자본주의의 정점인 미국에서 이미 억만장자가 된 사람이 자신이 생각하는 아이디어에 지나칠 정도로 확신을 가지고 더 큰 예산을 확보해서 기술을 급속히 발전시키고 극도로 성장을 추구하려 한다는 점이 피터 틸이라는 인물을 더 주목하게 만듭니다.
어쨌든 창업자 또는 CEO로서 피터 틸의 성공 원칙들을 귀담아 듣는 것은 도움이 될 수 있겠습니다.
그는 경쟁을 피하고 틈새 시장을 공략해서 독점하라고 강조했고요. 또 네트워크 효과를 작게 시작해서 크게 성장시키라는 말도 했습니다. 더불어 그는 아무리 좋은 제품이라도 세일즈 계획이 탄탄해야 한다는 실질적인 팁을 주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비즈니스맨의 역량으로서 다른 사람이 하지 못하는 역발상적인 아이디어를 내고 리스크를 감당해야 한다는 중요한 조언을 남기기도 했는데요.
그러나 비즈니스 조언 외 그의 철학들은 늘 논쟁의 대상이 됩니다. 그의 전기 <The Contrarian>을 쓴 막스 채프킨(Max Chafkin)은 피터 틸에 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피터 틸의 기이한 정치 및 경제 철학은 파시즘에 가깝습니다. 틸은 기업이 정부보다 더 잘 운영되는 이유가 기업이 단일 결정권자, 사실상 독재자가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는 민주주의라는 개념에 적대적입니다. 게다가 그는 스페이스X를 포함한 몇몇 방위 계약업체에 큰 지분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피터 틸의 생각은) 조금 무섭습니다.”
따라서 “가장 반항적인 것은 대중의 의견에 맞서는 게 아니라 스스로, 자주적으로 생각하는 힘이다”라는 피터 틸의 말마따나 오히려 그의 의견 역시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창업이든, 철학이든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편집: 김지윤
- 글 : 장혜림 에디터
글들은 정말 좋은게 많은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