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블로그에 올린 글을 기존에 EO에 올렸던 글 어투에 맞게 살짝 수정해서 올린 글이에요.
재밌게 읽어주세요 :)

잘 다니던 잘 나가던 회사를 퇴사하고 3개월이 될 시점 SyncSwift 2023에서 신나게 발표했던 걸 EO 플래닛에 글로 적은 적이 있어요. 퇴사하며 링크드인에 남긴 글은 60,000 뷰, 인스타그램 릴스는 550,000 뷰를 찍으며 많은 분들의 관심을 받았죠.

이제는 퇴사하고 1년이 조금 넘었는데, 1년을 회고하며 요새 어떤 생각을 하는지 남겨보려고 해요.

지금 저는 앱 서비스 하나를 팀과 함께 운영하고 있어요. 서비스를 만들기 전까진 EO 글에 쓴 것처럼 다양한 일을 했어요. 작년 10월 말, 워케이션에서 해커톤을 하며 앱을 만들었어요.
돈도 벌고 있어요. 공동 창업자 분들이 풀타임 회사를 그만두고 전부 우리 팀으로 넘어오면서, 매달 30% 이상의 매출 성장세를 보이고 영업 이익률도 좋은 상태예요. 이 어려운 시기에 저를 포함한 다섯 명의 팀원이 월급을 받으며 일해요.

월급을 받기 전에는 VOD 강의를 통해 개인적인 생활비를 마련했어요. 제가 가진 지식을 정리하면서 돈을 벌고 있었죠.

불안하지 않냐고요? 불안하죠

퇴사는 핫하지만 살아남는 과정은 지난하고 불안하고 괴로운 면이 많아요. 겉으로 봐서는 괜찮아 보이는 성과지만, 가끔 불안한 감정이 올라오곤 해요.

부트스트래핑으로 회사를 만든 상태고, 법인 설립한 지 10개월 차가 된 아주 초기여서 현금 흐름 문제가 생기기 쉬운 시기예요. 아니, 법인을 만드는 것부터 세무적인 것, 현금 흐름 등 회사를 운영하는 것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 많아요.

다행히도 다른 대표님을 통해 스타트업 업무에 정통한 세무사님을 소개받아서 도움을 받을 수 있었어요. 

현금 흐름 관련해서는 광고비가 가장 크리티컬했죠. 인앱 결제 수익에 비해 광고비 지출 주기가 빠르다 보니 매출은 느는데 광고비 때문에 잔고가 바짝바짝 말라갔어요. 메타에서 월간 인보이스라는 크레딧 라인(단기 대출)을 승인해줘서 숨통이 트였어요.

당연히 토스 다니던 시절이 그리웠던 적도 있어요. 저는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일하는 걸 굉장히 좋아해요. 그러다 보니 2,000명 넘는 회사에서 5명짜리 회사로 바뀌었다는 걸 받아들이기 어려웠어요. 너무 외롭고 힘들다고 팀원들한테 징징대기도 하고, 역삼역 위워크 라운지에서 쓸쓸해하며 울기도 했죠.

더 현실적인 고민은 자녀 계획이에요… 창업가가 애를 낳아 기르는 건 난이도가 매우 높은 일 같아요. 가끔 ‘육아휴직도 있고, 연봉도 높은 따뜻한 회사를 박차고 나와서 이게 맞나?’ 라는 생각이 스물스물 올라오지만, 지금은 해탈했어요. 어쩌겠나요… 선택에 후회 없도록 만들려고요.

특별히 기억나는 장면이 있나요?

기억나는 장면이 정말 셀 수 없이 많아요. 그중 몇 가지를 꼽아보자면, 공동 창업자 분들이 풀타임으로 일하던 회사를 퇴사하고 위워크에 첫 사무실을 구했던 날이 기억나요. 사무실에 들어간 첫날, 등을 맞대고 옹기종기 앉을 수밖에 없는 8층에 있는 아주 작은 사무실이었어요. 거의 10개월간 라운지를 계속 쓰다가 이 작은 사무실을 쓰게 되니 기분이 묘했어요.

또, 제가 일하지 않아도 돈이 벌리는 감각을 익혔을 때가 기억나요. 여러 피봇 과정을 거치며 사업을 키워갔어요. 그 피봇 과정에서 내 시간을 돈으로 바꾸는 게 아닌 다른 세상이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됐어요. 그러면서 콘텐츠 앱으로 진화했는데, 꼭 사람이 끼지 않으면서 서비스 자체로 돈을 벌기 시작하며 또 다른 산을 넘은 기분이었어요. 이건 감각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그 감각에서 자유로움을 느꼈어요. 되게 다른 사람이 된 느낌이었어요.

만약에 더 높은 곳이 있다고 하면 콘텐츠를 파는 게 아니라 소프트웨어 그 자체로 돈을 버는 곳이 있을 거예요. 거기서 보는 뷰는 또 달라질 것 같아요. 아니면 O2O 같은 시장으로 넘어가서 오프라인의 문제를 풀거나 글로벌로 돈을 벌기 시작하면 어떨까요? 우리가 유니콘 기업을 만들면 어떨까요? 회사가 나스닥에 상장을 하게 된다면? 스테이지 자체를 계속 깨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이에요. 갈 곳이 아주 멀리 남은 것 같아요.

또 기억나는 장면은 같이 강원도 고성 여행 겸 워케이션에서의 순간들이에요. 울산바위가 보이는 곳에서 일출을 보고, 숙소로 돌아와 바다도 보고 맛있는 것도 먹었지만, 일을 진짜 쉬지 않고 했어요. 거기서 만든 앱이 지금까지 우리의 소중한 리소스가 되어주고 있어요.

매일의 아주 작은 일도 소중하고 중요하다는 것도 알게됐어요. 팀원 분들과 회고나 원온원을 하고 나서 제가 도움이 됐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있어요. 우리 앱이 사용자의 문제를 해결해주고 있다고 느낄 때도요. 그런 순간들을 사랑해요.

퇴사 전후로 가장 달라진 점이 있나요?

스스로 달라졌다고 느끼는 점도 있어요. 
예전에는 “돈 버는 사이드 프로젝트 해보면 너한테도 좋을걸?” “회사 그만두는 것도 옵션일 거야”라고 지인들에게 말하곤 했는데, 퇴사 6개월쯤부터는 사람들에게 회사를 그만두라고 쉽게 말하기 어려워졌어요… 돈을 만들고 이걸 유지하는 게 에너지가 많이 들고 너무 어렵다는 걸 이젠 좀 알겠어요.

일단 창업은 미친 짓이라는 걸 먼저 말해두고 시작할게요.

창업의 조건을 생각해 보면 돈이 없어도 괜찮거나, 별로 힘들지 않거나, 각오가 되어있어야 하는 거 같아요. 근데 저는 돈이 없어도 괜찮지 않았어요. 첫 회사 다닐 때 월급이 120만 원, 150만 원이었는데 그때 너무 궁했던 기억이 강해요. 2014년, 처음으로 옮겼던 스타트업이 망하고 나서 생계가 너무 불안했어요.

그래서 창업의 조건으로 어느 정도의 돈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떤 사람, 저 같은 사람은 돈이 없으면 도전을 못해요. 어느 정도 먹고 살 만큼은 돈이 있어야 마음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어요. 아니면 패시브하게 개인 생활비 정도의 수익을 만들 수 있는 구조가 있거나요.

왜냐하면 사업의 성과가 나는 데까지 생각보다 오래 걸리는 거 같거든요. 글로벌로 하면 최소 3년 이상, 우리가 익숙하고 편한 곳에서 하더라도 최소 1년 반 이상은 만들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들 하시더라고요. 창업을 하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다면 제가 강력하게 추천하는 건 가능한 길게 버틸 수 있는 현금을 만들어두는 거예요. 아니면 그 불안한 마음을 다스리기 힘들어요.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내가 일단 밥은 먹고 살아야 되는데 이걸 하는 게 맞나’ 같은 생각을 하게 되거든요. 그래서 정말 강한 마음이 없는 이상… 창업을 한다는 건 생각보다 불안하고 현실적으로 준비가 필요한 일 같아요.

제 에너지도 최대한 아끼며 살고 있어요. 이번 여름에 창업 초기에 만난 친구를 1년 만에 만났던 적이 있는데, “왜 이렇게 차분해졌냐”고 하더라고요. 퇴사하고 창업하는 것 자체가 매우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이라서, 그 뒤에는 유지하는 데 집중하게 되네요.

만약 1년 전으로 돌아간다면요…

“이 모든 걸 다 알고도 할 거냐” 물어보면 “절대 안 한다…” 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어요. 하지만 왠지 느낌이, 다시 돌아가면 또 퇴사하고 창업할 것 같아요. 왜냐면 내가 나답게 살고,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나에게 자유로움을 주기 때문이에요. 선택은 내가 하고, 달려가는 것도 내가 하죠. 그냥 그것 자체가 주는 해방감이 남다르거든요.

누군가 저에게 “최근에 당신은 마치 경주마에서 야생마가 된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이 비유가 전 너무 맘에 들었어요. 경주마는 앞만 보고 달리도록 디자인되어 있죠. 반면 야생마는 앞만 보고 달리는 게 아니라 풍경을 보기도 하고 자유롭게 뛰어다녀요. 야생마는 자연을 친구 삼아 달리다가 멈춰서 쉬고, 또 다음 목적지로 달려가요. 점점 길들이기 어려워지겠지만 그는 그대로 행복할 거예요. 저 다운 삶의 방식을 계속 유지하며 살고 싶어요. 그러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아요.

저는 14일 동안 미국 신혼여행(이라 쓰고 휴가 겸 미서부 로드트립 겸 실리콘 밸리 탐방 이라 읽는다…)을 마치고 내일이면 한국에 돌아가요. EO 하우스에서 EO 플래닛에 올리는 글을 마무리 하고 있으니까 신기하기도 하고 감회가 새롭네요. 이런 솔직한 제 이야기를 쓰는 블로그를 오픈했는데 구독하시면 미공개 글을 받아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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