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루리웹>
우리 회사(에루디오랩스)는 대표이자 기획자이자 마케터 역할을 하는 저와 개발전체를 담당해주는 CTO 두명으로 시작한 작은 회사입니다.
처음 CTO와 상품개발 회의를 할 때의 충격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구현은 앱이 아닌 웹베이스로 하고, 웹은 VUE로 먼저 만든 후에 Svelte로 리뉴얼 할 예정이구요, 서버는 AWS로 일단 시작하고 차후에 자체서버를 리눅스로….."
“말씀하신 기능은 텐서플로우 베이스인데, 서버에 올리기 너무 무거워서 클라이언트로 만드는게….”
음… 뭐라고 굉장한 내용을 말하는 것 같은데 한 개도 못알아들었습니다.
순혈 문과인 기획자에게 골수 이과인 개발자가 ‘문과도 이해할만한 언어’로 전달하는게 빠를까요
아니면 개발자가 하는 외계어(?)를 기획자가 공부해서 알아듣는게 빠를까요?
직책으로 따지면야 대표인 제가 쓰는 언어로 바꿔서 알아듣게 이야기하는게 맞을 수도 있지만
문제는 CTO인 친구는 제가 학원에서 가르쳤던 제자 출신이라는 점입니다.
한 때 ‘선생의 자존심’이 있어서, 모르는 내용을 몇 개 물어보다가 아예 회의를 녹음하고 적어놓기 시작했습니다.
몇날 며칠을 구글에서 검색해 찾고 또 찾다가 드는 결론이
“그냥 내가 프로그램 언어 하나라도 배우는게 좋겠다. ” 였습니다.
그래서 비교적 직관적인 언어인 파이썬을 배우며 옛 제자(CTO)를 스승삼아 지금도 조금씩 배우는 중입니다.
파이썬의 기초문법을 배우고, 내가 쓰고싶은 간단한 프로그램들(문서/교재 편집)을 직접 만들어보니
숨겨진 내 코딩재능을 발견하는 일은 물론 일어나지 않았지만 ^^;;
개발자와 대화가 한결 간결하고 편해졌습니다.
기획한 MVP 를 개발하는 계획을 짤 때 어떤 언어로 어떤 기술과 라이브러리를 사용할 지
어떤 자원이 필요하고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리는게 ‘당연’한건지
개발자에게 어떻게 이야기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고 오해가 안생기는지
그리고 반갑지 않지만 자주 찾아오는 손님인 ‘에러’가 발생했을 때 최소한의 대응가능한 방법 등등
회사 안에서의 대화가 한결 편해졌습니다.
게다가 제가 개발자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행동 그 자체가 둘 뿐인 이 팀을 조금 더 끈끈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기존의 IT 대기업들이 얼마나 괴물인지도 알게된 것은 덤일까요? ㅎㅎ)
그리 많은 시간이 들지 않았습니다.
1월부터 하루일과 끝내고 1-2시간씩 꾸준히 코드 짜보고, 새로운 라이브러리 확인해 보고, 오류 생기면 가끔 밤새 한탄(?)하며 구글 뒤지고… 하니 ‘개발자와 좀 더 유연하게 대화할 수준’이 된 것입니다.
소규모 팀에서 문과출신이 개발자와 소통이 막히는 느낌이 든다면
소심하게 추천드리는 무식(?)한 방법입니다.
PS.
문과도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파이썬 언어를 만드신 귀도 반 로섬(Guido van Rossum)에게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