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 조각 (Neural Sculpting)
로체스터, 프린스턴, 예일 대학교 공동 연구팀이 2024년 12월, 국제학술지 PNAS(미국국립과학원회보)에 발표한 실험 하나를 소개합니다. 참가자는 fMRI 기계 안에 누워, 머리 위 거울에 비친 화면에서 부글부글 흔들리는 추상적인 도형 하나를 봅니다. 참가자들은 저마다 이 도형을 “꽃잎 같다”, “식물 구근 같다”, “나비 같다”고 표현했습니다. 연구팀의 지시는 단 하나뿐이었습니다. “이 도형의 흔들림을 멈추게 할 마음 상태를 떠올려보세요.” 어떻게 해야 그 상태에 도달하는지는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참가자가 머릿속으로 무언가를 떠올릴 때마다, 실시간으로 측정된 fMRI 신호가 연구팀이 미리 정해둔 목표 패턴에 가까워지면 도형의 흔들림이 잦아들었고, 멀어지면 다시 심해졌습니다. 하루 한 세션씩 엿새에 걸쳐 이 훈련이 반복됐고, 참가자들은 흔들림을 멈출 때마다 금전적 보상까지 받았습니다. 실험이 끝날 즈음엔 꽤 짭짤한 액수가 쌓일 만큼 동기를 부여하는 구조였습니다. 훈련이 끝난 뒤 전혀 다른 도형들을 분류해 보라고 하자, 참가자 대부분이 훈련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경계선을 기준으로 도형을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이 무엇을 배우고 있었는지 전혀 모른 채로 말입니다.
연구를 이끈 코랄린 이오르단(Coraline Rinn Iordan, 로체스터 대학교 뇌인지과학 교수)은 이 방법을 “신경 조각(neural sculpting)”이라 부릅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연구팀이 한 일은 참가자에게 무언가를 가르치고 그 결과 뇌가 어떻게 바뀌는지 관찰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학습했다면 자연스럽게 생겨났을 범주를 뇌에 곧바로 심어넣고, 그 범주를 참가자가 실제로 ‘보게 되는지’를 확인한 것이었습니다. 결과는 그렇다 였습니다.

배움의 순서?
이 실험이 흥미로운 이유는 단순히 “뇌를 훈련시킬 수 있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우리는 보통 배움이 이런 순서로 온다고 믿습니다. 먼저 이해하고, 그다음 행동이 따라온다고. 목표를 알아야 준비할 수 있고, 이유를 알아야 노력할 수 있다고. 그런데 이 실험은 그 순서를 완전히 뒤집었습니다. 참가자들은 자신이 무엇을 위해 훈련받는지 전혀 몰랐지만, 그럼에도 뇌는 이미 새로운 범주를 만들어냈고, 행동은 이미 바뀌어 있었습니다. 이해는 나중에 와도 됐습니다. 아니, 어쩌면 끝까지 오지 않아도 상관없었을 겁니다.
리더로 산다는 것도 비슷한 구석이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내가 어떤 리더가 되어야 하는지 먼저 확실히 알아야, 그에 맞게 행동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방향이 불분명하면 움직이지 않고, 확신이 서지 않으면 시작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이것 자체가 착각일 수 있습니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아직 이름이 붙지 않은 어떤 능력이 당신 안에서 조각되고 있는 중일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그것을 의식하고 있든 아니든 상관없이 말입니다.
여기서 분명히 해둘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이건 목적 없이 아무렇게나 움직이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목적을 기다리며 멈춰 있다고 스스로 믿는 그 순간에도, 당신은 이미 움직이고 있고, 그 움직임 하나하나가 이미 뭔가를 조각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아직 준비가 안 됐다”는 말은 사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다는 뜻이 아니라, 그 조각이 지금 당신 모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뜻에 더 가깝습니다.
아웃사이트 (Outsight)
경영학자 에르미니아 이바라(Herminia Ibarra, 런던 비즈니스 스쿨 교수이자 전 INSEAD 교수)는 수백 명의 관리자와 경영자를 10년 넘게 관찰한 뒤, 정반대되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는 이를 “아웃사이트(outsight)”라 이름 붙였습니다. 인사이트가 성찰을 통해 안에서 밖으로 얻는 것이라면, 아웃사이트는 행동을 통해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리더가 되기 위해 먼저 생각을 바꾸고 그다음 행동해야 한다는 통념은, 이바라에 따르면 순서 자체가 틀렸습니다. 실제로는 낯선 프로젝트에 뛰어들고, 다른 방식으로 일하는 사람들과 부딪히고,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보는 행동이 먼저 오고, 정체성과 사고방식의 변화는 그 결과로 뒤늦게 따라옵니다.
이바라가 소개하는 사례 하나가 있습니다. 중견 유럽 식품 제조사의 생산 관리자였던 제이콥은 스스로를 “소방관”이라 불렀습니다. 매일 이 부서 저 부서로 뛰어다니며 문제를 진화하느라, 정작 회사의 방향을 고민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더 큰 리더 역할로 올라서고 싶었지만, “내가 전략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이 되어야 그 역할을 맡을 수 있다”고 믿었고, 그래서 그런 확신이 서는 순간을 기다렸습니다. 이바라의 관찰은 정반대였습니다. 성찰만으로는 제이콥이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가 실제로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고, 다른 부서 사람들과 새로운 방식으로 협업을 시작한 뒤에야, 전략적으로 사고하는 감각이 비로소 자라났습니다. 순서는 행동이 먼저였고, 정체성은 나중이었습니다.
이 지점에서 앞의 신경 조각 실험과 이바라의 연구는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겁니다. 둘 다 “이해가 행동에 앞선다”는 우리들의 일반적 상식을 반박하고 있습니다. 이 신경 조각 연구에 대해 예일 대학교의 니콜라스 터크브라운(Nicholas Turk-Browne) 교수는, 실시간 fMRI를 이용한 뇌 훈련 연구 가운데 가장 강력한 사례 중 하나로 평가했습니다. 그리고 정작 흥미로운 지점은, 참가자들이 인식조차 하지 못한 채로 그 변화가 일어났다는 사실입니다. 어쩌면 리더로서 우리가 기다리고 있는 “확신”이라는 것도, 실은 행동이 다 끝난 뒤에야 도착하는 손님일지도 모릅니다.
공동 저자인 프린스턴 대학교 조나단 코헨(Jonathan Cohen, 인지신경과학 교수)은 이 결과를 더 넓은 맥락에 놓습니다. 인식하지 못한 정보에도 사람이 의미 있게 반응할 수 있다는 것, 즉 ‘암묵적 처리(implicit processing)’는 심리학에서 오래 다뤄온 주제인데, 이번 연구는 그 범위가 단순한 인식을 넘어 뇌 안에 완전히 새로운 표상을 만들어내는 학습 자체까지 확장된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뭔가를 ‘배우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상태’는 예외가 아니라, 학습이 원래 작동하는 방식 중 하나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연구팀은 이 방법이 언젠가 우울증, 자폐 스펙트럼, 시각 실인증 같은 신경정신질환 치료에도 쓰일 수 있다고 내다봅니다. 환자의 뇌 활동 패턴을 이른바 ‘정상’으로 여겨지는 패턴에 가깝게 조각해 나가는 방식이라는 말입니다. 터크브라운 교수는 이 기술이 앞으로 뇌-컴퓨터 인터페이스와 임상 개입의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조각당하는 사람은 여전히 그 변화를 의식하지 못합니다. 다만 이번에는 조각의 방향, 즉 어떤 패턴이 ‘바람직한지’를 정하는 사람이 따로 있습니다. 조각은 이제 자기 자신의 반복된 행동만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설계한 목표를 향해 일어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조각칼을 인지할 것인가, 아니면 누군가에 의해 조각되어지는 대로 흘러가는 삶을 살 것인가
오늘 뉴스레터의 요점은 “목적 없이 사는 게 좋다”거나 “계획 없이 사는 게 나쁘다”가 아닙니다. 조각은 당신의 허락을 구하지 않고 계속 진행된다는 것, 그리고 거기서 당신이 실제로 정할 수 있는 건 딱 두 가지뿐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그 방향을 고르고 있는가, 아니면 그냥 흘러가게 두고 있는가”, 그리고 “지금 그 방향을 정하고 있는 게 나인가, 아니면 그냥 내가 속한 문화나 내 주변 사람들의 습관인가” 하는 말입니다.
Editor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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