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은 세일즈에서 가장 게으른 행동이다.
한국에선 파운더들과 정부기관 담당자분들, 미국에선 주로 YC 파운더들과 대화한다. 두 문화권을 넘나들며 수백 번의 미팅을 하고 나서 공통적으로 깨달은 게 최근에 하나가 있는데, 바로 설득하는 과정에서 타인에게 무조건적으로 공감하는 것보다, 타인의 감정을 해치지 않고 내 의견을 말하는 게 더 효과적이다라는 점이다.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어쩌면 외국인인 나에게 한동안 세일즈 플레이북은 두 문화권에서 똑같았다.
“일단 뭐가 됬든, 공감하고 라포를 쌓아라”였다. 근데 이 조언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세일즈에서 신뢰는 공감의 양이 아니라, 상대에게 쓴 노력의 총량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신뢰를 얻을 때 취할 수 있는 자세는 5가지
*순서는 노력의 총량 순이기도 하고, 가장 저렴한 형태부터.
1️⃣ 공감한다.
공감은 가장 싸다. 가장 노력이 안들어가는 형태의 신뢰 빌딩이다. 상대를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고도 마음을 얻어낼 수 있는 가장 얕은 방법이다. 참고로 이것보다 더 얕은 건 조건을 맞춰주는 거래다. 두 방식 다 단편적이며 그닥 많은 생각과 감정이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잦고 과장된 공감은 마이너스다. 미국에선 바로 판별이 되는 쪽이고, 한국에선 상대가 점차적으로 그리고 확정적으로 당신의 그런 성향을 파악한다. 상대는 "이 사람이 나를 알려고 하지 않는구나"를 감지한다.
2️⃣ 다른 의견을 낸다.
의견을 말하는 건 소모적인 행위다. 즉, 배려하는 행위다.
상대가 얘기한 포인트에 A. 기분 나쁘지 않게, B. 내 의견을 얹는 행위에는 A. 지금 상대의 감정을 읽고 다음 감정을 예측하는 노력, B. 내 의견을 정리하고 듣기 좋게 표현하는 노력이 동시에 들어간다. 상대는 이 노력을 알아본다. 무조건적인 공감보다 훨씬 더 선호한다.
3️⃣ 질문한다.
정확히는, 상대도 아직 정리하지 못한 지점을 묻는다.
좋은 질문은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듣고, 말하지 않은 부분을 가설로 세워야만 나온다. "매출이 왜 안 나오세요?"는 질문이 아니다. "지난 분기에 이탈한 고객들, 온보딩에서 빠진 건가요 아니면 3개월 차에 빠진 건가요?”라는 류의 질문이다. 전자는 시간을 쓰지 않았다는 증거고, 후자는 시간을 썼다는 증거다. 상대도 어렴풋이 고민하고 바라보던 패턴들을 같이 바라봐주고 물어봐줄수 있다는건, 상대가 최종 목표를 삼는 가설을 당신이 같이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2번 보다 좋다.
4️⃣ 상대의 감정을 예측한다.
말하기 전에, 그러니까 적어도 구두나 문서로 전달되는 정보들 없이, 상대가 이 말을 들으며 무엇을 느낄지 먼저 안다.
1번에서의 공감은 이미 드러난 감정을 확인하는 일이다. 과거형이고, 틀릴 수가 없다. 예측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감정을 맞히는 일이다. 미래형이고, 반드시 틀린다. 그래서 공감은 비용이 없고, 예측은 비용이 크다.
여기서 대부분이 역지사지를 한다. "내가 저 입장이면 어떨까." 틀렸다. 그건 예측이 아니라 투사다. 내 감정을 상대의 얼굴에 붙여놓고 이해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열 번 중 아홉 번은 상대가 아니라 나를 만나고 돌아온다.
영업에서의 예측은 이렇게 생겼다.
"이 거절을 이메일로 보내면 상대는 화나지 않는다. 대신 자기 상사에게 뭐라고 보고할지를 먼저 걱정할 것이다. 그러니 거절 사유가 아니라, 그가 복사해서 붙여넣을 수 있는 문장을 써줘야 한다."
가설이 있고, 대상이 있고, 검증이 가능하다. 그리고 이 노력은 티가 나지 않는다.
예측이 맞아떨어지면 대화는 그냥 매끄럽게 흘러가고, 상대는 당신이 무슨 노력을 했는지 영원히 모른다. 티가 나지 않는 유일한 노력이다.
여기서부터는 준비가 아니라 훈련이다. 수백 번의 대화에서 스스로 가설을 세워보고 던져보며 틀려봐야 맞기 시작한다.
5️⃣ 손해를 감수하고 진실을 말한다.
가장 비싼 자세다. "이건 저희 제품으로 해결 안 됩니다.”, “지금 도입하시면 안 됩니다. 6개월 뒤에 오세요."
딜을 잃을 각오로 하는 말은, 딜을 얻으려는 모든 말보다 무겁다. 그리고 이걸 한 번 경험한 상대는 다음 3년 동안 당신을 기억한다. 영업을 당하는 상대도 반드시 당신의 자리에 서봤기 때문에, 손해를 감수하는 당신의 모습, 여유와 희생은 심지어 귀감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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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ttom-up 파운더에게 적용
A. 다음 미팅에서, 한 번은 반대하라.
고객이 불평하면 끄덕이고, 요구하면 로드맵에 넣고 있다면 당신은 1️⃣에 갇혀 있다. 순응은 계약을 만들지만 리텐션은 만들지 못한다. 동의할 수 없는 지점 하나를 찾아 말하라. 미팅당 하나면 충분.
B. 고객의 문제 정의를 받아 적지 마라.
고객이 자기 문제를 정확히 정의했다면 이미 내부에서 해결했을 것이다.
"말씀하신 건 A인데, 제가 보기엔 B입니다. 왜냐하면—" 이 문장을 입 밖으로 내라. 기분 나쁘지 않게, 그러나 내 의견을.
C. 문화를 핑계 대지 마라.
한국은 위계 때문에 못 한다고들 하고, 미국은 직설적이라 편하다고들 한다. 둘 다 핑계다. 어디서든 노력을 들인 반대 의견은 환영받고, 노력 없는 공감은 무시당한다.
D. 미팅 전에 3분을 써서 적어라.
"이 말을 들으면 저 사람은 ___를 느낄 것이다."
끝나면 맞았는지 확인하라. 처음 서른 번은 틀린다. 그 서른 번이 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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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으로 미팅을 끝내고 나오는 파운더가 아니라, 고객의 문제 정의를 뒤집고 나오는 파운더를 찾는다. 세일즈는 재능이 아니라 훈련이다. 혼자 수백 번 틀리기보다, 이미 그 대화를 수천 번 해본 사람들 앞에서 틀려보는 게 결국 더 빠른 길이다.
미국 시장을 진지하게 준비하고 있다면, "미국" 댓글 또는 DM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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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IndieBio HQ, S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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