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적이지 못하고 낯을 가리던 성격이, 결국 카메라 앞뒤의 경계를 허문 가장 강력한 장점이 되었다."
2024년 5월 7일. 제60회 백상예술대상 무대. 보통의 연출자라면 작품상이나 연출상 후보에 오르는 것이 당연한 자리입니다. 하지만 한 남자가 'TV 부문 남자 예능상(예능인상)' 수상자로 호명되어 무대에 오릅니다.
그는 다름 아닌 대한민국의 스타 PD, 나영석이었습니다.
수상 소감을 위해 마이크 앞에 선 그는 가장 먼저 "죄송합니다"라고 운을 뗐습니다. "제가 받을 일이 없는 분야의 후보로 지목된 것만 해도 이상한데 상까지 주시니 죄송스럽다"며 쑥스럽게 웃는 그의 모습. 예능인이 아닌 연출자가 예능상을 받는 한국 방송 역사상 전무후무한 장면이었습니다.
이 장면만 보면, 그는 처음부터 대중 앞에 서는 것을 즐기고 탁월한 입담과 친화력으로 무장한 '타고난 방송인'처럼 보입니다.
"저는 원래 엄청난 아웃사이더였고, 낯을 너무 많이 가렸어요."
이 짧은 고백 안에는 20년 전, 방송국의 화려함 속에서 겉돌며 자신의 소심한 성격 앞에서 작아졌던 신입 연출자의 긴 시간이 압축되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한국 최고의 스타 PD이자 예능인으로 불리는 남자가, 사실은 본인의 내성적인 성격 탓에 주눅 들었던 다섯 개의 장소를 따라갑니다.
이 글이 끝날 때쯤, 당신은 치명적인 약점이라고 생각했던 성격도 어떤 맥락에 놓이느냐에 따라 가장 독보적인 경쟁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실패를 성공으로 변화시킨 유명인들의 인사이트를 다룹니다.
장소 1. 낯가림 심한 복학생이 들어간 연극반 (1990년대 후반 연세대학교)

나영석은 1976년생으로, 연세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했습니다. 그는 본래 행정고시를 준비하는 평범한 대학생이었습니다. 낯가림이 심하고 소심했던 그가 우연히 발을 들인 곳이 바로 대학 연극반이었습니다.
무대 위에서 화려하게 빛나는 연기보다는, 무대 뒤에서 사람들과 대본을 짜고 코미디 연출을 하는 것에 묘한 흥미를 느꼈습니다. 남들 앞에 나서는 건 두려웠지만, 조용히 관찰하며 이야기를 엮어내는 일에는 재능이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그가 본 사실은 이것이었습니다. 남들 앞에서 목소리를 크게 내지 못하는 사람도, 무대 뒤에서 판을 짜는 일만큼은 누구보다 치밀하게 해낼 수 있다.
장소 2. 대형 사고를 치고 좌천을 기다리던 지방의 어느 곳 (2001년 KBS 신입 시절)

2001년, 그는 우여곡절 끝에 KBS 27기 공채 프로듀서로 입사합니다. 입사 기획안으로 '냉장고를 열어라'라는 요리 프로그램을 냈을 만큼, 일상의 소소한 것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신입 시절, 그는 청룡영화제 시상식에서 MC를 무대로 올려보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았습니다. 축하공연에 넋을 잃고 구경하던 그는 그만 타이밍을 놓쳐버렸고, 엄청난 방송 사고를 내고 맙니다.
예능국장의 불호령이 떨어졌고, 그는 모든 것을 체념한 채 지방으로 내려가 징계를 기다렸습니다. 화려하고 빠릿빠릿해야 할 예능국에서 자신은 너무나 굼뜨고 어울리지 않는 PD 같다고 뼈저리게 느낀 시간.
이곳에서 그가 느낀 것은 거대한 장벽이었습니다. 기가 센 사람들만 살아남는 방송국에서, 소심하고 실수투성이인 신입은 철저히 무력했습니다.
장소 3. 사람의 진짜 모습을 관찰하던 교양 프로그램 편집실 (2000년대 초반)

사고를 수습하고 복귀한 그가 거친 곳은 화려한 스튜디오 예능이 아닌, 「VJ 특공대」 같은 정보·교양 프로그램이었습니다. 화려한 연예인들의 개인기를 담는 대신,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과 현장의 생생함을 묵묵히 카메라에 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 시기는 그에게 엄청난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억지로 웃음을 쥐어짜내는 예능의 공식 대신, 사람을 관찰하고 그 안에서 자연스러운 서사를 끌어내는 훈련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곳에서 그가 본 사실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진짜 재미는 작위적인 세트장이 아니라 사람의 자연스러운 본성에서 나온다. 둘째, 말을 잘하는 것보다 남의 이야기를 끈기 있게 들어주는 것이 더 훌륭한 연출이다.
장소 4. 카메라 밖의 PD가 카메라 안으로 끌려 들어간 야외 촬영장 (2007년 「1박 2일」)

2007년, 그는 그의 인생을 바꿀 프로그램 「해피선데이-1박 2일」의 메인 연출을 맡습니다. 보통의 메인 PD는 카메라 뒤에서 근엄하게 지시를 내립니다. 하지만 소심하고 권위가 없던 그는 출연진(강호동 등)의 억지에 속수무책으로 밀리기 일쑤였습니다.
출연진은 카메라 밖의 PD를 화면 안으로 끌어들여 내기를 제안했습니다. 권위적인 PD였다면 편집으로 잘라냈을 장면. 하지만 그는 그 찌질하고 억울해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방송에 내보냈습니다. 출연진이 틀리면 "땡!"을 외치고, 같이 복불복을 하다가 노숙을 하는 PD.
이 현장에서 그가 본 사실은 이것이었습니다. 완벽하고 권위 있는 리더가 될 수 없다면, 차라리 출연진과 함께 구르고 당해주는 친근한 형이 되자. 약점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을 때, 시청자들은 오히려 연출자와 출연자의 인간적인 유대감에 열광했습니다.
장소 5.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옮긴 낯선 케이블 방송국 (2012년 tvN)

「1박 2일」로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 PD가 되었지만, 2012년 그는 돌연 KBS를 퇴사하고 당시만 해도 변방으로 취급받던 케이블 채널 tvN(CJ ENM)으로 이적합니다.
거대한 지상파의 플랫폼 파워를 내려놓는 무모한 도전. 하지만 그는 큰 방송국의 거대한 시스템 속 고위 간부가 되기보다, 여전히 현장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자신만의 작은 기획들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가 보여준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가장 안정적이고 화려한 자리에 올랐을 때 그 타이틀을 버릴 수 있는 사람만이, 과거의 성공에 갇히지 않고 완전히 새로운 판을 짤 수 있습니다.
Epilogue
우리는 흔히 방송을 이끄는 사람은 강력한 카리스마와 외향적인 성격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영석의 궤적은 그 편견을 완벽하게 깨줍니다.
낯가림이 심했던 연극반 복학생, 시상식 무대를 망쳐 징계를 기다리던 찌질한 신입, 권위가 없어 카메라 밖에서 조롱당하던 PD. 그는 이 모든 기질을 고치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소심함과 낯가림, 친근함을 장점으로 카메라 앞뒤의 경계를 허물고 시청자와 가장 가까운 연출자가 되었습니다.
그가 보여준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본인이 가진 성향이 당장의 조직 문화와 맞지 않아 보일지라도, 그것을 장점으로 바꾸는 맥락을 찾아내는 순간 그것은 가장 독보적인 당신만의 장르가 됩니다.
다음 파트에서는 지상파를 떠나 케이블로 이적한 그가 어떻게 「꽃보다 할배」, 「삼시세끼」를 거쳐, 유튜브라는 거대한 파도에 올라타 마침내 '백상예술대상 예능상'을 수상하는 크리에이터로 진화했는지 그 돌파의 과정을 따라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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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 가장 부끄러워하는 기질도, 판을 바꾸면 가장 대체 불가능한 장점이 됩니다.
※ 본 뉴스레터의 사실관계는 나영석 PD의 1976년생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졸업, 대학 연극반 출신, 2001년 KBS 27기 입사, 신입 시절 청룡영화제 방송 사고 일화, 「VJ 특공대」 등 교양 프로그램 조연출 경험, 2007년 「1박 2일」을 통한 연출자와 출연자의 경계를 허문 진행 방식("땡!"), 2012년 tvN 이적 등 다수의 방송 인터뷰 및 자서전, 대중 매체에 공개된 사실을 바탕으로 재구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