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덕트 #커리어 #트렌드
넷플릭스 '매드 유니콘'을 PM의 시선에서

드라마를 본 지 꽤 됐다. 그런데 아직도 몇 장면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넷플릭스에 있는 태국 드라마다. 한 줄로 말하면, 아무것도 없던 청년이 배송 스타트업을 세워 태국 최초의 유니콘을 만든다는 이야기.

솔직히 나는 이 장르에 약하다. 실화기반. 실화는 다르다. 누군가 진짜로 영화로 만들법한 일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이 주는 무게가 있다. 태국 첫 유니콘 기업 Flash Express 창업자의 이야기를 각색한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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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산티는 태국 시골 출신이다. 가진 거라곤 엄마에게 배운 유창한 중국어 하나. 방콕에 올라와 이런저런 일을 전전하다, 중국과 태국의 배송 수수료가 크게 차이 난다는 걸 발견한다. 여기에 사업이 있다고 본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택배 스타트업이 '선더 익스프레스'다. 배송 시장은 이미 대기업이 쥐고 있었고, 산티는 자본도 배경도 없는 심지어 가난한 한 청년일 뿐이었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어렵게 모은 팀이 흔들리고, 공격적으로 밀어붙인 전략이 오히려 회사를 위기로 몬다. 이 드라마가 좋았던 건, 이 과정을 미화하지 않아서다. 성공보다 그 과정이 진짜 같았다.

다만 실화 기반이라고 다 곧이곧대로 믿으면 안 된다. 각색이 꽤 들어갔다. 실제 창업자에게 복수극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드라마 속 '선더 익스프레스'와 실제 'Flash Express'는 분리해서 보는 게 맞다. 실화 마니아는 실화와 각색을 분리하는걸 좋아한다.

나는 이 드라마를 제품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봤다. 그리고 나를 오래 붙든 건 단순한 성공 서사가 아니라, 세 장면이었다.


#1. 비 오는 날, 오토바이 위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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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는 산티가 직접 현장을 뛰는 장면이다.

유통은 흙 만지는 사업이다. 그리고 물리적이고, 거대한 자본이 필요하다. 그래서 보통은 대기업의 자본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는 스트릿 출신 대표가 비 오는 날 직접 오토바이를 타고 배송을 뛰는 장면이 있다.

솔직히 이건 내 로망인 것 같다. 밑천 있는 성공도 멋지다. 하지만 회사에서 쪽잠 자고 지저분한 몰골로 일하다 같이 배달을 뛰고, 에너지를 터뜨리며 순간순간의 고통을 이겨내고 끝내 성공하는 것. 나는 그런 그림에 마음이 동하는 편이다.

그냥 멋져 보여서만은 아니다. 자본이 있으면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영역이 있다. 대표가 직접 오토바이를 타는 일 같은 것. 그런데 나는, 서비스를 만들 때 특히 초기에 파운데이션으로 반드시 필요한 진정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으니, 그 자체로는 자본을 이길 수 없다.

하지만 그게 쌓였을 때는 다르다. 그 진정성이 쌓여 제품의 철학을 만들고, 가치를 더 깊게 만들고, 유저와의 관계를 쉽게 무너지지 않게 만든다. 나는 이걸 진심으로 믿는다. 그렇게 현장을 뛴 사람이 가진 단단함을 믿고, 실제 유저를 눈앞에서 만나본 감각을 믿는다.

나는 현실적으로 일하는 사람이다. 감각이 아니라 숫자로 설득해주면 그냥 따를 수 밖에 없다. 그런데도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이 믿음만큼은 여전히 갖고 있다. 그게 저 장면에 그대로 보여서, 참 좋았다.

#2. 유리창 앞의 산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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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이 인상 깊었던 건, 여기서 '열심히'와 '전략'이 갈리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 산티의 고민은 이랬다. 가격은 이미 더 낮출 수 없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이길 것인가. 그가 유리창에 그린 답은 품질이었다. 지점을 늘려 커버리지를 확보하고, 문 앞까지 배송하겠다고 선언한다. 그러려면 자본이 필요했고, 그래서 투자자를 만나러 가 투자를 받아낸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내가 본 건 '가격이냐 품질이냐'가 아니었다. 그건 전략이 아니라 전략의 결과다. 진짜 전략은 그 앞에 있다. 우리 유저가 누구인지 정하는 것. 그가 정확히 어디를 찌를지 정하는 것. 그 유저가 이걸 왜 써야 하는지를 만드는 것.

산티는 그 답을 골랐다. 싼 것보다 제대로 받는 걸 원하는 사람, 집 앞까지 받고 싶은 사람. 가격을 못 낮추니 품질로 간다는 결정도, 사실은 '우리 유저는 이런 사람'이라고 정의한 것이다. 그는 남들보다 열심히 해서 이긴 게 아니다. 누구를 위한 서비스인지를 먼저 정했다. 그리고 필요한걸 판단했고 투자를 받았다. 지분과 바꿨다.

제품에는 전략이 필요하다. 작은 팀일수록 더 그렇다. 자본도 인력도 부족한 팀은 모든 걸 다 할 수 없고, 모두를 위한 서비스를 만들 수도 없다. 누구를 위한 것인지, 어디를 찌를지, 왜 쓸지를 정하는 것. 작은 팀에겐 그게 거의 전부다.

#3. 돌아온 산티

세 번째는 마지막 장면이다.

다 이룬 뒤, 산티는 함께했던 공동 창업자를 찾아간다. 그녀가 회사를 살리려고 지분을 팔았던 것을, 이자까지 쳐서 돌려주기 위해서. 나는 이 장면이 너무 좋았다.

전략만 있고 성공만 했다면, 이건 그냥 단순한 성공 신화였을 것이다. 이 드라마가 마지막에 깊은 인상을 남긴 건, 함께한 사람의 공로를 알아주고, 기억하고, 자기가 가졌을 때 그걸 다시 돌려주는 행위 때문이다.

솔직히 나는 포용을 잘하는 리더가 아니다. 오히려 운동선수 감독에 가깝다. 모든 사람들과 함께 차근차근 성장하는 사람이 아니다. 잘하면 더 밀어붙이고 그런 스타일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런 나조차, 함께한 사람의 노고만큼은 냉정하게 보려고 한다. 저 사람이 팀에 실제로 어떤 에너지를 미쳤는지. 그리고 거기에 어떻게든 보답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내 목표다. 그게 믿음의 형식으로던 아니면 진심을 담은 리스펙의 제스쳐로서든 정확한 보상으로 돌아가게 하는것 그게 나의 최종 목표이다.

당연한 일처럼 보인다. 그런데 회사에서 여러 일을 겪으며 나는 이게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게 됐다. 특히 안 해도 되는 일일수록 사람은 더 쉽게 잊는다. 갚지 않아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을, 굳이 갚으러 가는 것. 그건 계산이 아니라 예우다. 나는 그게 진짜 팀워크라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나에게 성공은 판을 이기는 것만이 아니다. 같이한 사람에게 돌려줄 수 있는 자리에 서는 것까지가 성공이다. 산티에게는 그 두 개가 다 있었다. 사업을 성공시키는 힘 그리고 함께 만든 사람을 놓지 않는 태도.

 

그래서 나는 이 드라마를 이렇게 기록하고 다음을 도모한다.

인생이 마음처럼 안 풀린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이렇게 열심히 해서 뭐가 달라지긴 하나 싶은 때. 그런 때 이런 드라마를 보면, 그래도 이런 사람이 있으니까 나도 한번 더 해보자는 마음이 든다. 아무것도 없던 사람이 판을 짜서 자기 자리를 만들었다는 것. 그게 픽션이 아니라 실제로 있었다는 것.

산티가 잡은 그 포지션은, 실제 유통이라는 판에서 정말 통하는 자리였을까. 대기업이 이미 장악한 시장에서, 자본 없는 사람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실제로 있었을까. 그 시절에만 가능한건 아니였을까? 지금도 가능할까?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하고자 하는 사람 눈에는 기회가 보인다. 그리고 시장에는 항상 틈이 있고 변화하기때문에 기회가 온다. 그걸 다시 믿어본다.

이 드라마를 계기로, 나는 유통이라는 도메인과 Flash Express라는 기업을 직접 파보기로 했다. 드라마를 보며 느낀 것을, 이번엔 구조로 확인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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