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츠가 정신을 갉아먹고 있다는 결론을 내리자마자 폰에서 YouTube, Instagram, Facebook을 지웠다. 다음 날 모바일 브라우저를 켜서 인스타그램을 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덕분에 “2026년 상반기 말아먹었을 때 추는 춤" 포스팅을 발견했다. 위안을 받은 느낌이었다. 낯선 미국에서 스타트업을 창업하면서 쉬울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역시 사람은 맞아 봐야 아픈지 아나 보다.
Runbear 2026년 상반기 회고
이번 월드컵 탈락 이후 홍명보 감독이 욕을 먹을 때 남의 얘기 같지 않았다. 전략의 부재든 전략의 실패든, 성과가 나지 않으면 스스로를 아주 처절하게 돌아봐야 한다. 치부를 스스로 드러내는 것은 항상 쉽지 않다. 하지만 쉬운 일이면 누구나 했겠지. 인생은 어차피 스토리다. 어려울 때일수록 더 드러내고 이겨내야, 극복했을 때 더 자랑할 수 있다.
Runbear의 상반기 매출 성장이 둔화되었다. 우리가 가지고 있던 무기였던 Organic Growth가 저조해졌다. 신규 유입이 줄어들고 저관여 고객의 이탈이 발생하면서 성장이 둔화됐다. 다행히 고관여 고객의 사용량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매출을 방어할 수 있었다. (참고로 1분기에 $500K ARR을 달성했다.)
문제는 명확했다: 나다.
조직은 어쩔 수 없이 대표의 방향성을 따라간다. 선형적인 성장보다 기하급수적인 성장을 바랐던 상반기의 Runbear 대표 이성원은 Land and expand라는 그럴싸한 이름 아래 Runbear Personal Agent: Fyxer for Slack 개념의 기능을 출시했다.
생각의 흐름은 단순했다. 사람들은 Slack에서 너무 많은 메시지를 받고 이로 인해 괴로워한다. AI가 내가 접근 가능한 도구들을 활용해서 미리 정보를 확인하고 답을 작성해 두면 사람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효율적으로 자동화할 수 있을 것이다. Fyxer는 이메일 초안을 미리 작성해 주며 매출을 가장 잘 내는 스타트업 중 하나로 성장했다. 우리 서비스의 주요 고객들은 이메일보다 Slack으로 내부 커뮤니케이션을 많이 하니, 이를 더 쉽게 도와주면… 말이 되는데?
뭐든 말은 된다. 항상 아이디어는 제일 싸고 실행이 전부다. 이번 실패 또한 그렇다.
- 고객의 문제를 먼저 검증하지 않았다. 인터뷰하고, 그들이 원하는지 검토하고, 그들이 실제로 해결하고 싶은 일(Jobs to be done)이 무엇인지 검증하지 않았다.
- 팀을 하나로 집중시키지 않았다. Enterprise 고객 대응을 강화하는 일과 B2C -> B2B로 넘어가는 Land and Expand 접근을 동시에 수행했다. 더불어 Vertical Industry 전략도 함께 수행했다. 메시지도 섞이고, 온보딩도 섞이고, 업무도 섞였다.
- 동작하는 일을 꾸준히 하지 않았다. 용례 배포, 인플루언서 협업 등 본래 동작하던 일들을 ‘급격한 변화’라는 변명 하에 등안시했다.
- 외부에 위임을 많이 했다. Paid marketing, outbound email campaign, cold calling 등 다양한 시도를 동시에 하기 위해 외부의 손을 많이 빌렸다. 이는 외부 업체보다는 충분히 결정하고 실행할 수 있게 준비된 상태가 아닌 상황에서 외부의 도움을 받은 우리의 문제다.
결론적으로 AEO가 망가지고 (SEO는 살아남았다), 온보딩 퍼널이 망가졌다. 다행히 기존 고관여 고객들이 Runbear를 더 많이 사랑해 주고 있긴 한데, 이는 Personal Agent 때문이 아니었다.
그래서 무엇을 배웠나?
원칙은 중요하니까 원칙이다. 우리가 세운 원칙은 a) Launch and learn, 그리고 b) Customer-centric이다. 베타 출시는 2–3일 안에 한 뒤 고객에게 배우거나, 그보다 큰 작업이라면 고객을 먼저 만나 봐야 한다. 2주 잡고 개발하면 출시까지 한 달이 걸리고, 홍보까지 2–3달을 잡아먹는다.
다양성이 필요하다. 인종, 성별, 직군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최근 Claude Code 창시자 Boris가 팀원을 다섯 가지 타입으로 분류했다: Prototyper, Builder, Sweeper, Grower, Maintainer. Prototyper인 나는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디어와 제품, GTM을 시도한다. 자연스레 동작하는 기존 업무는 어느새 우선순위가 낮아져 있다. 문제는 내가 대표라는 점이다. 나의 우선순위가 자연스럽게 팀의 우선순위에 녹아든다. 동작하는 일을 더 잘 동작하게 꾸준히 실행해 주는 사람에게 충분한 위임과 지지를 할 필요가 있다.
전략은 “어떤 필드에서 플레이할 것인가"와 “어떻게 이길 것인가"의 조합이며, 이는 실행 전에 검증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어느 전장에서 싸울지 정하지 못하면 모든 것을 하려다가 가랑이가 찢어진다. 최근 우리 팀은 일주일간 모든 것을 잠시 멈추고 함께 전장을 고민했다.
버릴 것은 과감히 버린다. 내가 제일 못하는 일 중 하나다. 끝없이 스스로에게 주문해야만 버릴 수 있다.
- B2C는 하지 않는다. PLG든 Sales Motion이든, B2B를 제대로 한다.
- General building tool은 지양한다. 모든 것을 만들 수 있는 도구가 아니라, 특정 목적을 쉽게 달성할 수 있는 도구가 된다.
- Outbound cold email, LinkedIn, calling에 들이는 노력은 최소한으로 줄인다. B2B 고객은 인바운드와 소개, 컨퍼런스 참여를 통해 발굴한다.
덧. 버티컬 미국 업계: 버티컬 업계 공략을 실험하면서 Event AV Rental 고객, Oatmeal을 판매하는 고객 등 전통 비즈니스의 AI 도입을 도와주기도 했다. 보통 이들은 매우 낙후된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있어서 AI 도입이 어렵고, 이는 분명한 기회다. 헌데 그만큼 GTM이 어렵다. 이들을 검색이나 광고로 접근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600건 이상의 Cold calling도 시도했지만 미팅 주선까지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했다. 미국은 각 버티컬의 시장 크기도 충분히 크기 때문에 가능성이 높은 분야지만, GTM 관점에서는 컨퍼런스/오프라인 미팅/지인 소개 등 장기적으로 꾸준한 노력이 필요한 접근이다.
그래서 Runbear의 2026년 하반기는?
멋지게 빛날 거다.
최근 Claude Tag가 출시되었다. 첫 반응은 “으악”이었지만, 다음 날 “오예"로 바뀌었다. AI를 팀원처럼 대하는 일과 어떻게 일하는지 상상하게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Claude Tag 덕분에 시장이 이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파도가 오면 서핑 보드를 꺼내야지.
물론 우리가 같은 전장에서 Anthropic과 맞짱을 뜨기는 어렵다. 하지만 우리는 이 필드에서 더 오랜 기간 많은 학습을 했고, Mid-market B2B 회사들의 Champion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게 왜 필요한지 안다.
Runbear는 채널별 General AI agent가 아니라, 용례(use-case) 중심 Team agent에 집중할 예정이다. 우리한테 필요한 건 더 많은 기능이 아니라 더 많은 고객이고, 고객이 필요한 건 “일을 해결하는 것”이지 AI를 만드는 도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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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빠르게 실행하고, 빠르게 실패하고, 작은 성공을 쌓아 나간다.
덧. 창업자의 20%는 항상 다음 기회를 발굴하는 데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