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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굿즈 시대, 디자인권은 어디까지 보호될까 - 국가유산은 누구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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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2만 개 팔린 미니어처, 그리고 짝퉁

2022년, 한 남성 그룹 멤버가 SNS에 작은 불상 미니어처 사진을 올렸다.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에 있는 국보 반가사유상을 본떠 만든 굿즈였다. 게시물 하나로 제품은 2만 개 넘게 팔려나갔고, 곧이어 한 온라인 쇼핑몰에 비슷한 모양의 모조품이 올라왔다. 박물관 측이 문제를 제기하자 판매처는 조용히 이미지를 바꿨다.

이 작은 사건 하나에 디자인권법의 주요 질문이 들어 있다. 반가사유상은 천 수백 년 전 만들어진, 누구의 것도 아닌 국가유산이다. 그런데 그것을 본뜬 '미니어처'는 누군가의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 경계는 어디에 있을까?

국가유산청은 '뮷즈'(국립중앙박물관 굿즈 브랜드)의 성공에 자극받아 'K헤리티지'라는 자체 브랜드를 키우고 있고, 경복궁에는 별도의 대표 상품관까지 짓는다. 국립중앙박물관의 굿즈 매출은 반기 기준 115억 원을 넘어섰다. 시장이 커지는 만큼 분쟁도 늘어난다. 실제로 K헤리티지 굿즈 상당수는 단청 패턴이나 전통 동물 모티프를 그대로 가져다 쓴 탓에, 해외에서 헐값에 유통되는 모방품에 법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이미 나온다. 전통문화를 소재로 했다는 이유로 저작권·디자인권을 주장하기가 까다롭기 때문이다.

이 글은 그 경계가 실제로 어디에 그어지는지, 국내외 판례를 통해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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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ChatGPT

 

 

1. 출발점 — 전통은 원칙적으로 '퍼블릭 도메인'이다

디자인보호법 제33조는 디자인등록의 요건을 정한다. 핵심은 두 가지다.

  • 출원 전에 이미 공지되었거나, 공연히 실시되었거나, 누구나 볼 수 있게 알려진 디자인이면 등록할 수 없다.
     
  • 통상의 지식을 가진 사람이 그런 공지 디자인이나 널리 알려진 형상·모양을 바탕으로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디자인도 등록할 수 없다.


전통문양·전통 형상은 거의 모두 이 첫 번째 관문에서 걸린다. 단청, 격자무늬, 한지 무늬, 십장생도, 기와의 동물 문양, 한글 자모 — 이들은 이미 수백 년 전부터 누구나 보고 베껴 쓸 수 있었던 공지의 영역이다. 디자인보호법 제121조에 따른 무효심판에서 가장 흔히 등장하는 논리도 바로 이것이다. "이 문양은 원래 모두의 것이었다."

이 원칙만 보면 결론은 명확해 보인다. 전통은 공유 재산이고, 누구도 독점할 수 없다. 그런데 실제 판례를 들여다보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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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ChatGPT

 

 

2. 그런데 법원은 디자인권을 인정한 사례도 있다


새 심미감을 인정받은 경우 — 소파가 된 전통 격자무늬

전통가구나 한옥 창살에서 흔히 보이는 '아자(亞字) 격자무늬'를 소파 골조의 전면·후면·측면·배면 전체에 입힌 디자인이 있었다. 이 문양 자체는 누구나 아는 공지 문양이었지만, 특허법원은 이를 소파 골조라는 물품 전체에 적용한 결과 종래 소파에서 볼 수 없던 전혀 다른 심미감이 생겼다고 보아, 권리범위 판단에서 이 문양을 완전히 무시하지 않았다(특허법원 2010. 5. 12. 선고 2009허9174 판결). 핵심은 '무엇을 썼는가'가 아니라 '어디에, 얼마나 넓게, 어떻게 적용했는가'였다.

이 논리를 경복궁의 단청 무늬에 대입해보면, 단청 자체는 누구나 그릴 수 있는 공지 문양이지만, 그것을 키보드 전면 전체에 입히거나 가구 골조 전체에 두르는 방식이 기존 제품과 전혀 다른 인상을 만든다면, 등록 유지의 여지가 생긴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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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ChatGPT


 

구현 방식으로 차별화한 경우 — 유리판이 된 한지 무늬

전통 한지 무늬가 이미 여러 제품에 쓰여온 사실은 법원도 인정했다. 그런데 유리판재 위에 크고 작은 줄기무늬를 실크코팅으로 입혀 입체적인 느낌을 준 디자인에 대해서는, 단순한 전용이 아니라 종전 의장과 다른 미감적 가치가 있는 '객관적 창작성'이 있다고 보아 무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특허법원 2003. 10. 24. 선고 2003허2652 판결). 전통 소재라도 코팅·입체감 같은 표현 기술이 더해지면 보호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다.

다른 사례에 적용해 보면, 고려청자의 상감 무늬나 운학문(雲鶴文)을 도자기가 아닌 다른 소재 — 타일, 패브릭, 패키지 — 로 옮길 때, 무늬 자체는 공지여도, 그것을 구현하는 재질·기법·질감이 새로우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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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ChatGPT

 

 

3. 반대편 — 퍼블릭 도메인에 그대로 머문 사례들

같은 영역에서 반대의 결론이 난 사례도 많다.

  • 전통 정자의 지붕 곡선미를 차용했지만, 완성된 형태와 내부 구조에서 기존 전통미와 구별되는 새로운 미감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창작성이 부정되어 등록무효가 유지됐다(특허법원 2006. 4. 13. 선고 2005허6672 판결).
     
  • 십장생도(해·구름·산·학·사슴·거북)를 매트커버에 배치한 디자인은, 십장생도 자체가 회화·공예 문양으로 국내에 널리 알려져 있어 통상의 디자이너라면 누구나 쉽게 채택할 수 있는 수준이라 보아, 등록디자인과 대비할 것도 없이 '자유실시'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특허법원 2006. 2. 9. 선고 2005허9572 판결). 


이 두 사례를 요약하면, 원형을 그대로 두르거나, 누구나 쉽게 떠올릴 조합 정도로만 변형하면, 법원은 '공유 영역'으로 돌려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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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ChatGPT

 

 

4. 같은 구도, 다른 무대 — 반가사유상과 한글


반가사유상: 유물은 공유재산, 구체적 조형은 창작물

앞서 말한 미니어처 사례로 돌아가보면,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이 만든 반가사유상 미니어처는 원본 유물에는 없는 요소들을 새로 디자인했다. 연꽃무늬가 들어간 받침대, 팔뚝의 음영선, 표정의 미세한 변화, 9가지 색상 구성 — 이런 요소들이 모여 하나의 독자적인 창작물이 되었다. 유사 디자인이 등장했을 때 문제가 된 지점도 이 지점, 즉, 유물 자체가 아니라 재단이 새로 만든 받침대와 음영선이었다. 유물은 누구나 활용할 수 있는 콘텐츠지만, 그것을 형상화한 구체적인 디자인은 별개로 보호받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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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ChatGPT

 

 

5. 해외는 어떨까

이 고민은 한국만의 것이 아니다. 전통·문화유산을 상업화하는 시장이 커질수록, 세계 곳곳에서 비슷한 분쟁과 제도적 대응이 나타나고 있다.

 

호주 — '카펫 사건'(Milpurrurru v Indofurn Pty Ltd, 1994)

호주 연방법원은 애버리지널 원주민 화가들의 전통 문양이 무단으로 카펫에 복제된 사건에서, 그 문양이 수만 년 전부터 전해진 신화적 '드리밍 스토리'에 기반한 것이라 해도, 개별 작가가 그것을 구체적인 작품으로 표현하는 데 들인 기술과 노력이 충분하다면 그 표현 자체는 새로운 저작물이 된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사상 최대 규모의 손해배상(약 18만 8천 호주달러)을 인정했고, 문화적 피해에 대한 배상까지 포함시켰다. 다만 정작 배상금은 수입업체의 파산으로 지급되지 않았다는 뒷이야기가 남는다. 전통 모티프(원형) 자체와, 그것을 풀어낸 개별 작가의 구체적 표현은 다르다는 점에서 한국 판례와 같은 결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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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 나바호 네이션 대 어반아웃피터스(2012~2016)

나바호 부족은 'Navajo'라는 명칭과 부족 특유의 기하학적 문양을 1849년부터 상업적으로 사용해왔고, 이를 미리 등록상표로 확보해두고 있었다. 패션 브랜드 어반아웃피터스가 'Navajo'라는 이름을 붙인 플라스크, 속옷 등 20여 개 제품을 출시하자, 부족은 등록상표를 근거로 소송을 제기해 4년 만에 합의에 이르렀다(합의 내용은 비공개). 이 사건이 한국 사례들과 다른 지점은, 부족이 '전통이니 보호받아야 한다'는 추상적 주장이 아니라 이미 확보해둔 등록상표를 근거로 싸웠다는 점이다. 권리화를 미리 해두는 것이 분쟁에서 결정적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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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 패션 브랜드들과의 잇따른 충돌, 그리고 2022년 입법

멕시코는 최근 수년간 가장 적극적으로 이 문제에 대응한 나라다. 까롤리나 헤레라가 오아하카 지역의 전통 자수를 디자인에 그대로 가져다 쓴 사건, 자라(Zara)가 믹스텍 전통 의상의 요소를 옷에 적용한 사건, 앤트로폴로지가 믹세 부족의 도안을 베낀 사건, 쉬인(Shein)이 마야 문양을 사용한 사건까지, 문화부가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사례가 줄을 이었다. 

기존 저작권법·지식재산권법으로는 이런 사안에 제대로 대응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분명해지자, 멕시코 의회는 2022년 1월 원주민·아프로멕시칸 공동체의 문화유산 보호를 위한 연방법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이 법은 전통 문양·도안에 대한 집단적 지적재산권을 명문으로 인정하고, 제3자가 이를 활용하려면 사전 동의를 받도록 했으며, 위반 시 행정 제재는 물론 형사처벌까지 가능하도록 했다. 기존 디자인법·저작권법의 틀로는 메울 수 없었던 공백을, 별도의 독자적(sui generis) 입법으로 채운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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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ChatGPT

 

 

6. 결론 — 전통은 공유 재산이다, 그러나 경계는 분명히 있다

국내외 사례를 모두 겹쳐 놓고 보면, 결론은 의외로 명확하다. 

전통문양·전통 형상·문화유산의 '원형' 그 자체는 원칙적으로 퍼블릭 도메인이다. 단청의 색감, 격자무늬의 기본 패턴, 십장생도의 구성, 반가사유상의 자세, 한글 자모의 모양 — 이것들을 누군가가 독점하는 경우, 한국 법원도 호주 법원도 거의 예외 없이 "그건 모두의 것"이라고 답해왔다.

그런데 그 원칙이 끝나는 지점에서 또 다른 원칙이 시작된다. 원형을 가져다 어떤 물품에, 어떤 비례와 배치로, 어떤 구현 기법으로 풀어냈는지에 새로운 미감이나 창작적 노력이 더해지면, 그 결과물은 디자인권(또는 저작권)으로 보호받을 수 있다. 

소파 골조 전체에 입힌 격자무늬, 실크코팅으로 입체감을 살린 한지 무늬, 연꽃무늬 받침대가 더해진 반가사유상 미니어처, 부족이 미리 등록해둔 상표, 호주 원주민 화가의 손끝에서 나온 구체적인 화풍 — 이들이 보호받은 이유는 전통을 '베꼈기' 때문이 아니라, 전통을 '다시 만들었기' 때문이다.

K-굿즈 시장이 커지는 지금, 이 경계선을 둘러싼 분쟁은 줄어들 가능성보다 늘어날 가능성이 훨씬 크다. 사업자에게 남는 실무적 결론은 명확하다. "전통문양이니 안전하다"는 안일한 인식에서 벗어나, 처음부터 구현 방식과 적용 범위를 설계 단계에서부터 차별화하고, 가능하다면 디자인권·상표권으로 미리 권리화해두는 전략이 필요하다. 분쟁이 닥쳤을 때 손에 쥘 수 있는 것은 '전통'이라는 명분이 아니라, 등록증 한 장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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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박연수 파트너 변리사/변호사는 서울대 생물교육학과를 졸업하고 2009년 변리사 시험, 2012년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였습니다. 생명공학, 약학 및 화학 분야 국내 및 해외 기업의 특허 업무 전반에 대하여 전문성을 가지고 업무를 수행해 왔으며, 국내 바이오 기업에서 IP 전략 수립, 국내외 IP 소송 업무를 담당한 바 있습니다. 현재, 화학 바이오 분야 특허출원 업무 및 저작권을 포함한 지식재산권 전반에 걸쳐 다루어지는 법률 자문 및 분쟁에 대한 대응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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